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기념] 아벨의 받음직한 제사
[예배와 기념]
아벨의 받음직한 제사
-다니엘 스미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창 4: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히 11:4).
아벨의 간증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하나님이 받으셨다고 선언된 첫 증거이기 때문이다. 아벨이 드린 피의 제사는 주님의 십자가를 가리킨다. 복음의 핵심은 아벨의 짧은 생애, 즉 그가 아직 젊고 미혼으로 죽은 데 있다.
두 제사
가인과 아벨 둘 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창 4:3,4). 사도 요한은 가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요일 3:12). 가인은 최초의 가정에서 장남이었다. 그는 틀림없이 부모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 후 무죄한 피로 다른 사람이 의롭게 되는 제사로 가죽옷을 입었다. 가인은 하나님께 나아갔다. 즉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조롱할 자가 아니다. 그도 단을 쌓았다. 제물을 준비해왔다. 아벨과 똑같이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지하신 눈은 차이를 구분해내셨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창 4:4,5). 가인이 하나님 앞에 나온 것은 선하게 보인다. 그는 선한 증거인 제물을 갖고 왔다. 그에게는 진지함도 있었고 헌신도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심히 분해"하거나 "안색이 변하지" (창 4:5).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믿음"이었다. 그는 자기 의를 가진 예배자였다. 하나님이 그의 가면을 벗기자 그가 "악한 자"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정하시고 이를 아담과 하와에게 분명하게 알려주셨다. 그러나 가인은 자신이 다른 방법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게 인간의 존엄에 더 합당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보다 자신의 이성을 따랐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에게 요구하신, 분명하게 계시한 뜻을 어겼다.
사람의 마음은 악해서 하나님께 경배들이는 것을 항상 거부한다. 우리 예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진지함이나 헌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에 믿음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예배를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점에서 속고 있다.
믿음과 불신은 둘 다 사전에 교훈을 받았다. 아벨은 그가 받은 교훈을 존중히 여긴 반면, 가인은 교만하게도 이를 거부했다. 그들의 부모가 입은 가죽옷이, 죄인이 어떻게 하면 구원받고 의로 간주될 수 있는지를 매일 교훈하고 증거했다. 그러나 가인은 죄를 시인하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그는 죄에 대한 제물을 거부했다. 이는 그 본이 되는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진리를 짓밟았다. 자신의 곤고함과 필요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렸다. 이는 그가 창조주의 은혜를 인정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자신의 죄를 시인하거나 구주의 사랑을 인식하지는 못했음을 암시한다. 그와 반대로 아벨은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고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계획을 통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를 구했다. 경건한 믿음을 따라 행동하는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과 그 영광에 대한 헌신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가져갔다. 이는 오실 구속자 즉 하나님의 어린 양의 제사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가리키는 제사였다. 아벨의 믿음은 이같은 소망에 근거했다. 이는 자기 부인의 행위이다. 그리고 그는 그가 추구한 은혜를 발견했다.
아벨의 더 나은 제사
아벨의 제사는 "더 나은 제사"라 불리운다. 그같은 제사로 그는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다." 아마 그가 드린 제사를, 솔로몬과 엘리야의 제사처럼, 하늘에서 불이 내려 태웠을 것이다. 고대에 하나님은 그같은 방식으로 제물을 받으셨음을 증거하셨기 때문이다. 아벨은 그렇게 해서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 "자기 의"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그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없이 사람은 의로울 수 없다. 의를 얻는 첫 요소는 주 예수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의 의가 되는 것은 우리 믿음의 행동, 즉 사람의 행위가 아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는 구주의 희생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행위이다.
가장 사랑스러운 주님을 "더 나은 제사"로 보아야 한다. 우리 양심에 평안을 주는 것은 이것뿐이다. 아벨은 죽었으나 말한다. 그렇다면 아벨의 음성을 듣고 더 나은 제사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자.
놀랍고 거룩하고 신비한
측량할 수 없는 희생이여
십자가의 사랑이여
죄인을 대신해 저주를 받으시니... .
죽으실 때 주님의 영혼이 부르짖으니
슬픔과 사랑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같이 상하시고 홀로이신 구주여... .
어떻게 주님께서 벌레처럼 밟히시고
죽음에 떨어지시니
진노의 폭풍이
사랑의 구주에 떨어지다니
주님의 호소가
무서운 십자가에서 나오니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가장 복되신 주님이 우릴 위해 버림받으시니
주님은 지금도 그 상처를 지니시네.
우리 변호자의 상징이신
주님의 이 사랑 앞에 우리는 떨며
못 박힌 발아래 경배하네.
주 상처는 말하네.
주 영혼이 부르짖은 소리가 메아리치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주 예수는 우리 영광이며 우리 전부이네.
- 프랭크 알라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