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 깨어짐 (1)
[생각해봅시다]
깨어짐 (1)
- 필립 넌
무언가가 깨어지면 우리는 그것을 마트로 다시 가져갑니다. 우리는 그것을 고치든지 아니면 다른 좋은 물건으로 교환하든지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깨어짐을 손실, 약함, 결함, 부족 등과 관련지어 생각합니다.그러나 하나님은 깨어짐을 보배롭게 여기십니다.
우리 사회는 자신만만함, 자기주장이 강함, 탁월함 등을 가치 있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령이 약하고, 깨어지고, 겸손한 자들에게 매혹을 느끼시며 그들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고용주들과 취업 알선업체들은 꿈을 가진, 목표가 확고한, 추진력 있는 인재들을 신입사원으로 뽑으려 합니다. 그러나 우주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그와 다른 사람들을 찾아서 채용하십니다. 그들은 누구인가요? 내면에 깨어짐이 있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들의 꿈이 허물어지고 스포로 돌아갔음을 아는 이들입니다. 또한 자신들의 죄악됨과 연약함 혹은 무능함을 고통 속에서 절실히 느끼는 이들입니다. 이러한 깨어짐의 경험은 그들을 어느 지점까지 데려가나요? 기꺼이 시간을 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르고, 그분을 순종하는 데까지 이르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활동과 충성됨은 중요하고 필요한 특성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유용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깨어짐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꿈을 크게 꾸어야 하며,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하며,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목표에 은총을 내려달라고 주님께 구하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견고하게 서서 아무 것도 바꾸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평안과 안락을 주신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듯 깨어지지 않은 이들은 자신들이 세운 훌륭한 계획들을 밀고나갑니다. 그런이들이 성공이라고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요? 생산성입니다. 혹은 그럴듯한 통계 수치입니다. 깨어지지 않은 이들은 자신들의 쾌감대 안에 그대로 머물기 위해서 분투합니다. 그들은 언제 자신들이 성공했다고 느낄까요? 자신들이 변함없이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고 느낄 때입니다.
우리는 야생마와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우리가 주님께 유용한 자들이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반드시 우리의 마음이 깨어져야 합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참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깨뜨리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목적은 그런 것들에 대한 위험스런 의존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혹은 우리의 선하지 못한 태도를 드러내시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스스로를 깨뜨리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받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도 이에 대한 수많은 예들을 발견합니다. 많은 흥미로운 사건들과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그렇게 행하시는 모습을 목도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불타는 야망, 그릇된 애정, 해로운 의존관계, 강한 의지 등을 허물어뜨리십니다. 그리고서 깨어진 것을 사용하여 그분의 선하고 완전한 목표들을 이루어가십니다.
나의 간증
지나온 인생 여정을 뒤돌아보면서 나는 많은 기쁨의 사건들을 경험했습니다. 때때로 그 사건들은 나에게 더 깊은 통찰력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또한 그 사건들은 성취들을 만족히 여기게 해주었고 즐거운 순간들을 선사했습니다. 반면에 나의 생애에는 고통스러운 사건들도 발생했습니다. 그 때마다 주님은 내가 귀중하게 여겼던 것들을 께뜨리셨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과정에서 나의 마음이 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다섯 가지 사건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사건 하나. 1984년의 일이었습니다. 당시에 나는 런던에 있는 어느 대학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나는 주님께서 나를 선교지로 부르신다고 느꼈습니다. 당시에 나는 좋은 조건 하에 나갈 수 있었고 이에 즐거운 마음으로 선교지로 나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건에 변화가 생겼고 나는 괴로이 고심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국, 그 기간 동안에 주님은 나의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나로 하여금 무조건적으로 기꺼이 선교지로 가도록 만드셨던 것입니다. 내 마음이 부서진 것입니다. 이러한 부서짐이 없이는 그분께 자신을 내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많은 준비를 한 후에 나는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1992년에 콜롬비아로 떠났습니다.
사건 둘. 콜롬비아에서 섬김을 행하고 있던 2003년의 일이었습니다. 그 때에 성도들 가운데서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귀하게 생각했고 존경했던 여러 형제들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정치적인 성격의 행동들을 처음으로 직접 마주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도들의 교제에 대한 나의 이상주의적인 시각을 파괴했습니다. 따뜻하고 협력적인 관계가 깨졌고 나는 더 이상 그들과의 교제를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외롭다고 느꼈습니다. 이 깨어지는 과정은 내 마음 속에 있던 연약함을 드러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자신이 주님 섬기기를 열망하는 자이며 그분만을 의지하는 자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위기를 겪으면서 나는 나의 마음이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나는 사람을 의지해왔던 것입니다. 거듭거듭 나는 예레미야가 단언했던 다음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렘 17:5-7).
사건 셋. 2007년에 우리는 콜롬비아에서 네델란드로 옮겨갔습니다. 콜롬비아에서 나는 전임 선교사로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복음을 전파했고, 성경을 가르쳤고, 성도들의 성장을 도왔고, 인도자들을 도왔고, 상담 사역을 했고, 새로 생긴 모임들을 도우면서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사역들을 내려놓을 때가 왔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의 콜롬비아 형제자매들에게 안녕을 고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네델란드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우리 부부는 선교지를 떠나는 것이 새로운 선교지로 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유용하거나, 필요하거나, 풍부한 열매를 맺고 있다고 느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 부부는 우리의 가치가 우리가 행하는 바에 달려 있지 않고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냐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의 시기는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우리의 외부적인 환경이 무너졌다고 느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부부는 우리가 느끼는 자기 가치가 우리가 전에 생각했던 만큼 그리스도 중심적이지 못함을 발견했습니다.
