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10장

                                  전도는?


   전도가 신자들 가운데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시대가 과연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할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책들이 쓰여지고, 말씀이 전해지고, 세미나가 열리고, 그리고 토론이 셀 수 없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과 노력의 집중에도 불구하고 복음전도를 민족할 만큼 펼치고 있는 지역교회는 거의 만나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많은 어린 신자들은 주일 복음 집회 외에는 전도활동이 거의 없는 교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그 주일집회마저도, 구도자들이 거의 없습니다. 또 성도들도 이웃과 동료를 초대하기를 몹시 번거로워합니다. 이것은 전도에 관한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돌아보게 합니다.

   첫 번째 주목할 것은, 주 예수께서 처음에 제자들에게 와서 전도자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에 관한 모든 가르침과 책자에서 거의 다루지 않은 듯한 것입니다. 제자들에 대한 초청은 다만 그분을 따르라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면 그분이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집중해야 했으며, 그분은 그들을 그분이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우리 스스로 전도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순종하여 따를 때 그분이 우리를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섬기는데 필요한 첫 번째 요건은 제자(follower)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 길을 좇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구주를 좇으라고 말하는 것은 소용없습니다. 그것은 좋게 말하면 순진한 것이며, 나쁘게 말하면 부정직한 것입니다. 영혼들에게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 복종하라고 말하면서 우리 자신은 주님을 좇지 않는다면 그것은 별 효과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에 불순종하면서 그 변명을 다른 구절들에서 찾으려 노력할 수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성경을 다룰 때 이중적인 잣대를 사용할 권리를 우리에게 부여했을까요?

   또 한 가지 생각할 문제는, 오늘날 우리는 전도를 특별 집회와 그리고 직접적인 결과와만 연관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특별집회'는 우리 각인의 전도 의무를 대신 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집회는 이따금씩 한번 열릴 뿐입니다. 교회에서 갖는 정규적인 복음 집회도 훌륭한 전도의 기회지만 그 역시 개개인의 의무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전도는 우리가 만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견고한 전도사역의 기초는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는 선한 간증입니다. 당신의 삶에는 다른 이들의 삶에는 없는 뭔가 소중하고 만족할만한 요소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의 삶이 그들의 삶과 다를 바 없다면,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구주께로 나오라고 초청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구주를 전할 때 우리는 복음을 정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치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단"을 보고자 하는 조바심에서 때로 참된 구원이 삶에 일으키는 변화를 등한히 여깁니다. 예수께서 구주뿐만이 아니라 주가 되신다는 것을 분명히 설명하십시오. 또한 그분의 주되심을 인정할 때는 그분을 순종하는데 필요한 능력이 주어진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십시오.

   우리는 때로 실수로, 복음을 가볍게 다룰 수도 있는데, 이 또한 주의할 일입니다. 우리는 너무 거칠고, 강경하게 밀어붙이다가 구도자들의 마음 문을 닫게 할 수도 있으나, 그 반대로 너무 복음을 가볍게 취급해서 아무 회개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게 할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는 죄에 대한 진정한 각성이 필요하며, 하나님이 죄를 몹시 증오하신다는 점을 생략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복음 메시지를 전할 때 어떤 밥법을 사용해야 할까요? 다른 모든 메시지가 그렇듯이 성경을 찾아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메시지는 세 가지 방향으로 증거되는데, 하나는 경건한 삶을 촉구하는 설교이며,  하나는 번민하는 영혼과의 개인적인 대화이며, 하나는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대중적으로 복음을 전한 다음 전도책자를 건네주는 것입니다. 그 중 첫 번째 메시지는 마태복음 5장 16절의 주님의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리고 두 번째 메시지는 사도행전 8장의 빌립의 경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때 빌립은 열매가 풍성한 복음의 현장에서 한적한 광야로 지시를 받아 가보니 한 사람이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뜻을 풀어줄 사람을 필요로 했습니다. 여기서 강조된 것은 번민하는 영혼과의 개인적인 교제입니다. 끝으로 세 번째 메시지는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선포한, 성경에 나타난 무수히 많은 예가 그 사례입니다.

   대중전도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역할이 아닙니다. 대중전도를 맡은 이들은 어디서 전도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결정해야 합니다. 지역교회의 복음 집회는 구도자들을 초청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그들이 낯선 손님이며 집회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훌륭한 사회자는 구도자들이 생소하고 어색한 느낌을 갖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세심한 신경을 쓸 것입니다. 오랫동안, 그것도 신자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복음을 전한다면 그것은 전도자로서는 부적합하다는 증거입니다. 복음전도는 요점이 분명하고, 알아듣기 쉽고, 위엄이 있고, 그리고 복음진리를 충분히 드러내야 합니다. 복음전도는 전도자의 지식이나 은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따라야 할 본을 찾는다면, 주님의 공적인 가르침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설교들을 살펴보십시오.


   교회의 집회 외에 또 어디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옥외 장소도 훌륭한 전도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쇼핑센터나 기타 번화한 장소를 택할 수 있습니다. 지방의 민속잔치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전도지를 뿌리고 또 가능하면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처음부터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한 사람이 구원받는 데는 대개 오랜 시간과 많은 과정이 소요되게 마련입니다. 그런 과정의 한 부분으로 쓰임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우리는 종종 외판원이 물건을 팔 듯 복음을 전하면서 믿을 것을 너무 재촉하는 것을 봅니다. 다그치고 부추겨 보지만 열매는 좀처럼 맺지 못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부추기지 말고 성령께서 마음을 부추기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결단을 촉구 하지 말고 성령께서 결단을 촉구하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역할은 다만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이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결과를 그분께 맡기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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