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독자의 글] 에바브로디도를 향한 독백 (빌 2:25-30)

행복자 2020. 1. 27. 09:06

[독자의 글]


                                         에바브라디도를 향한

                            독백 (빌 2:25-30)


                                                                                                                                                             - 차 광선

 "그러나 에바브라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빌 2:25).


   1.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성도와 교회의 부탁을 받고 여기에 온지도 벌써 많은 날들이 지났습니다. 성도들의 전송을 받으며 로마로 향했던 여정은 가슴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황제가 있는 도성을 방문한다는 기회 때문이 아니라, 옥중에 있는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될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사도에 대한 반목, 오해, 모함이 난무하고 있지만, 그러나 믿음의 여러 역사들, 성령의 능력 있게 나타나심, 그리고 복음과 교회를 위한 그의 열정과 헌신은 성도들 가운데 그를 대면하여 교제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 당신 개인에게는 주님께서 사도와 함께 하셨던 일들과 사도가 어떻게 주님께 순종하고 헌신하게 되었는지 직접 대면하여 들어보고 싶은 소원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곳까지 오는 동안, 당신의 마음속에는 무엇인가 해소되어야 할 어떤 의문이 체기처럼 남아 있었는데, 사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풀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확신, 구주와 주님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섬기는 이로서의 능력의 부재, 인도자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에서 오는 정체성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또 하나의 관심사는 사도 바울 마음속에 현재 가장 비중 있게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믿음의 역사, 성령의 나타나심이 어떤 방식으로 그를 통하여 이루어져 왔는가도 또한 궁금한 내용이었습니다.


   2.

   사도 바울은 대면하였을 때 첫 모습은 이방인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쇠사슬이 있고 지근거리에 감시하는 병정이 있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분명 은혜 중의 은혜 였습니다. 안내자의 인도를 받아서 사도에게 갔을 때, 생애 마지막으로 번제를 드리고 있는 노 제사장의 진지함 같은 것이 사도에게서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이 가련한 나그네를 위하여 예비하신 영적 메시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방인은 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거부하는 몸짓을 과장되게 나타내기도 하다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인해 슬픔의 기색이 사도의 눈에 역력한 것을 당신은 보았습니다.

   당신을 발견한 사도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반가워하였습니다. 반가움이, 기쁨이, 웃음이 얼굴에 가득하였습니다.

   사도는 교회와 성도들의 사정을 일일이 알고 싶어 하였습니다. 거짓 교사들의 역사는 없었는지, 쓴 뿌리는 나지 않았는지, 다툼과 분당은 없었는지, 주의 교훈에 착념하고 있는지, 진리의 말씀이 올바르게 가르쳐지고 있는지, 주의 강림을 사모하고 있는지... .

   질문에 일일이 대답할 때마다 사도는 "감사한 일입니다!" 혹은 "주님 긍휼을 베푸소서!" 라는 말을 거듭 사용하였습니다.


   3.

   "형제여!" 사도가 당신을 부릅니다. 이 말에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내용이 깃들어 있는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는 형제라는 말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이, 사랑과 생명의 관계가 어우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함께 진 자들만이 그 이름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와 진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어떤 이름이, 그 어떤 호칭이 이보다도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줄 수 있겠는지요.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의 간증이고 믿음이며 사랑입니다.

   사도는 또한 당신을 "함께 군사 된 자"라고 말합니다.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군사' 라는 단어만 보고도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지만, 전쟁의 원초적인 근원이 되는 죄와 불의 그리고 세상 권세를 잡은 자 사단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 없이는, 그리고 예수께 속하여 믿음의 길을 가는 여정이 부단한 영적 싸움이라는 믿음 없이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법이지요. 저는 사도가 '함께 군사 된 자'라고 한 표현에 깊은 감동과 위로를 느낍니다. 그것은 사도의 겸손을, 그의 헌신을, 그의 믿음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사랑을 가득 싣고 찾아와 동역하는 당신을 향해 그리스도 안에서 깊은 우정과 사랑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진심어린 그의 고백이었으니까요. '이겨 놓고 싸우는' 영적 전투는 이제 머지않아 종료될 것이며, 우리는 승리의 깃발을 날리며 승전가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사도는 당신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대신하여 보냄을 받은 사자로 영접을 하였습니다. 사도를 보고자하는 기대와 열망과 함께 기도로 당신을 전송했던 성도들의 소원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당신은 온 마음과 옴 힘을 다해 사도 바울을 도왔습니다. 하루도 그곳 성도들을 잊지 않았으며, 당신의 빈자리는 성도들의 기도와 복된 소식을 가지고 돌아올 당신에 대한 염려와 교제에 대한 기대로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함께 하는 동안 누렸던 은혜와 감격과 깨달음을 가득  담아서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성도들, 당신은 그 성도들을 다시 만날 기대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병약해진 건강은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암시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이 어느 새 교회 성도들에게 전해진 모양입니다. 성도들이 근심에 싸여 있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파옵니다. 교회 성도들은 당신이 병든 것을 걱정하고, 당신은 교회 성도들이 그 소식을 듣게 되어 근심하게 되리라는 생각에 더 깊은 근심에 빠지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지 않고는 그 누구도 헤아리기 어려운 사랑의 배려요 위로이며 그리스도의 한 몸 한 지체의식입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는 대신 주의 일과 주의 성도들을 돌아보려는 당신, 어느 새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한 교훈 안에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행복한 종이었습니다. 당신과 같은 동역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4.

