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장 예배와 기념] 주님의 고난에 대한 예언
{50장 예배와 기념]
주님의 고난에
대한 예언
-다니엘 스미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눅 24:44).
하나님의 아들이 희생제물이 되실 것은 창세전에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이어서 구약은 이 일에 대한 예언으로 가득 차 있다. 위에서 인용한 말씀대로 부활하신 주님은 이 땅에 계실 적에 자기가 가르친 것들을 다시 확인시켜 주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결코 수정되거나 바뀌거나 변개되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이 구약의 예언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제자들의 마음을 여셔야 했다(눅 24:45).
주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는 구약에서 이미 충분히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에 대해 놀라서는 안 되었다. 사실, 제자들은 주님의 고난을 미리 예상했어야 했다. 구약 구구절절마다 구속을 예언하는 보석같은 말씀들이 있다. 마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처럼 구약에는 구속을 예언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많이 열려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해주시는 대로 구약을 통해서 우리 주님이 고난 받으실 것을 볼 수 있다.
주 예수님은 모든 성경의 주제이시다. 주님은 매 쪽마다 빛을 발하신다. 구약을 제대로 읽는다면 주님과 빛 가운데 동행할 수 있다. 구약을 제대로 읽는다면 구속의 경륜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구약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들은 주님이 오셔서 영광의 왕국을 세우실 것을 읽었고 이해했다. 예를 들면 다니엘 7:14에서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고 말씀하신 것을 이해했다.
이들은 주님이 그리하실 것을 기대했지만, 주님이 비천하게 되실 것에 대해서는 소경이었다. 이사야 53:5에 나온 대로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했다.
부활하신 후에 주님은 이점을 강조하셨다.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구주가 오실 것이었고, 구주가 태어나셨다. 그 구주는 죄를 위한 합당한 희생을 치르실 것이고, 그 희생은 하나님이 열납하여 사람들을 다시 부르실 만한 희생이고, 하나님이 거절치 않으실 희생이었다. 그러므로 주 예수의 고난과 죽으심은 성경에서 결코 비참한 실수나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사단의 권세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지혜로운 경륜이었다. 구약에서는 이에 대해 명백하게 제시되어 있다.
진실로 십자가 주위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편 22편에서는 주님이 "황소들" (유대 지도자), "개들" (이방인 로마군대), "사자들" (분노한 지옥의 군대)"에 의해 둘려 쌓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사람들의 상스런 모욕과, 조소, 우주적인 비웃음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뒤에는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심" 이 있었다(행 2:23).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증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자기 생명을 기꺼이 버리신 것은 이런 타락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확증이었다. 하나님은 십자가가 필요하셨다. 사람의 죄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방법은 없었다. 창세전부터 이것은 명백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구약의 예언
가이사랴에서 주님은 주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것이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을 말씀하셨다(마 16;21). 그리고 마가복음 9:12에서는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누가복음 18:31에서는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고 말씀하셨다.
또한 베드로가 주님을 보호하겠다고 겟세마네에서 검을 뽑았을 때 주님은 말씀으로 책망하셨다.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마 26:52,54).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동행하시며, 주님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라고 말씀하셨다(눅 24:25-26).
이렇게 구주의 희생은 구약에서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기록되었다.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오셔서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실 것을 밝히 비춰주고 있다. 모든 성경은 영원하신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으로써, 아들 하나님의 희생을 주밀한 상징과 양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도들이 밝힌 구약의 예언
사도행전 3:18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같이 이루셨느니라." 바울도 사도행전 13:27에서 명백하게 이렇게 말했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이 의미는 무엇인가? 구약시대에는 회당에서 성경이 매 안식일마다 수세기에 걸쳐서 읽혀졌다. 선지자들은 사망에서 구원할 죽음이 있을 것이라고 외쳤고, 피가 흘려져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할 것이라고 외쳤다. 메시야가 오셔서 그들의 안식처가 되시고, 숨기시고, 구속하실 것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들은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님이 오셨을 때 그들의 악한 부패가 그 머리를 들었고, 불신이 그들의 눈을 가렸다. 그래서 그들은 "생명의 주를 죽였다. 그렇게 함으로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되었다. 주님의 손과 발을 못 박고, 주님을 나무에 달아 죽임으로써 저주했다. 이 모든 것이 구약의 절절마다 자세히 정확하게 예언되어 있었다. *
이제 나의 영혼의 닻이 놓일
확실한 기초를 찾았네.
세상의 기초가 흔들려도
내 죄를 위한 주님의 상처는 영원하고
천지가 떠나가도
주님의 자비는 흔들리지 않으리.
오, 당신의 무한히 깊은 사랑
내 죄가 주님 안에 다 삼키었고
내 불의가 다 가리어져
한 점의 죄도 이젠 없도다.
주님의 무한한 자비의 보혈이
천지에 울려 퍼지도다.
- Charles Wes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