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올바른 분별

 


                                    제2과

 

                     일곱 경륜 (세대)


   성경은 때(여기서 '때' 라 함은 아담의 창조로부터 요한계시록 21:1의 "새 하늘과 새 땅" 까지의 전 기간을 뜻한다)를 불균등한 일곱 주기들로 구분합니다. 이 주기들을 가리켜 흔히 경륜(엡 3:2) 혹은 세대(엡 2:7) 라고 부르며, 또한 주의 날 과 같이 날들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 주기들은 죄와 인간의 책임이라는 두 문제와 관련해서 인류 전체 또는 그 일부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의 변화를 근거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세대는 하나님의 측면에서 볼때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험 기간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전세대는 심판으로 종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인간이 매 세대마다 완전히 실패했음을 뜻합니다.


    역사적으로 이 주기들 곧 이세대들 중 다섯은 이미 만료되었습니다. 우리는 현재 제 육 주기, 아마도 여섯번째 세대의 말기에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일곱번째 세대를 맞게 될 것인데, 마지막 세대인 천년왕국 세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1.  무죄 세대

   이 세대는 아담의 창조로부터(창 2:7)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추방될 때까지입니다. 아담은 처음 창조될 때 죄없이 창조되어 선과 악을 몰랐습니다. 아담은 그의 아내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에 거처하면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무죄 세대는 인간의 첫 실패와 이에 따른 가장 비참하고도 광범위한 결과를 낳고 끝났습니다. 이 세대는 다음과 같은 심판으로 종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참조요절 : 창 1:26 ; 2:16,17 ; 3:6, 22~24


   2.  양심 세대

   아담과 하와는 타락함으로써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을 스스로 습득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전 인류에게 유전시켰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인류는 양심으로 올바른 도덕적 판단을 하게 되었으며, 그 후로부터 인류는 선을 행하며, 악을 멀리해야 하는 책임 한계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에덴으로부터 노아의 홍수 때까지 이르는 양심 세대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이 때에는 인간의 정부의 정치제도의 법률제도가 수립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땅에서 모든 혈육있는자의 행위가 패괴해지고" (창6;12).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5)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제 2의 시험기를 홍수 심판으로 끝내셨습니다.


   * 참조요절 : 창 3:7, 22 ; 6:5, 11,12 ; 7:11, 12, 23


   3.  인간의 치리 세대

   하나님은 그 무서운 홍수 심판에서 여덟 사람을 구원해 내시고, 물이 걷힌 후에는 이들에게 정화된 땅과 그것을 다스리기에 충분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즉 노아와 그의 후손들에게는 그 땅을 다스릴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날 평야에서 인류는 하나님을 떠나는 악한 음모를 꾸몄고, 마침내 인간의 치리 세대는 언어 혼동이라는 심판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 참조요절 : 창 9:1, 2 ; 11:1-4 ; 11:5-8


   4.  약속세대

   하나님은 이제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의 후손들 가운데서 아브람이라는 한 사람을 불러 그와 언약을 맺으십니다. 아브람과 그의 후손들에게 준 약속들 가운데 어떤 것은 순전히 은혜요, 무조건적이었습니다. 이 약속들은 글자 그대로 이미 이루어졌거나 앞으로 이루어질 것들입니다. 한편 어떤 약속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실함과 순종을 조건으로 하여 맺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조건들은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족속의 실패로 인하여 마침내 약속의 세대는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이라는 심판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 . 창조하시니라" 는 장엄한 말로 시작된 창세기는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는 말로 끝나고 있습니다.


