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전도전략]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설명하라(2)

행복자 2018. 7. 13. 11:58

[전도 전략]

                                       하나님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설명하라(2)

                                                                                                              - 허 윤옥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 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삼하 18:33).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깨닫게 하는 전도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만큼 절묘한 가르침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앞서서 알아보았듯이 아버지와 아들의 표현은 모든 면에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전도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번에도 부자관계를 통한 하나님 전하기를 더 생각하여 보고자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설명하고 있다. 구약에서도 그러한 표현은 하나님이 즐겨 사용하신 표현이다. 지난번 의 말라기에서 아비를 공경함을 예로 들어 설명한 것도 좋은 본보기이다.

   서두에 기록된 말씀은 다윗의 전기에 나오는 말씀이다. 다윗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어보겠다는 권력에 눈이 먼 패륜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반응하는 다윗의 모습이다. 자식은 아비를 죽이려 칼을 들이대고 달려들었으나 아비 된 다윗은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하면서 아픔을 표현하고 있다. 아무리 아비라고 하여도 그럴 수가 있는가,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아비의 사랑으로 전하는 문제를 다루기 전에 먼저 아이들이 참 사랑을 깨우쳐야 할 이유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하나님을 설명함에 있어 가장 직설적으로 설명한 대목이 요한일서에 있다.

   "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얼마나 명쾌하고 분명한 직설법 표현인가. 그렇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참 사랑을 만나는 것이요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참사랑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참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다.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진리의 말씀인가.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설명함에 있어 하나님이 사랑이시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너무나 중요하다. 실제로 아이들을 위한 설교에서 아이들에게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다고 전하고는 있다. 아이들은 질릴 정도로 많이 들은 말씀이 하나님의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새겼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확정하여 말하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므로 성인도 그렇지만 아이들 전도에 있어서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그 가슴에 새겨줄 것인가 고민과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깨닫고 그 속에서 자라나면 그들의 미래도 아름답게 뻗어갈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 속에 모든 것이 있듯이 사랑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음을 또한 표현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보아도 알 수 있으리라. 사랑은 모든 것을 품고 있으며, 제일이 사랑이라고 하지 아니한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는 자가 승리를 기약하는 자일 것이다. 아이들을 전도함에 있어 사랑의 실체인 하나님을 알게 하는 문제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이제 두 번째로 서두 본문을 중심으로 아이들에게 전해야 하는 하나님과 그 사랑의 실체에 관하여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먼저 다윗의 이 행동은 인간세계에서 잘 이해가 어려운 듯 보이는 장면이다.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칼을 들고 반역한 패역한 자식이 아니던가. 그가 만약 전장에서 아비를 만났으면 가차 없이 죽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처음부터 아비를 죽이고 왕이 되려는 계획을 세웠지 아니한가. 다윗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가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건이 될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준 놀라운 그림이다. 자식은 아비를 향하여 칼을 들었으니 아비는 자식을 대신하여 죽었더면 하고 통곡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것은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가 전에 하나님을 향하여 칼을 들었던 사람이다. 하나님을 비난하고 도전하고 공격하던 죄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는 한량없으셔서 우리를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오셔서 우리 대신 죽어주셨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우리 구주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딛 3:3-4).

   그러므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함으로 아이들이 온전한 믿음 가운데 거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이 경우 하나님을 대적하며 핍박하고 그 악한 행실로 살던 어떤 사람이 구원받은 예화를 통해 전하면 효과적일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논할진대 첫째로 끝없는 사랑을 생각한다. 다윗의 이야기에서 보여 주듯이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하나님 자신이 영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정지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좇아가는 행위는 자주자주 멈추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어떤 상황에도 어떤 사람에게도 멈추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성도들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정 그러한가. 사람은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자주 변하고 멈추지만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향한 사랑과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을 구도자들에게 인식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룻 3:18).

   하나님은 자기의 일을 완성하기까지 결코 쉬지 아니하신다. 우리의 모든 일을 완성하기까지, 그 나라에 입성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모든 행위를 결코 쉬지 아니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기쁨이다. 아이들에게 자기의 평생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심어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장래의 모든 소망을 하나님의 사랑의 영원하심에 두게 해야 한다.

