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기쁜소식] 구원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행복자 2019. 8. 22. 08:58

[기쁜소식]

                                                구원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 허 윤욱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지금 한국의 기독교는 큰 위기에 빠졌다. 예수 믿어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찾아보는 것은 너무도 힘들고 예수를 믿는 사람, 즉 그리스도인 흉내 내는 사람으로 채워져 있다. 신앙은 예수님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나 베드로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는 것을 의미한다. 교적부에 이름 올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 열심히 노력하면서 죄를 안 짓고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기독교인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사람의 속에 있는 영혼이 새로 창조되어 변화되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참 그리스도인이다.

   진리는 단순하다. 적당한 것이 없다. 예수를 믿는 것은 그냥 좋은 사람 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전혀 잘못된 길로 가던 하나님의 원수였다가  하나님의 아들로 새로 창조되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삶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삶이었다. 이제는 전혀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창조된 것이다. 이것은 약간의 변화나 개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전혀 반대 모습으로  창조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가 이방인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이것은 새로운 피조물들로 채워진 기독교가 아니라는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지금 기독교인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 가는데 이것은 큰일이다. 존경 에 존경을 받아야 할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온갖 추태를 다 보여주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한 새로운 피조물은 그러한 모습이 아니다. 뭔가 잘못된 오늘의 기독교다. 기가 막힐 일이다. 이번에는 새로운 피조물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는 마귀의 자식들이 하나님의 자식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다.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형상을 닮아 존귀하게 만들어진 인간이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 사단의 종, 즉 사단의 자식이 된 것이다. 이것을 사단이 교묘하게 숨겨서 수 천 년 동안 내려왔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만천하에 드러내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니 이는 저희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주님은 "너희가 마귀 자식인 줄을 알고 있느냐" 하고 묻는다. 또 마태복음에서는 "독사의 새끼들아. 뱀들아" 하고 외치신 적도 있다(마 23:33). 사단이 교묘하게 사람들을 속여 사단의 자식인 것을 알지 못하게 하였으나 진리 되신 주님이 오셔서 사단의 정체를 드러내신 것이다. 주님은 사람이 사단의 자식임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셨다.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간들의 본질적인 죄와 현실적인 죄를 다 해결하셨다. 이제 우리는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변화되었다. 이것은 새로운 창조다. 마귀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지음 받은 것이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1).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10). 우리가 전에는 죽은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진노의 자식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창조된바 되었고, 선한 일을 위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피조물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것을 아는 것이 진정으로 예수 믿는 것이다.

   두 번째로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이 의인이 된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함은 죄인이 의인됨을 말한다. 이것은 신분과 성품으로 나뉘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 아래 있는 신분에서 죄를 다 용서 받은 의인이 된 것이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전혀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서 죽어야 할 불쌍한 처지에 살았지만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해 줄 힘이 없었다. 무슨 방법으로, 무슨 힘으로 죄에서 탈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해결하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창조 계획을 실현하는 발판이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가 아니면 하나님의 창조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얼마나 놀라운 선언인가. 얼마나 놀라운 사역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비참한 죄인,절망적인 죄인이 의인으로 창조되었다. 이것은 끝에서 끝으로 변화된 것이다. 완전한 절망의 신분에서 완전한 소망의 신분으로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또한 성품에서도 놀라운 창조가 이루어진 것이다 의인이라는 신분의 변화뿐만 아니라 신분에 걸맞은 성품도 창조된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돼지의 성품에서 양의 성품으로 변화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돼지는 깨끗하게 씻어주어도 도로 더러움에 들어가서 더러움을 더럽게 여기지 않고 산다. 그러나 양은 항상 깨끗한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더러움을 싫어하고 먹는 것도 순수하고 깨끗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 순수한 풀만 먹을 뿐만 아니라 풀에 기름기나 기타 오염된 것이 있으면 먹지 않는다. 그야말로 깨끗한 풀만 좋아한다. 더러운 돼지와는 반대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의인이 되면 악을 싫어하고 불의를 거절하는 성품으로 바뀐다. 이것은 성품의 창조다. 필자는 그러한 경우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어느 날 어떤 형제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가 구원 받기 전에 모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는데 여러 방법으로 돈을 훔쳤다고 하였다. 그런데 구원받고 보니 양심에 고통이 와서 돌려주려고 찾아가 보니 주인도 바뀌었고 바뀐 주인도 찾을 길이 없다고 상담해왔다. 필자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데 사용하면 좋겠다고 조언하였다. 그는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고 선한 일을 위하여 헌금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성품이 바뀐다. 인격이 바뀐다. 삶이 바뀐다. 의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죄용서 받아 구원받았으니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는 결심이나 각오에서 오는 현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변화다. 성령께서 찾아오심으로 새사람이 된 것이다. 찬송가 가사에서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 내가 늘 바라던 참 빛을 찾음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하는 고백이 있지 않은가. 이 변화는 성령께서 신자의 마음에 오셔서 일으키는 창조의 역사다. 미워하던 부모를 용서하고, 집을 나간 자식이 뉘우치고 돌아온다. 직장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챙기던 사람들이 부정을 중단한다. 그리고 그 일을 부끄러워하면서 평생을 산다. 진정한 거듭남이란 이런 것이며 구원받았다는 참뜻은 이런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가.

