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앙의 본질과 성전의 의미(행 7:36~50)
불신앙의 본질과 성전의 의미(행7:36~50)
조준안 여주교회
1.불신앙의 본질
(1) 그들이 모세를 복종치 아니하였다.
산헤드린공회가 모세를 존경한다고 하지만 모세를 거절한 조상과 똑같다. 불신앙의 죄를 범하고 있다고 분명히 제시한다. 불신앙의 특징들은 무엇인가?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7:39절에서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않고 거절하였다고 말한다. 인간이 곤경에 처한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로 인간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오늘 세상의 모든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지금 산헤드린공회도 왜 그리스도와 복음을 거절하는가? 왜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거절하는가?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전적인 부패와 무능 때문이다. 우리가 본문에 7:36~38절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40년간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행하며 인도하셨다. 애굽의 강력한 권력에서 홍해의 바다를 건너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광야에 먹을 것과 입을 것, 불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해내셨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들에게 주었다. 율법과 성막의 모든 계시를 그들에게 주었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를 복종하지 않고 거절하며 그들의 마음이 애굽으로 향하였던 것이다. 산헤드린공회는 이와 똑같이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과 가르침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그 시대에 다 보여주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십자가에 죽인 것이다. 오늘 날 시대도 사람들의 마음이 많은 교훈과 교육, 문화와 문명의 발달로 사람들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교만으로 하나님을 거절하고 믿지 않는다. 불신앙의 원인은 무엇인가? 7:39절에 그 마음의 상태 때문이다. 인간의 불신앙의 원인은 타락한 마음 때문이다. 이 마음은 인격의 중심이요, 여기서 모든 욕망이 일어난다. 불신앙은 머리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 마음은 머리보다 더 깊은 곳이다. 창3장에 인간이 타락할 때 마귀는 마음을 공격하였다. 마음이 열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살인, 간음, 모든 죄악들이다. (마15:19) 사람들이 빛보다 어둠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다. (요3:19) 사람들이 복음을 거절하는 이유가 죄와 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어 죽어있다. 그래서 마귀를 쫒고 세상과 마음의 정욕을 쫒아 행한다. (엡2:1~3) 마음뿐만 아니라 의지까지 타락해 있다. 정신도 타락해 있다.
(2)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인도할 우상을 만들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을 마음에 제거하면서 그 마음에 우상을 모시게 된다. (렘2:13 사53:6)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마5~7장에 산상수훈이 나오고, 마8~9장에 왕의 권능과 기적이 나온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메시아 되심에 모든 증거들을 보여주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거절하면서 믿지 않는다. 그럴 때 마12장에서 그들이 성령을 훼방하였다고 말씀하시고 마13장에서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천국이 이 땅에 왔지만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다는 비유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16장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경륜을 중단하고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중심으로 한 교회를 세울 것을 선포하신다. 이것은 바울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롬1장에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보여주시고 사람 안에 신의식과 양심, 사람에게 자연만물을 통하여 다 보여주셨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스스로 교만함으로 우준하고 어리석게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꿔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으로 만들고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의 마음에 우상은 없는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이다. 하나님은 우상을 가장 싫어하시고 진노하신다.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3) 하나님께서 그들을 외면하사 그들을 심판하신다. 첫째로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을 내어버리신 것이다. 롬1장에도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므로 그 부끄러운 욕심대로 내어버려두시고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셨다고 하셨다. 그들이 하나님 말씀과 율법을 버렸을 때 역사적으로 수많은 심판과 전쟁, 기근, 역병, 재난, 죽음의 불행의 역사가 인간에게 계속되었다. 하나님은 이 죄와 악을 세상정부를 통해 통제하시고 억제하신다. 그나마 법과 조직, 제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회를 유지하신다. (롬13:1) 인간의 긴 역사와 예수님시대나 지금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웃고 희롱하고 무시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들의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두셨다. (7:42)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광야 40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냐고 질문하신다. (암5:25) 둘째로 그들을 바벨론 밖으로 쫒아낼 것을 말씀하신다. 실제로 그것은 역사에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왜 그들을 내어버려두셨는가? 인간의 죄성의 참된 상태를 드러내고자 함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고 죄를 미워하심을 보여주고자 함이다. 이런 세상을 사랑하심을 보여주고자 함이다. 그래서 독생자를 보내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자임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2. 성전의 의미 (7:44~50)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는 예배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예배드릴 때 가장 고귀하게 보인다. 경건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다. 그래서 이것이 잘못되면 무엇보다 큰 비극임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신약의 바리새인, 사두개인의 본질적 문제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믿고 자랑스러워 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되신 주님과 가장 많은 충돌을 일으킨 것을 볼 수 있다. 스데반의 설교의 핵심은 우리 조상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거절한 죄를 다루고 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요2장에서 “이 성전을 헐라, 그리하면 3일만에 세우리라”고 말씀하신다. 그 당시 율법을 전공했던 서기관들과, 제사를 전문으로 하는 사두개인들이 타락해있었다. 그들은 성전에 대해서 잘못알고 있었다. 그들은 거짓 경건을 가지고 있었다.
