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연구] 신랑의 친구 침례 요한의 생애 묵상(21)
[인물연구]
신랑의 친구
침례 요한의 생애 묵상(21)
- R. H. 샤익스
21. 추수와 타작마당
요한은 불로 침례를 주실 장차 오실 분에 대하여 계속해서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분을 추수하는 자로 이야기합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 3:12).
익은 곡식을 거둘 때 그것을 타작마당으로 가져갑니다. 그런 다음 추수하는 자는 그의 손에 부채꼴의 갈퀴 혹은 삽을 듭니다.. 이제 소들이 타작마당에서 빙빙 돌고 그러면 곡식단이 잘게 부서집니다. 그 후 추수하는 자가 그것을 갈퀴에 담아 공중으로 들어 올리면 쭉정이는 바람에 날려가고 알곡은 더 무겁기 때문에 타작마당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나서 추수하는 자는 알곡을 모아서 자루 안에 담고 그것을 창고에 저장합니다.
추수하는 자는 잘 나누는 자입니다. 그는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시킵니다. 알곡은 그 안에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귀중한 것을 추수하는 자는 보관합니다. 그러나 쭉정이는 비어 있고, 말라 있고, 죽어 있는 껍질과 짚입니다. 추수하는 자는 그것을 바람에 흩날려 버리며 추수가 끝난 후에 불로 태워버립니다.
시편 1편에서 우리는 불경건한 자들은 하나님도 없고, 그리스도도 없고,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는 구절을 읽습니다. 그들은 생명이 없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엡 2:1). 하나님의 심판의 폭풍우가 그들을 날려 보낼 것입니다.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같이 폭풍에 불려가는 겨같이 되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느냐?" (욥기 21:18). 그들은 불에 살라질 것이며 절대로 그 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입니다(마 3:12).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종말을 맞는다는 것은 지극히 슬픈 일입니다! 나는 독자들 중에서는 아무도 다음과 같이 부르짖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렘 8:20).
한편, 추수하는 자가 알곡을 가지고서 무엇을 하는지를 눈여겨보십시오. 그는 알곡을 다 떨어낸 다음 그것을 집으로 가져갑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요!
알곡은 그 안에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8). 하나님의 심판의 불길은 우리에게 전혀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는 안전하며 위험이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러하다면 바로 지금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십시오!
따라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시키는 위대한 추수자이십니다. 그분은 인류를 확실히 나누는 분이십니다(요 9:16; 10:19). 그분은 자신의 타작마당을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많은 타작마당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브라의 타작마당에서 기드온은 하나님의 징표를 받았습니다.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삿 6:37). 우리 역시 성경의 몇몇 타작마당들을 살펴보면 하나님께 무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언급되는 곳은 창세기 50장 10-11절입니다. "그들이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호곡하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비를 위하여 칠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가로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강 건너편이더라." 여기서 우리는 장례 행렬이 멈춘 것을 봅니다. 그들은 거기서 7일간 머물면서 크게 애곡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장례 행렬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타작마당은 죽음과 슬픔의 장소를 말해줍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과도 같습니다.
또한 성경은 타작마당을 종종 심판의 장소로 말해줍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딸 바벨론은 때가 이른 타작마당과 같은지라. 미구에 추수때가 이르리라 하시도다" (렘 51:33). 하나님은 바벨론이 베어져 타작마당에서 밟아 뭉개지는 곡식단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죄에 대한 형벌이었습니다. 그들의 큰 왕인 느부갓네살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은 이러했습니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단 2:35). 이스라엘의 악인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이러므로 저희는 아침 구름 같으며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마당에서 광풍에 날리우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호 13:3).
또한 미래의 어느 날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형벌을 받기 위하여 함께 모일 것입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 모략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 여호와께서 곡식 단을 타작마당에 모음같이 그들을 모으셨나니" (미 4:12).
열국들이 언급될 뿐만 아니라 개인들도 언급됩니다.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삼하 6:6-7). 웃사가 이러한 죽음을 당한 이유는 경외심이 결여된 까닭이었습니다. 그는 좋은 의도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궤에 자신의 죄악된 손을 댐으로써 그분의 율법을 범했습니다.
성경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타작마당도 등장합니다. 그것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입니다. 사무엘하 24장을 읽어보십시오. 거기서 당신은 다윗왕이 여호와께 어떻게 범죄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 병사들의 숫자를 세었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것은 교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군대가 얼마나 강한지를 알기 위해 행한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즉 전염병이 돌아서 7만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16절에서 우리는 여호와의 사자가 멸하기를 중단하고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서는 모습을 봅니다.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그런 후에 선지자 갓은 다윗에게 바로 그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고 말했습니다(18절). 이에 다윗은 그 타작마당을 사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자백했습니다. "다윗이 인구 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이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10,17절). 여호와는 그의 이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전염병의 심판을 중단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25절).
역대하 3장 1절에서 우리는 모리아 산에서 발생한 일을 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바로 이 산은 오래 전에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단 위에 올렸던 곳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2). 그러므로 이 타작마당은 이중적인 제사의 장소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아브라함과 다윗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사에 기초하여 그곳은 축복과 예배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솔로몬은 바로 이 지점에서 아름다운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룻기 3장에서 또 다른 타작마당이 나오는데 그곳은 축복의 장소였습니다. 베들레헴의 그 타작마당에서 보아스는 룻을 만났고 가까운 친족으로서 그녀의 빚을 다 갚아주고 그녀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룻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그리하여 룻은 다윗왕의 증조모가 되었고 우리 주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마 1:5).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이 장차 오실 이 곧 불로 침례를 주어 자신의 타작마당을 깨끗하게 하실 분에 대해 예언하는 말을 들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분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합 3:2). 그분은 심판의 그 장소에서 구원을 제공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타작마당이 갈보리의 십자가를 상징한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바로 거기에서 죄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의 막대기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맹렬하게 내리쳐졌습니다. 그분께서 맞으셨습니다. 그분께서 상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한 형벌을 받으면서 상처를 얻으셨고 짓밟히셨습니다. 이사야서 53장을 다시 한 번 읽어보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 감사함으로 그분 앞에 엎드리십시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