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성령님을 의지하기(5)
[권두언]
성령님을 의지하기(5)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나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갈 3:1-5).
성령님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요 16:8-11) 확신을 주십니다. 그 확신으로 거듭난 성도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하며(롬 8:15). 하나님의 뜻(고전 2:9-10) 과, 주님의 영광을 알려주십니다(요 16:14). 그리고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인도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의 '신분'을 그에 걸맞은 '상태'로 만들며, 잠재력에서 사실을 만들어냅니다. 승리하는, 기쁜, 열매 맺는 삶의 열쇠는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령님만이 그리스도인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만들어(엡 3:16),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 이상을 이루게 하십니다(엡 3:20).
성령님은 다음 세 가지 대표적인 영역에서 힘을 주십니다. 첫째 주님의 부르심을 이루고자 할 때, 둘째 영적 전쟁에서, 셋째 인생의 짐을 질 때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영적 사역, 영적 전쟁, 짐 지기 영역에서 힘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의 생애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그가 사도 직분을 수행할 때, 성령께서 힘을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온 천하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신 주님께서 사도들을 예루살렘에 머물게 하신 이유는, 사도들이 성령께서 내주하셔야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9-10).
은혜만이 사도 바울로 사도 직분을 수행하게 한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사도권에 대한 공격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고후 3:1). 이 같은 공격에 대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성령이 하신 일을 증거로 제시합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나..." (고후 11:23). 사도 바울이 겪은 고난은 하나님이 부르고 성령님이 힘주지 않으면 겪을 이유도 겪을 능력도 없는 고난입니다. 사도로 부르신 주님께서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내주하게 하여 그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로서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둘째, 사도가 해야 하는 일은 복음을 전해 영혼을 구원받게 하고, 구원받은 성도에게 말씀을 가르쳐 교회를 이루게 하는 일입니다. 이는 영적인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엡 2:2) 있으며, 이 세상 신이 마음을 혼미케 하고(고후 4:4)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후에도 사단이 우는 사자처럼 대적하기 때문입니다(벧전 5:8). 그래서 이 싸움은 성령을 힘입어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0-12).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순종해야 하는 싸움을 해내야 합니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나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 10:3). 그 때 성령님이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 1:8-29).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 4:7).
셋째, 사도 바울이 사도로서, 부르심을 이루기 위해 살았지만, 그는 한 인생이기도 합니다. 그의 삶에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성령을 의지하여 처리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2-13). 그는 죽을지도 모르는 재판을 앞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빌 2:17-18). 그 자신이 먼저 자신의 삶의 고난, 핍박, 연약 속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살았습니다."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4:8-11). 우리도 동일하게 연약하나 좌절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굳게 가야 합니다. 죽음에 직면해도, 그 기회를 통해 오히려 주님의 생명을 더욱 알게 되고, 겉사람은 후패해도 속사람은 강건해지는 성령의 도움을 입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죄를 이기는 힘을 주시며, 성령 안에서 걸으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됩니다. 영원한 소망의 확신을 주십니다(롬 15:13). 또한 합당한 관계를 맺게 합니다(엡 5:22-6:9). 이 모든 것에서 성령님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이는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고 마는) 방법론이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개인과 지역모임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월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