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기쁜소식] 예수(4) -구원자의 자격

행복자 2018. 11. 23. 22:08

[기쁜소식]

                                                         예수 (4)

                                                        - 구원자의 자격

                                                                                                                                                        - 허윤욱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요 3:16).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을 구원할 구원자의 자격이 있는가? 이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자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자격이 없는 직책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사회는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사장 자격이 없는 자가 운영하는 회사를 생각해 보았는가? 자격없는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자격 없는 사람이 교수를 한다고 생각해 보라. 배우는 학생의 불행은 시작될 것이다. 자격은 어느 사회 어떤 경우에도 대단히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자격증이라는 것이 있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을 구원할 자격이 있는 구세주인가 하는 문제를 따져보는 이 시간은 매우 중요함을 말하고자 한다. 과연 자격이 있는가?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자격이 있다. 그 이유를 꼼꼼히 따져보자.


   첫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에 자격이 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망가져버린 세상, 망가져버린 인생들을 건지시고자 아들 예수님을 친히 보내셨다. 서두에 기록된 말씀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생각하시고 결단을 내리시어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결단이요 계획이요 사역인 것이다. 하나님은 수 천 년 동안 계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대로 진행하시어 결국은 아들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내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기에 그분은 구세주를 보내실 자격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어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매 누가 감히 하나님께 무엇을 하느냐 간섭할 자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면 누가 감히 이 일을 계획한단 말인가. 예수께서 구세주의 자격이 있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증거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인간 구원 계획에 따라 예수께서 보내심을 받아 세상에 오신 것이다. 이 놀라운 진리를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에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나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요 강도" 라고 당당하게 증거하셨다(요 10:8). 저들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아니다. 저들은 다 사단의 보냄을 받은 절도요 강도다. 저들이 선한 말을 한다 할지라도 절도요 강도다. 저들이 이치에 합하는 그럴듯한 말을 한다 할지라도 저들은 절도요 강도다. 왜냐하면 저들은 구원을 준다 하고 주지 못하기 때문이요 평화를 준다고 하지만 주지 못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저들은 종교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가져가면서 인생을 구원한다고 약속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절도요 강도다. 또한 종교가 아니더라도 많은 좋은 이야기로 현혹하여 사람을 결국 지옥에 가게 하는 철학을 비롯한 많은 사상가들 또한 절도인 것이다.

   아무튼 영육의 모든 존재 중에서 인간을 확실하게 구원할 수 있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 뿐이요, 그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인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은 전능자이시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분의 계산은 틀린 적이 없으며 그분의 계획은 빗나간 적이 없다. 말씀하시고 이루지 못한 일이 없고 약속하시고 지키지 못한 것이 없는 분이시다. 그분의 말씀으로 세계가 창조되었고 그분의 호령에 따라 세상이 시작되었다. 나라가 그분의 뜻대로 일어났고 망하였으며, 전쟁이 그분의 뜻대로 일어났으며 끝났다. 세상의 모든 일은 그분이 알고 있으시며 그분이 주장하시며 그분이 완성하신다. 사람이 아무리 강하여도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기어다니는 벌레에도 못 미친다. 그분이 이루시고자 하는 일에 인간 중 누가 감히 거스릴 자 있으랴.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 42:5). 생각하여 보라. 하나님은 땅을 펴시고 땅의 모든 소산을 베푸시며 만민에게 호흡을 주시기도 하시고 취하기도 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 이글을 읽는 독자가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닫기만 한다면 복 있는 자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못 믿는 까닭은 전능자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저들이 전능자 하나님을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분이 세상을 지으셨고 인간을 건지시기 위해서 구세주로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실 때에 두려워하는 목자들 앞에서 천사들도 증거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0-11).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외쳤다. 모든 사람의 기쁨이 되시는 메시야 구세주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 이렇게 놀라운 일이거늘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어 필자를 비롯한 깨달은 사람들이 애통해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금 이 시간에도 죄인들이 깨닫고 돌아오기를 천년이 하루같이 기다리시고 계시는 것이다. 천사들은 계속해서 증거하여 이르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눅 2:14)고 하였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평화를 가지고 오셨지만 그 비밀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세 번째로  예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자격이 있는 것이다. 에수님은 죄인을 더러운 죄에서와 그 심판으로부터 건지러 오셨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반드시 그분이 죄가 없으셔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여기에 대하여 명확하게 증거하시고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여 이르기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벧전 2:22-23)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죄가 없으심은 수제자 베드로뿐만 아니라 이방인이요 믿음이 없었던 빌라도의 입을 통해서도 증거 되었다.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를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 대" (눅 23:22). 빌라도는 세 번이나 무죄함을 공석에서 증거하였다. 유대인들은 무죄한 줄 알고서도 저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하여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 질렀다. 저들은 흉악범 바라바를 놓게 하고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것이다. 성경은 인간은 모두 다 죄인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전도서 7장 21절에서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죄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고 하셨다. 사람들의 양심도 이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필자가 만나본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요 죄없는 사람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세상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고 소위 4대 성인이라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들은 인생의 구세주가 되지 못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누가 구세주일 수 있는가. 주님 외에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그러므로 사람을 죄에서 지옥에서 건질 수 있는 구원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인 것이다.


