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
[묵상]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
(요한복음 15장 묵상)
- 필립 넌
요한복음에서 주 예수님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헤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 15:1-2). 이 비유에서 한 가지는 명확합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많은 열매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또 아버지는 어떻게 가지치기를 하시나요? 또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슨일이 발생할까요? 어떤 이들은 이 비유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인이 열매를 맺지 못하면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주 예수님이 가르치신 바가 그것일까요?
이 비유에 대해 우리 자신의 설명을 달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려 하나요? 그렇다면 주 예수님께서 친히 어떻게 해석하셨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그것이 지혜롭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나는 포도나무요" (요 15:1,5). 우리는 또한 농부는 하나님 아버지임을 알게 됩니다.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이뿐 아니라 우리는 가지들을 깨끗하게 하는 데에 사용된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게 됩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요 15:3). 그렇다면 가지들은 누구일까요? "너희는 가지니" (요 15:5)에서 "너희" 는 제자들만 가리키나요? 이것은 주 예수님과 관련된 이들만 가리키나요? 우리는 그 대답을 듣지 못합니다. 이뿐 아니라, 설명이 제시되고 있지 않은 다른 부분들도 있습니다. "제하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열매"와 "불"은 무엇을 뜻하나요? 이런 물음들에 대한 대답도 우리는 듣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어떻개 해야 하나요?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연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답은 성경의 나머지 부분과도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무엇을 원하시나요?
아버지가 기대하시는 것은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열매를 산출해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폭넓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열매는 세 가지입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인다운 인격, 경배와 찬양, 섬김 혹은 선행 등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인격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십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롬 8:29). 이 대목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아버지는 우리 안에서 참다운 겸손과 견실함을 보고 싶어 하신다는 뜻입니다. 또한 우리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관심을 보고 싶어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뿐 아니라 그분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서 인내와 관용과 거룩과 절제가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이 어떠한 도전인지요! 이러한 영역들에서 어느 진보를 이루기까지는 우리는 경배와 찬양이라는 열매를 산출해낼 수 없습니다.
경배와 찬양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해 또 그분이 우리에게 행하셨고 행하고 계시고 행하실 일에 대해 우리가 감사를 표하는 방식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우리 인간이 맺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형태의 열매로 부릅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3).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 13:15).
마지막 열매는 섬김 혹은 선행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갈 6:9-10)라고 권면합니다. 그는 골로새 성도들을 위하여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골 1:10)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 성도들에게 훨씬 더 강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는...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엡 2:10).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다음의 구절은 무슨 뜻을 지니나요?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요 15:2).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 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 15:6). 여기서 우리는 참된 신자라면 그의 구원을 상실하지 않음을 성경이 가르친다는 점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비유에서 설명되지 않은 부분을 마음대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불못" 에 던져진다고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필연적으로 예수님이 베푸신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그분이 친히 하신 다른 말씀들을 반박하게 만듭니다. 예컨대, 이러한 말씀들을 말입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요 10:28). 주 예수님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이 약속들은 우리의 행동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구원하시며 보존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 7:25).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그 무엇이 이보다 더 우리를 안전하게 해 줄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사역과 약속들과 중보가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번 구원 받았나요?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구원받은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영원 내내 당신은 하나님 가족의 일원입니다. 이와 같은 안전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나요?
가지들과 불
만약 가지들이 참된 신자들을 의미한다면 불은 영원한 정죄를 의미할 수 없음이 명확합니다. 본문은 "너희"와 "불' 의 의미를 확실하게 설명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독단적인 주장을 삼가야만 합니다. 이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둘 다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성경과 일치되는 적절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견해는 가지들이 신앙고백 한 혹은 기독교계에 속한 이들을 상징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그리스도인들처럼 행하지만 실상은 아닌 가지들을 "제할" 것입니다. 가짜 그리스도인들 곧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한 이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전혀 맺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불에 던져지어 살라지는" 이들입니다. 혹은 유다의 말대로 그들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는" 이들입니다(유 7절).
당신은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인가요?
어쩌면 당신은 교회에 참석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도 잘 알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거듭나지 못했다면 아버지께서 당신을 제할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 20:15). 아직 기회가 남아 있는 지금 나는 당신에게 그리스도를 향하도록 촉구합니다.
