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인물연구] 신랑의 친구 침례 요한의 생애 묵상(23)

행복자 2020. 3. 4. 07:41

[인물연구]


                                                    신랑친구

                         침례 요한생애 묵상(23)


                                                                                                                                                                   R. H. 샤익스


   22. 주님께 침례를 베풀다 (2)


   놀라운 표징들


   1. 하늘이 열렸습니다.

   마태와 마가와 누가는 다 주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렸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추가적으로 하늘이 찢어져서 열렸다고, 갈라져서 둘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늘이 그물과 같이(요 21:11) 또 옷과 같이(눅 5:36) 찢어졌던 것입니다. 하늘은 펼쳐진 휘장에 비유됩니다.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 (시 104: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고"(사 40:22). 그런데 지금 이 거대한 하늘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의해 갈라져서 둘이 되었습니다. 즉 여기서 우리는 자기 아들의 공적인 섬김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그분의 사역을 완성하셨을 때에도 하나님은 성전의 휘장을 찢으사 열어놓으셨습니다(마 27:51; 막 15:38; 눅 23:45).

   이사야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원컨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의 앞에서 산들로 진동하기를" (사 64:1).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하늘이 열림에 대한 네 구절을 발견합니다.

   1.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 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창 7:11).

홍수 심판 때 하늘의 창이 열렸습니다.

   2. "그러나 저가 오하려 위의 궁창을 명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저희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 (시 78:23-25). 하나님께서 만나를 공급하실 때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또한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요 6:51).

   3. "제 삼십 년 사 월 오 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겔 1:1). 하나님이 그분의 종에게 이상을 보여주실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4.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축복을 부어주실 때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우리는 하늘이 열리는 모습을 네 차례 발견합니다.

   1.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3:16). 주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이런 일이 발생 했습니다. 마가복음 1장 10절과 누가복음 3장 21절도 보십시오.

   2.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행 7:56). 스데반이 죽을 때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때에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3.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행 10:11). 베드로가 이방인과 교회에 대한 이상을 보았을 때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4.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계19:11). 그리스도께서 능력과 지극한 영광 가운데 재림하실 때 이런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구절들에서 어떻게 진리가 점점 더 전개되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그러나 이것은 주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에 발생할 놀라운 세 가지 일들 중 첫 번째일 뿐입니다.


   2. 열려진 하늘에서 성령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구약성경은 종종 하나님의 영을 언급합니다. 구약시대에도 그분은 여러 차례 다양한 사람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능력을 주어 그분을 위한 특별한 임무를 담당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를 든다면, 그분은 다윗에게 내려오셨습니다.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삼상 16:13). 또한 우리는 그분이 떠나시는 모습도 봅니다. 예를 든다면, 그분은 사울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삼상 16:14). 구약시대에 그분은 이처럼 임하기도 하시고 떠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그분은 주님께 계속 머물기 위해서 임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사복음서에서 이 장면을 어떻게 묘사하는지를 자세히 보십시오. 성령님께서 주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마3:16). 성령님께서 주 예수님에게 내려오셨습니다(막 1:10). 성령님께서 주 예수님 위에 강림하셨습니다(눅 3:22). 성령님께서 주 예수님에게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무셨습니다(요 1:32). 주 예수님은 성령님께서 머물 수 있었던 혹은 거처를 삼을 수 있었던 지상의 첫 번째 사람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에게 한량없이, 즉 양이나 시간에 있어 제한이 없이 성령님을 주셨습니다(요 3:34). 따라서 주님은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입었습니다(눅 4:1).또한 주님 안에 성령님께서 거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완전하심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아무도 성령님을 수 없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 3:8). 그렇다면 요한이나 다른 이들은 성령님께서 주 예수님 위에 임하신 것을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었을까요? 성령님께서 비둘기의 형체로 내려오셨기 때문에 그들은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님에 대하여 몇 가지 중요한 교훈들을 배우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제시한 그 교훈들 중 몇 가지를 잠시 생각해보려 합니다.

