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떡] 선한 사마리아인
[생명의 떡]
선한
사마리아인
- 임 용 민
18세기 경 독일의 진 푸레드릭 오버린 목사는 어느 겨울 날 걸어서 여행을 하던 중 노중에 심한 폭설을 만나 꼼짝할 수 없이 길에서 얼어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눈속에 쓰러져 있던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차에 실려 구조되고 있음을 희미하게 의식할 수 있었습니다. 마을로 옮겨진 그는 돌봄을 받고 다시 몸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그는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오버린 목사는 자기를 구조하여 간호해 준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평생토록 당신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그때 그 사람은 조용히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이 목사님인줄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 누가복음서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름이 누구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오버린 목사는 "그의 이름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그 친절한 구조자는 "그렇습니다. 성경 안의 그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름을 제게 말씀해 주시지 않는 한 저의 이름도 알려드릴수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처럼 가장 잘 알려진 비유는 드물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 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병원이나 각종 구호 및 봉사 단체 등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때때로 매일의 뉴스를 통하여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동을 실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듣고 있습니다.
본문은 누가복음 10장 30-37절입니다. 비록 7절에 불과한 예수님의 이 비유 이야기는 한권의 소설을 만들만큼 풍부한 영감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설교자들도 이 비유의 교훈을 다양한 관점에서 그 깊은 진리에 접근해 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비유속에는 깊은 진리가 풍부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여행하다가 노중에 강도를 만납니다. 강도들은 그의 옷까지 빼앗고 그를 때려 거반 죽게 만들어 놓은 후 도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과 레위인이 각각 그 곳을 지나다가 그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도 외면하고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세 번째 사마리아인은 그 강도 만난 사람을 발견하고 그를 불쌍히 여겨 다가가서 포도주(알코올 성분의 포도주는 상처 치료제로 대용됨)로 그의 상처를 씻어주고 그 위에 올리브기름을 바른 후에 자기 나귀에 그를 싣고 다음 여관에 이르러 밤새도록 그를 간호해 주고 이튿날 길을 떠나면서 여관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은전)을 주면서 계속 그의 간호를 부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다시 돌아올 때 더 든 비용이 있으면 그것마저 갚아주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지형상 예루살렘은 해발 3,000피트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약 17마일 가량의 길 주변에는 거친 산과 빈들이 펼쳐있습니다. 당시 여리고는 상업도시로 돈을 가진 여행객들이 그 길을 자주 왕래하였고 강도들은 그들을 노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이 비유 속에서 우리는 적어도 세 종류의 인생철학을 가진 인간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불행한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인 강도입니다. 육체적인 힘으로나 권력의 힘으로나 혹은 자신의 어떤 특정의 직업을 이용하여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하는 자들은 모두 같은 부류들입니다. 이들은 철저히 "내 것은 내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 라는 인생철학 주의자들입니다. 복면을 하고 은행을 터는 수법은 가장 저급한 강도법입니다. 이제는 자기 방에 앉아서 남의 신분을 훔쳐가지고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돈을 강도질하는 첨단 강도 시대입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강도의 철학을 가진 가장 해로운 부류들입니다.
둘째로 자기 보존과 안일만을 추구하며 타인에 대해서 무관심한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다" 라는 철학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남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을지 몰라도 극단적인 개인 주의자들로 그 이웃의 불행에 무관심하고 외면하는 부류들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내 것도 네 것이고 네 것도 네 것이다" 라는 이타적인 인생철학을 실천하는 자들입니다. 특히 그는 자신을 개처럼 여기는 원수인 유대인에게 극진한 사랑을 베풀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겼다" (He felt compassion)고 했습니다. "동정심" (compassion)이란 단어는 라틴어 콤파시오(compassio)에서 유래한 단어로 "함께" (com)와 "고난을 받는다" (passio)란 합성어로 "고난에 함께 동참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진실로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이나 인정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정신입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어느 인생철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여겨지십니까? 깊이 자신을 돌아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