   사도와 함께 하는 동안 그의 신앙 연대기 속으로 들어가 그가 겪었던 성령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 전도를 위한 험한 여정들, 거친 바다 위 파선의 경험들, 어둠의 무리로부터 끊임없이 날아오는 돌팔매... 

   가까이에 있으면서 조심스럽게 사도를 주목하였습니다. 교회에 대한 염려와 사랑이 그의 간절한 기도 속에 절절이 배여 있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갈망은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는 것과 같았습니다. 잃은 영혼에 대한 간절함은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선한 목자의 그것이었습니다. 그는 매여 있으나 매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신뢰하였으며, 그 안에서 자유하였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 말씀이 개인에게도 교회 안에서도 흥왕하게 되는 것을 소망 하였습니다. 사도는 살든지 죽든지 자신의 몸을 통해 주께서 존귀케 되기를 바랐습니다. 예수 안에서 부르신 소망에 사로잡혀, 그는 푯대를 향해 달리는 경주였습니다.

   그의 모든 태도는 주님 자신과 다시 오실 주님께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수고와 애씀, 노력은 주님을 사랑하는 그가 보여준 사랑의 고백이며 간증 이었습니다.

   삶에서, 기도와 교제에서, 하나의 노래가 있음을 당신은 알아내었습니다. 그것은 주의 강림을 간절히 바라는 '주님 고대가' 였습니다.

   주님은 가장 영광스러운 곳으로부터 가장 낮고 천한 곳으로 오셔서 가장 고통스런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그와 같이 사도의 삶도 어느 새 주님의 생애의 궤적에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도는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곳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혹은 잃어버리고 저주 받은 자의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사도의 기대는 주님과 연합한 자의 몸의 영광스런 변화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께서 다시 오실 때로 맞춰져 있습니다. 겸손한 자의 약함에서 그 능력이 온전케 되는, 곧 약한 그때에 강함 되시는 주 안에서, 사도는 약속의 말씀에 사로잡혀 그날에 오실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 비로소 심령의 한 곳에 맺혀 있었던 무엇이 연기가 날아가듯 소멸해 버리고 이제는 청명해진 누낌이 들었습니다. 결국, 섬기는 자의 조건이란 능력이나 표적이나 실력이나 그 무엇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내주하셔서 사시며, 다스리시며, 자신을 나타내시도록 순종하여 겸손히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5

   "형제님, 담대하십시오. 주께서 함께하십니다. 주 은혜 안에서 강하십시오. 주께서 곧 오십니다!"

   마지막 인사로 악수를 나누고 포옹하는 사도의 눈에 이슬이 맺혀옵니다. 당신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있는 동안 어느 날인가 사도가 했던 말을.

   "그 폭풍우 몰아치던 바다 위에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렇게 말씀하신 대로 내가 가이사 황제 앞에 서게 될 날이 가까운 듯합니다."

   사도는 주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크게 기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도가 곧 주께로 돌아갈 날이 임박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종을 이제 가까이 부르실 때가 되었다는 영감이 가슴으로부터 전해져 오니 당신도 그만 흐느껴집니다. 몸은 비록 야위었으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사명의 길을 달려가는 동안 겪어야 했던 모든 시련들이 상처가 나고 덧나서 그 몸에 예수의 흔적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가까이 그 고난의 표지들을 확인하면서 사도의 복음의 발자취를 살펴보았습니다. 주님의 충성된 종이요 강하고 좋은 군사로 일생을 살아온 사도의 눈에는 주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하게 될 그날에 대한 기대와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고대하는 열망으로 가득해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사랑에 감사하며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는 사도의 음성에는 진실한 사랑의 따뜻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6.

 다시 길 위에 섰습니다. 길이 낯익어지면 먼 길도 지척입니다. 주께서 함께 하시는 길은 어느 길이나 은혜입니다. 이제는 성도들을 만날 기대와 기쁨을 가지고 길을 떠납니다. 엔젠가 들풀 같은 인생의 여정도 끝이 나겠지요. 성도의 모든 수고가 마쳐지겠지요.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날 그 시간 우리 주님은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과 살아남은 자들이 일순간에 변화되어 그 큰 영광에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사도의 몸에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어느 새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당신의 심령에도 몸에도 있음을 확인합니다.

   길 앞 저 멀리에 사도를 닮은 한 사람이 앞서 갑니다. 당신은 더 늦지도 더 빠르지도 않게 그를 따라갑니다. 저 앞쪽으로 달려 가야할 남은 사명의 길이 펼쳐져 보입니다. 당신의 귀에는 사도의 자애로웠던, 그러면서 소망으로 가득했던 음성이 여전히 맴돌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하십시오. 은혜 안에 강하십시오. 끝끝내 충성된 종으로 남아, 주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 생명을 드립시다.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납시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 그곳에서!" *


 (빌 2:25-30; 히 2:11; 딤후 2:3; 고전 11:1; 고후 11:23-27; 빌 1;20; 빌 3:14,21; 고후 12:9-10; 행 27:24; 살전 4: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