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전할 것인가 -3] 하나님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어떻게 전할 것인가 -3 ]
하나님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 허윤욱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요 6:9).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보고 있다. 이 문제는 참으로 쉬워보이면서도 어려운 문제이다. 어린이를 알자는 항목에서도 생각해 본대로 어린이는 대부분 지적인 면보다 정적인 면에 더 예민하다. 그러나 어린이도 논리적이고 지성적인 측면에서 이해시켜 나가는 전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에는 이 부분을 다루어보고자 한다. 아이들 전도에서 잘못하면 감성적인 면에 호소하여 감동시켜 믿게 하려는 경향으로 가기 쉽다. 그러나 아이들도 자라가면서 점점 지성적인 면이 나타나기 때문에 지성적이고 논리적인 부분을 잘 생각하여야 한다.
이번에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드린 아이를 살펴보면서 아이들의 전도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먼저 이 아이가 무슨 연유로 자기의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렸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만약 이 아이에게 왜 도시락을 네가 먹지 않고 예수님께 드렸는가 하고 물었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했을까.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답은 "나와 다른 분들은 굶어도 예수님은 잡수셔야 하지 않을까요?" 하였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아이의 마음은 순수하다. 그러나 거기에 논리도 담겨 있다. 예수님은 말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배고프니까 예수님이 잡수셔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평범하고 단순하면서도 논리 정연한 생각인가. 이 아이의 머릿속에도 벌써 논리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전도에 있어서 아이들의 경우는 순수한 논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순수한 논리를 펼쳐야 한다. 순수하다는 것은 쉽고 단순하고 순리적인 논리를 말함이라고 해석해도 될 것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아이들은 아이들이니까. 그러므로 아이들 전도에 있어서 논리를 펼치되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에게 현실적인 예를 들어서 논리를 펼침이 또한 중요하리라고 생각된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하는 지혜를 생각해보자.
여러 가지 새 그림을 준비하여 와서 아이들에게 어떤 새가 가장 예쁜지 물으면서 각각의 의견을 묻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이들이 여러 가지 다양한 생각들을 이야기할 때 왜 그러는지 물으며 좋은 이야기 시간을 진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또한 이 새들을 이렇게 여러 모습으로 여러 색깔로 만드는데 누가 만들었겠는가. 그러면 아이들은 당연히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말할 것이다.그때에 중요한 점은 그런데 세상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하는 것을 이야기하여 주어서 저들로 비교하게 만드는 방법이 좋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그림을 그릴 때에 일일이 색깔을 넣어서 하늘이나 땅이나 풍경을 그리듯이 하나님도 일일이 색깔을 넣어서 만들었음을 실감나게 설명하면 얼마나 실감하겠는가. 또한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스런 생각인가를 강하게 인식시켜 줌으로써 믿음 안에 거하는 것이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깨닫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논리를 펼칠 때에 우리는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져서 설명하여 진실을 인식시키려고 노력하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반대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철저히 대비시켜 줌으로써 믿음 안에 있는 우리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 것을 알게 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모든 전도에서 적용하면 좋다고 본다. 이것이 맞고 좋다고 설명하여 주는 것보다 서로 다르거나 반대되는 것을 비교해 주면서 스스로 깨닫고 인식하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새 뿐만 아니라 꽃을 가지고 설명하여도 좋을 것이다.
두 번째 논리적인 것들을 이야기하여보자. 아이들에게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면서 지구가 한쪽 방향으로만 돌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일까? 왜 한쪽으로만 가야 하는가? 만약 지구가 이쪽으로 돌다가 저쪽으로 돌다가 하면 어찌 될까? 낮이 밤되고 밤이 낮이 되지 않겠는가? 공중의 새들은 이쪽저쪽을 마음대로 다니는데 그리고 날다가 정지하고 쉬기도 하는데 왜 지구는 쉬지 않고 한쪽으로만 돌아야 하는가? 이와 같은 논리는 의외로 아이들을 감동시키는 역사를 이룰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지구가 돈다는 것은 배우지만 왜 한쪽으로만 돌며 일정한 속도로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돌아야 하는지, 누가 그렇게 하는지는 배우지 않았다. 배우지 않기 때문에 또한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평범하고 단순하며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질문이 아이들로 창조주의 존재를 믿게 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도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왜 지구는 한쪽으로만 돌아야 하는가? 왜 그렇게 되었을까? 단순하다 만드는 분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생각하여 보라. 공장의 기계가 일정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도록 되어있는 것은 기계를 만든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런 것을 설명할 때도 말로만 할 일이 아니고 공장의 기계 사진을 보여주면서 하면 훨씬 효과가 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야기는 동화적인 표현으로 잘 이야기 하여 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구가 한쪽으로만 돌게 되는 이유는 창조주를 빼고는 도대체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창조에 관한 것은 어떤 것도 인간의 지혜로 이해될 수 없다. 실제로 오늘날 인간들이 창조 부분을 가리켜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억지일 뿐이다. 오직 창세기만 우리에게 답을 줄 뿐이다. 우리는 그러한 자부심을 가지고 논리를 개발해 나가면 실제적인 전도에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교사들과 아이들이 만들기 놀이를 하는 곳에도 논리개발을 할 수 있는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종이접기를 비롯한 다양한 만들기를 하면서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다른 시간 못지 않게 즐거운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만들어 가면서, "하나님도 우리를 이렇게 하나하나 만들어주셨단다. 세상도 그렇게 만들어 주셨단다" 하는 표현을 곁들여 가면서 만들기를 진행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아름답게 잘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들을 아름답게 잘 만들었단다" 하면서 전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가운데 아이들이 만든 것들을 하나하나 들고 "누가 만들었는가" 이름을 부르면서 말하여주는 것이다. 만든 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하나의 만든 이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것이다" 하고 논리를 펼쳐 전도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논리적인 전도는 대단한 열매를 거두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자연스러운 논리 전개를 통하여 실제 전도하는지 모르게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인식시켜 가는 것이다.
