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기념] 우리의 방패와 상급
[예배와 기념]
우리의 방패와 상급
- 다니엘 스미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진정 아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축복이다. 창세기 13장에서 아브람은 (그때까지 그의 이름임) 롯괴 헤어졌다. 롯은 소돔을 향해 나아갔고, 그 무법도시에 거함으로 그는 고통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러나 아브람은 마므레, 즉 생명력을 의미하는 곳에 머문다. 이는 헤브론에 있는 장소이다. 헤브론은 교제를 의미한다. 이 이름은 아브람의 영적 활력을 상징하며 그를 지지해줄 동맹한 무장 가족의 힘을 말해준다. 그는 네 왕과 다섯 왕의 전쟁(창 14:9-16) 의 결과 포로가 된 롯을 구출할 수 있었다.
롯을 구출한 후 아브람은 멜기세덱을 만났다. 그는 왕이자 제사장이며 이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서 빵과 포도주를 받아 힘을 얻고 활력을 되찾는다. 이는 우리 주님의 거룩한 기념잔치를 가리킨다. 멜기세덱의 축복으로 아브람은 소돔 왕에게서 아무 것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이 악한 왕의 의도, 즉 사람을 물건과 교환하려는 의도를 분별해낼 만한 지혜가 있었다. 그가 소돔 왕에게 한 대답을 보면, 그에게는 위엄과 지혜가 가득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일 후에." 하나님은 은혜롭게도 아브람에게 미래에 대해 어떤 걱정도 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그리고 하나님은 왜 그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지 그 이유를 말씀하셨다.
그의 방패가 되는 하나님
방패는 적대적인 힘을 방어하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의 종인 아브람에게 이같은 방패가 되신다. 적은 여전히 그 땅에 있다. 엘람의 강한 왕은 죽지도 않았고 적대성을 그치지도 않았다. 아브람은 여전히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전쟁의 파도는 다시 몰아칠 수 있다. 아브람의 군대는 318명으로 작은 숫자다. 적은 다시 나타나 상처를 주고 포로로 잡아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아브람의 방패가 되어주실 것이다. 이는 그의 안전을 보장하는 말씀이다.
우리에게 이 교훈은 분명하다. 신자로서 우리는 적대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사단의 손은 수백만 신자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다. 그는 미움의 화신이며 "처음부터 살인한 자다" (요 8:44). 그는 사람을 종으로 삼고, 반역하게 해서 비참하게 만든다. 그의 전략은 미묘하다. 그의 공격은 능숙하고 화살은 불같고 잔인하다. 그는 모든 사람을 공격한다. 가장 어린아이에서 가장 약한 노인에까지.
그러나 주 예수님은 우리의 방패이자 방어자이다. 어떤 힘도 주님을 이길 수 없다. 주님은 성도의 위로자시다. 주님은 자신의 직분을 사랑으로 수행하신다. 주님의 방패는 사랑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 뒤에 있으면 신자는 정말로 안전하다.
위대한 상급 이상이 되시는 하나님
아브람은 처음 부름 받을 때 자기 나라, 우상을 숭배하는 친척을 떠나도록 부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잃어버린 자가 아니었다. 롯을 구출할 때, 소돔 왕은 왕의 보물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같은 유혹적인 제안에 대해 아브람은 고귀하게 대답했다. "물품도 당신이 취하십시오." 믿음의 길에서 모든 포기는 부가 되고 모든 손실은 이익이 된다.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 문장에서 강조된 단어는 "나" 이다. 이때 아브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단 한 뼘의 땅도 소유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땅 이상이었다. 하나님 자신이 그의 소유와 기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나안은 이브람에게 준 선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은 그의 상이었다.즉 하나님의 백성의 기업이다. 하나님의 모든 위대함, 위엄, 우월함, 탁월함, 영광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나타났다.
미신, 우상, 악의 세상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특권이다. 이는 믿음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아닌가! 세상의 허영, 그 공허한 외관, 추한 즐거움, 거북한 재치, 거기에 담긴 원리 등은 무엇인가? 이를 주님의 소유와 비교하면 그같은 허영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땅에 있는 모든 것은 땅에 속했으며, 이는 사라진다. 창고가 곡식으로 가득차고, 마굿간에 짐승들이 가득하며 집은 화려한 것으로 가득하고 은행잔고가 엄청나도 이게 가장 복되신 하나님과 비교할 때 얼마나 무가치한가!
"지극히 커다란 상급" 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분은 모든 믿는 자의 기업이다. 심지어 아브라함도 그분의 때를 보고 즐거워했다(요 8:56). 우리를 대신해 죽고 저주를 받으시고 의를 이루신 주님을 소유한다는 것은 충분한 상이며 우리의 이해를 훨씬 뛰어넘는 상이다. 주님이 받은 저주는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속하기 위한 것이다. 주님이 흘린 피는 우리 영혼을 눈보다 희게 씼었다. 주님의 의는 우리가 하나님의 면전에 흠 없이 서도록 우리 것이 되었다. 주님의 생명은 우리가 영원히 살도록 우리 것이 되었다. 주님의 하늘이 우리가 영원의 끝없는 세대 동안 주님과 함께 있도록 우리 것이 되었다.
아버지여! 당신의 영원한 능력,
당신의 은혜, 당신의 위엄,
당신의 영광을
이 연약한,
죽을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어찌 알 수 있으리요.
그러나 당신의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구주를 본 자에게
자기 백성으로 부른 자에게
주가 계신 곳으로 순례하는 자에게
여기서 우리는 아들로
걸어가고 있으나, 은혜로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의 기쁨이며
당신의 밝은 얼굴빛에서
어떤 슬픔도 파괴 못할 안식을 찾네.
- J N 다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