   * 참조요절 : 창 12:1-3 ; 15:5 ; 26:3 ; 28:12,13 ; 13:14-17 출 1:13-14


   5.  율법세대

   무력한 인간을 구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은혜를 베푸사 선민을 압박자의 손에서 구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내광야에서 그들에게 율법의 언약을 제시하셨습니다. 이에 그들은 은혜의 관계를 지속해 달라고 하나님께 겸손히 간구하는 대신에 이렇게 오만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광야 및 약속의 땅인 선지(選地)에서 계속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흉악하고도 끊임없는 위법의 긴 기록이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무수한 경고 끝에 율법세대를 심판으로 종결시키셨습니다. 즉 북이스라엘을 선두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백성들은 다 선지(選地)에서 쫓겨나와 현재까지 유랑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 연약한 잔존자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휘하에 귀환했습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자 그리스도께서 그들 중에 오셨습니다. 여자에게서 나시고 율법 아래서 나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이방인은 공모하여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 참조요절 : 출 19:1-8; 롬 3:19,20 ; 행 2:22,23 ; 롬 10:5 ; 왕하 17:1-18 ; 행 7:51,52 ; 갈 3:10 ; 왕하 25:1-11


   6.  은혜세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순수한 은혜의 세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받을 수 없는 중에 받는 은총, 혹은 율법하에서 처럼 의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아닌 의를 주시는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온전하고도 영원한 구원이 이제는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근거로 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값없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29)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 6: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7,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 9)


   예언상에 나타난 이 은혜세대의 종결은 불신 세상과 배도교회에 대한 심판입니다(눅 18:8 ; 17:26~30 ; 계3:15,16 ; 살후 2:7-12). 이 은혜세대의 종결 시에 일어날 첫 사건은 하늘로부터 주께서 오시는, 주님의 공중재림입니다. 그때 잠자던 성도들은 일으키심을 받아 당시에 생존하고 있는 신자들과 함께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살전 4:16, 17) 있을 것입니다. 그 후 "대 환난" 이라고 불리 우는 짧은 기간의 환난시대가 따릅니다(마 24:21, 22 ; 단 12:1 ; 습 1:15-18 ; 렘 30:5-7). 이 후에 큰 능력과 영광으로 오시는 주 예수님의 지상 재림과, 일곱 번째 세대이며 마지막 세대인 천년왕국을 소개하는 심판들이 있을 것입니다(마 24:29, 30 ; 25:31-46).


   7.  그리스도의 통치세대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 시에 있을 정화(淨化)의 심판이 있은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회복된 이스라엘 민족과 전 세계를 천년 동안 다스릴 것입니다. 이 세대를 가리켜 흔히 천년왕국세대라고 합니다. 그의 권좌(權座)는 예루살렘이 될 것이며, 또 은혜세대에 구원을 얻은 자, 곧 교회를 포함한 모든 성도들은 그와 함께 그의 영광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참조요절 : 행 15:14-17 ; 계 19: 11-21 ; 사 2:1-4 ; 계 20:1-6 ; 사 11장


   그러나 사단이 잠시 풀어 놓이는 때가 있는데, 그는 그때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이 전과 같이 악에 치우치는 것을 발견하고 열방 중에 자신의 세력을 손쉽게 규합하여 주님과 그 성도들을 대적하여 싸웁니다. 이 마지막 세대도 다른 모든 세대와 마찬가지로 심판으로 끝납니다. "크고 흰 보좌" 가 설치되고, 죽은 악인들이 일으킴을 받아 그 앞에서, 마침내 심판을 받습니다. 그때 새 하늘과 새 땅, 곧 영원의 상태가 시작됩니다.


   * 참조요절 : 계 20:3, 7~15 ; 21장과 22장


   편집자 주(註)


   이상 살펴 본 스코필드 박사의 세대 분류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만이 유일하게 정확한 분류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특별히 세대를 분류하지 않고 그대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성경학자들 가운데 다음과 같이 세대분류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1) 아담으로부터 노아 때까지의 세대

