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연구] 신랑의 친구 침례 요한의 생애 묵상(18)
[인물연구]
신랑의 친구
침례 요한의 생애 묵상(18)
- R. H. 샤익스
증거를 보여줌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 3:8-9).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눅 3:8-14).
"도끼가 제 역할을 해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날카로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잘라졌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많은 사람들의 양심이 일깨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을 알고 계셨습니다. 즉 어떤 이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다 아셨습니다. "이 전파자는 우리 모두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있어!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아주 특별한 백성인데!" 그들은 변명을 늘어놓으려 했습니다. 누가복음 14장 18절에서 보듯이 말입니다. "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만약 누군가가 변명거리들을 찾아내려 한다면 그는 최상의 것을 생각해낼 것입니다. 이 경우에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목소리가 그들의 생각을 중단시켰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너희들을 구원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아브라함은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참되신 하나님을 참되게 믿은 이였습니다. 그는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롬 4:20). 그래서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그의 후손들 모두가 믿는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닌 자들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9:7-8).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인간적인 방편을 통해서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 1:11-13). 아브라함의 후손들에는 유대인들(이삭을 통해서) 뿐 아니라 수많은 아랍인들도(이스마엘을 통해서)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그들에게(또 오늘날의 우리에게) 변명을 하지 말도록 경고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에게 동일하게 경고를 받았습니다. 예컨대, 이사야(사 48:1)와 예레미야(렘 7:8-15)에게 그러한 경고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바가 옳음을 인정하는 편이 훨씬 더 낫습니다. 또 하찮은 변명으로 자신의 죄를 가리려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더 낫습니다.
그런 다음 요한은 틀림없이 그들을 놀라게 했을 무언가를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요한은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을 했을까요? 이 진술을 그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했을까요? 그들은 다음의 구절을 확실하게 기억했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살아있는 혼이 된지라" (창 2:7). 그러므로 하나님은 돌들을 가지고 똑같은 일을 행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이 영적인 행위를 가리켰다고 생각합니다.
돌들은 죽은 것들이며 그것들은 우리 이방 민족들을 상징합니다. 에베소서 2장 11-13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즉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또한 1절은 그들이 허물과 죄로 죽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과 은혜로서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4,5,8절).
베드로는 주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산 돌들로 말합니다. 우리는 신령한 집인 교회로 지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벧전 2:5). 이 교회는 주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모든 자들을 포함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6-9절에서 우리는 이러한 구절을 대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 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를 통하여 열국(이방인들)이 복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3장 29절은 만약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되었다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참된 자손임을 말해줍니다.
누가복음 19장 40절에서 주 예수님은 돌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즉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잠잠하여 그분을 찬양하지 않는다면 돌들로 하여금 그분을 찬양하는 소리를 지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요한의 말에 담긴 생각이 이와 동일하다고 믿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의 메시야이신 주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기를 거절했습니다. 이에 구원받은 이방인들(산 돌들)이 대신 즐거운 노래를 불렀고 그분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이와 같은 결론을 말씀하실 때 주 예수님은 지극히 슬퍼하셨습니다(눅 19:41-44). 그분은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메시야이신 자신을 거절할 것을 내다보셨습니다. 그분은 예루살렘성이 완전히 무너질 미래의 그 두려운 심판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불신앙 탓에 심판을 받을 참으로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3장 28-29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인 까닭에 자신들이 하나님의 날 "안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들은 불신앙 때문에 "밖으로 쫓겨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쫓겨난 자들로 알았던 이방인들이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볼 것입니다,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하리니." 또한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서도 주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한 자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을 향해 "아버지여" 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잃어버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과 주 예수님이 우리에게 우리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확실히 하라고 경고하는 음성을 듣습니다. 공허한 신앙고백 만으로는 안 되고 주님에 대한 참되고 개인적인 신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위로부터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 3:3,7).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를 요구했습니다. 여기에는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이 포함되었습니다.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 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겔 18:30-32).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 55:7). 요한은 자신의 청중에게 이러한 구절들을 인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요구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의 내적인 변화를 외적으로 입증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의 청중이 어떤 종류의 사람들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일반 군중
여기저기서 어떤 사람들의 다음과 같은 물음이 터져 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정말로 회개했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보여줄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하여 요한은 명확하고 적절한 대답을 주었습니다. "올바르게 행하라. 그릇된 일을 중단하라."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눅 3:11). "제일 먼저, 다른 사람들은 가지지 못한 것을 너희가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나눠가지라. 형제는 입을 옷이 전혀 없는데 너희는 두 벌의 옷을 갖는 것이 옳은 일인가? 형제는 굶어죽어 가는데 너희는 날마다 값비싼 음식을 즐기는 것이 옳은 일인가?" 요한은 회개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의 변화를 궁핍한 이들과 소유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낸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에 대해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풍성한 것들을 나눠주어야 할 책임을 지닙니다. 회개하는 자들은 이기심과 자기관심사를 사랑으로 대체해야 합니다.
