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전도전략] 노인 전도, 존경심을 나타내라.

행복자 2019. 10. 22. 09:11

[전도전략]

                                                노인 전도,

                                  존경심을 나타내라.

                                                                                                         - 허 윤욱

   존경심을 나타내라.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 19:32).


   우리가 전도하는 전술을 연구하는 중에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성경의 권면을 듣는 것이며 성경의 모델을 사용하는 것이다. 노인 전도에 있어서 서두에 인용한 레위기 말씀은 참으로 좋은 권면임에 틀림없다. 노인에게 전도함에 전도자의 이와 같은 태도는 노인을 감동시키리라 여겨진다. 감동까진 아니라도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전도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노인 전도에 있어서는 전도자의 공손한 태도가 큰 역할을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호에는 노인 전도에 존경심을 나타내라는 주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존경심에 약하다. 존경하는 모습을 나타내는데 싫어할 사람이 있겠는가. 아무도 없다. 사람의 깊은 곳에는 명예욕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존경의 태도를 나타내면 긍정적 반응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전도자가 일반적인 사람의 심리를 잘 읽어야 할 필요를 말하는 것이다. 전도가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로 말미암지만 또한 우리의 기도와 노력과 지혜가 필요함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필자는 중년 이상의 전도에서 이 부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람이 중년을 넘어서면 더욱 명예욕이 강하게 일어나는 시기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늙어 가면 늙어갈수록 명예욕은 더 강하여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험악하게 하여서 전도가 될 리 없다. 그러므로 존경스런 언어로 상대를 즐겁게 하고 좋은 대화로 풀어나갈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사회적으로 별로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지 못한 사람들이 더 존경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존경스런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수많은 칭찬을 들어서 면역이 되어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심리상으로 더욱 존경스런 예절을 갖추면 감동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노인 전도는 그냥 모두를 극진히 존경스런 대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무방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점에 있어서 거의 습관화 되어있다. 어떤 특징을 찾아서 존경의  뜻으로 칭찬하며 접근하면 상당히 좋은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녀들을 잘 키워서 자녀들이 착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존경심을 나타내면 대부분 참 기뻐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이 자식을 키워서 세상에 내어 놓는 것을 농사와 같다고 통상 이야기한다. 그래서 자식 농사라 하지 아니한가. 그런데 성도들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성도자녀를 칭찬하며 잘 키우셨다고 존경을 표하면 마음이 평안하고 즐거워지는 것이다. 강퍅했던 마음이 녹아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사업이나 기타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도 그에 걸 맞게 존경의 표를 나타내는 것은 참 좋은 전도 방법이다. 또 예술을 하거나 기타 만드는 일을 하는 이들에게 그에 맞는 존경을 나타냄은 아주 좋은 방법이다. 오래 직장생활을 하신 분들도 그에 맞는 존경을 나타냄이 좋은 것이다. 필자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만약 이웃집 노인들을 사귀어 전도하려 한다면 필자보다 훨씬 큰 효과를 나타낼 것이 분명하다. 필자는 대부분 전도를 목적으로 대화하면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웃집 노인을 전도 목적으로 사귀려 할 때 그냥 이웃집 사람으로 편안하게 접근 하면서 나타내는 존경은 엄청난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웃을 사귀어 전도할 때는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말고 충분한 사귐으로만 진행함이 좋다. 그냥 인간적으로 사귐에 상대를 존경하는 좋은 표현으로 접근하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필자가 전도의 목적으로 만나서 존경의 표를 하면 덕담 정도로 알지만 그래도 마음이 좋아지는데 그냥 사귐에 존경의 표는 대단한 효과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둘째로 노인전도의 존경 표현은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시대의 노인들은 우리시대의 어른들 아닌가. 저들은 연세로 보아도 존경을 받아야 할 사람들인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한국에 이루어진 현실의 역사는 노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지 아니한가. 당연히 노인들은 존경받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그냥하는 빈말이 아니다. 전도자는 정말 중심으로부터 시대의 노인들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빚진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인 누림이나 환경적인 누림이나 국가의 평안은 다 저들의 삶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단순히 말하자면 6.25전쟁에서 피 흘려 나라를 지키지 않았으면 어찌 우리가 이렇게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전도자는 사회적 상황을 통하여 이러한 마음을 실제로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마음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러한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다. 저들이 오늘의 역사를 만들어서 우리가 누리고 살며, 우리도 또한 역사를 만드는 고생을 통해서 후세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필자는 월남전에 참여한 노인들을 만날 때마다 존경심을 표현하면 저들이 크게 좋아 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오고 있다. 월남전에 참여하여 벌어들인 돈으로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아니던가. 세상은 저들을 알아주지 않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저들을 만날 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 당연하지 아니한가. 전도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개발하여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표하며 덕을 끼치며 위로하는 멋쟁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남을 존경하려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것이 세상의 풍조다. 남을 짓밟고 내가 올라가지 못하여 안달하는 것이 세상이다. 이해관계가 없으면 거의 남을 높이지 않는다. 그러한 세상에서 남을 높여주는 언어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전도자는 겸손하여야 한다. 사람들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인격적으로 세상의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는 습성이 있어야 한다. 그럴 때에 존경의 언어가 발설되고 그것이 전도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나무를 심는 할아버지와 열매를 따먹는 손자가 있지 아니한가. 존경하고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따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로 존경을 표할 때 작은 것도 크게 이야기하면 좋다. 무엇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 만든 것을 대단히 칭찬하며 "나는 그런 재능이 없는데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열심히 연구하여 대단한 작품을 만드시니 존경스럽습니다."이러한 표현들은 겸손한 표현이며 상대의 마음을 열게하는 존경의 언어들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존경할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크게 말하고 존경스럽게 이야기하면 존경스러워지는 것이다. "아이들 7남매를 이렇게 잘 키우시다니요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예수님에게도 그러한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누가복음에 중풍병자를 지붕을 뚫고 달아 내린 사람들에 대하여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란 말속에 저들의 믿음과 열정을 칭찬하고 존경스럽게 표현해 주신 것으로 여겨지지 아니한가(눅 5:17-26). 사실 저들의 행위는 존경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막혀 들어갈 수 없었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지붕을 뚫고 온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필자가 열정적으로 전도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존경심이 드는 심정과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또 다른 경우도 볼 수 있다 마가복음에 예수님 앞에 나온 청년의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고 칭찬하신 내용이다. 그의 믿음과 지혜를 칭찬하시는 존경적인 의미의 말씀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막 12:34).

