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여인들] 오르바의 선택
[성경의 여인들]
오르바의 선택
- 임 용 민
" 존 번연의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 제1부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들판에서 크리스천(Christian)이 갈 곳을 알지 못하고 사면을 두리번 거릴 때 전도자(Evangelist)가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사연을 물었습니다. 이에 크리스천은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을 가리키며 " 이 책을 읽어보니 나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고 죽은 후에는 심판을 받는다 하였소.나는 죽기도 싫고 심판도 원치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전도자는 들판 저편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 저 들판 너머 빛나는 광채가 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하시오." 그 말을 들은 크리스천은 "생명, 생명, 영원한 생명!" 을 외치며 온 힘을 다하여 그곳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같은 마을의 온순(Pliable)씨가 그의 뒤를 따라와 둘은 함께 걷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이야기에 열중하던 두 사람은 그만 진흙 수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에 실망한 온순 씨는 크리스천씨와 함께 가는 순례길을 포기하고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멸망할 세상으로 영영 되돌아 가버렸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잠시 생각해 보려는 오르바 이야기 내용이 바로 존 번연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오르바에 대한 소개
그녀는 모압에서 태어나 자랐고, 수년 전 베들레헴으로부터 그들 마을로 이주해 온 한 유대인 가정의 아들 길룐(Chlion)이라는 청년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룻기 1:4). 룻이라는 다른 모압 처녀 역시 같은 가정의 또 다른 아들 말론(Mahlon)과 결혼함으로 오르바와 룻은 동서지간이 되었습니다.
오르바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새끼 사슴" 혹은 "어린 암사슴" (fawn oryoung doe) 또는 "수노루" 혹은 "수사슴" (Roebuck or Stag)그리고 어떤 이들은 " 두 마음" (double-minded).히브리인들의 관점에서는 "목" (neck) 혹은 "목이 곧은" (stiff- necked) 혹은 "고집" (stubborn)이란 의미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불행을 만난 그녀
몇 년간이나 함께 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녀를 낳지 못한 채 그녀는 일찍 남편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동서 룻 역시 매우 유사한 처지로 일찍 남편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 가정에는 이미 과부된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젊은 며느리 과부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나오미는 10년 전 떠나온 고향 베들레헴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두 며느리 룻과 오르바 역시 처음에는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선택의 순간을 맞은 오르바
나오미는 계속 자신을 따르는 두 며느리에게 "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고 권했습니다. 1장 8절, 11절, 12절을 보면 세 번씩이나 간곡히 권했습니다. 마침내 오르바는 소리 높여 울며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작별의 키스를 하고 그녀의 아비 집과 모압 신에게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렇지만 반면에 룻은 더욱 시어머니를 굳게 부여잡으며 함께 따르기를 간청했습니다.나오미는 거듭 룻에게 " 네 동서와 함께 돌아가라" 고 권했지만 룻은 오히려 " 어머니가 계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며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 맹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나오미와 룻은 마침내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 두 여인의 운명
모든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자신의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느 편을 택하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은 빛과 어둠, 하늘과 땅, 행복과 불행, 영생과 멸망으로 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 선택의 책임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결정 여하에 따라 그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한 원리는 비지니스 맨, 정치인, 대학생의 전공 선택, 결혼 배우자 선택, 바른 진리와 신앙을 택하는 믿음 등 모든 만사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오르바는 보이는 현실을 택했고 룻은 보이지 않는 믿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눈으로 보기에 물이 풍부하고 에덴처럼 비옥한 소돔과 고모라를 택함으로 훗날 소돔의 멸망과 함께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으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가나안땅의 영원한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같은 날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중에 왼편 강도는 구주 예수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그는 영원한 어둠의 멸망속으로, 그리고 오른편 강도는 자신의 죽음의 문턱에서 회개와 믿음으로 영원한 낙원에 들어가는 놀라운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믿음과 불신의 선택은 이처럼 현세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내세의 운명을 결정짓는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선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4:18).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오르바의 선택처럼 이 세상에서 보이는 것이 그의 인생에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길은 역설적으로 그와 정반대입니다.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2)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좋은 실례로 아브라함은 "그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 11:8,15)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너무 근시안적입니다. 마치 오르바처럼 근시안적 선택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근시안의 안경을 이제 벗어버리고 믿음의 원시경으로 갈아 끼우도록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