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예배와 기념] 십자가, 교회, 갈등

행복자 2020. 1. 15. 11:08

[예배와 기념]


                               십자가, 교회, 갈등


                                                                                                                          - 다니엘 스미스


   "이스라엘 하나님의 단을 만들고...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대적이...듣고...나아와" (스 3:2,11, 4:1-2).


   이 말씀에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교회가 세워지며, 십자가와 교회가 나타나면 매우 강력한 갈등이 일어날 것을 구약과 신약이 너무나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를 우리는 에스라에서 그림자로서 볼 수 있다. 남은 자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단을 쌓아 합당한 장소에 두었다. 단은 십자가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전을 지었다. 이는 교회를 상징한다. 단이 쌓여지고 성전이

지어지는 것을 보자, 적이 가까이 다가온다. 그리고 강력한 갈등이 시작된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주님은 교회를 세우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이 십자가로 가야한다. 그때부터 주님은 제자들에게 서기관들의 강력한 반대가 있을 것을 말씀해주셨다. 그들은 함께 주님에게 많은 고난을 가하고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다.


   십자가


   십자가 없이는 교회도 없다. "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엡 5:25).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 교회를 만드신다. 이는 마치 하나님이 아담이 깊이 잠들었을 때 그의 몸에서 갈비뼈를 꺼내고, 그 뼈를 사용해 신부를 만드신 것과 같다(창 2:21-23). 이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사용한 첫 상징이다. 하나님은 이 비유를 맨 먼저 사용하기를 기뻐하셨다.

   어떻게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와, 온전한 사람으로 지어졌는가 하는 신비는 매우 깊다. 아담보다 더 위대한 분을 그림자로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첫 사람 아담의 깊은 잠은 주 예수의 깊은 죽음의 잠을 가리킨다. 주님은 죽음의 잠을 에덴의 아름다운 동산에서가 아니라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고난의 제단에서 겪으셨다. 거기서 주의 옆구리가 찔려졌다. 거기서 죄를 용서하는 피가 흘려졌다. 그리고 모든 흠을 씻는 물이 흘려졌다.

   이와 동일한 진리가 출애굽기 12장에서 나온다. 여기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왕자"로 불리우는 야곱의 아들이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종이었고 해방되어야 했다. 그래서 십자가를 상징하는 어린 양의 죽음과 그 피가 나온다.

   신약으로 오면, 실체인 십자가가 나온다. 주는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시며, 자신을 대속물로,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로 드린다.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여, 그들을 위해 죽으시고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다. 이는 영원전부터 하나님이 마음에 갖고 계셨던 것을 이루신 것이다.


   교회


   교회는 사람이 만든 조직이 아니다. 사람이 가입하는 존경받는 단체도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고난과 죽음으로 태어난 것이다. 즉 교회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열매이다. 십자가는 교회를 탄생시켰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것은 아니다. 각 지역에서 모이는 집회에 참석하는 자들이 모두 하나님의 교회인 것도 아니다.

   교회는 '주와 한 영으로 합한 자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하나님에 의해 사랑으로 부름 받고, 주의 영으로 변화되고, 새 본성을 받고, 그들의 모든 맥박은 주님 자신과 일치하는 자들이다. 사람의 마음은 본질상 악이 거한다. 악한 새장이다. 단지 십자가에 의해서만 아름다운 새 창조로 바뀔 수 있다. 이들이 교회라 불리운다. 하나님의 교회의 일부가 된 영혼은 복되다.


   갈등


   갈등은 사람이 창조되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 기원은 성경에서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 (계 12:9)이다.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에 반대하는 이 갈등의 원인은 사단이다. 그는 상상의 가공적 인물이 아니라 강력하고 거대한 힘이다. 그는 "이 세상 신"이므로 온 세상을 흔든다.

   인류 역사를 통해 이 악한 자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 즉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반대하고자 한다. 교회는 아들을 위해 택한 신부이다. 우리의 복되신 주님을 대항하다 패배하고 영원히 무력하게 된 사단은 이제 주님의 교회를 향해 진노로 다가간다. 만일 그가 핍박이라는 전면적 공격으로 교회를 엎지 못하면, 주의 백성들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게 만든다. 그 결과 신자들이 서로 의심하고 결국 서로 대항하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생각과 얼마나 다른지. 이는 우리가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역을 알지 못하는 결함이 주된 원인이다. 우리는 각 성도를 영원한 가치로 보아야 한다. 그의 죄가 용서되었고 심판에서 구원받은 자이다. 그같은 복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교회 전체와 연관된다. 우리의 개인적 구원은 단지 영광스러운 목적을 이루는 수단일 뿐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전체 교회에 있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어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심이니라" (엡 5:27).


   영광의 주님,  당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영광의 왕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만이 영광의 왕이네.

   그의 모든 상처를 생각하라.

   나무에서 죽음을 보라.

   이게 영광의 왕이라네.

   죽음과 무덤이 고백하네.

   어둠의 권세가 주 이름을 위협했으나,

   창조가 주 영광을 보이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주는 영광의 능력의 왕이네.


   주를 믿는 자는 행복하네.

   주의 영광을 곧 함께 나누기에

   성령으로 태어났기에

   주의 영광의 맹세를 받기에


   죄에 대해 십자가로 가르침 받고,

   주가 형제라 부르며

   주만 붙들며

   영광의 소망이 있네.

   -로버트 채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