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 1월 6일
주님과 함께 - 1월 6일
마태복음 1장 20-21, 25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오늘의 구절들은 한 성경적인 가정에서 나타낸 특징들을 선명하고 교훈적으로 간략히 말해줍니다.
마리아에 대해서 "아들을 낳으리니" 라고 말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체면, 교육, 욕심 등의 압박으로 인해 시야가 흐려지는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머니가 됨으로 하나님의 특권을 누렸던 한 여인을 떠올려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인류의 타락이 여성에게 가져온 결과들 하나는 이러했습니다.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창 3:16).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고통을 통해서 엄청난 축복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지역교회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기능이 다름을 권위 있게 말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경건한 여자는 기꺼이 배우고, 잠잠하고, 자녀를 낳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딤전 2:11-15). 이처럼 성경은 어머니의 영향력을 큰 목소리로 증거합니다. 마리아 역시 사회적인 성공이 아니라 가정을 보살피는 일에서 만족을 누리는 여인이었습니다.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딛 2:4-5).
요셉의 책임은 아기의 이름을 예수로 짓는 것이었고, 비록 대리적인 부모였지만(눅 3:23) 그는 불평 없이 아버지의 의무를 이행했습니다. 아기의 이름을 짓는 일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25절). 창세기 3장 17-19절을 따라서 그는 가족의 부양자가 되었고 그의 직업은 "목수"로 알려졌습니다(마13:55). 사회는 변해갑니다. 그러나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결혼한 남자는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을 부양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살후 3:10; 딤전 5:8).
마리아와 요셉을 택하심은 여호와의 완벽한 선택이었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두 사람 다 영적인 면에 참된 관심을 둔 이들이었습니다. 그것은 가장 커다란 부요함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 명령에 깊은 생각 가운데서 순종을 나타냈습니다 (마 1:20,24; 눅 2:51).
그러나 그 가정을 완성하신 분은 바로 주 예수님이십니다. 마리아는 낳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이름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만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가장 경건한 교육을 실시한다 해도 결코 그것이 구원을 보증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이 지니신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열정적으로 수없이 복음을 전한다 해도 그것은 귀중한 영혼들 중 단 한 사람도 회심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욘 2:9)에 감사하면서, 주 예수님 홀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을 감사하면서 우리 모두 가정과 교회에서 충성되이 또 성경적으로 일하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