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 매일의 양식 - 9월 9일
기도 - 매일의 양식 - 9월 9일
누가복음 22장 39-46절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주님은 언제나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는 자신의 기도에 간절함이 부족할 때가 많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기도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여기서도 그러했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44절). 따라서 다시 한 번 우리는 간절히 기도하신 주님을 응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기묘한 감정들이 혼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결합하여 격렬함이 고조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람과 근심과 두려움 속에서 앞날을 내다보시는 주님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합해져서 "힘쓰고 애써" 라는 묘사가 사용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 모두에 해당되었습니다. 피곤함, 땀, 기도 이 모든 것이 놀랍게 두드러졌습니다.
주목할 만하게도, 바로 이 동산은 성경에서 땀이 언급되는 첫 번째 구절의 배경입니다. 첫 사람의 경우 그는 사실상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뜻이 아니라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이같은 거역의 결과들을 우리는 지금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현시대의 표어 역시 유사한 표현들입니다. 이제, 겟세마네 동산의 감람나무들 속에 한 완전한 사람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분은 철저한 순종을 가지고 하늘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42절). 이 순종이 어떠한 결과들을 가져왔는지를 세상은 아직 다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극심한 괴로움을 느끼셨습니다. 그분이 겪은 갈등은 실제적이었습니다. 이는 죄 없는 분이 죄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거룩하신 분이 죄로 인해 내려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깊이 생각할 때 주님의 마음에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완벽한 감정을 지니셨던 주님도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철저한 순종과 절대적인 복종을 행하셨습니다. 주님은 왜 맹렬한 갈등을 겪으셔야 했나요? 그것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지니고 계신 감정을 기쁘게 해주어야 할지와 하나님의 구속의 뜻을 성취할지의 사이에서 갈등하셨기 때문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주님은 충동적으로 행동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의식적인 순종 가운데 의도적으로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셨습니다. 이러한 선택에 대하여 우리는 영원히 감사를 드립니다. 그 선택 때문에 그분은 형용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축복들을 선사했습니다. 그런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뜻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역시 갈등을 겪을 수 있습니다. 비록 중대함 면에서는 주님의 경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찮은 문제이겠지만 원리는 동일합니다. 우리 구주의 승리를 보면서 격려를 얻어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향해 전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