중국 무이산 여행기 武陵桃源(무릉도원) 가는 길
힐링 스토리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뗏목에 앉아 계곡에 몸을 맡기니 기이한 형상의 산세가 느릿느릿 흘러간다. 굽이치며 흐르는 물결 위로 뱃사공 노랫가락 더해지니, 그곳이 곧 무릉도원이었다.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중국 5대 명산’이란 수식어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천하 절경, 중국 무이산. 수려한 풍경과 향기로운 차, 수준 높은 문화 콘텐츠까지 누릴 수 있었던 시간으로 안내한다.

대나무 뗏목 타고 신선놀이
“중국에 있는 무이산을 아세요?” 누군가 물었다. 황산이나 태산은 익히 들었지만 무이산은 낯설었다. 당장 ‘정보의 바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감흥 없는 사전적 지식뿐이었다. 그렇게 미지의 무이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나라에서 무이산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하문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나서야 무이산에 도착했다. 시골 간이역처럼 아담한 공항 건물을 빠져나오니 뉘엿뉘엿 날이 저물고 있었다. 중국인들조차 지리적으로 멀고숙박비 등 여행경비가 비싸 여행할 엄두를 못 낸다는 말을 체감했다.
이튿날 눈 뜨자마자 커튼부터 확 젖혔다. 무이산은 여전히 운무를 드리운 채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토록 보기 힘들담?’ 슬슬 뱃속 깊은 데서 오기가 올라왔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이산의 진면목을 알려면 두 번은 봐야 한다고 말했다. 9개의 계곡(구곡계)과 36개의 산봉우리, 99개의 암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무이산은 계곡을 따라 배로 유람하며 한 번, 산 위에 올라 첩첩산중을 내려다보며 또 한 번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첫 일정은 뗏목 유람이었다. 죽벌(竹筏)이라는 대나무 뗏목을 타고 가장 위쪽에 있는 9곡부터 1곡까지 9km의 계곡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빈 배들과 사공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이 젖을까 나눠준 비닐봉지로 발을 동동 동여매고, 구명조끼를 입고 죽벌에 올랐다. 사공이 기다란 대나무 하나를 가지고 능수능란하게 삿대질을 시작하자 이내 배가 강물 위로 미끄러져 나아갔다.
기분 좋게 좌우로 흔들리는 대나무 뗏목에 몸을 맡겼다. 이내 무이산은 꼭꼭 숨겨둔 산봉우리와 기암괴석을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옥녀봉, 철판장, 면경대, 대왕봉…. 아, 주자가 이 계곡을 두고 ‘무릉계곡’이라 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상상 속 이상향이 아닌 눈앞에 펼쳐진 무릉도원이라니! 주자가 지은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가 절로 읊어졌다.

신선이 기거하는 천유봉
배 위에서 바라보니 붉은 누각이 선 산 능선을 따라 사람들의 무리가 보였다. 손짓으로 뱃사공에게 물으니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알아듣지 못할 중국어를 쏟아냈다. 아마도 “저기는 꼭 올라가봐야 한다”는 당부인 듯싶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곳은 36개 봉우리 중 아름답기로 소문난 ‘천유봉’이었다. 내가 곧 올라가게 될 곳이기도 했다.
천유봉으로 오르는 입구는 ‘도원동문’에서 시작했다. 도교에서 말하는 이상세계인 도원동(桃園洞)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복사꽃은 없었지만 문이 있는 계곡 인근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수려한 나무와 쭉쭉 뻗은 대나무 숲까지 운치를 더했다. 안내자를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길은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접어들고 있었다. 절벽에 아로새겨진 수천, 수만 개의 물줄기 자국에 압도됐다.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나이테와 다름없었다. 절벽 안쪽 깊숙한 곳에는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선녀탕’도 있다. 아쉽게도 선녀탕의 물은 바짝 말라, 선녀와의 만남은 다음으로 기약해야 했다.
천유봉으로 오르는 돌계단은 수직 절벽을 따라 촘촘히 이어졌다. 408m 높이의 봉우리 끝까지 빈틈없이 계단을 놓은 인간의 성실함에 감탄했고, 그 계단을 기어이 올라 천하절경을 보리라는 관광객의 의지에 또 한 번 놀랐다. 대열에 끼어 한 발짝 한 발짝 오르다보니 11월의 날씨에도 굵은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가파른 만큼 얼마 오르지 않으니 금세 시야가 탁 트였다.
발밑으로 흐르는 구곡계는 한 마리의 용처럼 꿈틀댔다. 초록색 비늘은 오후의 볕 아래 반짝였다. 기암괴석과 첩첩산중의 봉우리는 원근을 달리하며 사방으로 뻗쳐 있었다. 천유봉에 오르지 못했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절경 앞에서 말도, 카메라도 필요 없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일행은 서로 “내가 신선이 된 것 같다”며 감동을 나누었다.



