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초신자 양육] 그리스도인 생활의 이정표들(5)

행복자 2019. 12. 12. 09:01

 

[초신자 양육]

                                    그리스도인 생활의

                                          이정표(5)

                                                                                                                                                     - D. 힘튼


5. 주의 만찬


   지역교회의 일원이 되면서 우리는 특권들을 얻습니다. 그 중 하나는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러한 기념을 행할 때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경험에 있어서 확실한 이정표가 됩니다.

   주의 만찬은 매주 행해집니다. 사도행전 20장이 이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첫 번째로 그것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의 만찬이 지닌 목적은 무엇인가요? 이것은 두 가지의 목적을 갖습니다. 첫 번째로, 이것은 우리가 매주 주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게 해줍니다.

   우리는 매주 첫 날에 이 만찬을 행해야 합니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날에 그분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는 주의 만찬이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주의 만찬은 주님께 첫 번째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이며 섬김보다 우선합니다.

   이 만찬을 갖는 이유는 주님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고전 11:24). 그러므로 이 시간에 우리는 주님의 영원한 영광, 탄생, 생애, 죽음, 승천, 장차 얻으실 영광 등을 묵상합니다. 주의 만찬 때에 우리는 단지 그분의 죽으심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그것이 핵심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내용들을 묵상할 때 우리의 마음에서는 아들을 인하여 아버지께 찬양과 감사를 올리게 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히 13:1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5).

   우리는 이러한 주의 만찬이 시작되는 때부터 그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우리는 그 이전의 7일 동안 그분께 사로잡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감사의 제목들을 주십니다. 한편, 주의 만찬은 우리가 받은 축복들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때는 오직 주님을 높여드리는 시간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토요일 저녁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주일 오전의 예배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먼저 살피고, 그런 후에야 떡을 먹고 잔을 마시라는 권면을 받고 있습니다(고전 11:28). 이것은 교제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권면입니다. 즉 지역교회에 더해지기를 원하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권면이 갖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주님과 더불어 또 형제들과 더불어 먹기 전에 모든 문제를 확실히 바로잡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 자신과 주님은 하나됨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예한다"는 진리를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입니다(고전 10장). 반면에 만약 이러한 살핌을 정직하게 행한다면 우리의 삶속에서 악은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성도들이 주의 만찬을 행하기 위해 모일 때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엄숙함과 경건한 두려움의 자세를 지녀야만 합니다. 이는 우리가 응시하는 떡과 포도주가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것들이 단지 상징물들에 불과함을 주목해야 합니다. 즉 그것들은 절대로 육체로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우리 앞에 주님의 실제 몸과 피가 있는 듯 여기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참으로 엄숙해집니다. 또한 이 때문에 우리는 집중하여 오직 주의 만찬을 실행하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눈을 감는다면 그것은 마음을 주님께 집중시키는 데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마음이 흩어져 다른 신자들을 향하는 것이 차단됩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의 만찬은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드리기 위해서 나아오는 유일한 집회입니다. 이러한 드림에 형제들과 자매들은 똑같이 참여합니다. 또한 이것은 은사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때에 형제들은 소리를 내어 성도들을 인도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생각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성령님이 주시는 부담을 따라서 주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즉 그들은 주님을 향한 감사를 말하여 성도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표현합니다.

   주의 만찬은 우리가 성경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시간이 아닙니다. 또한 주의 만찬은 우리가 강사로서 얼마나 진보했는지를 나타내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때는 말씀집회의 시간이 아닙니다. 다만 적절한 구절들을 읽는 것은 우리의 경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는 순간을 맞이하는데 이것은 지극히 엄숙한 행위입니다. 떡은 주님이 베들레헴에서 가지고 태어나셨던 그분의 유일무이한 몸을 나타냅니다. 이 몸으로 주님은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죄 없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구름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 (눅 9:35). 또한 이 몸으로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그 몸으로 어떻게 사셨는지 그 가치를 더 알게 될수록 우리는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버리신 그 생명을 더욱더 가치 있게 여길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떡은 이러합니다.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고전 10:16). "참예함" 은 교제 혹은 동업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한 예로 야고보와 요한이 어업에 있어서 시몬과 동업자였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눅 5:10). 따라서 우리는 주님이 사셨던 삶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또한 죄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주님의 태도와 같아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 2:20)라는 진리입니다.

   다른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한 덩이의 떡을 떼면서 우리는 교제와 하나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런 다음 우리는 위선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느 신자와 계속해서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신자들에게 그릇되게 대한다면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가 장로들의 가르침을 무시한다면 그렇습니다.

   잔은 구주의 보배로운 피를 나타냅니다. 즉 그것은 그리스도의 뛰어나고 보배로운 피를 말해줍니다. 피는 우리 구속의 기초를 이룹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 1:7). 뿐만 아니라 피는 하나님의 모든 목적들이 성취될 수 있는 기초이기도 합니다. 이 사실을 더 알아갈수록 우리는 이 피를 더욱더 귀중히 여기게 됩니다. 그것은 더욱더 우리에게 주님께서 버려주신 생명의 상징물로 인식됩니다. 우리에게 잔은 이러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고전 10:16). 이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모든 축복들을 우리는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피 뿌림을 받은 백성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어디에서든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엄중한 경고를 받습니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출 24:8). 이렇게 하여 그 백성은 여호와와 언약 관계를 맺었습니다. 하지만 그 백성은 곧 그분을 떠났습니다. 그런 다음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이에 필연적으로 심판이 뒤 따랐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주의 만찬을 엉터리로 행했습니다. 이를 행할 때 그들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에게 심판이 임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고전 11:30).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하나님은 오늘날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심판하시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행하신다면 우리 중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주님은 여전히 형식적인 것과 그분의 말씀에 반하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따라서 그분의 축복을 부어주시지 않습니다.

   주의 만찬이 점점 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 모두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매주일 이 예식을 행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