   네 번째로 예수님은 사랑과 긍휼이 있으시기에 구원자가 되실 자격이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세상에 계싷 때에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습을 나타내 주셨다. 갈길 몰라 헤매는 죄인들을 사랑하셨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마 9:36). 갈길 몰라 방황하는 백성들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신 주님을 볼 수 있다. 주님은 하나님의 심판이 목전에 있는데도 알지 못하고 타락의 길을 가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우셨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눅 19:41). 예루살렘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예수님을 죽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나 속은 타락되어 썩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신 후에 곧 멸망당할 것이었다. 자신들은 알지 못하였지만 주님은 알고 계셨다. 사랑이신 주님은 예루살렘을 보고 울고 계셨다. 오늘날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자신의 죽음 이후에 있는 심판과 그 후에 지옥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필자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써서 경고하는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미래를 주님이 아셨던 것처럼 그대들의 미래를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전도자들의 안타까움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으시라. 그리하여 지옥을 면하게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구세주로서 자격이 있는 것은 그는 죄인을 위한 희생을 자원하셨기 때문이다. 희생이라고 하는 단어는 성경에서 시작된 단어로서 지금은 온 세상 사람들에게 통용되고 있다. 다른 종교에서는 희생이라는 단어가 달리 없다. 세상에서나 성경에서나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는 희생이 없이는 안 된다. 부모의 희생으로 자식이 살아있는 것이다. 아내의 희생으로 남편이 성공하는 것이다. 남편의 희생으로 아내가 죽을 병에서 놓임 받기도 한다. 희생이라는 것은 타인을 살리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희생은 구약에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양이나 소가 대신 죽어서 사람을 죄의 심판에서 살릴 때에 씌어진 단어이다. 그러던 것이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구약의 양처럼 희생을 자원 하신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양과 신약에 예수께서 치루신 희생의 근본적인 차이가 몇 가지 있다.

   먼저 구약의 양은 자기 의지가 없이 애매히 끌려가서 사람 대신 죽어 사람을 살린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희생을 자원하셨다. 이것은 놀라운 주님의 사랑이요 구세주의 자격인 것이다. 또한 구약의 양은 한 사람의 한 번 지은 죄에만 해당이 되지만 예수님의 죽으신 희생은 온 인류의 모든 죄를 단번에 해결하신 희생이다. 얼마나 놀라운가. 죄 없으시고 거룩하신 예수께서 죄인을 지옥에서 건지시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십자가의 희생을 자원하신 사랑을 죄인들이 깨달아야 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 10:15).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요 10:18). 이 말씀에서 보듯이 주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다. 그분은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권리도 있고 거부할 수 있는 자격도 권리도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 희생은 자기를 죽여 남을 살리는 것인즉 십자가의 희생은 희생의 모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죽어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인들이 온전한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베드로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8-19)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데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은 돈으로 사고 팔 만큼 가치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떤 물질로도 사람의 생명을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는다고 증언한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희생을 말하는 것이다. 피 흘리고 죽임당하여 지옥에 던져져야 할 인생들을 살리기 위해서 대신 피 흘려 죽어주신 그리스도의 피가 이 글을 읽는 그대의 죄를 온전히 씻었다. 이것이 구원의 원리요 방법이다. 주님께서 희생의 마지막에 십자가 위에서 외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 즉 "다 갚았다" 이다. 그대의 죄가 다 갚아진 것이다. 주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죄가 다 갚아졌다.  이제 그대와 내가 할 일은 이 놀라운 주님의 희생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즉 거절하지 않고 영접하는 아주 단순한 사건이다. 이 십자가의 사실을 영접하는 자는 영생의 천국에 가는 것이요 거절하는 자는 스스로 구원의 길을 버림으로 저주를 받아 영원한 멸망의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