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소식] 구원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기쁜소식]
구원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 허 윤욱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지금 한국의 기독교는 큰 위기에 빠졌다. 예수 믿어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찾아보는 것은 너무도 힘들고 예수를 믿는 사람, 즉 그리스도인 흉내 내는 사람으로 채워져 있다. 신앙은 예수님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나 베드로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는 것을 의미한다. 교적부에 이름 올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 열심히 노력하면서 죄를 안 짓고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기독교인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사람의 속에 있는 영혼이 새로 창조되어 변화되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참 그리스도인이다.
진리는 단순하다. 적당한 것이 없다. 예수를 믿는 것은 그냥 좋은 사람 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전혀 잘못된 길로 가던 하나님의 원수였다가 하나님의 아들로 새로 창조되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삶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삶이었다. 이제는 전혀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창조된 것이다. 이것은 약간의 변화나 개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전혀 반대 모습으로 창조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가 이방인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이것은 새로운 피조물들로 채워진 기독교가 아니라는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지금 기독교인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 가는데 이것은 큰일이다. 존경 에 존경을 받아야 할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온갖 추태를 다 보여주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한 새로운 피조물은 그러한 모습이 아니다. 뭔가 잘못된 오늘의 기독교다. 기가 막힐 일이다. 이번에는 새로운 피조물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는 마귀의 자식들이 하나님의 자식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다.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형상을 닮아 존귀하게 만들어진 인간이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 사단의 종, 즉 사단의 자식이 된 것이다. 이것을 사단이 교묘하게 숨겨서 수 천 년 동안 내려왔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만천하에 드러내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니 이는 저희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주님은 "너희가 마귀 자식인 줄을 알고 있느냐" 하고 묻는다. 또 마태복음에서는 "독사의 새끼들아. 뱀들아" 하고 외치신 적도 있다(마 23:33). 사단이 교묘하게 사람들을 속여 사단의 자식인 것을 알지 못하게 하였으나 진리 되신 주님이 오셔서 사단의 정체를 드러내신 것이다. 주님은 사람이 사단의 자식임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셨다.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간들의 본질적인 죄와 현실적인 죄를 다 해결하셨다. 이제 우리는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변화되었다. 이것은 새로운 창조다. 마귀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지음 받은 것이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1).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10). 우리가 전에는 죽은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진노의 자식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창조된바 되었고, 선한 일을 위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피조물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것을 아는 것이 진정으로 예수 믿는 것이다.
두 번째로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이 의인이 된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함은 죄인이 의인됨을 말한다. 이것은 신분과 성품으로 나뉘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 아래 있는 신분에서 죄를 다 용서 받은 의인이 된 것이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전혀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서 죽어야 할 불쌍한 처지에 살았지만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해 줄 힘이 없었다. 무슨 방법으로, 무슨 힘으로 죄에서 탈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해결하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창조 계획을 실현하는 발판이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가 아니면 하나님의 창조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얼마나 놀라운 선언인가. 얼마나 놀라운 사역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비참한 죄인,절망적인 죄인이 의인으로 창조되었다. 이것은 끝에서 끝으로 변화된 것이다. 완전한 절망의 신분에서 완전한 소망의 신분으로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또한 성품에서도 놀라운 창조가 이루어진 것이다 의인이라는 신분의 변화뿐만 아니라 신분에 걸맞은 성품도 창조된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돼지의 성품에서 양의 성품으로 변화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돼지는 깨끗하게 씻어주어도 도로 더러움에 들어가서 더러움을 더럽게 여기지 않고 산다. 그러나 양은 항상 깨끗한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더러움을 싫어하고 먹는 것도 순수하고 깨끗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 순수한 풀만 먹을 뿐만 아니라 풀에 기름기나 기타 오염된 것이 있으면 먹지 않는다. 그야말로 깨끗한 풀만 좋아한다. 더러운 돼지와는 반대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의인이 되면 악을 싫어하고 불의를 거절하는 성품으로 바뀐다. 이것은 성품의 창조다. 필자는 그러한 경우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어느 날 어떤 형제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가 구원 받기 전에 모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는데 여러 방법으로 돈을 훔쳤다고 하였다. 그런데 구원받고 보니 양심에 고통이 와서 돌려주려고 찾아가 보니 주인도 바뀌었고 바뀐 주인도 찾을 길이 없다고 상담해왔다. 필자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데 사용하면 좋겠다고 조언하였다. 그는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고 선한 일을 위하여 헌금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성품이 바뀐다. 인격이 바뀐다. 삶이 바뀐다. 의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죄용서 받아 구원받았으니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는 결심이나 각오에서 오는 현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변화다. 성령께서 찾아오심으로 새사람이 된 것이다. 찬송가 가사에서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 내가 늘 바라던 참 빛을 찾음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하는 고백이 있지 않은가. 이 변화는 성령께서 신자의 마음에 오셔서 일으키는 창조의 역사다. 미워하던 부모를 용서하고, 집을 나간 자식이 뉘우치고 돌아온다. 직장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챙기던 사람들이 부정을 중단한다. 그리고 그 일을 부끄러워하면서 평생을 산다. 진정한 거듭남이란 이런 것이며 구원받았다는 참뜻은 이런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가.
필자가 보고 듣고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필자가 속한 교회들은 이러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이러한 삶이 성도들 모두에게 일상으로 있는 일이다. 특별한 사람 한두 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 그렇다고 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성도요 이것이 진정한 교회다. 필자는 이러한 간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평생을 둘러싸여 살고 있는 중이다. 연락해 보시라. 간단하고 보통으로 들을 수 있는 간증들이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무리이기 때문에 온 교회가 이러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야 하는 것이다. 필자가 속한 교회 멤버들은 이러한 간증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