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 매일의 양식 - 7월 11일
기도 - 매일의 양식 - 7월 11일
예레미야 33장 1-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이것은 기도의 본이라기보다는 기도를 격려해주는 내용입니다. 혹시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결국,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갇혔습니다"(1절). 그런 다음 고난이 기도를 자극한다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경험하는 바입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시 120:1) 토마스 왓슨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괴로움은 기도의 영을 활기 띠게 합니다. 요나는 배 안에서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는 기도했습니다. ...어려움이 닥쳐오면 우리는 격정적으로 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때에는 이렇게 격정적으로 기도할 때처럼 뜨겁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에게는 그의 기도의 영을 타오르게 해줄 어떤 자극이 필요했던 듯합니다. 감옥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에서 끊어지지는 않았습니다!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3절)는 권함은 비길 데 없이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의 교제를 즐거워하심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의사소통의 폭발적인 증가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쉽게 서로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 결과로 자신들의 사생활을 끊임없이 침해받음에 대해 분노하는 경우도 잦아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이 올리는 기도 듣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모든 거짓 신들과 같이 바알은 아무리 불러도 접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신을 추종하는 자들이 큰 소리로 부르짖고 자해를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간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왕상 18:27). 반면에 여호와는 가장 단순하고 짧은 간구의 말을 해도 금방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분의 응답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절). 여기서 말하는 응답은 하나님이 자신을 또 자신의 길들을 나타내기 위해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시는 것과는 별로 연관성이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요셉과 같이 갑작스럽게 높아지거나 비참한 삶에서 풍족한 삶으로 향상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그는 점차적으로 자신의 하나님을 알아갔습니다. 번영 신학은 하나님께 물질적인 축복을 요구해야 한다는 불경스러운 주장을 펼칩니다. 하지만 그것은 좀과 동록이 해할 수 있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할 수 있는 부유함만을 추구하는 사상입니다. 우리는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을 어디서 얻나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즐거워하는 데서 그것을 얻습니다. 당신은 은혜 속에서 자라가고 싶나요? 그렇다면 반드시 기도생활에 힘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