   다윗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다. 전장에 나가는 부하들을 모아놓고 원수 된 아들의 안부를 부탁하는 아비를 생각해 보라. 다윗은 끝까지 자식을 버리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 부모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아들을 잊지 못한다. 아들이 어떤 잘못을 하여도 부모는 자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비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랑이다. 혹 아비는 자식을 버려도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못하는 끝없는 사랑인 것이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두 번째로 조건 없는 사랑을 알게 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에 조건을 달고 계시다면 우리는 그 앞에 설 자가 없다. 먼저 율법을 통하여 우리가 얼마나 무능한 죄인인가를 알게 하여야 한다. 아이들도 수없이 많은 실수를 반복하는 현실을 잘 드러내어서 실제로 조건 없는 사랑이 아니면 결코 구원 받을 수 없는 자신을 깨닫게 함이 중요하다. 성인들이 자신의 형편없는 모습을 보고 구원을 받듯이 아이들도 자신의 문제를 보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조건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도덕적 행위에 대한 조건뿐만 아니라 관계적 조건도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에서는 모든 사랑이 조건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아비가 자식을 사랑함에도 아비니까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비라는 조건이 없으면 사랑하지 않는다. 친구니까, 가족이니까, 이웃이니까  등 수많은 조건 속에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동물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도 인간과의 상관관계를 조건으로 말하고 있다. 세상에는 조건 없는 사랑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창조자요 아비가 되기 때문에 모든 인간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또 그들의 연약함을 알기에 도덕적 행위의 조건도 걸지 않고 사랑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깨닫게 할 것인가를 위하여 많은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다. 만약 하나님이 가장 작은 조건 한 가지만 제시해도 인간은 구원 받을 수 없는 형편없는 죄인임을 저들이 깨닫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순수한가를 깨닫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능력 있는 사랑이다. 세상에서 인간들 사이에 행하여지는 사랑은 인간의 무능으로 인하여 얼마나  슬픈 모습들을 만들어내는가. 사람이 자식을 사랑하지만 부모도 인간인지라 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자식을 위하여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망하게 둘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내를 위하여 무엇이든 하고 싶은 뜨거운 사랑도 능력의 한계로 아무것도 못하고 죽어가는 아내 앞에서 울고 있는 인간의 슬픔을 알게 하여야 한다. 인간의 무능은 모든 슬픔과 비극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아이들이 일찍 알게 된다면 아이들이 얼마나 든든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라겠는가. 세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자들이 대단한 사람처럼 행세하여 소란스럽게 하는 거짓으로 충만함을 알게 하여야 한다. 사단은 할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서 불쌍한 인생을 만들어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무능한 인간인가를 알게 하려 하신다.

   성경 전체의 주제가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수많은 믿음의 자랑스런 선배들이 형편없는 실수를 하고 그것을 성경에 기록해 놓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통하여 온전히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작은 것이라도 주님 안에서만 성취 가능한 것을 깨닫고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므로 교사들은 말씀과 삶으로 이러한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비로소 온전한 사랑이 가능하다. 그분은 전능하시기에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이 그러하고 신약에서의 모든 주님의 사역이 그러하다.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전능자가 아니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문둥병자에게 누가 긍휼을 베풀겠는가. 복음서에 나오는 다양한 기적들은 전능자이기 때문에 가능하며 그 모든 역사는 우리의 다양한 삶속에서 실제로 나타날 수 있는 기적임을 아이들이 믿게 하여야 한다. 사람은 전능하지 못한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사랑은 인생을 책임질 수 없다. 오! 아이들이 이것을 깨닫기만 한다면 얼마나 놀랍겠는가.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전하여 주지 못하면 피상적인 하나님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러하게 되면 저들이 성장해 가면서 하나님을 떠나게 될 위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에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사람은 다 거짓되고 헛되며 무능하며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하고 정직하며 끝까지 우리를 돌보실 미쁘신 분이심을 아이들이 알아가야 할 것이다.

   여러분들의 전도를 위한 수고에 하나님의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바라면서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