   2) 노아로부터 아브라함 때까지의 세대

   3) 아브라함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십자가까지의 세대

   4) 현 은혜의 세대

   5) 대 환난의 시대

   6) 천년왕국 세대

   7) 영원의 상태


   어느 분류를 받아 들이든지 언제나 구원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고, 또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럴 것입니다. 이 중요한 진리는 꼭 명심해야 합니다. 구약의 사람들도 앞으로 올 그리스도의 사역을 근거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들은 1900여년 전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사역의 근거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미국 엠마오 성경학교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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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        성

                                

                              제 9 과

                                    


                                가정에서의 여성의 역할


                                            남편에 대한 도리


   우리는 이미 에베소서 5장 22절과 25절에서 남편과 아내의 도리를 상고해 보았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골로새서 3장 18절과 베드로전서 3장 1절에서 성경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복할 것을 훈계하고 있습니다. 순복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전에서는 '권위나 다른 사람의 뜻에 자신을 굴복시키는것' 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아내된 자들에게 순복을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인간의 행복을 위해 제정하신 경륜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남녀 간의 구별을 무시하려는 현대의 경향은 결혼 생활이나 사회 생활의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남녀 간의 구별을 전제한 결혼이 건전한 사회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내들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어디까지나 순복이지 맹종은 아닙니다. 남편들은 우리를 위해 친히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은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결국 가장 이상적인 것은 부부가 사랑 가운데서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상호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서로 마음을 터놓고 고락을 함께 함으로써 점점 향상되어갈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평생의 공동 목표를  가지고,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함께 기도하는 남편과 아내에게는 권위와 순복에 관한 가르침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부부가 다 주님께 순복하고 있다면, 다른 모든 관계는 합당하게 제자리에 들어 맞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결혼은, 가치에 있어서 동등하고 임무에 있어서 서로 보충하여  조화를 이루는 남녀의 결합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두 사람이 평생에 하나님을 으뜸으로 모심으로 가능합니다.

   한편 부부 생활에서, 남편이 비록 에베소서 5장 25절에 명하신 대로 책임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도 아내는 에베소서 5장 22절에 명하신 아내의 임무에 순복해야 합니다. 반대로 아내가 자신의 소임에 소홀할 때일지라도 남편은 자신의 책임에 충성해야 합니다. 책임은 개별적으로 주신 것이기에 품앗이하듯 해서는 안됩니다. 각자에게 주신 명령이 분명하므로 상대편의 처신에 무관하게 본분을 다 함으로써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만일 왕같이 대접 받기를 원하는 남편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의 아내를 왕비같이 대접해야 한다. 만일 그가 그의 아내를 왕비같이 대접한다면 아내도 쉽게 남편을 왕처럼 대접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결혼 생활이란 상호 존중하며(엡 5:33), 상호 배려하며(고전 7:3~5), 상호 신뢰하는 것입니다(고전 11:8~12).

   아내는 그의 남편이 매일 직장에 출근하는 만큼 충성스럽게 가사를 꾸려가는 책임을 이행해야 합니다. 잠언 14장 1절에서 지혜로운 여인은 집을 세운다고 말씀했습니다. 당신에게는 자질구레한 살림살이 속에서 그것을 창조적으로 꾸며나가야 할 과업이 주어져 있습니다. 살림살이란 되풀이되는 일이 많고, 그리 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적지 않은 법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들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손수 일하는 것을 보람으로 여겨야 합니다(살전 4:11; 엡 4:28). 우리 주님께서도, 사도 바울도 손수 일하셨습니다. 마지못해 하는 일이 아닌, 사랑으로 하는 일이라면 살림살이라는 짐도 꽤 가벼워질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도리


