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은 있는가?

                                        2.

                    하나님이 계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극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한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욥 1:7).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해 계신 분이시므로 우리는 그분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도록 그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창조물은 그분이 그와 같이 자신에 대해 계시해 주시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1).

   우주의 광활함과 놀라운 질서, 다양함과 아름다움은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의 위대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조물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분의 크신 능력과 놀라운 지식, 뛰어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지니라" (롬 1:20).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어느 정도는 그 말을 신뢰합니다. 하나님도 역시 말, 곧 성경말씀을 통해 인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당신은 구약성경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명하셨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등의 표현들을 4,000번 (모세오경에서만 500번) 가량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21)라고 선언된 이유입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문학에서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말한 것으로 주장된, 그리고 후에 문자 그대로 성취된 명확하고도 상세한 예언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연의 산물로 보기에는 너무도 정확한 일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떠한 책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없습니다. 수천년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 19:7,8)라는 것을 개인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이 사실을 증명해 왔습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어떤 분야의 어떤 전문가도 성경에 나오는 단 한가지 사항에서도 잘못을 입증한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인즉 이렇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딤후 3:16).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살전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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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답은 있는가?

                                                                                                         존 발렌차드 

                                            서론


   삶은 수많은 질문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어떤 것은 하찮은 것이며 어떤 것은 좀 더 심각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당신은 당신의 건강, 재물, 직업, 가족, 미래에 관해서 여러 의문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장 크고 궁극적인 질문은 하나님과, 그리고 그 하나님과 당신과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좋은 건강, 안정된 경제, 확실한 직장, 행복한 가정, 희망찬 미래,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다 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투명하고 확실하며 영원히 지속될)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이러한 것들은 일시적인 것이며 결국 촛점이 빗나간 것들입니다.


   다음의 글은 왜 하나님과의 그러한 관계가 그토록 급히 요구되어지며 또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의 질문들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것들이며, 모든 사람이 원하는 답도 거기 있습니다. 철저히 그리고 주의깊게(필요하다면 두번 이상) 읽으십시오.


   당신은 이 메세지를 지나칠 이유가 없습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은 과연 계신가?


   이것은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분을 찾으려는 시도는 헛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하나님을 수학적 설명으로 증명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 증거는 매우 확실합니다.


   우주의 존재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을 '우연' 의 결과라고 한다면 많은 문제들이 생기게 되며 거기에는 아무런 해답이 없습니다. '빅뱅' (Big Bang) 이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생물체는 어디로부터 왔을까요? 심지어 '빅뱅(Big Bang) 조차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진화론은 널리 유포되어 있지만 놀랄만큼 복잡한 지구의 생물 형태는 그만 두고라도 어떻게 '무'가 '유'로 진화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서조차도 설득력이 악합니다.

   다른 모든 이론들도 마찬가지로 부족합니다. 여기에 단 하나의 만족할만한 설명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이 세계는 '원래부터 존재했던' 요소들이 우연히 딱 들어맞은 요행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 대신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닙니다" (히 11:3). 창조에는 시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들을 있게 하셨습니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 33:9).

   이것은 모든 곳에서 보여지는 놀라운 질서와 체계에 의해, 그리고 아주 방대한 것으로부터 미세한 조직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운영하고 있는 우주의 법칙에 의해 더욱 확실해집니다.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있고, 법은 법을 세운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양쪽 모두가 되십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행 17:24).


   그러나 '창조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인간 자신입니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우리가 '인격'이라고 부르는 것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은 지능적으로 선택하고, 양심이 있으며, 선악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또한 사랑하고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예배드리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디에서 이같은 자질들을 얻었을까요? 진화나 우연으로서는 이같은 것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가장 확실한 답은 이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인간은 우연히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우주의 창조자에 의해 신묘막측하게 (시 139:14) 지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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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22장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라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 2;15).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과 관련된 이 모든 문제들을 생각 해볼 때, 우리는 디모데후서 2장 15절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권면을 떠올리는 것이 좋습니다. 디모데라는 젊은이가 바울에게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자격을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라는 권면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된 자로 자신을 드리기를 힘쓰라고 바울은 적었습니다.