   비둘기는 하늘의 새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을 하늘에 계신 분으로 그려줍니다. 성경시대에서, 비둘기가 땅에 내려오면 그것은 봄이 가까이 왔다는 신호였습니다. 이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창세기 8장 8-12절에 나옵니다. 노아는 홍수 후에 비둘기를 방주 밖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이는 물이 완전히 사라졌는지를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거할 곳을 찾지 못한 까닭에 방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는 홍수가 오직 죽음과 파멸만을 남기고 떠난 뒤였습나다. 그러므로 비둘기는 하나님의 영이 지닌 순결함을 말해줍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라고 불리시는데 그분은 구약시대에 4,000년가량 사람들 위에서 배회하셨습니다. 이는 머무실만한 죄 없는 사람을 찾지 못하신 까닭이었습니다. 그분은 요한이 주 예수님께 침례를 베푼 이 날까지는 그러하셨습니다. 주님은 완벽한 사람이셨고 이에 성령님께서 그분에게 내려오셨고, 임하셨고, 머무셨습니다.

   또한 비둘기는 제사에 사용할 수 있는 정한 새였습니다(레11장).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 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삼을 것이요" (레 1:14). 가난했던 주 예수님의 부모는 이러한 예물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눅 2:24).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히브리서 9장 14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여기서 우리는 성령님께서 하나님 아들의 갈보리 제사와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내용을 대합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에서 주님은 비둘기를 순결함의 상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우리 주님에게서 성령님의 자비하심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또한 성령님의 다른 모든 열매들도 그분에게서 나타났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이 구절을 읽고서 우리는 주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왜냐하면 지상에서의 그분의 생애 가운데서 성령님의 충만하심이 명확히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거룩하시고, 악의가 없으시고, 순결하셨습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히 7:26). 성령님은 독수리의 형체로 내려오시지 않았습니다. 독수리는 왕권과 위엄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사납습니다. 독수리는 먹잇감을 죽여서 그것을 먹습니다. 그러므로 독수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에 대한 상징이 될 수 없습니다!

   아가서의 몇 구절을 읽어보십시오.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아 2:14).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아 5:2).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아 6:9). 이 구절들에 보면 사랑하는 두 사람은 거듭거듭 "비둘기"라는 말을 애정의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성령님이 지니신 중요한 특성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사랑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이에 대해 마땅히 생각해야 할 만큼 다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기억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또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 사랑은 우리를 위하여 그분의 아들을 주심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그러나 우리는 성령님께서 다른 위격들과 동등하신 분임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그분의 사랑 역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및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만큼 위대합니다. 다음의 구절들을 찾아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묵상해 보십시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롬 5:5).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롬 15:30).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3.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

   이것은 다른 두 징표와 맥을 같이 합니다. 하늘이 열습니다. 또한 하늘에 계신 분께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목소리입니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지상에 있는 자기 아들을 향해 하늘에서 목소리를 들려주신 세 경우 중 첫번째입니다. 두 번째 목소리는 변화산에서 들려왔습니다. 마태복음 17장 5절을 보십시오(막 9:27; 눅 9:35 참고).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세 번째 목소리는 요한복음 12장 28-30절에서 발견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도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이 세 경우 모두에서 아버지는 아주 흡사한 메시지를 주십니다. 즉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인정하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첫 번째로, 주님이 침례를 받으실 때 아버지는 그분의 개인적인 생애 곧 처음 30년을 크게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주님이 변화되실 때 아버지는 이러한 진술을 확증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분의 공적인 생애의 중간쯤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아버지는 그분의 공적인 생애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목소리를 들려주셨습니다. 그 때는 십자가의 그림자가 그분을 덮을 때였습니다. 각각의 경우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그분의 완벽한 아들에 대한 온전한 만족과 기쁨을 확실히 드러내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분은 온 세상이 이 사실을 알기를 바라셨습니다!

   이 첫 번째 목소리를 통해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네 가지 일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주님을 가리키십니다. "너는." 이것은 확인입니다. 주님은 하늘 아래 아무도 그분과 같은 이가 없는 그러한 유일한 분이십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주님과의 관계를 언급하십니다. "내 아들이라." 갈릴리에서 오신 이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이 중대한 사실을 우리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그분의 애정을 표현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적어도 다섯 차례에 걸쳐 자신의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에 관한 구절들을 읽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요 3: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요 5:20).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요 10: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 15:9).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 17:23).

   네 번째로, 하나님은 그분의 승인을 알려줍니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주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전 생애는 아버지를 불만족스럽게 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분의 모든 말과 모든 생각과 모든 행위는 아버지께 완전한 기쁨을 드렸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요 8:29).

   이와 같이 주 예수님께서 받으신 침례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세 위격을 발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다음과 같은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 아들의 소원, 성령님의 강림, 아버지의 기쁨, 이 세 위격이 한 하나님을 이루고 계십니다. 복스러운 세 분의 연합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