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소식] 천국은 공짜다! 공짜를 모르고 지옥에 간 사람들 이야기 (4)
[기쁜소식]
천국은 공짜다!
공짜를 모르고
지옥에 간 사람들 이야기(4)
- 허 윤욱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이번 호에도 공짜를 알지 못하여 지옥에 간 슬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해보고자 한다. 지옥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유나 상황은 없다. 그냥 본인에게 진술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 말할 것을 적어 본 것이다. 지옥은 너무도 끔찍하고 불속의 고통이 무지막지하여 취재하거나 자기의 의견을 피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1. 목사가 지옥에 가다.
나는 가장 어처구니없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평생 목회하고 지옥에 왔기 때문입니다. 기회만 있으면 예수 믿고 천당가라고 외치던 사람입니다. 이 땅에 소망이 없고 천국과 지옥이 인간의 마지막인데 예수 믿어 지옥을 면하라고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성경의 목적은 사람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건지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습니다. 동료 목사들에게 지옥을 전하지 않는다고 힐책할 때도 많았습니다. 성경이 지옥을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알리지 않는 너희들은 잘못된 이단이라고 책망하는 일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방송설교에서도 지옥을 들어 볼 수 없는 현실을 개탄하며 많은 친구들에게 지옥을 말하라고 주문하였습니다. 그러한 내가 정작 지옥에 왔으니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 쓴 띠를 어깨에 두르고 전철역이나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누어주기도 하였습니다. 호호방문하면서 전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교회 식구들과 함께 길거리에서 찬송을 부르면서 전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지옥에 온 것을 어찌합니까. 참으로 기가 막히고 슬픈 일입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철저하게 사탄에게 속았습니다. 사탄은 거짓말쟁이요 속이는 자라고 설교도 많이 하였지만 결국 내가 속아서 지옥에 왔습니다. 나만 지옥에 온 것이 아닙니다. 내 설교를 듣던 교인들의 대부분이 지옥에 왔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요. 내가 소경이었으니까요. 성경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모두 다 웅덩이에 빠진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말씀이 내게 응할 줄은 상상도 못하였지요. 나는 이제 어쩌란 말입니까?
나의 아내와 지식들도 지옥에 왔습니다. 다 내 잘못입니다. 왜 내가 참 구원의 길을 열심히 찾지 않았을까, 선배 목사들의 가르침만 받고 그대로 믿으면 되려니 하고 살다가 결국 이 지옥에 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와 보니까 목사들이 다 지옥에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상당한 목사들이 지옥에 왔다는 것이 한탄스러운 것입니다.
지금 나는 내가 가르쳤던 교회의 교인들에게 둘러 싸여 온갖 욕설과 비난을 당하고 있으며 나를 미친 듯이 두들기고 쥐어뜯지만 나는 한마디도 항변할 수 없는 기가 막힌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찌 이렇게 황당한 일이 있을까 생각하지만 돌이켜 보면 검증도 되지 않고 검증하지도 않은 말씀들을 전한 제가 잘못된 것을 어찌한단 말입니까. 이곳에 와서 진리를 깨닫고 보니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가르침을 평생 하였던 나였습니다. 나는 세상에 있을 때 두 가지를 잘못 가르쳐서 망했습니다.
첫째는 죄 용서 문제였습니다. 예수께서 죄인들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가르쳤는데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죄를 짓지 않으려는 노력과 함께 진실하게 살아감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에 영원한 속죄가 있다는 것을 읽고도 그냥 지나쳐서 낭패를 본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영원한 속죄가 나오는데 그 말씀을 간과한 것이 저의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나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서 단번에 영원히 해결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의미합니다. 단번에 해결을 보았습니다. 이제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며 마귀의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식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자식이 됩니까? 부모와 자식은 피를 나눈 관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피로 죄 용서받아 하나님과 내가 핏줄 관계를 맺어 거듭난 자식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거듭난 적도 없이 피 공로의 참된 의미도 모른 채"그 피가 맘속에 큰 증거됩니다" 하는 찬송도 불렀답니다. 의미도 모르고 불렀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의 "다 이루었다"는 뜻도 여기에 와서 깨달았습니다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 모든 죄가 십자가에서 다 해결되었다는 뜻을 모르고 우리는 다 죄인이라고 당당하게 외치면서 회개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 이곳에 왔습니다.
회개하는 것은 맞지만 회개하는 길을 잘 가르쳐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죄짓고 통곡하는 것이 회개인줄로만 알았습니다.
두 번째로 잘못 알았던 것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은혜를 갚으면서 열심히 섬겨 충성을 다하면 천국에 가는 것처럼 가르쳤습니다. 결국 내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늘 자책감에 시달리고 충성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에 울고 울다가 이곳에 온 것이랍니다.
이곳에 와서 안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모든 죄를 단번에 다 해결하여 나를 천국에 가는데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자녀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마운 은혜를 평생 갚아가는 자식으로서의 삶입니다. 불효자식일 수 있겠습니다만 진정 자식인데 왜 지옥에 가겠습니까? 원통합니다. 공짜로 주시는 천국, 믿음으로만 얻는 구원을 모르고 열심히 섬겨야 천국에 가는 것처럼 부담을 주어 많은 헌금으로 큰 예배당을 지어 사역은 성공하였지만 결과는 저들과 함께 지옥에 온 것입니다. 정말 죽고 싶지만 죽을 수도 없는 이곳에서 영원히 살아야 한다는 완전한 절망 속에서 나를 건져 줄 자가 없습니다.
