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 그리스도의 전적인 충분하심(1)
[생각해봅시다]
그리스도의
전적인
충분하심(1)
- C H. 매킨토시
일단 하나님 앞에서 영혼의 실상(즉 그 파멸과 죄악, 비참함), 그 전적으로 소망 없는 파탄의 깊이를 감지하게 되면, 그 마음에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전적인 충분하심을 계시할 때까지 안식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총체적인 황폐함에 대한 가능한 유일한 해답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제책(remedy)이다.
이 해법은 매우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한 진리이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독자 스스로가 더 깊이 더 철저히 그것을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을. 평안의 비밀은 죄악되고 절망적이고 무가치한 자신의 종말에 이르러 거기에서 우리의 절박한 필요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으로의 그리스도의 전적인 충분하심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안식이며 그 안식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슬픔과 압박, 갈등, 영혼의 연단,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한 무거움, 부침, 모든 종류의 시련과 곤란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확신하기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한 영혼을 인도하셔서 자신의 파멸을 보게 하고 그리스도의 충분하심 안에서 안식할 때 결코 방해받지 않는 평화를 발견한다.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의 상태가 불안한 것은 그들의 마음속으로 그리스도의 충분하심을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그분을 예비하셨다.
확실히 이러한 슬프고 고통스런 결과가 초래된 여러 가지 원인은 율법적인 사고와 병적인 양심, 자만심, 잘못된 가르침, 이생을 추구하는 숨겨진 갈망,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원의 요구에 대한 약간의 유보 등일 것이다. 그러나 그 발생한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믿기에 그것은 거의 모든 경우에 발견되는 것인데 그것은 확고한 평화의 결핍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아떤 의미인가를 그들이 모르고 믿지 않은 결과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자, 우리가 이 글에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걱정하는 독자들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 저장된 보배로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것은 양심의 요구와 그의 마음의 갈망을 만족시키며 그의 삶에서의 절박함을 해결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사역이 양심을 위한 유일한 참 안식처라는 것, 그리고 그분의 인격은 마음을 위한 유일한 목표이고, 그분의 말씀은 그의 삶의 유일한 참 안내임을 입증하려 한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의 사역이 양심을 위한 유일한 안식처임을 잠시 묵상해보자. 이 주제를 살펴보는데 있어서 두 가지 일에 주목하자.
첫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가?
둘째,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하시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전자는 우리의 죄사함을 말하고, 후자는 우리를 위한 중보의 일을 하심을 말한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분은 보좌에서 우리를 위해 사신다. 그분의 고귀한 속죄의 죽으심으로 전적으로 죄인으로서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고, 그것을 영원히 없이 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죄들(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셨다.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벧전 3:18).
이것은 불안한 영혼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위대한 진리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분의 기초가 된다. 아무리 깨어있는 영혼이나 영적으로 각성된 양심이라도 단순한 믿음으로 이 고귀한 진리를 붙잡지 않는 한 확고한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권위에 의지하여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내 모든 죄가 하나님의 시야에서 영원히 제거되었다는 것과 그분 스스로 죄를 제거하심으로 그분의 보좌의 요구와 그분의 성품의 모든 속성을 만족시키셨다는 것, 나의 죄들을 제거 하사 죄들 때문에 나를 영원한 지옥에 보내서 얻는 영광보다 훨씬 더 고상하고 더 놀라운 방식으로 자신을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분 자신이 그 일을 이루셨다. 이것이 요점이며 정수이고 모든 일의 핵심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예수께 옮기셨고, 성경이 그렇다고 말씀하시고, 우리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권위로 그 사실을 알게 하셨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이 실행하시고, 하나님이 그것을 말씀하셨다. 그 모두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어린 아이같이 그 안에서 안식하면 된다. 예수께서 나무에 달려 그 자신의 몸으로 나의죄를 담당하신 것을 어떻게 아는가? 나에게 말씀하신 똑같은 권위로 나의죄가 옮겨졌음을 안다. 하나님께서 지옥에 가야 마땅한 가련한 죄인에게 그분의 놀랍고 비교할 수 없는 사랑으로 확신을 주신 것은 나의 죄들을 주님께서 담당하시고 제거하시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온 우주와 모든 피조물 앞에서 영광의 풍성한 열매를 거두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살아있는 믿음은 양심을 평화롭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나의 죄들에 대하여 만족하셨다면 나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죄인이며 그것도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안다. 나는 나의 죄기 머리털 보다 더 많고, 한밤중처럼 검으며 지옥 그 자체만큼 검다는 것을 안다. 내가 아는 것은 이 죄들 중에 가장 작은 죄 하나 때문에라도 영원한 지옥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기 때문에 단 하나의 죄라도 그분의 거룩한 존전에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여기서 나에 관한 한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일 외에 다른 가능한 출구는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명백하고 의문의 여지가 없는 하늘에서 확정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 나는 이 모든 것을 안다.
