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등대] 교회의 재정(1) 무엇을 드려야 할까?
[진리등대]
교회의 재정(1)
무엇을 드려야 할까?
-쉬어맨(Arthur T. Shearman
복음서 기자들의 기록 중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 가운데 하나는 주 예수님께서 연보궤를 마주 보고 앉아서 연보를 드리는 사람들을 지켜보셨던 장면입니다. 이 사건은 주님의 공생애의 마지막 시점 근처에 일어났으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비우고 희생하신 사건의 빛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고 생각됩니다. 마가는 주님께서 사람들을 지켜보셨던 목적을 짧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무리들이 "어떻게 연보궤에 돈을 넣는지" 를 보셨습니다(막 12:41). 누가는 주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셨다" 고 기록했습니다.(눅 21:1). 또한 마가는 이 장면에 "여러 부자는 많이 넣었다" 고 기록했습니다(막 12:41).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그 날에 연보궤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넣었느냐 하는 절대적 액수가 주님께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만약 절대적 액수가 중요했다면 두 렙돈을 넣은 과부에 관한 이야기는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어떻게 넣는지를" 보셨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헌금을 드릴 때 중요한 것은 헌금의 액수 자체가 아니라 헌금을 하는 태도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헌금을 하는 태도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헌금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우리의 재물을 주님을 위해 드리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는 풍성한 중에 드리면서도 그 가운데 어떤 희생적인 요소도 들어 있지 않은 헌금을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릴 때 자신이 그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것은 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삼하 24:24).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면 우리의 마음에는 어떻게 하면 주님께 물질을 드리는 삶을 균형 있고 올바르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후하게 주셨는가라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약 1:5).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딤전 6:17). 이러한 구절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모든 것을 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후히 주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가진 은혜이며, 특히 우리가 이기적인 이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다른 사람에게 후히 줄 때는 이로부터 많은 보상을 받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후히 주는 은혜" 가 없을 때는 슬프게도 하나님의 일이 여러 가지 면에서 해를 받게 됩니다. 주는 것은 하나님을 닮은 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드릴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위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주셨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그리스도인의 헌금의 올바른 의미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네가지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1. 헌금은 삶의 표현이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드리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의 표현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마게도냐의 교회들이 후히 드렸던 사실을 칭찬하면서 말한 것의 순서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고후 8:5). 이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며, 또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주님께 드리는 모든 거룩한 헌금은 주님께 복종하는 거룩해진 삶의 헌신으로부터 나오는 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주셨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주신 분께서 어떤 분이냐 하는 점이 그분께서 주신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깊은 감사 가운데 우리는 우리에게는 "주신분" 이 계시기 때문에 그분이 주신 무한한 것들이 모두 다 우리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먼저 소유하지 못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것을 받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그분께 복종시키고 그분의 뜻에 우리를 맡길 때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 올바른 방향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2. 헌금은 사랑의 표현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 3:16). 이러한 놀라운 진리는 복음의 가장 핵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헌금과 관련한 우리의 모든 생각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하신 사실에 대해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보실 때, 단순히 우리의 손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자리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구주께서 연보궤에서 과부가 드리는 것을 보시고 그녀를 칭찬하신 사실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주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보시고 그것을 가치 있게 여기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보듯이, 주는 은혜는 단순한 의무감 이상입니다. 차가운 의무감은 주는 것의 한계를 긋고, 주는 양을 계산합니다. 하지만 헌신은 한계가 없고 온 마음을 다해 아낌없이 줍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게도냐의 성도들에 대해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고후 8:3) 라고 말했습니다. 자선기관의 자선 활동에는 종종 의무감으로 주는 일이 포함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선기관이 하나님의 일을 후원하도록 요청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사랑에 반응하여 나타난 사랑의 발로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리는 헌금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헌금이 우리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대한 저항할 수 없는 반응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3. 헌금은 필요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부터 나온다.
그리스도인의 헌금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필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드리는 물질이 어떤 필요를 위해 사용되는지를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헌금통에 헌금 얼마를 넣는 것에 만족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드려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이 자주 제기되고 있습니다. 체계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헌금에 대한 신약성경의 가르침이 보여주는 전체적 방향은 오직 주님을 위해서 물질 가운데 일부가 따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고전 16:2) 바로 그 부분이 주님의 일과 주님의 종들을 위해서 주님의 것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좋은 일이며, 주님께 물질을 드리는 습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십일조가 하나님의 몫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된 헌금으로 인정하셨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에 추가하여 자원하여 드렸던 부분이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어떤 필요가 존재하는 지를 알고 그것에 동일시하면서 드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물질을 드릴 때 '우리가 드리는 물질이 어딘가 적절한 데 사용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드리게 될 위험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다양한 필요의 영역을 보여주시도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갈급한 필요가 있을 때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했는데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그 필요를 채우셨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놀라운 이야기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러한 이야기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의 헌금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 참으로 능력 있게 사용된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후히 드리는 마음이 영적이고 지적인 생각으로 인도될 때 얼마나 큰 능력을 발휘하느냐 하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체계적으로 드리는 법을 연구해야 하고, 필요를 알고 그것에 동일시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체계적인 헌금이 갖는 능력을 알고, 또한 우리의 헌금을 통해 채워지는 필요에 대해 알고 드릴 때 우리의 헌금은 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4. 헌금은 함께 나누려는 원함의 결과이다.
진지하고 참된 마음을 가질 때 유용한 헌금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인색한 마음과 불평하는 마음으로 많은 헌금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적은 헌금을 드리면서도 넓은 마음으로 후하게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측량할 수 없는 부유함이 거기에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드려진 것뿐 아니라 남아 있는 것도 모두 고려하십니다. 하늘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들을 축복하기를 의미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비워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사람에게 주실 것이 없습니다. 두 렙돈을 넣은 과부에 대해 구주께서는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 곧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의 배후에는 자기 희생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후히 드리는 것은 깊고 열정적인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벧전 4:7-10). 이렇게 우리가 주는 은혜를 보여줄 때 그러한 물질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목적이 달성되고 하나님께 다함없는 영광이 돌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