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소식1] 무덤에서
[기쁜소식1]
무덤에서
저는 어느 날 묘지에 엄숙하게, 아무 말 없이, 외로움에 잡힌 채 서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흰색 콘크리트로 된 묘비들이-전통적인 직사각형 모양에 모서리는 약간 곡선으로 된- 완벽하게 줄을 맞추어 작은 꽃으로 장식된 채 좁은 흙 위에 서있었습니다. 무덤 바닥에는 작은 나무로 된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네델란드의 여름 오후였지만 하늘을 잿빛이었고 약간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마치 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공기도 차가웠고 묘지에 딱 어울리는 분위기였습니다. 몸에 떨어지는 빗방울에는 꽃향기가 약하게 녹아있었습니다. 매우 조용했고 단지 짧게 깎은 습기 찬 풀위로 천천히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고요함은 침울했고,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내 존재 전체에 퍼진 고요함이었습니다.
저는 천천히 무덤들 사이를 걸어가며 거기 적힌 고통스럽고 애절하면서도 찌르는 묘비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아브라함", "아담", "알렌", '앤드류," "암스트롱," 누구의 아들이며 아버지이며 형제, 남편... , 젊기도 하고 늙은 자도 있으며, 공직에 있던 자, 개인 사업을 했던 자들이 낯선 땅에 나란히 누워있었습니다.
어떤 묘비명은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죽었다."
어떤 것은 죽은 사람의 가치를 기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내 마음에 영원히 새겨진 기억입니다."
"세상에서는 단 한 명이었고, 우리 모두에게는 온 세상인분."
어떤 상실감, 외로움, 마음의 압박, 과거의 기쁨, 그러나 이제는 영원히 사라짐을 묘비명은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줄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다른 비석이 서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이름도 나이도 죽은 날도 사랑하는 사람이 적은 글도 없었습니다. 대신 다음과 같은 글만 있었습니다. "1939-1945. 전쟁의 군인. 하나님이 아심."
그는 누구일까요? 그도 누군가의 아들일 것입니다.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죽었을까요? 폭탄에? 총에? 병에 걸려? 누군가가 그를 돌보아주었을까요? 혹은 혼자서, 아무도 모른 채? 왜 그는 전쟁에 나간 것일까요? 강요에 의해, 의무감으로? 용기로? 확신이 있어서? 사랑으로?
저는 다시 몇 걸음 물러나 묘지 전체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들 모두는 영원에 들어가 있지만,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저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생각이 들자 저는 다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수치와 아무도 모르는 고통 속에서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를 지고 죽은 골고다 언덕이 생각났습니다. 미움을 받아 무시당한 채 거짓 고소를 당해 침 뱉음을 당하고 적에 둘러싸여 죽으셨으나 가장 자격 없는 자들에게 보이신 비할 데 없는 사랑이 생각났습니다. 잃어버린 죄인, 즉 당신과 저를 위해 놀라운 은혜를 보이신 사랑 말입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묘지에 누워있는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았으면 더 좋을 죽음을 죽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죽음은 죄의 값을 지불해야 하기에 반드시 필요한 죽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을 받아 하늘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이 아들을 어떻게 대할지를 알면서도 기꺼이 아들을 주셨습니다.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로마서 8:32).
사랑하는 독자여, 하늘에 가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일을 성취하여 가는 게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단지 그리스도의 최종적인 희생의 가치를 의지해서 가는 것입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브리서 9:14).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해 죽으셨는데 당신이 왜 죄로 인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까? 주님이 나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