   먼저 디모데의 우선적인 소원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인정받다" 는 단어는 시련과 연단을 거쳤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것은 견습공이 견습기간을 마치면서 이제 숙련공으로 일할 자격이 충분함을 증명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 작품은 주인에게 검사를 받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꼼꼼한 검사를 통과하고나면 "합격" 이라는 인장이 찍힙니다. 그러나 기대하는 표준에 미치지 못하면 "불합격" 이라는 인장이 찍힙니다.

   그의 작품에 하나님의 인정이 새겨지면 디모데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일꾼, 다시 말해서 주인이 그의 수고의 결과를 자세히 검사할 때 머리를 떨구고 있을 필요가 없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대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그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바울은 그 다음 말씀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 옳게 분변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정확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밭고랑을 반듯하게 파는 농부와, 빵을 반듯하게 자르는 가정주부와 벽을 반듯하게 쌓는 미장이는 모두 옳게 분변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일을 잘 알고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일꾼의 증표입니다. 그것은 오래 참고 숙련할 때 비로소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인내로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에 친숙하고 성경을 당신의 존재의 일부로 삼으십시오. 그렇게 해야 당신의 삶과 간증을 주님 뜻에 합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지에 특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 편에서 노력이 없이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는 특권을 누릴 수 없음을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시간과 정력과 물질을 드려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도록 인생을 설계하셨으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목표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삶을 추구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작품에 대해 그분이 평가하실 때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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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21장

                                   결혼생활은?


   결혼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린 신자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약혼기간은 어느 정도 자유가 허락된 기간입니다. 주말을 당신이 원하는 데로 시간계획을 짤 수 있습니다. 원하면 얼마든지 집회에 쫓아다닐 수도 있고, 가정에 대한 책임 없이 친구들과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후에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결혼하는 즉시로 일단 집안 일이 당신의 시간을 빼앗습니다. 음식을 장만해야 하고 세탁을 해야 합니다. 이후에 아이들이 태어나면 더 이상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늘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하고, 여기 저기 돈 쓸데가 많이 생깁니다. 매일 분주한 일과를 보내다보면 어느덧 결혼생활의 멋과 꿈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결혼은 삶을 위한 것이요, 평생의 약속입니다. 그 사실을 잊고 다른 꿈을 품고 결혼생활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사고방식은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것에 반대됩니다. 그러므로 형통할 때나 어려울 때나 한결같이 사랑을 따뜻하게 보존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남편에 관해 말하자면,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엡 5:23). 남녀평등을 부르짖는 오늘날 시대에 이 진리를 강조하는 것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는 것은, 남편이 독재자로서 아내를 지배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머리됨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 같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남편이 영육간에 아내의 행복을 책임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남편은 가정의 리더 역할을 떠맡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가정에서 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족 모든 구성원들에게 그 리더쉽이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일이 실제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요? 성경은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사랑은 가만히 놔두어도 잘 자라는 나무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꾸고 돌보아야 합니다. 결혼의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은" 이타적인 사랑이어야 합니다(엡 5:25).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은 강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의 행복을 자기 자신의 행복보다 앞세워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필요와 자기 자신의 소원만을 생각하던 사람은 아내의 필요와 소원을 먼저 생각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이 많은 신혼 초에 이러한 요소를 시험할 수 있습니다. 신혼 초에는 남편이 자기를 부인하고 아내를 위해 필요한 것을 우선적으로 채워줌으로써 매우 실질적인 방법으로 사랑을 나타낼 기회를 많이 갖게 될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9절에서는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고 남편들에게 권면합니다. 이것은 어떤 남편이 미혼시절에 누리던 자유를 빼앗겼다는 생각에서 아내에게 원망을 품고 결혼생활의 책임과 제약을 아내 탓으로 돌리게 되는 상황을 예상케 합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보니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느라 지쳐서 예전 같은 매력을 풍기지 않는 아내가 기다립니다. 남편은 짜증과 원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할 때 남편은 성경의 교훈을 떠올리고 그의 사랑이 예전같이 강하다는 것을 아내에게 보여줄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남편은 또한 아내를 양육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엡 5:29). 아내의 행복은 남편의 손에 달려 있으며 가정의 필요를 위해 재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남편의 우선적인 역할입니다. 때로는 건강문제나 실직 등의 사유로 역할 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을 회복하고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때는 이 책임을 다시 떠맡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결혼하기 전에 과분한 물질적인 준비를 요구하는 그런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집도 있어야 하고, 차도 있어야 하고, 가구도 다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능력을 벗어난 지출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런 것들을 다 갖추려고 애쓰다보면 결혼관계에 긴장이 생기고 당신의 영적인 생활에 기근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것은 아내가 남편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적인 남편은 그런 상황을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남편이 가정의 머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정의 머리라는 것은 남편이 아내의 존경을 받도록 가정의 리더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불평이 생긴다면, 이 결혼관계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며,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는(고전 11:3) 보다 큰 관계의 일부라는 점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교회의 머리됨을 보여주는 그림이라는 점을(엡 5:23) 기억하십시오. 이러한 질서를 제한적인 것으로 보지 말고, 그러한 위대한 계획 안에서 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 놀라운 존귀를 생각하십시오.

