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소식] 어 둠
[기쁜소식]
어 둠
얼마 전 뉴욕과 그 일대에 전력공급이 예상치 못하게 중단되어 온 시가가 일시적으로 어둠 속에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이같은 공포는 급속히 확산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가능한 이유, 즉 가장 단순한 것에서 가장 고상한 것에 이르기까지를 생각해냈습니다. 이는 사람이 실제로 어둠을 얼마나 무서워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성경도 어둠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 언급은 창세기 16장에 나오며, 마지막은 계시록 16장 10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둠은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음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요일 1:5). 이는 사람에 대한 묘사와 정반대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19).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과 하나님은 정반대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듯이 하나님과 죄인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그 죄를 용서받기 전에는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사람을 이같은 상태로 만들었을까요? 우리 밖에 또 다른 힘이 존재합니다. 그가 우리를 어둠 속에 가두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단의 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2).
지옥의 악한 힘은 우리를 어둠 속에 가두어놓으려 합니다. 왜요? 우리가 그들의 영원한 저주를 함께 나누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벧후 2:4). 회개하지 않는 모든 영혼은, 만일 하나님이 그 아들로 베푸신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는 다면, 그리로 갈 것입니다.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마 22:13).
성경은 이같은 어둠에서 구원받은 사람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견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3). 이같은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기로 결정하신 걸까요?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하여 의롭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같은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무서운 어둠을 경험하지 않고 영원토록 하나님의 임재의 빛을 즐길 수 있도록 주님께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아침 9시(유대인 시간으로는 제삼시)에 그들은 구주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 27:45-46).
그 무서운 시간에 주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고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주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인 사람은 해방됩니다.
이에 찬송가 가사와 같습니다. "죄 없으신 구주가 죽었기에, 내 죄 있는 영혼이 해방되었네. 의로우신 하나님은 주를 보고 나를 용서했다네."
이 복음의 놀라운 능력을 성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행 26:18).
이같은 말씀을 받아들여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