   현모양처가 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린 자녀는 양친에게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우게 되거니와 그중에서도 어머니의 영향은 특별히 큽니다. 특별히 취학 전의 시기는 인성과 지성의 형성기로서 이 시기의 경건한 가르침과 솔선수범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한나와 요게벳의 아들들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유아와 청소년의 전인적인 성장에 있어서 사랑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점점 증가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는 여전히 학대를 받고 소홀히 취급되는 어린이들의 비극적 사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낙태나 피임들의 서글픈 이야기도 계속 들려옵니다. 이에 믿는 여성인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우리의 자녀에게 뿐 아니라, 우리가 대하게 되는 모든 어린이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마 10:42; 막 9: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여성들이 바깥 일에 종사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에 대하여 한 번쯤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됩니다. 흔히 있듯이 경제적인 궁핍에서라면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단지 가족이나 가정이 좀더 여유를 갖기 위해서라든가 더 나은 수준에서 생활하기 위한 것이라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가정부나 탁아소의 교사도 어머니처럼 어린애를 사랑해 주며 길러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취학전의 시기는 짧지만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어린 아이와 산보도 하며 노래도 하고, 기도도 하며 함께 놀이도 하고, 연도 날리며, 온 세상에서 날이면 날마다 제딴엔 새롭게 깨닫고 놀라워 하는 것들을 들어주기도 하며, 설명해 주기도 해야 합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가르쳐 주어야 하며, 또한 그가 하나님이 지으신 중요한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어야 합니다. 청소년이 되었을 떄에도 자녀들과 대화를 지속하려 한다면, 취학전의 이 시기에 자녀와 함께 지내는 것이 긴요합니다. 가능한한 어머니는 어린애가 집에 있는 동안엔 집에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이는 "가정은 과자와 빵을 구울 때처럼 구수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가정에는 위로와 사랑과 온화함과 반가움이 있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가정은 아늑한 보금자리이어야 합니다. 이는 사랑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갖게 될 가정에 대한 추억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단언컨대 집안 살림을 해 나가는 일은 어떤 여성에게든지 가장 창조적이며 만족할 수 있는 직업이 될 수 있습니다.

   어머니로서 제일 중요한 일은 자녀를 훈련하고 징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의 공동책임이긴 하지만, 대부분 아버지는 낮에 집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책임이 어머니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유일한 안내자로 삼으시고, 오직 기도를 통하여 주님을 의지함으로써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라" (신 6:6,7)는 교훈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다음과 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야 한다고 교훈하신 대로입니다(골 3:16). 어머니로서 주님과 함께 하는 묵상의 시간, 매일 성경 말씀을 읽으며 기도하는 시간을 거르지 마십시오. 자녀에게 주님에 관해 가르친다는 것은 어머니로서 커다란 특권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유아기에 시작해야 하며, 신명기 6장의 말씀대로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걸어다닐 때에든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든지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해 주는 것을 일과로 삼아야 합니다. 매일 온 가족이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도 꼭 있어야 합니다. 아침 식사 전후나 저녁 식사 전후나 또는 그외 다른 적절한 시간을 정하시면 됩니다. 다만 규칙적인 일과로 계속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계획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징계라고 하면 으례 위축시키는 것으로 생각되기 쉬우나, 실은 자녀들에게 한계를 지어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만일 아이가 일부러 그 한계를 범했을 때에는 벌이 따르게 됩니다. 규칙을 알면서도 불순종할 때에는 언제나 벌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아이들은 오히려 안정감마저 갖게 됩니다. 따라서 에베소서 6장 4절에서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대로 아이들을 비난하거나 잔소리를 함으로써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화가 치밀어 오르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리스도인으로 가져야 할 가치 체계를 설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그들이 이미 배운 것에 기초하여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까지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을 위한 우리의 과업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본보기로 우리는 아브라함(창 17:18)과 다윗(대상 29:19)을 들 수 있습니다. 한 아이를 다른 아이보다 더 사랑하는 편애에 관해서는 이삭과 리브가의 경우와(창 25:28) 야곱(창 37:3)에게서 불행한 실례를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일어난 가정불화는 우리에게도 경종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엘리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 ( 삼상 3:13)으로 그 가정에 일어났던 비참한 결과는, 우리 자녀들의 방종과 잘못을 바로잡아 주지 못할 때 초래될 불행을 경고해 줍니다.