   주님도 자기 앞에 나오는 사람의 좋은 점을 지적하여 칭찬을 하셨다면 우리도 또한 그래야 할 것이다. 대화중에 적당한 말을 인용하여 격려, 칭찬, 존경을 표하면 아주 좋은 분위기에서 교제 할 수 있는 것이다. 젊은이나 장년도 그러할진대 노인들은 더욱 그러하다. 오래전 필자는 전주에서 대장장이 장인을 만나서 존경의 언어로 전도하여 좋은 열매를 맺은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노인의 경우 대화가 부드럽기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전도자가 젊은 경우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면 더욱 존경의 언어로 분위기를 잘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네 번째로 적당한 존경의 태도와 언어는 전도자를 겸손하고 인격적인 사람으로 보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실제로 전도자가 겸손해야 하지마는 겸손한 것과 상대에게 겸손하게 보이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전도자가 겸손함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잘못 사용하여 교만하게 보일수도 있는 것이다. 언어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전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통과하는 통로이기 때문에 전도자가 교만하게 보이면 자칫 겸손하고 온유한 주님을 잘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구도자는 주님보다 앞에 있는 전도자를 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존경스런 언어는 전도자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갖게하여 주님에 대하여도 호의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전도자가 좋아서 대화하다가 구원받은 사람들이 많다.

   만약에 앞에 있는 노인이 스스로 복음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는 존경받아야 하는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하여 귀를 막고 사는 패역한 세상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약간의 관심만 있어도 이는 대단한 것이다. 그러므로 칭찬과 존경받을 만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또한 원리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사람이 남을 높이고 존경하면 자신도 존경을 받게 되어있다. 주님도 "비판을 받지 아니 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말씀하셨다. 실제로 존경하면 존경받고, 남을 업신여기면 결국 업신여김을 받는다. 이것이 원리다. 그러므로 남을 높여서 우리가 높임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도자가 존경을 받으면 그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섯번째로 우리 앞에 있는 구도자들은 놀라운 가치가 있는 존경받아야 할 대상이다. 주님은 한 영혼의 가치를 천하와도 바꾸지 못한다고 하셨지 아니한가.

   "사람이 만일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분명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구약에서도 사람은 존귀하다고 하셨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같도다"(시 49:2).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유일한 생명체다. 어떤 생명도 인간과는 차별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면 존경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단의 노래갯감으로 전락했다. 죄를 지은 까닭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탕자가 비록 집을 나가서 천덕꾸러기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부잣집 막내아들인 것이다. 전도자는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죄인들이지만 그럼에도 저들이 존귀한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생명체에게 존경을 받아야 마땅한 것이 인간이다. 그러므로 전도자가 이것을 가슴에 새기고 인간을 만나야 한다. 본래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진 인간인지라 존경받고자 하는 본능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주님의 십자가는 무엇인가. 존귀한 인간의 생명을 건지기 위하여 치르신 희생 아니던가. 주님께서 자기 목숨을 주고 바꾸고자 했던 것이 인간의 생명이라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 그러므로 인간의 자그마한 좋은 점을 골라내서 구도자를 존경스럽게 말해도 되는 것이다. 저들이 감동할 것임에 틀림없디.

   전도자들은 최고의 세일즈맨이다. 구원은 최고의 상품이며 구도자들은 최고의 고객인 것이다.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깨닫고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최고와 최고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에 있는 노인 구도자들에게 최고의 고객처럼 여겨서 존경하는 예절을 표함으로 실제로 이름다은 전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존귀하다고 하셨다면 인간은 앞에 있는 구도자를 존귀하게 여기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할 이유가 충분하다.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존경의 태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인 것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비록 마귀에 의해서 망가졌지만 하나님이 가장 아름답고 존귀하게 창조한 인간을 사랑스런 마음으로 영접하여 전도하여야 할 것이다.

   못난 전도자로서 이러한 삶에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그래도 필자가 성경과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바가 이것이다. 전도자는 구도자 특히 노인들을 높여서 저들의 마음을 움직여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야 할 것이다. 여러분의 전도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며 이만 줄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