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예배와 기념] 참된 예배

행복자 2018. 10. 22. 07:53

[예배와 기념]

                              참된 예배

                                                        언제, 어디서, 어떻게?

                                                                                                                                                     - 다니엘 스미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요 4:23)


   인간이 죄를 범해 타락한 이후, 하나님과 사람이 처음으로 만난 장소는 희생제사를 드린 "단" 이다. 그 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 가운데 거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를 원하셨고, 그 결과 "성막" 이 지어졌다. 그 후 하나님은 성막보다 더 영구적인 "성전"을 솔로몬에게 짓게 하셨다. 신약에서는 주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자신의 몸을 "성전"이라 부르셨다. 그 후 믿는 자들이(구속받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경배가 일어나는) 거룩하고 영적인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간다." 하나님은 사람의 죄로 인해 예배를 잃어버리셨고, 구속의 모든 계획은 사람을 참된 예배자로 회복 시킨다.

   하나님은 피조물의 예배를 구하고 찾으신다. 주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도 예배와 관련된 것이다. 그녀가 부도덕한 삶을 살았기에 거듭남을 말하는 게 합당한가라는 생각을 우리는 한다. 그러므로 예배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더구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예배하고는 너무 동떨어진 삶을 살았고, 유대인에 대한 거부감으로 다른 곳에서 예배드린 사마리아인이기에 이같은 생각을 더욱 갖게 한다. 그러나 주님은 이 비참하고 죄악된 여자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를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같은 말씀을 덧붙이셨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주님께서 이 여인에게 강조한 것은 외적인 행위와 내적인 행위, 즉 진정한 예배와 아닌 것,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와 아닌 것의 차이이다. 사마리아는 그리심 산에서, 유대인은 모리아 산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적인 분, 장소가 문제되는 분이 아니라, 살아계신 분이다. 어느 도시, 어느 산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영혼의 하나님이다. 어떤 건물이 아무리 아름답게 장식되었다 할라도 영혼의 예배를 대체할 수 없다. 예배는 지적인, 혹은 아름다움의 문제가 아닌 본질적으로 영적인 것이다. 예배는 감각(귀나 눈에 호소하는)을 키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가가 핵심이다.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하는가?


   사람들은 흔히 이같은 질문을 하고 나름대로 답을 한다. 어떤 사람은 특정한 거룩한 장소, 즉 경건한 인물이 살았던 곳을 택하거나 경건한 사람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 혹은 경건한 의식에 의해 구별된 곳을 택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답은 "어디서나" 이다. 바다건 육지건, 언덕이건 계곡이건, 사막이나 정원이나, 어디서나 예배드린다.


   언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사람들은 이 질문도 해보고 또 나름대로 답을 한다.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때, 시간, 날을 정하고 자주 제사장의 권위, 교회법 혹은 전통적 규칙을 따라 이를 배열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답은 '항상 어느 시기에나 드린다' 이다. 날과 시간을 정하는 것은 예배를 위해 공적으로 모이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러나 예배 자체는 영구적이며,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모든 시간이 거룩하며 모든 날이 거룩하다. 어느 한 날을 따로 구분하여 교회적으로 모이나, 이는 시간 사이에 차등이 있거나 제한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이같은 질문도 사람들은 하고 나름대로 답을 갖는다. 어떤 특정한 건물에서 형식, 의식, 과정, 자세를 갖고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같은 행위는 사람이 자기 의를 세우는 의지적 예배에  불과하다. 사람은 예배를 이같은 행위로 변질시켰다. 그는 하나님을 잘못 대변하고 자신의 감각을 추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답은 사랑하시는 아드님이 우물가에서 이 여인에게 말씀하실 때 분명하게 주어졌다.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린다." 그들의 복장이 초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문제가 아니다. 음악이 없을지도 모른다. 무릎을 꿇지 않았을 수도 있다. 특별한 건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같은 것들은 하나님에게는 아무 문제도 아니다. 진정한 예배는 내적인 사람의 속에서, 그리고 속으로부터 나온다. 다른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아버지, 주권적 사랑이

                                       아버지를 떠난 죄의 종을 찾으셨나이다.

                                       아드님이 행하신 일이

                                       우리를 아버지께 돌아가게 했나이다.

                                       평안과 자유로.

                                       이제 아들로서 아버지 얼굴을 보오니

                                       기쁜 발걸음으로 갑니다.

                                       우리 머리이신 주님이 준비한 복된 곳으로.


                                       우리를 영원한 사랑으로 주님께 가게 하시고,

                                       우리를 집으로 하나님께로,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주를 닮은 자녀로서 주님과 함께 있도록

                                       영광스러운 은혜여.

                                       기쁨을 채우고 순결하며

                                       하나님의 성품으로 가득한 흠 없는 사랑

                                       우리 마음을 이제 나눕니다.


                                       하나님의 의 영광의 빛으로 우주를 비추네.

                                       하나님의 그리스도, 능력과 빛, 이 빛을 비추네.

                                       하나님의 경륜대로 될지어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다스리네.

                                       예수님의 보혈로,

                                          -존 넬슨 다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