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전도전략] 노인 전도의 특징 불쌍하다

행복자 2019. 3. 4. 09:35

[전도전략]

                                                노인 전도의 특징


                                                      불쌍하다.


                                                           -허윤욱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 12:6-8).


   이번호에는 노인전도에 있어서 전도자의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하여 보고자 한다. 노인에 대한 마음가짐은 "불쌍히 여김"이다. 모든 전도가 그렇지만 노인은 특별히 불쌍하다는 생각을 새겨야 한다고 여겨진다. 지난 호의 글과 겹치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이 부분을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전도자가 구도자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함은 당연하지만 노인의 경우는 특히 불쌍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노인들은 불쌍하다. 저들은 세월을 거스르지 못하여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저들은 많은 경험을 하고 살아왔다. 저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 쓸모없는 시기가 되었다. 이 시대가 알아주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노인들의 경험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생각이 구시대의 지식이요 경험이라고 여기는 풍토다. 슬픈 일이다. 개인적으로도 슬프고 사회적으로 슬픈 일이다.  노인의 경험이 업신여겨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전도자는 이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어 노인들의 말을 많이 들어주는 것도 그들을 구원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평생을 닦아온 것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들으니, 공무원 노인들의 퇴직금을 한 번에 주지 않고 연금으로만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잘하는 것 같다. 노인들이 퇴직금을 받아서 사업이나 금융에 투자하여 잃어버리고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또 자식들에게  빼앗기고 고생하는 분들도 있다. 그리고 또 아파트 경비나 기타 직업에서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슬프다. 저들의 처지가 슬프다. 저들은 낙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전도자의 마음에 노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저들을 만나면 자연히 저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것이다.

   필자가 수많은 노인을 만난바 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저들의 경험을 격려하여 주었다. 그들은 크게 기뻐하고 좋아하며 좋은 친구가 되는 경우를 수없이 경험했다. 참으로 노인들은 불쌍한 사람들이다. 경험 부족한 젊은이들이 노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노인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는가. 그러나 누구 하나 들어줄 생각을 안하니 노인들끼리 서로 경험을 자랑하거나 대화하면 서로 잘났다고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대화의 통로는 그것뿐이라서 어쩔 수 없지 아니한가.

   노인을 불쌍히 여겨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저들이 늙어 알아주지 않는 존재가 되었지만 우리도 또한 늙어가는 것이다. 노인은 인생의 거울이다. 저들이 늙어가는 것은 우리의 미래다. 우리도 늙어가며 젊은이들에게밀려가고 있지 아니한가. 그런 것을 생각하면 필자도 두려운 생각이 든다. 부모를 포함하여 노인들에게 함부로 행하고 죄 값을 받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잠시 후에 늙어서 젊은이들이 냉대하는 때에 많은 후회를 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전도자들은 노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애정을 가지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생각하여 보라. 자기의 모든 경험이나 삶의 지혜가 천시 받는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노인들이 얼마나 허무한 생각에 잡히겠는가. 사회에서 아무 쓸모도 없고 집안 경제에 해를 끼치는 존재 정도로 취급받는 현실에 노인에게 무슨 낙이 있겠는가.

   이번에 봉동 전도 수련회에 3일간 연인원 175명이 몰려왔는데 거의 노인들이 많았다. 저들이 몰려온 까닭은 복음을 듣겠다는 호기심도 있었겠지만 필자의 분별로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번에 전국에서 온 수련생들 70여명이 학생들을 포함한 젊은이들이 많았다. 저들이 경로당에 가서 애교를 부리고 율동을 하면서 어깨를 주물러주니 노인들의 마음이 녹아내린 것이다.  또 아이들이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니 고맙고 감사하여 이끌려 나온 것이다. 지역교회에서 노인들 전도에 마음만 먹으면 노인들은 활짝 열려있는 밭이다. 사실이다. 경로당에 지역교회에서 과자 몇 개 사가지고 가서 정기적으로 위로하고 복음을 전하면 저들은 그냥 따라 올 사람들이다. 할 일도 없어서 이야기를 하거나 이야기를 듣거나 하는 일들에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이다. 얼마나 좋은가. 불쌍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친구가 되어 즐겁게 하고 또 저들의 영혼을 구원하니 이것이 아름다운 일이요 사역인 것이다. 필자가 지역전도에 거의 시간을 내지 못하여 아쉬움이 있지만 주님께서 인도하시면 그러한 사역이 여천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다시 한 번 권하거니와 지역교회에서 경로당 전도를 본격적으로 계획하여 봄이 좋다고 여긴다. 시도하여 볼 일이다. 지금도 저들은 스펀지처럼 말씀을 빨아들인다.이번에 봉동에서 경험한 사실이요 다른 전도 훈련에서 수없이 경험한 사실이다. 전도수련회를 하면 경로당 전도를 많이 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각 지역교회에서 이 일을 시작하면 놀라운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 노인들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마지막을 달리는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느 날 갑자기 죽게 될 것이다. 엊그제 돌아가신 어떤 노인도 설에 세배를 받고 3일 후에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앞에서 뒤에서 곁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어제 경로당에 나와서 놀던 친구가 오늘 몸져눕고 삼일 후에 장례를 치른다면 얼마나 황당한 생각이 들겠는가 노인이니까 죽어가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겠지만, 죽음의 일인데 그게 어디 간단한 문제인가. 동료들의 죽음을 보면서 얼마나 두렵고 서글프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감정을 누구에게 털어놓겠는가. 사형수가 사형 날을 기다리듯 저들 또한 사형 날을 기다리고 있음과 무엇이 다른가. 저들의 초조함과 두려움에 답을 줄 사람이 전도자 말고 누가 있는가. 복음 외에 무엇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저들을 절망적 상황에서 위로할 것이 무엇인가. 복음은 저들에게 캄캄한 어두움에 빛이요 노자돈 떨어진 여행객에게 돈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교회가 노인 전도에 관심을 적극적으로 가져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여겨진다. 생각하여 보라. 소망 없는 자에게 소망을 주고, 기쁨 없는 자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한국의 노인들은 또 다른 각도에서 불쌍하다. "은퇴한 뒤에 여유롭게 노후를 즐기고 싶은 건, 모두의 소망이죠. 그런데 여유는커녕 중노동에 시달리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이런 자리라도 구할 수 있다면 오히려 다행인 게 현실입니다." 어느 날 방송 진행자의 멘트다. 우리나라의 노인들이 늙어서도 쉬지 못하고 중노동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다. 노동이 건강을 연장시킨다고 위로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꼭 그럴까. 노동과 운동은 엄연히 다르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한국의 노인들은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세대다. 저들은 가난한 시기에 태어나서 사는 게 힘들어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다. 자식들이 돌보아주겠지 하는 막연함으로 자식들을 위하여 투자한 세대다. 그리고 자식들을 기대했으나 자식들도 갑자기 애정을 잃은 세대다. 경로사상을 이야기하면 고전이야기 취급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저들은 엄청난 교육열 시대를 살아서 교육에 삶을 투자하여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식들에게 위로 받지 못하는 저들이 얼마나 허무를 느끼겠는가. 삶이란 그냥 생명을 연명하는 것으로 족할 수 없다. 사람이 살아있으면 여러 가지 물질을 사용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그런데 자식에게 얹혀 그냥 삶을 부지하고 있다면 이것 또한 슬픈 이유 중 하나이다. 