조금 고급 학년들이나 중고등 학생들은 빅뱅이론을 설명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근거도 없이 상상에 의존한 과학이론은 얼마나 어설픈지 연구하여 허구성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또한 과학 이론들은 대부분 가설에 의한 것이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허점을 드러내면 좋은 전도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과학 논리는 아이들이 많이 들어서 식상할 수도 있으므로 아이들이나 학생들이 쉽게 동의할 수 있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논리를 찾아내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논리 문제를 더듬어 감에 있어서 또 생각해 볼 것은 아이들의 양심을 건드리는 논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성경이 실제로 구원받은 성도를 양심의 악을 깨달은 자들이라고 정의하고 있지 아니한가.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씼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 10:22).
아이들이 논리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달으면 확실하게 변화될 수 있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여 도움을 받은 간증들을 많이 수집하여 저들에게 이야기하여 주어서 간접경험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게 하는 것이 좋다. 또한 자신들이 기도하여 응답 받게하는 전도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경우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사진 또한 동영상을 통하여 말 못하는 우상을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을 증거하여 저들에게 믿게 하는 전도가 필요한 것이다. 우상은 한자로 偶像이라고 쓴다 우(偶)자는 허수아비 우자이다. 허수아비를 생각하여 보라. 곡식을 까먹는 새들을 쫓기 위하여 만든 허수아비가 오히려 나중에는 새들이 쉬어가는 휴게소가 되지 아니한가. 새들이 처음에는 속아도 나중에는 속지 않는 것이다. 말못하는 우상은 사람을 결코 도와 줄 수 없다. 이것을 실감나게 설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양심적으로 말할 수 있는 우리가 말 못하는 우상을 향하여 절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스런 행동인가. 논리적으로 이해시켜 양심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불교가 대표적 상대종교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상대적인 믿음의 양상들을 잘 대비시켜 전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오늘날 종교들이 주장하는 이론들이 얼마나 허무하고 잘못된 것들인가를 많이 숙지하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비교하여 주면서 전도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양심적인 논리는 또 있다. 하나님을 증거하는데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고 죄를 지으면 거기에 합당한 심판이 있음을 성경에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 로 아이들이 죄를 지을 때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섭고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죄에 대한 심판이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살아계신 양심적인 증거라고 하는 것이다. 요즘의 시사적인 것들로서는 구소련에서 있었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에 그 지역에 사는 성도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을 증거함도 좋다. 인도네시아 쓰나미 때도 성도들은 주님이 보호하심을 말할 수 있고, 이번 일본의 쓰나미 때도 성도들은 아무도 문제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잘 활용하여 전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체르노빌 때에는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중에 KGB 요원이 와서 만찬상을 걷어차고 난 뒤 바로 사고가 난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논리적으로 이해하게하여 전도하는 부분의 몇 가지 조언들을 열거하여 왔다. 이와 같은 예들은 이미 사용하는 부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 여러분들이 실제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면서도 이와 같은 조언들을 하는 것은 초보자들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여러 분들을 돕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예를 생각하면서 여러분들이 현실에 맞는 많은 방법들을 개발하여 사용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뜻이다. 크게 드러나지 않은 잔잔한 이야기들 속에도 아이들을 감동시켜 믿게 할 수 있는 논리들은 얼마든지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들 특히 주교사들은 이러한 부분의 많은 기도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한다면 많은 경우에 교사들이 너무 연구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았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만물속에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실존을 증거할 만한 논리들은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아이들과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서 성경의 기록들이 얼마나 놀라운 진실을 가지고 있는지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여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달아 나간다면 저들이 성장하여서도 하나님을 결코 떠나지 않을 수 있는 기초신앙을 닦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이 일에 쓰임 받는다고 하는 것이 즐겁지 아니한가.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지혜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가 전도할 때에 사용하는 많은 예화나 논리들은 필자의 연구의 산물이라기보다 주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지혜가 대부분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주님께 지혜를 구하여 아이들 전도에 놀랍게 쓰임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하면서 마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