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 2월 3일
주님과 함께 - 2월 3일
요한복음 3장 17-21절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17절). 이 구절은 자신이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었던 다른 아버지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야곱(이스라엘)은 요셉을 그의 형제들에게 보냈습니다(창 37:13,14). 이새는 다윗을 그의 세 형제에게 보냈습니다(삼상 17:17-20). 요셉과 다윗은 하나같이 아버지가 준 임무를 띠고 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버지를 사랑한 까닭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서 기쁨을 누렸습니다. 요셉은 야곱에게 이렇게 행했습니다.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그리고 다윗은 이렇게 행했습니다. "다윗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이새의 명한대로 가지고 가서."
하늘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이렇게 하셨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갈 4:4,5) 지상에 계실 때 주 예수님은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마 15:24). 이 아들은 아버지에 의해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낼 수 있는 다른 이가 없는 까닭이었습니다. 집 주인과 그의 포도원에 관한 비유에서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마 21:37).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께서 지니신 사명은 한 민족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7절). 그러나 진실을 말한다면 세상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거의 2,000년이 지났어도 세상이 구원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의 구절들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구절들은 모든 이들이 답을 얻을 수 있도록 명확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오셨습니다. 참 빛이신 그분이 어두움에 비취셨습니다. 말씀이신 그분이 말해지셨습니다. 진리이신 그분이 전해지셨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불신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대신에 또 이 빛으로 나아와 진리를 행하는 대신에 사람들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습니다. 자신들이 행한 일들의 악함을 깨닫는 대신 사람들은 더욱더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그들 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행한 이러한 일은 인간이 행한 가장 큰 악입니다. 결과적으로, 최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나타나나니" (롬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