武夷山上有仙靈
무이산상유선영
무이산 산상에는 신령들이 살고 있고
山下寒流曲曲淸
산하한류곡곡청
산 아래 시원한 물줄기 굽이굽이 맑구나.
欲識箇中奇絶處
욕식개중기절처
그중 빼어난 곳 알고 싶거든
櫂歌閑聽兩三聲
도가한청양삼성
뱃노래 두세 마디 한가로이 들어보세.

찻잔에 담긴 무이산
무이산 지역은 아열대 기후에 속해 사계절이 온난하다. 2000m 풍부한 강우량이 더해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자연경관이 만들어졌고, 2500종 식물과 5000종 곤충의 훌륭한 서식처가 되었다. 신의 축복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야생 차나무’를 자생하도록 했다. 바위에 달라붙어 자란 차나무에서 채취한 ‘무이암차’는 중국 내에서 고급 차로 통한다.
무이암차 중에서도 최고는 ‘대홍포’다. 이른 봄 차 잎이 필 때 멀리서 바라보면 차나무가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아름다운 붉은 색을 띤다는데, 그 맛은 또 어떨지 궁금해졌다. 내친 김에 무이산에 남은 네 그루의 대홍포 모수(母樹)를 찾아나섰다.
거대한 공원 형태로 보호되는 무이산 내부를 이동하려면 관람객 전용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 유명해진 다른 관광지는 사람들에 치여서 제대로 여행하기 힘든데, 이곳은 여간 깨끗하고 조용한 게 아니었다. 더 알려지기 전, 지금이 여행 최적기인 듯했다. 차에서 내리니 잘 가꿔진 차밭이 계곡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졌다. 차밭이 아니라 성실한 정원사가 관리하는 정원 같았다. 환영의 인사처럼 길에 떨어진 흰 꽃송이를 밟으며 걸어 들어갔다.
신선이 살 것 같은 대나무로 지어진 찻집 주변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맞은 편 절벽을 향하고 있었다.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작은 차나무가 올망졸망 있었다. 매년 5월경 사다리를 놓아 조심스레 차엽(茶葉)을 채취하는데 그 가격이 놀라웠다.
20g에 무려 15만 위안(한화 2523만원 상당)에 달한다고 한다. 입을 정화시키는 듯 부드러운 맛과 깊이 있는 향은 비할 데 없다고 한다. 아쉽게도 모수에서 얻은 대홍포차는 맛볼 수 없었지만, 몇 대의 몇 대를 거친 ‘손자 차나무’ 소홍포에서 채취한 차를 한 모금 맛보았다. 작은 찻잔 안에 무이산 하나가 오롯이 담긴 맛이었다.


실경 산수화 기행
무이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이트 관광’이 있다. 바로 ‘인상대홍포’ 공연이다. 중국의 유명 감독인 장이머우는 여행지마다 그곳의 스토리를 녹인 공연을 만들었는데, 윈난성의 ‘인상여강’, 계림의 ‘인상 유삼저’, 항저우의 ‘인상 서호’ 등이 그것이다.다섯 번째가 무이산의 ‘인상대홍포’ 공연이다. 1000년 만에 만나는 연인의 재회와 대홍포에 관한 이야기를 200명 이상이 출연하는 엄청난 규모의 공연으로 만들었다.
언어가 다름에도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야외공연장이지만 레이저빔과 화려한 조명, 음악이 관람객을 몰입하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경산수(實景山水) 공연’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다. 공연 중 무대가 360도 회전하더니, 스포트라이트가 켜지며 실제 무이산이 나타났다. ‘아!’ 순간 객석에서는 외마디 감탄사만 흘러나왔다. 무이산과 그 앞을 흐르는 계곡에 레이저 빔을 쏘니 사계절이 바뀌고, 나비가 날고 말들이 뛰놀았다.
한 시간의 공연이 어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말미에는 배우들이 관람석으로 따뜻한 차를 들고 내려와 대접했다.기대 없이 떠난 무이산 여행. 처음에는 풍경에, 다음에는 차에, 마지막에는 예술에 취하느라 3박4일이 금새 지나갔다. 솜씨 좋은 화원이 그린 한 폭의 산수화 속을 헤매다 온 기분이다.
출처 :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8/20161228011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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