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묵상의 글] 시편 23편

행복자 2018. 9. 29. 12:02

[묵상의 글]

                                                       시편 23편

                                                                                                                              -로이드 케인


   우리가 목자 시편이라 부르기를 원하는 시편 23편은 아마도 성경 전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장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편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신자들을 전율케 해온 이유들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들을 간략히 샬펴보고자 합니다.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선한 목자께서는 양이 지닌 특성들 중 하나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르는 거라고 알려주셨습니다(요 10:27). 그리고 이것은 우리 양들의 목표가 되어야만합니다.

   이 시편은 그것을 에워싼 직전과 직후의 시편들 때문에 더욱 보배롭습니다. 시편 22편에서 우리는 십자가(the Cross)를 만납니다. 시편 23편에서 우리는 지팡이(the Crook)를 만납니다. 그리고 시편 24편에서는 왕관(the Crown)을 만납니다. 첫 번째 시편에서 우리는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는 선한 목자를 봅니다. 두 번째 시편에서 우리는 부활하여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큰 목자를 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시편에서는 다시 오실 목자장을 봅니다. 또한 다른 각도로 묘사할 수도 있습니다. 첫 번재 시편에서 우리는 구세주를 봅니다. 두 번째 시편에서 우리는 목자를 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시편에서는 왕을 봅니다.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이 표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첫번째 시편에서 우리는 구주의 십자가를 대합니다. 두 번째 시편에서 우리는 목자의 보살핌을 대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시편에서는 왕의 오심을 대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항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시편 23편에서 넘치는 잔이 나오듯이 시편 22편에서도 넘치는 잔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잔은 아버지께서 마시라고 주신 잔이었습니다. 이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우리는 시편 22편이 시편 23편의 기초임을 금방 알게 됩니다.


   시편 23편의 배경은 어떠한가요? 어느 날 다윗은 양떼와 같이 있다가 이 시를 지었을까요? 양들을 지키면서 양들의 모든 요구사항들 및 그것들의 생명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다가 이 시를 썼을까요? 그런 중에 이 양들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하는 목자의 책임에까지 생각이 미쳤을까요? 이와 같은 필요한 것들과 책무들을 숙고한 끝에 다윗은 자신과 양이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까요? 그런 후에 자신의 목자이신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심을 묵상하게 되었을까요?

   이 시편을 세 부분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1-3절은 목자에 대하여 생각함이며, 4,5절은 목자에게 말함이며,6절이하는 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말함입니다.


   목자에 대하여 생각함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양들이 무엇을 받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즉, 양들이 얻은 공급을 말해줍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 (롬 8:32).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지 않은 것들까지도 우리에게 주시는 분입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요 10:28). 우리는 자신이 이미 받은 모든 것들의 목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옛 찬송가도 그러한 가사를 담고 있지 않나요?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이제 시편 기자는 양들이 받은 것에서 시선을 돌려 양들이 풀을 뜯어먹는 목초지를 향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초장에 누이시며." 이와 같은 푸른 초장에서 양들이 풀을 먹는 광경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도 그분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그 초장에서 양식을 먹고 있나요? 우리의 영혼에 성경은 살아 있는 책인가요? 우리는 자신의 영혼에 양식을 공급하기 위해서 날마다 기대감을 갖고서 푸른 초장으로 가고 있나요? 혹시 우리는 영혼의 만족을 위해 다른 곳에서 배회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런 탓에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요? 양들이라면 예외 없이 양식이 필요합니다. 특히 어린 양들은 성장하기 위해서 더욱 그러합니다. 아마도 다윗은  양들이 자라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놀랐을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도 우리가 성장하는 속도를 보면서 기뻐하고 계실까요? 우리는 해마다 영적인 성장을 나타내고 있나요? 아니면 하나님의 것들에 대해 식욕이 별로 없음을 드러내면서 정체되어 있나요?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은 양들이 어디로 인도받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양들이 가는 길을 쳐다보는 것입니다.목자는 항상 자기 양들을 인도해가는 방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길로 들어선다면 양들은 손실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주목하여 인도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그분의 뜻을 이탈하여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슬픔을 당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시 32:8-11; 사 50:11).

   다윗은 목자의 특징들을 계속 생각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양들이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이것은 길 잃은 양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는 한 때 자신이 누렸던 즐거움을 회상하며 전에 자신이 아버지와 더불어 가졌던 교제를 떠올립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떠나다" 라는 단어는 많이 모여 있는 동물들이 돌봄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모습을 묘사하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우리의 목자께서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으십니다. 이는 그분이 우리를 데리고 돌아오며 그분께로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신 까닭입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그리스도인의 경험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와 있나요?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그분의 회복의 은혜를 얻기 위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목자에게 말함


   목자의 특징들을 묘사하던 다윗은 이제 방향을 바꾸어 목자에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그는 자신이 즐기는 그분의 임재를 이야기합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것은 신자가 누릴 수 있는 지극한 즐거움이며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이런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그들이 함께 길을 갈때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셨습니다" (눅 24:15). 오늘날의 사회에서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지나치게 분주하다는 것입니다.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즐거워하는 필수적인 일에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을 또 많은 날들을 그분과 동행하지 못하는 채로 살아갑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 하시나이다"  이것은 다윗이 경험했던 보호입니다.그는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이한 사실을 봅니다. 그것은 때때로 징계에 사용되었던 막대기가 위로를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다음의 말씀을 이미 경험했던 것일까요?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67). 다윗은 자신이 징계의 손길을 알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위로를 받았던 것일까요? 그는 만일 자신이 길을 잃는다 해도 그 손길이 자신을 회복시킬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제 준비된 식탁에 대해 목자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그것을 즐거워했습니다. "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그는 안전한 가운데 이 식탁에 앉습니다. 왜냐하면 목자께서 그것을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의 원수들이 보는 데서 말입니다. 이 식탁에서 그는 힘을 얻습니다. 이는 기름이 그의 머리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성령님의 사역을 상징합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 4:16). 성령님은 이러한 사역을 행하십니다. 이 식탁에서 다윗은 만족을 얻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와 같은 식탁에 참여하여 안전을 얻고, 힘을 얻고, 만족을 얻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생각함


   다윗은 목자의 특징들에 대하여 대략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목자에게 직접 말했습니다. 이제 그는 목자의 집까지 가는 동안에 자신을 따를 것에 대해 말합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그러고 나서 다윗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향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것은 영원한 전망입니다. 다윗은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록할 때 제시한 모든 진리를 알지는 못했습니다.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빌 1:23). 하지만 그는 날이 갈수록 자신이 목자 되신 주님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을 언제나 확신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손의 양입니다(시 95:7). 또한 우리는 그분의 기르시는 양입니다(시 100:3). 그분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