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묵상(진리의 말씀 365) 5월 12일
매일의 묵상(진리의 말씀 365) 5월 12일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
고린도 교회에서 어떤 이들은 복음을 지적으로 동경할 만한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 지혜에 마음이 사로잡혔으며, 그로써 복음 메시지 가운데서 철학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측면들에 민감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포기할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다만 그것을 보다 학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것이 되도록 다듬고자했습니다.
바울은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결합시키려는 이러한 시도를 준엄히 꾸짖었습니다. 그는 지적인 지위의 성취는 영적인 능력의 상실을 가져올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를 똑바로 직면합시다! 복음 메시지에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고 이방인에게는 어리석은 그러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지혜롭다거나 능력 있다거나 고귀하다고 부를 만한 그런 지위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우리는 우리가 소위 지식인층에 속하는 대신에 어리석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는 자들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실,우리는 세상에 관한한 정말 하찮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어리석게 보이는 그러한 메시지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하찮은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러한 볼품없는 도구들을 택하심으로써 그분은 이 세상의 모든 자만심과 허세를 미련케 하고, 우리의 자랑의 여지를 제거하고, 그리고 그분만이 영예를 취하실 수 있음을 확증하십니다.
이것은 학문을 위한 여지가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여지는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학문이 깊은 영성과 결합되지 않으면, 그것은 위험하고 해로운 것이 됩니다. 학문이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자리에 앉아서, 예를 들어 어떤 기자가 다른 기자들보다 더 신뢰할만한 자료를 사용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와 같은 학자들의 의견에 의존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모든 이단적인 견해에 쉬 전염되게 됩니다.
바울은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고린도인들에게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능력이, 복음을 단순하게, 그리고 직설적으로 제시하는데 있지, 난해한 문제들과 이론들에, 혹은 지식 숭배주의에 몰두하는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