사건 넷. 2009년 초에 아내는 탈진을 경험했습니다. 모험적인 활동들로 가득했던 내 인생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그녀가 그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젠 정말로 더 이상 못하겠어요.." 몇 주 동안 휴식기를 가졌지만 그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가정에서 아내와 네 자녀를 더 보살피기 위해서 다른 섬김들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뜻을 갖고 계신가?" 또 다시 우리는 깨어졌습니다. 그 때 우리에게는 멈춰서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이후의 몇 달 동안, 나는 성경에서 깨어진 것들과 깨어짐에 관한 구절들을 찾아 집중적으로 묵상했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목적들을 이루시기 위해 깨어진 것들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건 다섯. 2010년 4월의 일이었습니다. 우리 부부의 15살짜리 아들이 어려운 심장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술이 끝난 후에 회복이 기대만큼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병이 도지고 합병증들이 발생하는 절망스런 순간들이 찾아왔습니다. 당시에 나는 다시 한 번 주님께서 내 심령 안에서 활발하게 역사하심을 느꼈습니다. 또 다시 마음이 부서진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인생의 고비들을 만나 내가 어떻게 깨어졌는지를 소개했습니다. 그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나는 자신의 약함을 알게 되었고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 일들을 계속해서 씹고 있습니다. 또한 아직도 그 일들을 삼키고 소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 이러한 힘든 일들을 허락하시는 분은 다름 아닌 우리의 사랑 넘치고 은혜가 풍성한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얼마나 기쁜지요.
변화된 모습
우리는 종종 사도 베드로의 자발성, 진실됨, 엄청난 열심에 매력을 느낍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주님은 그의 인생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세우셨고 그것이 이루어지려면 베드로는 깨어짐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이와 같은 베드로의 변화를 깊이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젊은 시절에 그는 주님을 따르는 열정 넘치는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30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뒤 베드로전서를 쓸 때에는 어떻게 바뀌었나요?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은 자로 변모해 있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그 서신서에서 신자들을 향해 근신하도록 또 자신을 제어하도록 격려합니다(1:13). 누가 가장 큰 자인지에 대해 말다툼을 벌였던 이가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권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3:8).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5:6) 예전에는 지극히 독자적이고 순종치 않았던 이가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 (2:13) 고 권하고 있습니다. 검을 들어서 그것을 휘둘렀던 이가 이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3:9).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2:17).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 (3:15). 두려움과 좌절 속에서 맹세까지 하면서 저주하며 주님을 부인했던 이가 이제는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라고 권면해줍니다(2:1). 주님과 동일시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했던 이가 또 고난을 피하기 위하여 주님을 부인했던 이가 이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4:13, 16). 강한 자기신뢰로 "예, 제가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던 이가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고 권면합니다(4:11). 베드로의 변화는 이와 같이 뚜렸합니다. 주님은 어떻게 이 일을 이루어내셨을까요?
자기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깨뜨리심
주님이 처음 베드로를 부르셨던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도전을 주시고 그의 자부심을 깨뜨리셨습니다. 그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밤새도록 수고했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의 지시를 따르지 베드로 일행은 순식간에 배 두 척을 물고기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 사건은 베드로가 강력하게 또 정성껏 키워온 "예, 제가 할 수 있어요!" 라는 생각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베드로가 내보인 기이한 반응은 그의 안에서 부서짐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제가 물고기 잡는 것을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그는 그분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5:8).
이후에 가서 베드로는 변화산상에서 창조적인 제안을 내놓았지만 그것은 즉시 거부를 당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는 주님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가지 시도를 했지만 하나같이 아무효력이 없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그분의 나라를 향상시킬 주도면밀한 방책을 제시했지만 그 말을 들으신 주님은 그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마 16:23). 이러한 말들이 베드로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가했을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그것들은 그의 인도력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또 다른 경우에, 베드로는 주님이 행하시는 일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분께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이와 같은 베드로의 강한 생각은 주님의 계획을 막아섰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요 13:8). 그분은 협상의 여지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의 강한 의지는 반드시 깨뜨려져야만 했습니다.
의지력에서 나온 자신감을 깨뜨리심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몇 시간 전에 베드로는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의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행했는지를 깨달은 후에 그의 마음은 부서졌습니다. 그는 스스로에 대하여 깊은 절망감을 느끼면서 깨어짐을 경험했습니다.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눅 22:62).
나중에 가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베드로를 만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회복시키시면서 그분의 양무리를 그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이때 주님은 베드로의 눈을 쳐다보면서 이와 같이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참되었고 거의 반사적으로 나왔습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그러나 똑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받게 되자 그의 마음은 다시 한 번 부서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요 21:17).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나타내는 모습은 어떠한가요? 그는 위협을 받았습니다(행 4:21). 그는 채찍질을 당했습니다(행 5:40). 그는 쇠사슬에 매인 채로 투옥되었습니다(행 12:3-5). 그리고 심지어는 공적인 자리에사 사도 바울이 그에게 이의를 제기하면서 책망하는 일도 겪었습니다(갈 2:11). 존경받는 인도자로서 그의 자존심에 어떠한 상처가 입혀졌을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모든 일들은 고통스러운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이 밖에도 더 많은 사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경험들을 사용하여 베드로를 변화시키셨습니다. 결국, 그를 충동적인 어부에서 사람 낚는 어부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또한 그로 하여금 영혼들의 온유한 목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분에 의해 깨뜨려지는 많은 상황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그 중 몇 가지 상황을 살펴볼 것입니다. 때로는, 일시적으로 깨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 주님은 깨어진 것을 치료하거나, 고치거나, 수리 혹은 수선하시기보다는 그 상태를 유지하게 하시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분이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정확히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주님이 지금 당신의 삶을 깨뜨리고 계심을 느끼고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