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자녀양육] 십대시절 (5) - 2

행복자 2018. 9. 18. 13:43

 

[자녀양육]

                              십대 시절 (5)- 2

                                                                                          - 존 그랜트



  잠언에서 우리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탁월한 조언들을 발견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그 모든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슬픔만을 가져올 두 생활방식을 살펴보겠습니다.


   악인의 길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잠 4:9).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잠 1:15).


   여기서의 경고는 불량한 친구를 피하라는 것입니다. 잠언 1장 10-19절에서 우리는 "흥분" 과 "쉽게 돈 버는 길" 을 약속하는 무리에게 유인당할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묘사하는 활동은 강도짓에다가 아마 살인까지 포함하는 범죄입니다. 그 동기는 "보화" 와 "빼앗은 것"을 얻기 위해서이며, 그 결과는 수단을 정당화합니다.

   아마도 범죄적인 행동에 가담할 신자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젊은 신자들이 부유해지려는 욕망을 품을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는다면 돈과 부유함 자체에는 악한 측면이 전혀 없고, 이렇게 주님께 복을 얻은 이들은 매우 무거운 책임을 부여받을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부유함을 우리의 목표로 삼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다른 모든 것을 그보다 하위에 둘 때 거기에는 심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길을 출발하면 우리는 지름길로 들어설 것이며 우리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아는 만큼 정직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양심은 점차 우리에게 크게 외치기를 중단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이러한 삶의 방식을 채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의 매력을 경계하십시오. 또 그런  목표를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사용했던 부정직한 행위에 끌리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잠언 4장에서의 권면은 악인의 길을 피하고 그리로 들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인의 길은 어두움과 같습니다. 인도하는 빛이나 도움을 얻지 못한 채로, 그들은 비틀거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그리고서 자신들의 부정한 행위들에서만 "안식"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가치 있는 목표를 갖지 못한 무의미한 삶입니다.

   우리가 사는 물질주의적인 사회에서 그와 같은 조언은 아주 현대적입니다. 오늘날의 성공은 물질적인 소유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듯 보입니다. 상업과 대중매체들은 힘을  합해서, 물질적인 것들의 획득에 철저히 기초한 생활방식을 가지고 우리에게 폭격을 가합니다. 많은 상품들의 확실한 "판매의 목적"은, 당신이 그것들을 구입하려는 용도 뿐 아니라 그것들을 타인에게 보여주어 부의 증거로 삼도록 만드는 데에 있습니다. 또한 당신은 주변에서 성인들이 복권 "당첨" 과 도박으로 한 몫 잡기를 쫓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이는 사회가 길을 잃었으며 더 이상 훌륭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갖가지 증거입니다.

   우리의 십대들은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의지해야 하며, 물질적인 묵표들을 추구하는 이들의 생활방식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생활방식이 있음을 알아야만 합니다. 생활비를 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아내와 가정을 부양하기 위한 젊은 남자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돈 벌기를 당신의 목표로 삼는 슬픈 타락의 길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것은 아주 쉽게 당신을 "악인의 길" 로 이끌어갑니다.


   음녀의 길


   "자기 길이 든든치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잠 5:6).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잠 5:8).


   우리 주위에 있는 또 다른 중대한 위험은 세상에서 받아들이는 성도덕의 낮은 수준입니다. 잠언 5장과 7장에서 "음녀" 는 우리의 이목을 끕니다. 그녀는 조심성 없는 자들을 꾀어내는 음란한 여인입니다. "어리석은자"(잠 7:7)는 속임을 당합니다. 그는 침대에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려놓은 자기 집으로 오라는 그녀의 꼬임에 넘어갑니다. 겉으로는 매력적인 제안처럼 들리는 그녀의 말에 젊은이는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는 그녀를 따라 갑니다.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잠 7:22). 이 "음녀"는 부도덕한 혹은 호색적인 사람들을 묘사합니다. 그들은 오늘날 당신의 주의를 빼앗으려고 시끄럽게 떠드는 자들일 수 있고, 품행이 나쁠 뿐 아니라 순결하지 못한 행위들을 사회에 만연시키는 자들일 수 있습니다. 25-27절의 뚜렷한 경고를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미혹치 말지어다....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자가 허다하니라."

   부모가 품행과 관련하여 이야기하는 상당 부분은 아주 편협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이 문제들에 있어서 성경의 가르침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그것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오늘날의 '대중' 문화의 많은 부분은 외설적인 표현과 암시를 담고 있는 노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중음악의 '역할 모델들'이 당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하십시오. 고생스런 경험에 의해 그렇게 해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참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면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지혜의 길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잠 3:17).


   이미 살펴왔듯이, 우리는 불행으로 이끌어가는 두 길에 대한 경고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잠언 기자는 아들에게 그를 유익하게 할 두 길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처음은 지혜의 길입니다. 이 길을 따를 때 주어지는 유익들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그 길은 즐거운 길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단순히, 지혜의 길을 따라가면 훨씬 더 고귀한 삶을 탁월하게 산다는 뜻이라고 보면 됩니다. 다른 길로 가는 이들이 맞닥뜨리는 어려움들이 여기에는 없습니다. 그 대신 즐거움이 깃듭니다. 지혜를 무시하는 이들에게 닥쳐올 인생의 깊은 혼란이 여기에는 없고, 그 자리에 평강이 들어섭니다. 당신은 가능한 대로 최상의 삶을 즐기려는 소원을 갖고 있나요? 성경의 경고들을 무시하는 다른 이들에게 임할 문제들을 경험하지 않기를 원하나요? 그렇다면 지혜의 길을 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지혜를 어디에 가면 찾아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것을 당신의 지침으로 삼아 사용하십시오. 거기서 인생의 기준들을 얻으십시오. 그것을 완전하게 믿으십시오. 그리고서 충만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부지런함의 길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잠 6:6).


   삶의 모든 일에 부지런한 것은 바람직합니다. 개미의 본을 따르십시오. 무슨 동기 때문에 개미는 그와 같이 일할까요? 미래를 위한 준비 때문입니다. 여름이 되면 개미는 그 기회의 때를 최대한 활용합니다.

   청년들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지 못할 수 있습니다. 교육을 받을 때, 그들은 장래를 위해 준비하는 그 노력이 자신들의 시간을 바칠 만큼 가치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지 모릅니다. 직업을 찾을 때, 그들은 장래에 유망하지만 지금은 보수가 적은 그런 직업을 얻은 것이 별로 가치가 없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은 장래를 생각함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기인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극히 근시안적입니다!

   전술한 바는 인생 대부분의 중요한 문제에 틀림없이 적용됩니다. 구원의 길을 알려줄 때, "죽음 후에는 심판" 이 있다면서 미래를 생각해 보도록 강조하는 그것은 극히 중요합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이들에게도 동일합니다. 오직 오늘만을 위해서 사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삶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롬 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