 

                                          이웃에 대한 도리


   믿음의 가정의 영향력은 담을 넘어 퍼져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 양상이 이웃집이나 다를 바 없습니까?  아니면 그들이 우리 가족을 볼 때 우리를 부러워하며 우리처럼 되기를 갈망하고 있는지요?  믿음의 가정이 지닌 특유의 분위기가 자주 드나드는 자녀의 친구들에게나 어쩌다 방문하는 이웃들에게 별천지에 온 듯한 느낌을 자아내게도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으로 연합된 이런 행복한 가정은 요즈음에도 그리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정에 관한 말들이, 이 단원의 초반에서부터 현모양처에 관해 상고해 보았기에 미혼 여성에게는 무관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미혼 여성에게도 역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할 가정과 이웃이 있습니다. 참된 우정과 남을 돕고 섬기려는 마음 가짐은 혼인 여부에 관계없이 언제나 칭송을 받을 것입니다.


                                        여성의 품위와 의상


   믿음의 여성의 품위에 관한 말씀은 디모데전서 3장 11절과 디도서 2장 3~5절 등 두 곳에 있는데, 단정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순종하며, 사랑하며, 신뢰받는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옷차림에 관해서는 베드로전서 3장 3,4절에서 겉치레에 중점을 두지 않고, 오히려 심령의 미덕에 치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9,10절에는 화려해서 우리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시키는 옷을 입지 말고 아담한 옷을 입으라고 교훈하십니다. 범사에 그렇듯이, 이 일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겉치레보다는 내적이고 인격적인 미를 계발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바칠 수 있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위한 가정의 사용


   접대하는 일은 주님과 주의 자녀들이 아주 귀하게 여기는 봉사입니다(벧전 4:9 ; 히 13:2). 접대하기 위해서 꼭 크고 잘 꾸며진 집이 필요한 것도 아니며, 음식을 으리으리하게 차려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칸 방에 혼자 사는 사람도 접대할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영접하고 조촐한 음식으로 접대할 때 손님에게 기쁨을 주게 되며, 접대를 계속하는 독신 여성 자신도 아주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합니다. 이러한 접대야말로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바람직한 신앙 봉사입니다. 여기에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1. 어린이 집회 : 많은 어린이들이 가정 집회를 통해서 그리스도께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이 직접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일 주일에 하루, 오후 몇 시간 동안 자기 집을 제공하거나 그 밖의 다양한 방법으로 교사들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2. 차 한잔의 사귐 : 이 방법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사귈 때에나 초신자들의 성장을 도와주는 데 아주 효과적입니다. 자신이 가르칠 수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자기 가정을 개방하여 이웃을 초대하고 음료를 제공하며 기도함으로써 이모임의 인도자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3. 부부 생활 연구회 : 여러 부부들이 저녁에 모여 성경을 공부하거나 대화하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더해 갈 것이며, 우정이 점점 깊어져 갈 것입니다.

   4. 기타 : 아마 어떤 분들은 이상 말씀드린 일들을 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밖에도 가정에서 하실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1) 외로운 분들이나 병중에 있는 분들에게 전화를 한다든가,

   2) 도움이 필요한 가족이나 친구에게 음식을 장만해 준다든가, 그렇지 않더라도 실제적인 방법으로 당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든가,

   3) 바느질, 뜨게질과 같은 솜씨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만든다든가,

   4) 선교사들, 또는 가족이나 친구들 중에 외출하지 못하고 집에만 계시는 분들에게 편지를 해준다든가,

   5) 기도 등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야말로 모든 것 중에 가장 중요한 일임에도 가장 경시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아무튼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전 10:31)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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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     성

                               F. 스마아트 &  J.  영


머리말


이 책을 공부하시는 분들에게


   남녀 불구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본분을 깨달아 살아 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에 성경에서 여성에게 교훈 하시는 바를 살펴보기 위하여 이 강좌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1. 여성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과 목적은?