2. 목사가 지옥에 가다.
나는 많은 목사들과 신도들의 존경을 받았던 목사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영원한 곳은 안식처 천국이 아니고 고통 받는 지옥입니다. 내가 이곳에서 영원히 고통 중에 거하는 현실을 생각하고 기가 막힙니다. 그러나 여기는 탈출도 불가능하고 석방의 기회도 없는 곳입니다.
나는 성실하게 산다고 열심히 살았는데 사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제가 잘못된 것은 사실 교리부터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 지옥보다 현실에 중점을 둔 가르침이었거든요. 세상에서 고난당하는 자와 억압당하는 자들의 모든 고통에 동참하는 사랑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돕는 사회활동이 진정 참 신앙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심지어 나만 천국에 가기 위해 예수님을 믿으면서 현실의 어려운 자들을 무관심한 것은 신앙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랑 실천운동 이것이 사역의 중심이었습니다. 결국 지옥에 대한 경고는 거의 없었고 그냥 사랑을 실천하고 열심히 믿으면 천국에 가고 상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예수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하였으니 믿는 우리는 당연히 천국에 간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믿으면 구원받았으니 예수님 믿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우리는 당연히 천국 자식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당연히 사람들에게서 존경받고 인정도 받았습니다.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었고 억울한 자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도왔습니다. 부정과 불의를 볼 수 없어서 늘 지배자들과 다투었습니다. 정치에도 관여하여 민중 운동에도 함께 하였습니다. 독재에 항거하였습니다.
여기 와서 깨닫고 보니 주님이 정치인들과 정치적인 문제로 싸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저들을 지옥의 권세로부터 건지기 위하여 오신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지옥에서 건지는 일이 주님 사역의 핵심이었는데 그것을 몰랐습니다. 죄인들이 지옥에 가기에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때로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쌍하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 아닌데 몰랐습니다. 우리가 전도하여 저들의 영혼을 건지기 위해서 저들의 삶을 도와야 하지만 자선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을 몰랐습니다.
내 친구들 중에는 지옥을 부인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사람을 지옥에 보내겠는가. 그것은 상징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친구들도 지금 지옥에 와 있습니다.
괴롭고 슬픈 것은 내가 목회하던 곳에 가까운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늘 전도하였습니다. 나는 교인들에게 그 교회를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조심하라고 광고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대부분 천국에 갔습니다. 저들이야말로 성경의 근본주의자요 진실하게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도대체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와서야 알게 된 것은 내가 내 교회 지키기 위해서 그냥 알아보지도 대화해 보지도 않고 정죄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마귀를 증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 쓸데없는 일입니다. 나 같은 사람을 신신학자라고 하였답니다. 성경을 다 믿지 않고 입맛대로 믿어버린 엉터리 목사였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3. 권사가 지옥에 가다.
저는 믿음 좋은권사로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 멀리 있는 교회의 신도들에게도 꽤나 알려진 권사였습니다. 제가 멀리까지 소문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유명한 목사님이셨습니다. 회교도들에게 순교를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고 선교지에서 죽었습니다. 나는 그의 딸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유명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려고 무진 노력을 하였습니다. 새벽기도부터 교회의 모든 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하였습니다. 금식기도로도 유명하였습니다. 40일 금식기도를 비롯하여 수많은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예배당 청소도 항상 내 몫이었습니다. 신도들을 위하여 많은 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성경을 많이 알기로 소문난 권사였습니다. 권사였지만 신학도 했습니다. 신유의 은사를 받아서 강사로 불려 다니며 병 고치기도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나에게 믿음 좋은 권사라고 칭찬이 자자하였습니다. 목사님도 침이 마르도록 칭찬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지옥에 있습니다.
여기에 와서 깨달은 것인데 성경에 믿음이 좋다는 말은 성경에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믿음이 좋은 믿음이 있고 나쁜 믿음이 있겠습니까? 크다, 작다고 말한 부분은 있지만 좋다는 곳은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은 실상 행위가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헌금 잘 내고 출석 잘하고 순종 잘하면 그 마음에 믿음이 있든지 없든지 믿음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행위가 좋은 것이지요. 믿음이라는 포장에 교묘히 행위를 감춘 것이지요. 아 정말 슬픕니다. 온전히 속았습니다.
제가 더 가슴 아픈 것은 저의 사촌 동생이 있었는데 늘 나에게 도전하였습니다. 언니는 구원받지 못했다고 도전하였습니다. 나는 너만 잘 믿느냐, 나도 구원받았다고 당당하게 혼내 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동생에게 교만하다고 책망하였습니다. 그 당시는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매우 교만하게 보였습니다. 죽어봐야 알고 하나님이 알지, 어찌 사람이 알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여기 와서 보니 사촌동생은 천국에 있고 나는 지옥에서 고통 중에 있는 것입니다. 아 슬픈 일입니다. 동생은 나에게 구원의 기회를 가져다 준 하나님의 사자였는데 나는 그를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혹시 나의 이 말을 듣고 계신 분이 계시면 정신 차리세요. 나같이 되지 말고 생명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믿음이 좋다고 칭찬하는 말에 마취되어, 죽어 지옥 가는지 천국 가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냥 당연히 천국 간다는 생각으로 살다가는 나같이 됩니다. 모두들 정신 차리시기 바랍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마 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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