   필자가 보고 듣고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필자가 속한 교회들은 이러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이러한 삶이 성도들 모두에게 일상으로 있는 일이다. 특별한 사람 한두 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 그렇다고 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성도요 이것이 진정한 교회다. 필자는 이러한 간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평생을 둘러싸여 살고 있는 중이다. 연락해 보시라. 간단하고 보통으로 들을 수 있는 간증들이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무리이기 때문에 온 교회가 이러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야 하는 것이다. 필자가 속한 교회 멤버들은 이러한 간증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필자가 북아일랜드에 다녀온 성도에게서 들은 간증이다. 북아일랜드에는 필자가 속한 교회들로 거의 채워져 있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그가 말하기를 예배당을 짓기 위해 기초를 하고 양생하고 있는 곳을 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 교회는 어떻게 예배당을 짓는지 물어보니 정부에서 땅을 주고 예배당을 지어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00년쯤이나 되는 긴 세월에 조금씩 갚아나가는 것이 통례라고 하였다. 필자에게 그 이유가 무엇인지 들려주는데 필자는 마음이 떨렸다. 그곳에서는 교회는 청소년을 선도하는 곳으로 인정이 되어 있어서 청소년 선도의 재정을 여기에 투자한다고 하였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 믿음의 선배들에게 존경을 금할 수 없고 그 선배들과 우리를 변화시켜 새사람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렸다.
   필자는 호주의 타지매니아라는 곳을 가보았다. 남한만한 섬인데 그 섬에 사람이 풍선을 잡고 있듯이 매달려 연결된 자그마한 반도가 있다. 매달린 좁은 곳만 지키면 그 안에 있는 자들은 온전히 통제가 되는 곳이어서 그곳에 교도소를 만들었다. 지금은 교도소가 관광지가 되어 필자도 둘러보았다. 그곳에 세워진 교회 건물을 보았는데 뼈대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영국 본토에서 교도소에 선교단을 보내는데 국교인 성공회를 보내지 않고 플리머쓰 형제단이라고 하는 거듭난 무리들의 교회를 보냈다고 한다. 왜냐하면 죄수들을 변화시키는 데는 저들 밖에 대책이 없다는 것이 정부의 변이었다. 지금부터 50여년 전까지 그 섬에는 아무 종파도 없이 이들만 각 도시에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누가 이 일을 행하셨을까? 하나님 아버지시다. 그분이 이 모든 일을 창조하셨다. 그분이 창조한 자기의 자녀들을 통해서 그 일들을 이루신 것이다. 구원은 악하고 더러운 죄수들이 새사람으로 창조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를 향하여 분명하게 외친다. 오늘의 이 썩은 한국 기독교의 모습은 성경과 전혀 관계가 없다. 하나님과도 관계가 없다. 다른 종교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종교적 노력을 버리고 참 신앙의 길로 가자. 오직 하나님이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한 그 신앙인으로 한국의 기독교가 채워지기를 바란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계신 그리스도" 라고 외쳤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아직도 기복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종교적 열심을 강조하되 거듭난 경험도 없이,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이 성경대로 살아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 번뇌의 길에서 고통하고 있다. 이 고통을 언제까지 이어갈 것인가. 그러니까 죄인의 신분과 인격을 가지고 의인의 흉내를 내려니까 잘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 결과는 기독교가 세상에서 비난 받는 것으로 돌아오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힘들게 오르막을 오르는 것이 종교라고 한다면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을 신앙이라고 할 것이다. 자전거는 사람 힘으로 가지만 자동차는 자동차의 힘으로 간다. 하나님이 창조한 그리스도인은 자동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다. 우리가 주님이라는 자동차를 타고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주님이라는 자동차에 성령이라는 운전자가 운전하니 우리는 그냥 타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예전에 주일학교 찬송가에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갑니다. 뽕뽕" 하는 찬송이 있었다. 적절한 찬송이다. 우리의 노력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열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러한 삶이 없다. 아무 종교에도 이러한 교리는 없다. 모든 종교는 열심을 강조하고 선행을 강조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을 강조한다. 자동차에 믿음으로 올라타고 있으면 목적지에 가는 것처럼 오직 믿음으로만 천국에 가는 것이요 믿음으로만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새사람, 새로운 피조물 된 그리스도인의 참 삶이다. 하나님에 의해서 새롭게 창조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고 싶지 아니한가.
  새 집을 짓는데 기초부터 닦아야 한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데 기초는 무엇인가. 주님의 십자가 사역이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의 모든 죄를 한 순간에 다 청산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새사람이 되는 기초다. 우리는 자신을 알지 않는가. 얼마나 더럽고 악한가. 그런데 그분이 나를 위해 죽음으로 나를 지옥에서 건져주셨다. 그 은혜를 양심으로 깨달아 은혜를 갚고 싶어서 갚아나가는 삶 이것이 구원이다. 평생 그 은혜 잊지 못하여 눈물 흘리며 감사하고 보답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다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어 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곳에는 새롭게 창조된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