2. 여성으로서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격은?

3. 여성으로서의 바람직한 처신과 인간관계는?

4. 여성으로서의 가정, 교회, 사회 및 선교지에서의 역할은?

5. 여성으로서의 은사를 발견하여 하나님이 바라시는 대로 활용하는 방안은?


   한 여성의 신앙과 인격이 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장래에 끼치게 될 영향을 생각할 때, 이 강좌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고 뭇 사람에게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1992. 3

                                    한국 엠마오 성경학교 교장



                           제 1 과


                           창세기 1,2장

                  목적적으로 창조된 여성


   창세기 1장에서 우리는 지혜로우신 창조주께서 구상하시고 설계하신 대로 일하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창 1:31). 하나님께서는 그가 만드신 만물이 계획하셨던 대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을 보시고 안식하셨습니다(창 2:2). 창조된 모든 것들이 각각 창조의 목적대로 기능을 발휘할 때 질서와 평화와 만족이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행복하고 충만하게 살아가는 비결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지 또 어떤 일을 하는 데 알맞게 해 주셨는지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맞추어서 하나님이 설게하신 자신의 위치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에 대해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면, 나에 대해서도 목적을 가지고 계심에 틀림없습니다. 나의 첫째이자 가장 분명한 임무는 그 목적을 발견해 내는 것입니다.

   여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은 최초로 창세기 1장 27,28절의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두가지 성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으며, 아울러 남녀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신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남녀에 무관하게 항상 그들을 축복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면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신분입니다. 생활과 활동에 있어서도 동등하며, 천성이나 권위에 있어서도 동등한,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대리인인 것입니다.

   한편 창세기 2장을 계속해서 읽어 가노라면 인간의 창조에 관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여성이 의미상 남성과는 별개의 인격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여성을 창조하신 시기와 방법과 목적에 있어서 남성과 어떻게 다른가를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여자의 창조


   성경은 아담이 먼저 창조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창 2:7) 되었습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창 2;15~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최초의 사람이었던 아담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에덴 동산에서 홀로 외로움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창조 이래 처음으로 "좋지 못하다" 고 말쓸하셨던 것입니다. 아담은 과연 사회적 존재이며 사교적 피조물이었기에 누군가와의 사귐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창조된 모든 동물 중에서는 그로 더불어 사귈 수 있는 대등한 존재가 없었습니다(창 2:20).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신 후 그의 옆구리에서 뼈와 살을 취하셔서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이처럼 하와는 흙(원어상 Adamah)으로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남자(원어상 Adam)에게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 최초의 여인도 최초의 남자와 동일한 체질이었습니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 이었던 것입니다(창 2:23).

   이렇듯 여성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수고와 기술의 결정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성을 창조하시되, 남성을 위하여(for Man), 남성에게서(from Man) 창조하심으로써 그 남성의 배우자이자, 동역자이자, 남성을 완성시키는 내조자로 주셨습니다.


          창조의 순서에서 배우게 되는 교훈


   남자를 먼저 창조하시고, 다음에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에 어떤 중대한 교훈이 담겨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신약 성경은 이 사실에 중대한 의미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 (딤전 2:12, 13)임을 명기했습니다.

   지도적인 권위(headship)에 관하여 다루고 있는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 (고전11:3,8,9)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지음을 받아 머리가 된 남자의 처신과, 나중에 지음을 받아 권위를 침해해서는 안되는 여자의 처신은 아주 대조적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보실 때, 여자가 인격적으로 부족하다든가 무가치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이는 단지 사회적으로는 남녀가 평등하지만, 지도적 권위는 우선적으로 남자에게 있음을 가리킵니다.