아, 십자가의 심오한 신비여! 죄사하시는 사랑의 영광스런 비밀이여! 나는 하나님께서 내 모든 죄를 담당하신 것을 본다. 그 죄는 검고 두려운 범주라고 하나님은 아시고 평가하셨다 나는 그분이 그 죄들을 나의 복된 대속자의 머리 위에 놓으시고 그분과 함께 처리하시는 것을 본다. 나는 나의 죄들에 대한 진노, 의로운 진노의 파도와 소용돌이를 본다. 그분의 진노는 내 영혼과 몸을 지옥에서 영원토록 태웠어야 했다. 나는 그 죄악들이 하나님 앞에서 나를 대신하여 내 자리에 서신 그분 위애 일렁이는 것을 본다. 그분은 내가 마땅히 받아야할 것들을 담당하셨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나를 처리하셔야 했는데 그분을 다루셨다. 나는 굽힐 수 없는 정의와 거룩함과 진리와 의로움이 나의 죄들을 처리하여 남김없이 영원히 제거하는 것을 본다. 거기는 경감이나 묵인, 얼버무림, 무시하는 것이 없다. 일단 하나님 자신의 손에 들어간 이상 그러한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분의 영광은 위험에 처해 있다. 그분의 더럽혀지지 않은 거룩함과 그분의 영원한 위엄, 그분의 통치의 높은 요구도. 이 모든 것들이 아주 지혜롭게 제공되었기 때문에 천사들과 사람들, 악마들이 보기에도 그분 자신을 영화롭게 하셨다. 그분은 내 죄 때문에 나를 지옥에 보내는 것이 의롭고 바른 일이었다. 나는 그 외에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었다. 나의 모든 도덕적인 존재는 그 깊고 깊은 곳으로부터 이것을 소유해야 한다. 나는 단 하나의 죄악된 생각에 대하여 한 마디도 변명할 말이 없으며, 죄로 물든 나의 삶에 대하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할 말이 없다. 그렇다. 방탕하고, 반역적이고 고자세의 죄의 삶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죄에 대한 영원한 심판의 불공평한 것, 즉 잠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불못의 영원한 고통은 균형이 맞지 않다고 그들 마음대로 논쟁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반대하지만 나는 철저히 믿고 마음을 다하여 고백하건대, 내가 십자가에서 본 하나님으로서의 그분에 적대하여 범한 단 한 가지의 죄의 대가로 깊고 어둡고 무시무시한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나는 신학자로서 저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학자라서 저술한다면, 영원한 심판의 엄숙한 진리를 증거함에 있어서 반박할 수 없는 성경의 증거를 제시하는 것은 진실로 매우 쉬운 일이다. 그러나 결코 신학자로서가 아니다. 냉정하고 신중하게 그리고 엄숙하게 선언하건대, 내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배운바, 실재하는 죄의 황야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존전에서 영원히 추방되어 유황불로 타는 심연에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은혜의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라! 우리 죄 때문에 우리를 지옥에 보내는 대신 그분의 아들을 보내사 죄를 위한 화목제로 삼으셨다. 그리고 구속의 기이한 계획을 펼쳐서 우리 죄의 문제를 거룩하신 하나님이 처리하시고 영원하고 동등하신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인격 안에서 죄에 대한 심판읗 집행하사 그분의 홍수 같은 사랑이 우리 마음에 흘러 들어오게 하신 것을 우리가 본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로 삼으셨음이니라" (요일 4:10).
