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21장
결혼생활은?
결혼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린 신자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약혼기간은 어느 정도 자유가 허락된 기간입니다. 주말을 당신이 원하는 데로 시간계획을 짤 수 있습니다. 원하면 얼마든지 집회에 쫓아다닐 수도 있고, 가정에 대한 책임 없이 친구들과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후에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결혼하는 즉시로 일단 집안 일이 당신의 시간을 빼앗습니다. 음식을 장만해야 하고 세탁을 해야 합니다. 이후에 아이들이 태어나면 더 이상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늘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하고, 여기 저기 돈 쓸데가 많이 생깁니다. 매일 분주한 일과를 보내다보면 어느덧 결혼생활의 멋과 꿈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결혼은 삶을 위한 것이요, 평생의 약속입니다. 그 사실을 잊고 다른 꿈을 품고 결혼생활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사고방식은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것에 반대됩니다. 그러므로 형통할 때나 어려울 때나 한결같이 사랑을 따뜻하게 보존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남편에 관해 말하자면,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엡 5:23). 남녀평등을 부르짖는 오늘날 시대에 이 진리를 강조하는 것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는 것은, 남편이 독재자로서 아내를 지배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머리됨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 같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남편이 영육간에 아내의 행복을 책임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남편은 가정의 리더 역할을 떠맡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가정에서 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족 모든 구성원들에게 그 리더쉽이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일이 실제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요? 성경은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사랑은 가만히 놔두어도 잘 자라는 나무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꾸고 돌보아야 합니다. 결혼의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은" 이타적인 사랑이어야 합니다(엡 5:25).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은 강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의 행복을 자기 자신의 행복보다 앞세워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필요와 자기 자신의 소원만을 생각하던 사람은 아내의 필요와 소원을 먼저 생각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이 많은 신혼 초에 이러한 요소를 시험할 수 있습니다. 신혼 초에는 남편이 자기를 부인하고 아내를 위해 필요한 것을 우선적으로 채워줌으로써 매우 실질적인 방법으로 사랑을 나타낼 기회를 많이 갖게 될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9절에서는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고 남편들에게 권면합니다. 이것은 어떤 남편이 미혼시절에 누리던 자유를 빼앗겼다는 생각에서 아내에게 원망을 품고 결혼생활의 책임과 제약을 아내 탓으로 돌리게 되는 상황을 예상케 합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보니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느라 지쳐서 예전 같은 매력을 풍기지 않는 아내가 기다립니다. 남편은 짜증과 원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할 때 남편은 성경의 교훈을 떠올리고 그의 사랑이 예전같이 강하다는 것을 아내에게 보여줄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남편은 또한 아내를 양육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엡 5:29). 아내의 행복은 남편의 손에 달려 있으며 가정의 필요를 위해 재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남편의 우선적인 역할입니다. 때로는 건강문제나 실직 등의 사유로 역할 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을 회복하고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때는 이 책임을 다시 떠맡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결혼하기 전에 과분한 물질적인 준비를 요구하는 그런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집도 있어야 하고, 차도 있어야 하고, 가구도 다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능력을 벗어난 지출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런 것들을 다 갖추려고 애쓰다보면 결혼관계에 긴장이 생기고 당신의 영적인 생활에 기근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것은 아내가 남편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적인 남편은 그런 상황을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남편이 가정의 머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정의 머리라는 것은 남편이 아내의 존경을 받도록 가정의 리더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불평이 생긴다면, 이 결혼관계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며,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는(고전 11:3) 보다 큰 관계의 일부라는 점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교회의 머리됨을 보여주는 그림이라는 점을(엡 5:23) 기억하십시오. 이러한 질서를 제한적인 것으로 보지 말고, 그러한 위대한 계획 안에서 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 놀라운 존귀를 생각하십시오.
가정의 필요를 공급하는 것이 남편의 우선적인 책임이듯이 집안일을 돌보는 것은 아내의 우선적인 책임입니다.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딤전 5;14). 집안일을 돌보는 것은 큰 책임이자 특권입니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필요로 할 때 엄마는 거기 있어야 합니다. 어린 시절은 오랜 인상이 심겨지는 때이며, 자녀들을 가르치고 바로잡고 보호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어머니는 자기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를 완수하는 어머니입니다. 그 일은 희생을 필요로 하는 값진 수고입니다. 오늘날은 직장생활을 위해 그 소중한 역할을 희생하도록 종용하는 세상의 압박으로 인해 그 역할수행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어떤 자매들은 자녀들이 어린 시기에 필요에 의해 계속 직장에 머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그 중요한 성장기에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삶을 조정한다면 더 큰 만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모본으로 삼을 만한 사람을 마음에 두기를 좋아하는데, 영적인 아내는 베드로전서 3장 1~6절에서 그 모본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여인 사라는 우리에게 경건한 여인의 삶의 본을 남겨주었으며, 그 결과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거인들 가운데 열거되었습니다. 진정한 영적인 아름다움은 외모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성품으로 얻어집니다. 육체적인 아름다움은 쇠하지만 영적인 아름다움은 나이와 함께 깊어집니다.
어머니가 가정을 지키는 그런 가정에서는 성도들을 위한, 말할 수 없이 소중한 한 가지 사역이 행해질 수 있습니다. 손님 접대는 큰 축복의 도구로 하나님께 쓰임 받아왔습니다. 필자 자신도 가정을 개방한 경건한 가정들에게 큰 빚을 진바 있습니다. 손님들을 위해 가정을 개방할 때, 믿지 않는 자들은 경건이 어떻게 가정에서 이뤄지는지 보게 될 것이며, 어린 신자들은 유익한 교제와 위로를 얻을 것이며, 연로한 종들은 쉼을 얻을 것이며, 낯선 사람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이 손님 접대를 통해 당신의 가정은 많은 사람들을 축복하는 일에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집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여러 가지 최신 가전제품이 가득한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에 깊은 감명을 남기는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곳이 되게 하십시오.
남편과 아내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입니다.(벧전 3:7). 그 영원한 관계, 둘이 함께 누릴 보다 높은 관계를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주어진 부부의 도리와 가정의 의무를 다한다는 것은 측량할 수 없이 복스런 특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