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도다!
[복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도다 !
첫 사람 아담이 죽었습니다. 가장 장수한 므두셀라도 죽었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솔로몬도 죽었습니다. 가장 온유한 모세도 죽었습니다. 족장들, 선지자들, 왕들, 총리들, 정치가들, 철학자들,농부들, 가난한 자들도 다 죽었습니다.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던 바로도 사라지고, 세계를 정복한 로마의 황제들도 더 강한 원수인 죽음에게 굴복해야 했고, 알렉산더 대왕도 죽음의 공격에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부자이건, 가난한 자이건, 유명한 자이건, 미신적인 자이건, 범죄자이건, 법을 잘 준수한 자이건, 모두 똑같이 죽음의 잔인한 손아래 쓰러져갔습니다.
권력과 지위, 특권과 재산이 이 끔찍한 적인 죽음의 행진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죽음에게 뇌물을 줄 수도, 설득할 수도 없었습니다. 눈물도, 고통도, 호소도 위협도 이 잔인하고 냉정하고 무자비한 적인 죽음에서 영향을 줄 수 없었습니다.
죽음에는 비자도 여권도 필요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국가적, 지리적, 사회적, 정치적 국경도 무사통과했습니다. 죽음은 왕궁도, 오두막도 마음대로 들어가고, 가장 좋은 사람도 데려가고 가장 나쁜 사람도 데려갔습니다. 가족에게서 소중한 어머니를 뺏어가고, 생계를 책임진 가장도 약탈해갔습니다. 가끔은 부모에게서 사랑스런 아들, 딸을 데려가 버리기도 했습니다. 죽음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자신이 만들어낸 슬픔을 뒤돌아보지 않고, 끔찍한 행동을 했습니다.
과학, 의학, 기술의 놀라운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 여인의 지혜로운 말은 여전히 진리로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모으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삼하 14:14).
이와 비슷하게 성경은 단호하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우리는 이 엄숙한 진실을 바꾸는데 전적으로 무력합니다. 모든 세대가 지나가면서 다음 세대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도 죽음이 정복한 사람들 목록에 그 숫자를 더할 뿐이다."
죽음은 죄의 피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기에 죽어야 합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또한 이같은 구절들도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23).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그러나 성경은 또한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그렇다면, 주님에게도 죄가 있었는가? 주님도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었는가? 질문해보게 됩니다. 그러나 죽음은 주님을 주장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죽음은 달랐습니다. 오히려 죽으심이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 2:9).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히 2:14-15).
주님은 병, 연약, 부패 때문에 죽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죽음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죽으셨습니까? 성경은 놀라운 대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는 자를 위해 죽으셨다" (롬 5: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롬 5:8).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전 15:3).
어느 성도의 찬양대로,
주님께서 죽으신 것은 우리 죄가 용서되기 위해서이며
주님께서 죽으신 것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이며,
우리가 하늘로 가기 위해서이며,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기 위해서입니다.
내 친구여, 이 주님을 믿으십시오.
죽음이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이 받는 영원한 심판을 이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