   노인은 가시고기처럼 끝까지 자식에게 주다가 간다. 몇 푼 안 되는 품속의 돈도 아낌없이 손자들 용돈으로 주면서 자기를 위해서 쓰지 못하는 노인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인생은 가시고기 그 자체의 삶이 아닐까.

   노인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웃음이 난다. 늙으면 온 몸이 아픈 것은 당연하다. 기계도 오래 쓰면 닳아서 고장 나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닌가. 그런데 약을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 약만 먹으면 당장 아픈 것이 다 사라지고 젊음을 되찾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켜서 그 비싼 약을 판다. 노인들은 속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숨겨진 진리가 있다. 저들의 말을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믿은 복음이야 말로 저들의 말을 온전히 완성시켜주는 진리이다. 주님 나라에 가면 이것이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가. 노인들이 아끼고 아끼던 돈을 그러한 약장수에게 투자하여 비싼 약을 사는 심리를 생각하여 보면 노인들의 고뇌를 알 수 있지 아니한가. 몸이 아픈 것을 고쳐 덜 고통당하려는 생각이 있지만 또한 죽음을 거부하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영생의 소식 외에는 노인을 치료할 약이 없다.

   학자들은 다가오는 세대를 고령화 시대라고 말한다. 노인들은 그들의 수고에 의해서 이 나라가 세워졌음에도 사회에서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현실을 뻔히 내다보고 있다. 필자가 예견하거니와 앞으로 노인 자살률은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사회를 위해 수고하고 가정과 자식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왔는데 나라와 사회와 자식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저들에게 남는것은 허무하고 절망적인 삶 외에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경제적인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돈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죄인들이 꾸려가는 세상에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저들을 위로하여야 한다. 십자가의 복음으로 저들을 구원하여야 한다. 지옥의 절망과 세상의 절망에서 저들을 건져야 한다. 노인들은 어느시기보다도 복음이 필요한 시기다. 저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눈을 돌리자. 관심을 쏟자 노인들은 경제력이나 교회 동력에 도움이 덜 된다고 가볍게 여기지 말자.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하나님의 복음이 아니면 저들은 오직 절망의 나날을 보내다가 영원한 절망의 구덩이에 빠져 영원을 보내게 될 것이다.

   전도자는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함에 이의가 없다.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전도자의 전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지 아니한가. 전도자의 전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되지 아니한가. 그렇다면 단순히 하나님 만나는 길만 전하는 단순한 길잡이가 아닌 하나님을 알게 하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전도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노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도자가 알아야 한다. 저들은 불쌍한 사람들이다.

   요나서를 잠깐 보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 하였고 배양도 아니 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욘 4:10-11). 하나님께서 육축의 생명까지 거론하시는 것을 보시라. 얼마나 놀라운가. 전도자가 노인들과 수많은 영혼들을 아끼는 것이 합당하고 합당한 것이다.

   전도자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심령이 있어야 한다. 영혼들 중에도 노인들은 더욱 불쌍하지 아니한가. 인생 말기에 의지할 데 없이 살아온 인생에 회한을 품으며 정신적 육체적 아픔과 함께 하루하루 보내는 사람들이다. 저들은 암에 걸리지 않았어도 말기 암 환자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는 슬픔 세대인 것이다. 저들에게 교회와 전도자가 애정을 가지고 접근하면 저들의 눈에서 눈물을 볼 수 있다. 전도훈련을 하면서 계속 느꼈지만 이번 밀양 전도훈련과 봉동 전도훈련을 통하여 더욱 느낀 것은 노인들이 애정 결핍증에 걸려서 조금만 애정을 보여도 울고 열광한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노인을 불쌍히 여기는 열정으로 전도를 시작한다면 하나님께서 다시 긍휼을 베푸셔서 부흥기를 허락하실 것이라고 여겨진다.

   불쌍히 여기자. 한국의 노인들은 어느 나라보다 더욱 불쌍한 세대다. 우리는 아픔을 이해하고 저들에게 애정으로 접근하여 녹이자.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고 열매로 화답하여 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