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지상강단]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들 (2)

행복자 2019. 6. 3. 08:58

[지상강단]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들 (2)


                                                                                                                                     - 하워드 반즈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 3:22-23).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 종(노예)들의 행실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그리스도인 종들은 자신들이 행한 바에 대해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억지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종들은 통상적으로 자원해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종들에게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크게 변화시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23절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고 말합니다. 그 당시 종(노예)들은 마지못해 억지로 일했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마음을 다해 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일한 대가는 주인에게만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인 종(노예)들은 매우 다르게 행동할 것입니다. 그는 이 땅의 주인을 위해 마지못해 억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하늘에 있는 주인을 위해 마음을 다해 일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24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실로 우리는 하늘에서 상을 받을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미가야를 생각나게 합니다(왕상 22:8-28). 그는 여호사밧만을 신실하게 섬긴 게 아닙니다. 그는 주께 하듯 여호사밧을 섬겼습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터에서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여기에 매우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의 삶이 한편으로는 완전히 세상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영적이라고 말합니다. 일터가 있고 교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다른 것을 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이해할 때, 그것은 동일한 것의 두 가지 모습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일터에서 우리의 삶이 크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주께 하듯 한다면 이 땅의 주인도 곧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한 고용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약삭빠른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선한 고용인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볼 때마다 학교 성적표가 생각납니다. 우리는 매학기가 끝날 때 부모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성적표를 가지고 집에 갔습니다. 저 역시 학교 다닐 때 성적표가 있었습니다. 그 성적표에는 과목이 적혀 있고, 다음 칸에 내가 딴 점수가 기록되어 있었으며, 이는 내가 노력한 수고가 기록된 것입니다. 두 번째 칸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의 첫 번째 칸은 지성이나 건강 상태  등이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것들은 출생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삶의 두 번째 칸에는 수고한 것들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며, 이것들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을 위해 수고했다면 그것은 어떠한 선한 증거가 될는지요! 주인도 우리가 선한 그리스도인임을 알게 됩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예비하는 것에 관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 로마서 12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구약의 예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원칙을 보았습니다. 이제 로마서 12장으로 와서 1절부터 8절까지를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1장에서 교훈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구원과 민족의 구원에 대해 놀랍게 다루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의 정점은 11장 33절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권하는 근거로서 이 모든 지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자원해서 행하되 지혜롭게 행하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 그들은 배우게 됩니다. 사도는 그들에게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 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는 로마서 6장에서도 동일하게 말했습니다. 6장은 침례에 관한 가르침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권합니다. "너희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라"(13절).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19절). 여기서 "드리라"는 단어는 12장의 "너희 몸을 드리라"와 정확히 같은 단어입니다. 6장에서 바울은 침례에 근거해서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 안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오직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몸의 지체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의의 병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12장의 권하는 말씀에 이르게 됩니다. 바울은 여기서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생각할 때마다 이같은 권면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께 나 자신을 진정으로 드리지 않고 있구나.' 우리가 이러한 위대한 하나님의 자비를 깨달을 때, 우리는 그에 반응하기를 원합니다. 한나와 같이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리기를 원합니다. 레위인들의 평생은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리는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육체적인 섬김으로 수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육체적인 섬김이 영적인 섬김으로 높여졌습니다. 그것은 산 제사였습니다. 산 제사로 드려지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거룩해야 합니다. 제물로 드려지기 위해서 내 자신을 구별해야 합니다. 레위인에 대한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은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입니다."거룩"이란 단어는 단순하게 하나님께로 분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내가 이 영적인 고귀함에 이르는 삶을 살 경우, 그리고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릴 경우, 내 삶은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될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의미입니다. 곧 두 번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드림에서 기쁨을 얻으십니다. 세 번째는, 우리의 영적 예배입니다. 여기서 "영적"이란 단어는 매우 폭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논리적인", "이성적인", "지혜로운'" "합당한" 을 의미하기도 합니다.여기서 우리는 즐거이 자신을 드리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드림은 영적인 이성(理性)의 정점이 됩니다. 이것은 감정적인 한 순간이 아닙니다. 일생(一生)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에베소서 2장의 시작 부분을 읽으면  우리가 이전에 이 세대를 본받던 자들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구원받기 전에 이러한 것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영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세대를 본 받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본받다"라는 단어는 "외적으로 이 세상과 같은 모양으로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본받지 않는 것은 이 세대의 지나가는 유행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동일한 가게에서 옷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옷을 고를 때 우리의 삶의 방식을 따라 분별해서 고릅니다. 우리는 외적으로 이 세대를 본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외적인 것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내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기에 한 번에 끝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할 행동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 마음의 내적인 변화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은 여러 면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녀와 수도승을 보십시오. 그들은 세상 사람들 누구와도 같지 않게 보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변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 핵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관한 교제에서 우리의 삶의 목적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내 몸을 드리는 것은 이 세대를 볻받지 않는 것이며, 그리고 그 결과 나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체험적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각자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원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잠깐 은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4절은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은사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이 구절이 약속하는 바는 우리가 사도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체험적으로 분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역시 세 가지를 말해줍니다. 먼저 그것은 선합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나온 것 중에 나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경우, 그 아래 있음으로 인해 선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1절에서 동일한 단어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몸을 산 제사로 드릴 때 큰 기쁨을 얻으십니다. 그분의 선하신 뜻을 행하는 나에게서 기쁨을 얻으시는 분은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민수기 8장에서 섬김을 위해 예비되는 것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무엇이 섬김인가에 대해서는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매우 상세하게 모두 명시되어 있습니다. 곧 레위인들이 무엇을 운반하며,  운반하기 위하여 무엇을 덮어야 하는지 등입니다. 이 원리를 그리스도인 개인에게 적용한다면, 우리는 모두 개인적으로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은사는 각자가 서로 다릅니다. 우리는 몸 안에서 다른 기능을 발휘합니다. 찬송가 중에서 "예수님을 위해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네" 라는 곡을 아실 것입니다. 그 진리가 3,4절에 나옵니다.

   "내게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 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몸의 각 지체는 개별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몸은 단체적으로 기능을 발휘합니다. 예를 들면, 6절에서 우리는 다른 은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신약성경에서 처음으로 은사의 목록이 여기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시적으로 존재했던 은사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언이 맨 처음에 나옵니다. 그리고 나머지 은사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지금의 관점에서 주시해야 할 요점은 그 은사가 주님께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린 자에게 알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1절과 12절처럼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며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