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인물연구] 신랑의 친구 침례 요한의 생애 묵상(28)

행복자 2020. 5. 15. 09:27

[인물연구]


                                                                신랑 친구

                        침례 요한생애 묵상(28)


                                                                                                                                                        - R. H. 샤익스


   27. 제자들


"저희가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눅 5:33)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눅 11:1).


   이쯤에서 요한의 제자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또한 그들이 요한의 인격과 삶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누가는 주 예수님께서 행하고 가르치기를 어떻게 시작하셨는지에 대해 기록을 남겼습니다(행 1:1). 또한 우리는 요한의 제자들도 그의 모본(그가 행한 것) 과 그의 가르침(그가 가르친 것)을 나타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했습니다(눅 5:33). 또한 그들은 기도했습니다(눅 11:1).요한의 생애에서 이 두 가지 중요한 측면들을 간략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금식

   일반적으로 우리는 금식을 일정 기간 동안 음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혹은 종교적인 이유에서 특정한 음식들을 입에 대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7억 명이 넘는 이슬람 사람들은 이러한 종교적 금식을 30일간 행합니다. 이뿐 아니라 전 세계의 다른 많은 사람들도 또 다른 종교적 금식을 하면서 의식을 준수합니다.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들과 요한과 요한의 제자들이 이러한 종교적 금식을 행했습니다.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마9:14).

   구약성경에 보면 다양한 개인들이 다양한 이유로 금식을 했습니다. 한나는 괴로움 중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삼상 1:7).

   요나단은 결렬한 분노 가운데서 그렇게 했습니다. "심히 노하여 식사 자리에서 떠나고 달의 제 이 일에는 먹지 아니 하였으니 이는 그 부친이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 (삼상 20:34).

   다윗은 애도와 슬픔 속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삼하 1:11-12). "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삼하 12:21).

  아합은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회개하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왕상 21:27).

   이스라엘 백성은 국가적인 금식을 행했고 그것은 기도 및 간구와 연관되었습니다."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삿  20:26).

   왕후 에스더와 유대인들도 금식을 했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 4:16).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자백하면서 금식을 했습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삼상 7:6) 이러한 경우들은 단 하루만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사기 20장 26절에서 보듯이 말입니다."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혹은 더 긴 기간 동안 특별한 음식들만 삼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니엘 10장 3절에서 보듯이 말입니다.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금식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은 무엇인가요? 육체의 식욕보다 영적인 문제들을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요한과 그의 제자들은 그들의 매일의 삶에서 이러한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어떤 종교적인 사람들은  성경시대의 바리새인들과 같은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뭔가를 얻어보려고 금식을 행합니다. 그들은 이것이 자신들을 천국으로 데려가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뿐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또한 우리에게) 금식 행위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긍휼을 대신할 수 없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 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5-11).

   진정한 금식의 영은 잠시 동안 먹지 않는 것 이상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참된 신자들에게 금식은 자기부인의 습관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음식에 대한 갈망 뿐 아니라 어떤 것들을 향한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 일체에 "안 돼" 라고 지속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부인 보다 높은 차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철저한 '자기없음'입니다. 신약성경의 다수의 구절들은 영적인 금식을 가르치는데 그것은 육체의 음식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다음의 내용을 생각해 보십시오.

   첫 번째로, 우리는 성적인 부도덕을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살전 4:3). 우리는 모든 악을 버려야 합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 5:22). 우리는 모든 죄악된 욕망들을 버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욕을 제어하라" (벧전 2:11). 우리는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떠니야 합니다.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롬 16:17). 우리는 어리석은 논쟁과 싸움을 피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딛 3:9).

   두 번째로, 우리는 악한 말과 거짓말을 삼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벧전 3:10).

   세 번째로,우리는 자신의 영적인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자기 훈련을 실시해야 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고전 9:25-27). "그러므로 감독은...절제하며" (딤전 3:2).

   네 번째로, 우리는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자신에게 "안 돼" 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하는 자들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4).

   다섯 번째로, 우리는 자신의 옛성품과 옛 태도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3).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3:5-10).

   이 극소수의 구절들은 신양성경이 말해주는 금식의 폭넓은 의미를 예증합니다. 이것은 육체적인 금식의 가치와 중요성을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틀림없이 이것은 영적인 금식이 갖는 보다 큰 가치와 중요성을 상기시킵니다.

   여기에다 반드시 추가해야 할 사항은 기도와 금식이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 13:3).


   기도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쳤습니다(눅 11:1). 따라서 기도는 그들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요한이 기도의 사람이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는 요한이 성장했던 가정에 대해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 경건한 가정에서 분명 요한은 어린시절부터 기도를 배웠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그의 전생애에서 나타난 겸손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그러한 겸손은 기도가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요한이 나타낸 강건함과 힘찬 전파도 주목해보았는데 그것들 역시 오직 기도로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낸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요한이 그들에게 실제적으로 어떤 기도를 가르쳤는지에 대한 언급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커다란 중요성을 갖고 있는 그것이 왜 언급되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주 예수님 및 그분의 제자들의 기도생활과 현저하게 대조하기 위해서인 듯합니다.

   사복음서에서 우리는 종종 주 예수님의 기도를 기록해놓은 구절들을 읽습니다. 사실상 요한과 기도를 관련시켜 언급한 곳은 오직 누가복음 뿐입니다. 그런 한편 이 동일한 복음서에서 우리는 주님의 삶에서의 기도 역시 강조되고 있음을 봅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들을 보십시오. 주님이 침례를 받으실 때에 이러했습니다.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 새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 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눅 3:21). 그 분이 광야에 계실 때에 이러했습니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 5:16). 그 분이 변화산에 계실 때에 이러했습니다. "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눅 9:28-29). 더 찾아보고자 한다면 누가복음에서 적어도 열 군데 이상 이러한 구절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우리 역시 항상 끊임없이 기도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 존 번연은 이렇게 썼습니다. "기도가 죄를 그치게 해줍니다. 또는 죄가 기도를 중단하게 만듭니다. 자주 기도하십시오. 왜냐하면 기도는 영혼의 방패이며, 하나님을 향한 제사이며, 사단을 향한 채찍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