이 비유를 고찰하는 두 번째 방식은 여기의 가지들을 오직 참된 그리스도인들로만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어떤 이들은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지면서 앞의 견해를 거부합니다. "불신자가 어떻게 참된 포도나무의 일부가 될 수 있단 말인가요? 대체 어떻게 불신자가 그리스도께 속하여 길러질 수 있단 말인가요? 그들은 또한 불은 성경에서 꼭 지옥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상징한다고 지적합니다.
아버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열매가 맺히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또한 그분을 위하여 열매를 맺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어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들과 뚜렷한 차이를 전혀 나타내지 못하는 대단히 낮은 수준에 처해 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그들의 행동은 불신자들보다 더 나쁘기도 합니다! 그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그는 그들에게 그런 자들을 "사귀지 말라" 고 했습니다(고전 5:2,5,9). 이것은 극단적인 경우입니다. 우리는 또한 어떤 경우들에는, 주님께서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에 크게 진노하셔서 그들이 더 많은 해를 끼치기 전에 그 생명을 가져가신다는 구절을 대합니다. 이는 그것이 그들에게 최상의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고전 11:30).
우리의 생활방식은 중요합니다. 당신은 누구를 기쁘게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당신은 무엇을 건축하고 있나요?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의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고전 3;10-15).
열매를 맺는 자는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4). 여기서 주님의 요점은 아주 명확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노력으로써 참된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빚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공급하시는 힘을 지속적으로 얻어야만 합니다.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십대 시절에 나는 이 구절을 싫어했습니다. 나는 이 구절을 엄청나게 과장된 표현으로 보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친구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없음을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어도 나는 나의 손을 움직일 수 있어."
여기서의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열매를 전혀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면서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면 나의 경배는 무의미하며 나의 찬양은 위선적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있지 못하다면, 교회 안에서의 나의 활동과 나의 전도와 나의 연보와 나의 헌신은 단지 육신에서 나온 행동일 뿐입니다. 따라서 나의 수고들에서 아버지는 아무런 열매를 발견하지 못하십니다. 나는 정직한 그리스도인일 수 있습니다. 나는 상담 분야의 박사학위 소유자일 수 있습니다. 나는 유능한 성경 교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많은 열매와 지속되는 열매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에게 아버지는 어떻게 하시나요?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 15:2). 때때로 우리는 자신이 산출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열매를 보면서 만족감을 느끼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해 보면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나는 제임스보다 더 열심히 하나님을 섬겨." "나는 샤론보다 더 인내심이 많아." "나의 기도는 마이크의 기도보다 더 진실해." 그러나 아버지는 다르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산출해내고 있는 열매를 보실 뿐 아니라 우리가 산출해낼 수 있었던 열매를 보십니다. 훌륭한 농부로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열매와 지속적인 열매(요 15:2,5,16)를 맺도록 일을 맡기십니다. 아버지는 일순간에 맺히는 열매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을 가지치기하고 깨끗하게 하실까요? 일반적으로는 그분의 계시된 말씀을 통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그리스도인의 인격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무슨 자원들을 이용할 수 있는지를,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를, 무엇을 가지고 그분을 찬미할 수 있는지를, 그분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그 외의 많은 것들을 알려주심으로써 정결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기적으로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정기적으로 깨끗하게 하도록 해드리기를 바랍니다. 아버지는 쓸데없는 가지들을 쳐내고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도 갖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관대함과 인내를 가르치기 위하여 그분은 까다로운 신자들과 친척들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만하지 못하도록 혹은 우리를 그분께로 더 가까이 이끌기 위해서 그분은 질병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이나 자원들을 의지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분은 경제적인 위기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지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당신은 아버지께서 자신을 가지치기하고 깨끗하게 하시게 해드리고 있나요? 당신은 성경에 계시된 그분의 뜻에 따르고 있나요? 당신은 그분이 당신의 길에 허락하시는 어려운 환경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나요? 기억하십시오. 더 많은 열매와 지속적인 열매는 우리의 응답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어떠한 유형의 가지인가요?
모조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전혀 맺을 수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회개와 함께 그리스도를 향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종말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헤어짐입니다. 또한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들은 절대로 자신들의 구원을 상실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 그분의 약속들, 그분의 영원한 중보를 인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불 가운데서 구원을 얻은" 이들입니다. 그들은 빈손으로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나요? 또한 아버지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참된 그리스도인들인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날마다 교제를 나누면서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은 주인의 다음과 같은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눅 19:17). 당신은 이 세 부류 중 어디에 속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