(1) 거짓 경건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위선과 어리석음이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40년동안 하나님께 희생의 제물을 드린 일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았다. 예수님 시대 때도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되 마음은 멀다고 주님께서 경고하셨다. (마15:8~9) 주님께서 마23:23절에서 박하와 회향과 십일조를 드리되 의와 인과 신을 버렸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마음의 믿음과 사랑과 의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지 않았다. 성전은 어떤 곳인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의롭게 되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과 회복되는 곳이다.
(2) 거짓 경건의 특징은 제도중심주의이다. 산헤드린 공회가 예배드리는 곳은 성전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지않고 성전건물을 예배하였다. 그래서 주님께서 성전을 들어가실 때 분노하시며 모든 것을 엎어버리셨다. 그리고 내 아버지 집이 장사하는 곳과 강도의 굴혈이 되었다고 책망하였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이 장사꾼들처럼 내가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내가 주인이고 하나님은 나를 돕는 심부름꾼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샤머니즘과 종교가 그렇다. 그들의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은 도구일 뿐이다. 인간은 항상 조직화하고 제도화하는 속성이 있다. 우리도 교회를 그렇게 할 수 있다. 교회 올 때만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떠난 시간과 공간에서 내 마음대로 사는 이중적인 생활이 바로 유대인들과 같은 신앙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요4:24절에 사마리아 예배도 부정하고 유대인 예배도 부정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를 말씀하신다. 성전은 하나님과 연합하고 화목 하는 것이다. 하나님 영광이 임재 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체험하면 내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어있다. 나는 매일 주님과 더불어 말씀과 기도로 동행하는가? 그래서 태양광선을 반사해서 달이 빛을 내듯 내 삶에서 주님의 영광의 성품이 나타나고 있는가? 원망과 짜증과 불평과 분노와 이런 것이 내 삶을 지배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이 고속도로에서 카메라와 경찰이 있을 때만 조심하듯이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만 신앙생활하듯 하고 가정과 직장에서 다른 모습이라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니다.
(3) 거짓경건의 특징은 자기 의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선한 일에 친 백성이 되고 몸된 교회 안에서 섬김과 봉사를 위해서 부르셨다. 참된 봉사나 섬김은 자기 자랑과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어져야 한다(마6). 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토대로 하고 있다. 행7:44절에 이 증거의 장막은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라고 하였다. 참된 예배와 섬김과 봉사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기초해야한다. 그리고 참된 봉사는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마25장에 심판대에 사랑으로 섬기는 자들은 자기가 한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주님은 기억하고 계셨다. 또한 우리는 의문으로가 아니라 성령으로 섬겨야 한다. (고후3:6, 요4:24) 예수님은 섬김의 본을 보이셨다. 섬기기 위해 오셨다. (마20:28, 요1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봉사하고 성령안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봉사해야 한다. 우리가 선행과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야 한다.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보여지고 영광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향기로운 예배이다. 좁은 의미에서 성도들의 몸이 성전이다. 우리는 성전을 품고 다닌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주님과 내가 떨어질 수 없다. (고전3:16~17, 6:20) 마치 구약의 성막처럼 이동하며 움직이는 것을 본다. 하나님을 어떤 한 장소에 갇히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모든 사람은 자기를 위해 산다. 세상에는 두종류의 종교가 있을 뿐이다. 하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이고, 또 하나는 자신을 섬기는 종교다. 자신의 이익과 영광, 자랑과 의만을 위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믿음과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다. 동기가 자신을 위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한 영광, 자랑과 봉사다. 이것이 성령안에서 섬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