2. 세리들
세금 징수원들이 군중들 속에 끼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가장 커다란 미움을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때는 유대인들이 로마의 통치 하에 있던 시기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들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만 했습니다(마 22:17). 그것은 무거운 세금이었고 가이사의 황실 금고로 들어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와 같이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을 매우 끔찍한 일로 여겼습니다.
그 나라에 들어오거나 그 나라에서 나가는 상품들에도 관세 혹은 요금이 매겨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라 안에서 매매되는 상품들에도 세금이 매겨졌습니다. 이를 위해 세리들은 일정한 구역에서 이러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한을 가졌습니다. 이때 이러한 세금을 실제로 거두어들이는 일을 맡은 자들은 대체적으로 그 지역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요금 징수소 혹은 세관에서 그 일을 행했습니다.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마 9:9). 그는 자신의 상관에게 고정된 액수를 바쳐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만 한다면 사람들에게서 그가 원하는 만큼 더 징수하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율이 명확하지 않고 가변적이었기에 그는 자신의 동족에게서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곤 했습니다. 따라서 세리들은 탐욕과 가혹함과 거짓됨으로 유명했고 일반적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명성에 걸맞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에게 나아와 침례를 받고자 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회개의 진실됨을 입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이에 대한 요한의 대답은 신속하고 명확했습니다.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눅 3:13). 그는 단순히 사람들 속이기를 중단하라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그들은 사실상 사람들의 소유를 훔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속이기와 부정직은 참된 회개와 나란히 갈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뇌물 수수역시 일반적인 일이었지만 참된 회개자에게는 그런일이 허용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누가복음 19장 1-10절에 나오는 여리고의 한 세리장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는 요한의 증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듯합니다. 따라서 나중에 가서 주 예수님께서 자신의 성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이 세리장 삭개오는 그분을 보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싶은 열망을 품었습니다. 이에 그는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 이유는 지나가시는 그분을 더 잘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와 같이 그가 나무 위에 올라가 있음을 주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그의 마음속이 어떠한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삭개오는 몇 달 전에 자신이 들었던 요한의 말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회개했음을 주님께 보여드리고자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자 했고 다른 사람들의 소유를 속여서 빼앗은 일이 있다면 네 배를 갚아주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에게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3. 군병들
군병들의 마음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에 그들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 군인들은 회개의 증거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요한은 이들의 물음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세히 답변해 주었습니다.
첫 번째로, 군병들은 " 강포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강제로 타인의 돈을 빼앗지 말아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무장한 군인의 강탈 행위는 범죄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군대가 주둔한 가운데서 살아갈 때 이러한 일들은 흔히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총이나 칼을 잡은 손은 쉽게 탐욕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승리자가 전리품을 취할 수 있다는 변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즉 약자는 강자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군인들은 자신들의 주머니를 손쉽게 가득 채웁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단지 약자를 위협하고, 놀라게 하고, 겁을 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약자를 괴롭힐 수 있는 권한을 가져도 될까요? 이러한 탐욕과 이기심이 회개와 나란히 갈 수 있을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의 말은 명백하고 단순합니다. 그 일을 중단하십시오!
두 번째로, 군병들은 " 무소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누군가를 향해 그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하면서 고소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행위 역시 하나님의 율법을 직접적으로 불순종하는 행위였습니다. "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출 20:16) 그러나 거짓을 말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요? 더군다나 이렇게 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지 않나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때문에 부당하게 감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짓 고소는 심지어 높은 지위를 가진 이들을 향해서도 행해집니다. 주 예수님께서 바로 이러한 일을 겪으신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증거를 찾으매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마 26:59-60). 이렇게 해서 주님은 죄를 범하지 않으셨는데도 사형에 처해졌습니다(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사람은 이와 같은 거짓 고소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거짓말로 사람들을 어렵게 하는 대신에 그는 사람들을 어려움에서 건져내는 자가 됩니다.
세 번째로, 군병들은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는 임금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군병들은 그들의 봉사에 대해 음식과 돈으로 일정한 수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보편적인 수준으로 볼 때 이것은 적절한 임금일 수도 있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욕심과 시기심 때문에 쉽게 불만이 생긴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많은 군병들은 탐욕에 물든 채 더 많은 임금을 요구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심지어 때때로 폭동이나 반역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도 당시와 흡사함을 알고 있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연봉에 불만을 품습니다. 자신이 너무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극소수입니다. 그렇다면 요한의 이 말은 우리에게 어떠한 도전을 주나요?
"회개하라. 더 많은 돈을 원하는 탐욕에서 돌아서라. 현재의 소유로 만족하라. 불만족은 회개의 어울리는 짝이 아니다."
이와 같이 요한은 자신의 청중에게 그들의 일상생활에 실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하나님의 소리가 되고 있습니다. 요한 시대에 범해졌던 이러한 모든 죄들은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 에서도 여전히 범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궁핍한 자들이 도움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일이 습관적으로 행해집니다. 거짓 고소를 당하는 자들이 존재합니다. 자신의 보수와 지위에 참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람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6-10).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히 13:5-6).
우리 자신은 어떠한가요? 요한은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난다면 우리가 참된 회개자가 아님을 선명하게 말합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