                 여자를 창조하신 목적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창조하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하여 "돕는 배필"이 되는 것입니다. 원어상 '돕는다'는 낱말에는 연약하다거나 부족하다는 뜻이 전혀 없습니다. 실제 이 낱말은 구약 성경에 21회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16회는 상류 계급의 사람들에게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하나님께서 친히 '도우신다' 는 경우에도 사용되었습니다(창 49:25; 출 18:4). 그 여인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도록 도우므로써, 세상을 다스리는 아담의 존귀와 영광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창 1:28).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창 2:22) 오셨을 때, 아담은 " 이 여인이야말로 정말 나에게 가장 합당한 자입니다" 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여자를 자녀 생산의 도구로 지으셨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이는 하와가 아담 자신의 생명과 품성을 함께 갖고 있었으므로, 아담 자신과 더불어 생각과 말과 인격적 교제를 할 수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지혜의 경륜을 따라 인생을 남녀로 서로 다르게 창조해 놓으셨습니다(마 19:4). 따라서 하나님께서 서로 다른 특성을 불어넣어 주신 이성 간은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도와 주는 보완적인 관계이지, 경쟁적인 것이 아닙니다.

   한편 여자의 특권과 자랑스러운 신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아울러 우리는 여자를 창조한 목적이 남자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다시금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여자는 세상에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만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아담은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으며, 여자는 아담의 "돕는 배필" 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여자는 아담의 버금으로 지음을 받았으며, 아담에게서 지음을 받았고, 아담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녀가 없이는 아담도 불완전했던 동시에 아담 역시 그녀에게 보람있는 삶을 이룩해 주는 존재였습니다. 그 여인이야말로 그의 보필자이었고, 그의 온전함을 위해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남녀를 창조한 순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만 아니라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권위의 순서를 나타내 줍니다. 즉 먼저 지음을 받은 자가 인도하면, 나중에 그에게서 지음을 받은 자는 그를 따르며 도와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여자의 "돕는 배필" 로 창조하지 아니하셨고, 도리어 여자가 남자를 돕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질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남편을 어떻게 돕기를 원하고 계실까요?  이 질문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지혜와 명철을 다해서 당신의 남편을 도와 주십시오. 더욱이 당신의 남편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사람이 되고자 할 때 돕지는 못할 망정 장애가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교회에서는 장로들을 존경하며, 장로들에게 협력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우십시오.


                   결  혼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신 것과 아담이 그 여인을 그의 확실한 반려자로 흔연히 맞이한 사실에 이어, 계속해서 우리는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을 보게 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4)

   결혼은 사회 복지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가장 오래된 제도입니다. 결혼은 기독교의 제도이거나 교회의 성례가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이것은 인류의 최초에 세워진 제도로서, 신앙적 무관심이나 신앙심의 부족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제정된 것입니다.

   창세기 2장 24절에 기록된 결혼 지침에서 "떠나라" 는 말과 "연합하라" 는 말에 주의하십시오. 이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결혼에는 배타적인 요소와 지속적인 요소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몸" 이 될 때에 그 남녀는 사회에서 새롭고 영원한 관계를 수립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 새로운 관계의 수립을 위해서 먼저 이전의 관계를 청산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부일처는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경륜입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와 연합하여 일상 생활 전체에서 상호 보완해 줌으로써 마치 한 사람과 같은 기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결혼이 갖는 배타적인 특징입니다.

   복음서에는 주 예수님께서 창세기 2장 24절의 원리를 다시 말씀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4~6절과 마가복음 10장 6-9절을 읽어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뇨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는 말씀으로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다시말해 주님께서는 지속적인 관계를 결혼의 또다른 특성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혼이란 함부로 약속하거나 파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부부 상호 간에 평생토록 지켜야 할 엄숙한 공약입니다.바울도 에베소서 5장 31절에서 창세기 2장 24절을 다시금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바울이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은 이미 말씀하셨던 그 원리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확증해 줍니다.

   이러한 결혼은 일종의 제약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약이 우리의 자유를 제한 하거나 우리의 행복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들에게 있어서 무엇이 사회를 안정시키고,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이룩하게 할 것인지를 가장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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