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강단]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들(1)
[지상강단]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들(1)
- 하워드 반즈
오늘의 주제는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들입니다. 이 주제가 하나님의 뜻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민수기 8장 6절, 10-14절, 18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정결케 하라. ...레위인을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그들에게 안수케 한 후에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요제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이는 그들로 여호와를 봉사케 하기 위함이라. 레위인으로 수송아지들의 머리에 안수케 하고 네가 그 하나는 속죄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려 레위인을 속죄하고 레위인을 아론과 그 아들들 앞에 세워 여호와께 요제로 드릴지니라. 너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구별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내게 속할 것이라. ...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
레위인들은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선물인 교회에 관한 놀라운 그림입니다. 민수기 8장은 특별히 섬김에 관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11절은 이 섬김이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이 특별한 일은 선택된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집행됩니다. 레위인은 성막에서 모든 육체적인 활동에 종사하는 자들로서, 특별히 성막을 옮기는 일을 맡았습니다.
제사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 의해 드려졌습니다. 그러나 레위인들의 일은 실제로 성막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며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수고가 드려졌습니다. 25세에서 50세까지의 남자가 이러한 일에 종사했습니다. 처음 5년 동안은 배우는 기간이었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레위인들은 50세 이후에도 완전히 쉬지 못하고 그들의 책무를 계속해야 했습니다.
민수기 8장에 제시된 원칙은 그들이 어떻게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임했는지를 살펴보는데 중요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나중에 로마서 12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 12장에서 각 개인의 은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 은사는 주님을 섬기는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사로 주님을 섬기기 전에 반드시 먼저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곧 몸을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민수기 8장에서 레위인들은 산 제사의 첫 번째 예입니다. 아론은 레위인들을 여호와께 드릴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예비되어야 합니다. 6절을 보면 먼저 그들을 취합니다. 두 번째로 그들을 정결케 합니다. 세 번째로 그들을 여호와 앞에 데리고 나옵니다(10절). 네 번째로 그들을 여호와 앞에 드립니다(11절). 다섯 번째로 레위인들을 구별합니다(14절).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되었습니다. 그들을 구별하는 절차가 이 장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를 대신하였습니다(18절).
형제 자매님들은 주님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예비과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구별되어야 하고 정결케 된 후에 드려져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로마서 12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여기 민수기 8장에서는 그 원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무엘상 1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이 장에는 개인이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에 관해 필요한 그림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잘 아는 한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는 자식이 없음으로 인해 심히 낙담하였지만, 그로 인해 주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실제적인 기도였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구하며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겠다" 고 서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말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만약 여호와께서 그녀의 기도에 응답하시면, 여호와를 섬기도록 아들을 기꺼이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28절). 그녀는 아이를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하였고, 기도가 성취되자 그 아이를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이며, 특별히 믿는 자의 경우에 그렇습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는 자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관한 말씀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여기에 훈육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가정은 매우 특별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선물로 주셨을 때, 그 자녀들을 합당한 영향력 아래에서 양육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억지로 신앙고백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그러한 일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일찍 신앙고백을 했지만 그것이 참된 고백이 아닐 경우, 나중에 자녀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될 때 그들은 주님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나처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가능한 한 자녀들을 그리스도인의 영향력 안에 있게 하십시오. 간단한 성경 이야기라도 좋으니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하십시오.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는 디모데에게 성경을 읽도록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디모데를 지혜가 있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즉 주께서 오셔서 이 청년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모든 성경 지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디모데가 알고 있던 구약성경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디모데가 구원을 받을 때 그가 알고 있었던 성경 지식이 제대로 역사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영향을 받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도록 하십시오. 성령님의 영향을 받도록 기도하십시오. 이것은 모두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여기서 이 여인은 자원해서 드렸습니다. 그녀는 결코 어떤 특별한 계명에 따라 자녀를 여호와께 드렸던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자진해서 드렸습니다. 그녀는 여호와와 그분의 축복에 대해 너무나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영적인 여인입니다. 사무엘상 2장에서 우리는 그녀의 찬양을 듣습니다. 그녀는 영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위대한 영적 통찰력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3절 후반부에서 그녀는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고 고백하였고, 7절에서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매님들, 훌륭한 자녀를 얻기 원한다면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도록 하십시오. 자매님들은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나는 말씀을 전할 수 없으며, 기도할 수도 없는데, 왜 성경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 남편이나 장로들만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는가?"
가정은 매우 중요한 장소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어머니는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물론 남편은 가정의 머리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심장입니다.그러므로 어머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 한나가 좋은 예입니다.
이제 역대하 17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앞에서 우리는 레위인들이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드려진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나와 사무엘의 이야기를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에는 여러분이 쉽게 지나치는 놀라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16절을 보겠습니다. ' 그 다음은 시그리의 아들 아마시야니 저는 자기를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자라. 큰 용사 이십만을 거느렸고"
여호사밧은 유다의 군사적인 방비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그는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를 주둔시켰고, 견고한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했으며, 군대를 조직화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크게 용맹한 군사." 여기서 우리는 다섯 사람의 이름이 실린 명부를 보게 됩니다. 그 명부는 14절의 "천부장 아드나" 에서 시작해서 18절의 "여호사밧"으로 끝납니다. 여호사밧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명부의 세번째 사람은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가 첫 번째로 열거되지 않았거나 마지막으로 열거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자기를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자라"고 성경에 영원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즐거이 드리다" 라고 표현된 이 특별한 동사가 구약성경에서 15번 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번은 사람들이 자신을 드리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단 한 번, 이 구절에서 자신을 여호와께 드리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명부의 한 가운데 열거된 이 사람은 독특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은 8천 명의 레위인이 여호와께 드려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아마시야라는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의 부담"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 일에 부담을 느꼈습니다. 그와 함께 명부에 기록된 다른 군사 동료들에게서 우리는 적극적인 애국심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서는 깊은 영적 실행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는 강한 용사 이십만 명을 거느렸습니다. 그는 유다의 안전을 위해 이것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마시야는 무엇인가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께서 함께 하셔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자신을 즐거이(자진해서) 드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