   가정의 필요를 공급하는 것이 남편의 우선적인 책임이듯이 집안일을 돌보는 것은 아내의 우선적인 책임입니다.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딤전 5;14). 집안일을 돌보는 것은 큰 책임이자 특권입니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필요로 할 때 엄마는 거기 있어야 합니다. 어린 시절은 오랜 인상이 심겨지는 때이며, 자녀들을 가르치고 바로잡고 보호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어머니는 자기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를 완수하는 어머니입니다. 그 일은 희생을  필요로 하는 값진 수고입니다. 오늘날은 직장생활을 위해 그 소중한 역할을 희생하도록 종용하는 세상의 압박으로 인해 그 역할수행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어떤 자매들은 자녀들이 어린 시기에 필요에 의해 계속 직장에 머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그 중요한 성장기에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삶을 조정한다면 더 큰 만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모본으로 삼을 만한 사람을 마음에 두기를 좋아하는데, 영적인 아내는 베드로전서 3장 1~6절에서 그 모본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여인 사라는 우리에게 경건한 여인의 삶의 본을 남겨주었으며, 그 결과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거인들 가운데 열거되었습니다. 진정한 영적인 아름다움은 외모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성품으로 얻어집니다. 육체적인 아름다움은 쇠하지만 영적인 아름다움은 나이와 함께 깊어집니다.

   어머니가 가정을 지키는 그런 가정에서는 성도들을 위한, 말할 수 없이 소중한 한 가지 사역이 행해질 수 있습니다. 손님 접대는 큰 축복의 도구로 하나님께 쓰임 받아왔습니다. 필자 자신도 가정을 개방한 경건한 가정들에게 큰 빚을 진바 있습니다. 손님들을 위해 가정을 개방할 때, 믿지 않는 자들은 경건이 어떻게 가정에서 이뤄지는지 보게 될 것이며, 어린 신자들은 유익한 교제와 위로를 얻을 것이며, 연로한 종들은 쉼을 얻을 것이며, 낯선 사람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이 손님 접대를 통해 당신의 가정은 많은 사람들을 축복하는 일에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집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여러 가지 최신 가전제품이 가득한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에 깊은 감명을 남기는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곳이 되게 하십시오.

   남편과 아내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입니다.(벧전 3:7). 그 영원한 관계, 둘이 함께 누릴 보다 높은 관계를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주어진 부부의 도리와 가정의 의무를 다한다는 것은 측량할 수 없이 복스런 특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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