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 4월 7일
주님과 함께 - 4월 7일
마태복음 6장 22-24절; 누가복음 11장 34-36절; 16장 13절
빛인가 어두움인가.
보는 것은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눈은 어떤 장면이 들어오는 관문입니다. 그 장면이 매력적인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지상에서 우리가 보배롭게 여기는 많은 것들은 우리가 보기를 좋아하는 것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우리 안의 정욕도 눈을 통해 자극을 받습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도 그러했습니다. 거기서 범죄할 때 하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를 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이후로 안목의 정욕은 인간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시력의 밝음. 눈 자체는 빛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눈이 몸 안으로 빛이 들어오는 수단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묘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성한 눈은 빛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들어오게 해줍니다. 그러나 병든 눈은 빛을 잘 받아들이거나 잘 이끌어 들일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참된 빛이 어두움처럼 보입니다.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이것은 영적인 빛이 신자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 말해줍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엡 1:18). 오늘의 구절들에서 주님이 눈에 대하여 사용하신 비유적 표현은 아주 적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빛이 우리를 비추고 가르칠 수 있음을 배웁니다. 마음이 열려 있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기만 하다면 말입니다. 만약 마음이 이 땅의 보화들에 고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성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빛으로 나타나기로 의도된 것들이 오직 어두움이 될 뿐입니다.
주님이 하신 동일한 말씀이 누가복음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의 문맥은 마태복음 6장과 매우 다릅니다. 거기서 말해주는 바는 무엇인가요? 바리새인들이 주님에 대해 가진 영적인 지각은 너무나 희미해서 그들은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인식하거나 인정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하여 그릇된 견해를 갖는 것은 우리의 보물에 대해 그릇된 평가를 내리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누가복음에서 주님은 영적인 빛의 밝음을 강조하십니다. 그 빛은 참으로 주님을 알고 깨닫는 마음 안으로 들어갑니다. 눈이라는 관문이 갖는 진리의 이 두 측면은 에베소서 1장에서 함께 어우러집니다. 거기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마음의 성함.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우리의 섬김에서는 마음의 성함이라는 특성도 나타나야 합니다. 어떤 이도 두 주인의 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오직 한 주인에게만 소유되며 한 주인만을 효력 있게 섬길 수 있습니다. 이는 두 주인의 요구사항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재물을 탐한다면 우리는 그것에게 복종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오직 주님만을 섬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엡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