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기념] 사랑의 띠
[예배와 기념]
사랑의 띠
- 다니엘 스미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구나" (아 2:16).
이 구절은 영적인 사랑의 심장이자 골수다. 선택 받은 신부는 가끔 옷, 보석, 꽃 등에 관심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신랑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신부가 신랑을 가장 사랑할 때 하는 말은 이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다." 이는 교회의 모든 성도가 주 예수님께 드리는 말이기도 하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
주님에 의해 구속받은 모든 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 그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이 주님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아들을 구주로 보내주신 분은 아버지이다. 아버지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아들을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은사" 로 주셨다. 아버지 하나님이 천사들 전부를 주셨다면, 이는 어마어마한 광경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생하신 아들을 주신 것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선물이다. 이 선물은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주님은 우리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고 소유했기 때문이다. 주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를 모든 은혜와 사랑으로 부요하게 하셨다. 주님은 우리 안에 들어와 거하시고, 우리를 거처로 삼으셨다. 세상이 주님께 문을닫고 내쫓을 때, 주님은 우리 가운데서 안식처를 발견하셨다.
택함 받은 신부가 한 이 말에는 어떠한 짐작도 들어가 있지 않다. 주님을 실제로 복되게 소유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우리가 소유했다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없다. 이 말에는 완전한 확신과 모든 의심과 두려움에서 해방된 신뢰가 있다.
어떤 자에게는 주님이 추상적인 존재다. 혹은 단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택한 신부에게, 주님은 살아있고 사랑스러우며, 모든 게 영광스러운 분이다. 주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주님은 우리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엡 5:25). 주가 이같은 자신을 우리에게 주셔서, 이같이 가깝고 친밀한 연합으로 우리와 합하셨다. 이게 세상에서 가장 값진 부요이다. 그러나 이는 주님이 가장 사랑스럽고 영원한 연합을 맹세하셨기에 된 것이다.
나는 그의 것이다.
우리가 주님 것인 이유는 첫째로 아버지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은 구속 받은 교회를 주님에게 신부로 주셨다. 우리는 주님의 기업 즉 소유물이다.
우리는 또한 주님 것이다. 주님이 우리를 사셨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고전 6:19). 값은 현금이 아니다. 물건을 살 때 사용하는 단순한 은금이 아니다. 주님 자신의 보배로운 피가 갈보리 십자가에서 흘려진 것이다.
우리가 주님 것인 이유는 우리가 주님의 사랑에 반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주님을 믿음으로 붙잡았다. 이 항복은 온전하고 전적이다. 믿을만큼 주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주장하는 것은 없다. 주님의 사랑은 믿음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우리 것이 되지 못한다.
결혼의 끈은 가장 부드러운 끈이다. 모든 연합 중에서 가장 사람을 가깝게 만들고 사랑스럽게 만드는 끈이다. 이는 한 몸으로 만들므로 뗄 수 없다. 이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결혼하고 서로 맹세했다. 이 연합은 영적이고 살아있는 것이다. "주와 합한 자는 한 영이다." 교회는 하나의 동일한 영을 갖고 있다. 이 연합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듯이 핵심적이다. 바울은 이를 "크도다 이 비밀이여" 라고 했다. 이는 자연인의 상상과 이해를 넘는다. 이는 해체할 수 없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결코 분리될수 없다. 이 연합은 어떤 경우에도 깨어지지 않는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먹인다.
그는 백합화 가운데서 즉 순결한 곳에서 먹인다. 내 생각에는, 이는 경고이다. 우리는 그같이 사랑하는 분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이는 사랑의 연합, 절대적 거룩에 근거한 연합이다.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랑하여, 그같이 커다란 값을 치르고 산, 사랑하는 자를 위해 거룩하게 질투한다. 우리는 그가 먹이는 곳에서 먹어야 한다. 우리 마음의 사랑이 세상과 자기 추구의 풀밭에서 헤매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는 주님을 슬프게 해드리지 않도록 생각, 말, 행동을 살펴야 한다. 또한 순결한 곳에 가면 주님을 항상 발견할 수 있다. 영광의 보좌 옆에, 하늘의 천사들 가운데, 진리의 성경 속에서, 성도들이 모이는 곳에 주님이 계신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백합화 가운데서 먹을 수 있는 때는 여름이다. 주님이 먹이는 곳, 순수하고 거룩한 초장에서 먹기를 원한다.*
오 주님, 내 모든 기쁨의 원천이여
내 즐거움의 생명이여,
내 밝은 날의 영광과
내 밤의 위로가
내 주위에 하늘에 열려 빛나고
거룩한 축복의 빛이 비추네.
나는 그분 것이라고 속삭이네.
내 영혼은 이 죽을 흙을 떠나
주님의 변화시키는 말씀 에
기쁨으로 붙잡혀
빛나는 길을
보고 찬송하네. 주님을.
- 이삭 와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