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십대 & 청년들에게] 13장 언어 생활

행복자 2018. 7. 11. 12:29

[십대 & 청년들에게]

                          13장  언어 생활

                                                                                                                        - 존 데니슨

   어휘와 발음과 단어 선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에 있을 때 그 종들은 그가 주 예수님의 제자임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막 14:70).

   하지만 언어를 듣고서 그리스도인인지를 아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십대시절은 가장 커다란 변화의 시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 13:11).

   모든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과 함께 당신의 언어에서도 자연스럽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어떠한 어휘와 속어와 은어를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주의해야만 합니다. 통속적인 표현과 유행어를 입버릇처럼 쓰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말들이 음악과 영상매체와 인터넷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그런 미디어 세상에서 살고 있고, 종종 물속의 스폰지처럼 되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단어들과 말투를 사용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걸러내서 버리는 일 없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어울리는 표현과 단어와 말투와 목소리와 언어가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회성 : 실패했나요, 아니면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나요?


   언어는 우리를 어떤 무리와 동일시할 수 있게 해주며 소속감을 느끼도록 해줍니다. 이것이 젊은 사람들 다수에게 폭력 조직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이유입니다. 그 젊은이들은 내심 폭력과 범죄를 두려워하지만 한 집단의 일원이 된다는 굉장한 의미 때문에 결국  거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표시와 구호와 말투의 사용은 한 무리를 다른 무리와 구별할 때가 많습니다.

   참된 신자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엡 1:6) 자신의 소속감을 느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주 예수님은 당시의 시대와 문화에 맞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목표는 소속의 필요 및 받아들여짐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다른 이들과 의사소통하는 데에 목표를 두셨습니다. 바울 역시 헬라인에게는 헬라어로 말했고 유대인에게는 히브리어로 말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감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모든 어휘와 언어 형식은 성경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부모를 향해서 또 부모에 대해서 무례한 말투와 표현을 사용하는 학교 친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할 책임을 지닌 신자로서 당신은 정말로 그와 똑같은 말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의사전달 방식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반드시 우리의 마음속 동기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시작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말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기를 원하고 있나요?


   도덕적인 언어 :  깨끗한가요, 아니면 불결한가요?


   언어는 생각을 반영합니다. 생각이 순결하면 말도 순결합니다. 생각이 불결하면 말도 불결합니다. 불행히도, 인간의 본성은 합당치 못하고 악한 성향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면 당신은 놀랄 것입니다. 언어 교사들은 새로운 언어를 처음 익힐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욕을 배우려 한다고 말합니다.

   외설스런 농담을 잊어버리는 것과 성경 구절을 잊어버리는 것 중 무엇이 더 어렵나요? 당신의 본성에 대해 정직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위험성을 직시하십시오. 그것은 외부의 사회에만 있지 않고 당신 내부의 성품에도 있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 12:34).

   바울은 신자들에게 이러한 성향이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지만"(엡 1:7)말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엡 4:29).

   그리스도인의 입은 여전히 올바르지 못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우리는 반드시 여과기를 작동시켜서 자신의 입술에서 오직 참되고, 순결하고,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는 말만 흘러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바울은 추가적인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엡 5:3-4).

   그렇다면 당신의 언어는 깨끗한가요, 아니면 불결한가요? 당신은 농담, 이중적인 뜻으로 말하기, 맹세하기, 더러운 속어 말하기 등을 삼가고 있나요?

   편견에서 나온 말, 상투적인 말 등도 역시 부적절하거나 해롭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을 유의하십시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엡 4:29).

   그렇다면, 그 농담을 하는 것은, 당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말을 하는 것은, 타인들에 대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들을 세워주며 그들에게 축복을 가져다줄까요? 당신이 말하는 방식은 타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나요,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나요?


   영적인 언어 : 아무렇게나 말하나요, 아니면 주의 깊게 말하나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은 여전히 인간의 언어에 대한 참된 말입니다. 만일 당신의 마음을 올바르제 않은 것들로 가득 채운다면 그것은 마침내 밖으로 나오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듣는 음악과 시청하는 영상매체와 읽는 책은 당신의 사회적인 언어와 도덕적인 언어와 영적인 언어에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하나님과 기도로 대화 나누기 위해 웅변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들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당신은 보다 잘 말하기를, 보다 성경적으로 말하기를,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보다 품위 있게 말하기를 사모하지 않나요?

   주 예수님은 "중언부언"에 대해 경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입은 달리고 있지만 마음은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또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다른 위험성은 너무나 대강대강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대충 말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당신 역시 주님께 대충 아뢰게 될지 모릅니다. 따라서 교리적인 말을 할 때는 반드시 그 목적을 이루게 해줄만한 충실한 자료에서 표현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딛 2:8).

   선명하고, 이치에 맞고, 성경적인 언어생활을 하도록 힘쓰십시오. 주님과의 긴밀하고 경외심 가득한 관계를 나타내면서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삶은 주님과 가족과 친구들과 교사들과 고용주들과 신자들과 기타 다른 이들과 의사소통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당신의 의사교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시간을 들이는 것은 뛰어난 투자이며 성경은 그것을 필수사항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또 미디어로, 이상적인 의사소통이 아닌 것들로 끊임없이 폭격을 당하면서 이렇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날마다의 언어생활에 있어서 도전하고 선택하기를 바라고, 그러한 당신을 주께서 도우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