단순한 믿음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확실히 이것은 우리 양심에 평화를 준다. 하나님께서 그의 죄들에 대해서 하나님 자신을 만족시키셨는데 평화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하나님께서 "너의 죄들과 불법들을 내가 다시는 기억지 아니하리라" 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면 우리의 양심을 위한 평화의 근거로서 무엇을 더 요구할 것이 있는가? 내 모든 죄를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셨고, 나의 죄를 그분의 등 뒤에 던지셔서 영원히 그분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것이 확실한데도 나는 평화를 얻지 못하는가? 십자가에서 내 죄를 짊어지시고 지금은 하늘 위엄의 우편에 앉아계신 분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실지라도 내 영혼은 나의 죄들의 문제에 관하여 완전한 안식에 들어가지 말아야 되는가? 확실히 안식을 누려야 한다.
지금 하나님 보좌를 차지하신 그 장소에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도달하셨는가? 무엇보다도 과거에 하나남으로서 찬양을 받으셨는가? 아니다. 그분은 항상 찬양을 받으신다. 과거에만 성부의 아들이었는가? 아니다 그분은 영원 전부터 아버지의 품에 계셨고, 아버지의 영원한 말할 수 없는 기쁨의 대상이시다. 고거에만 그분이 점도 없고,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그리고 그 성품이 절대적으로 순결하시고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분이셨는가? 아니다. 그 성품에 있어서 근원부터, 말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그분은 언제나 하나님의 우편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는 분이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모든 은혜의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할지어다! 그분의 죽음에 의하여 영광스러운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분, 우리의 무거운 모든 죄를 담당하신분, 그분이 지금 앉아계신 보좌의 모든 의로운 요구를 완전히 만족시키셨던 분으로 된 것이다.
이것이 걱정하는 독자가 파악해야 할 위대하고 중요한 요점이다. 그것은 틀림없이 마음을 해방하고 양심을 진정시킨다. 우리는 나무에 달리시고 지금은 보좌에 앉아 면류관을 쓰신 분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불화할 수는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그 심판을 친히 지셨다. 단 한가지 죄라도 속죄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면 그분은 지금 계신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죄를 담당하신 그분이 영광의 면류관을 쓰신 것을 보는 것은 우리 죄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사라졌음을 보는 것이다. 우리 죄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 모두를 담당하신 그분이 하늘을 통과해서 그 영광의 보좌에 오르셨다. 영원한 정의가 영광의 면류관으로 찬양받으실 그분의 이마에 장식되었다. 그분은 우리의 구속의 완성자이시고, 우리 죄를 담당하신 분으로 그렇게 되신 것이다. 우리 죄들이 모두 하나님의 시야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이 의문의 여지없이 이렇게 증명되었다. 면류관을 쓰신 그리스도와 의(義)는 복된 은혜의 경륜 안에서 분리될 수 없도록 함께 연결되었다.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의 되찾은 능력을 다하여 구속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 가장 위로가 되는 진리가 성경에 어떻게 제시되었는지 살펴보자. 로마서 3장 21-2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시므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다시 4장 23-25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에게 의롭다함을 받았다고 말씀하면서 사도는 덧붙인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주심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분으로 소개된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는가? 왜냐하면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주신 분은 그 범죄함에 관하여 하나님을 완전히 영화롭게 하셨고 그 죄들을 영원히 제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그 아들을 상하게 하셨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 그것은 그분을 무한히 영원히 영광스럽게 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허물이 모두 처리되었음을 알고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분의 이름에 영원하고 우주적인 경배를 드리자!
이 위대한 기본적인 진리에 대하여 증거가 더 있다. 히브리서 1장 1-3절에 영혼을 감동시키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 주 그리스도, 그 이름을 찬양하라! 그분은 자신을 십자가에 제물로 드려 우리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마칠 때까지 하나님의 보좌에 앉지 않으셨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 죄가 사라졌다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이다. 이는 단 하나의 죄라도 남아있다면 그분은 지금 계신 자리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무거운 죄를 짊어지신 바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셨다. 이렇게 모든 것은 해결되었다. 그것도 신성하게 영원히 해결되었다. 단 하나의 죄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가장 연약한 신자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죄를 발견하는 것같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견고한 진리이며 성경에서 여러 모양으로 확증된 것이다. 이 진리를 믿는 영혼은 세상이 줄 수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평화를 확실히 소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