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          성


                                                  제 4 과


                      현숙한 여성(잠언 1~31장)


   구약 여성들을 상고하면서 잠언 31장에 기록된 훌륭한 여인을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잠언 1~30장에서의 여성에 관한 기록을 보면, 대부분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방 여인


   잠언에서는 말로 호리며, 소시의 짝을 버리며,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리고,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걸음이 음부로 내려가는 이방 여인에 관해 자주 경고하고 있습니다(2:16~19; 5:3~8). 또한 7장에서는 이방 여인이 순진하고 경험이 없는 젊은이를 어떻게 유혹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7:26,27)

   경고는 이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됩니다.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게,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6:24~35)

   9장에서는 이 여인을 가리켜 "미련한 계집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여인"으로 묘사하면서, 그 결국은 6장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객들이 음부 깊은 곳에" (9:13~18)있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음행을 비롯한 성적 범죄에 대해 이렇듯 중시하심과는 대조적으로, 현대인들은 이런 것들을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지요!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간음하지 말지니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 20:14). 주 예수님께서도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7,28)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음행을 피하라...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전 6:18)고 말했으며,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고도 말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 13:4)고 말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여성이라면 언행 심사에 있어서 불순한 모든 것을 버리고 용의에 있어서도 조심함으로써, 어떤 사람에게도 유혹이 되지 않도록 하라고 명백히 교훈하십니다. 우리가 입는 옷이나 부주의한 자세 등이 다른 이로 하여금 성적 충동을 일으킬 수 있으며, 죄를 범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마 5:28). 우리의 옷매무새는 우리의 됨됨이와 우리의 의향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잠언에서는 우리에게 이외의 여러가지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잠언에는 다투는 여인에 관해 여러 차례 말씀하십니다.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21:1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21:9)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성들의 면모를 살펴 봅시다. 베드로는 여성들에게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3:4) 고 말했습니다.

   또한 잠언에서는 훌륭한 여성들에 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12:4),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14:1),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18:22),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19:14)

   결론적으로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11:16)라고 말씀하신 바, 우리 모두는 이러한 덕성을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현숙한 여인


   이상으로 잠언을 대강 살펴 보았습니다마는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아주 훌륭한 여성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31장은 "르무엘 왕의 말씀한 바 곧 그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이라" 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31장 전장을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것이 그의 어머니가 그 아들의 아내로서 맞아 들이게 될 여인상을 묘사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르무엘 왕이 자기 어머니를 묘사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남성들이 갖고 있는 이상적인 여인상은 그의 생활에 감화를 끼쳤던 사람에 의하여 형성된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끼치게 될 감화력을 의식하고 있습니까? 이렇듯 어머니의 감화력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지나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나로서 당신은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세계적인 저명 인사나 교계의 유명 인사 가운데에는 헌신적인 누나의 우애와 기도를 통하여 크게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승 역시 큰 감화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듯 일상 생활의 범사에서 경건하고 늘 기도하는 여인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여러 방법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누가 현숙한(도덕적으로 훌륭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31:10)

   옛적에 동양에서는 대가를 지불하고 신부를 데려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날에도 어떤 곳에서는 신부의 값을 요구하는 장인이 있습니다. 이처럼 현숙한 여인은 진주보다 더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 이런 아내를 얻는 자는 흔치 않은 행운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11절)

   이 말씀은 다음에 이어질 모든 것을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즉, 남편에게서나, 가족에게서나, 일가 친척에게서나, 모든 주위 사람들에게서 전폭적으로 신뢰를 받고 있는 여성이라면, 그 남편의 심령은 그로인해 안심하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 가정에서는 어머니가 가정을 이끌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자는 가정의 안정과 명예, 치부, 그리고 지역사회에서의 지위 등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에 따라 현모 양처는 이러한 남편의 바람직스럽고 다양한 목표를 성취하는데 함께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부지런하고 성실 하게 되면 남편은 천직에 전심 전력을 기울이게 됨으로써 그 땅의 장로로 더불어 성문에 앉게 될 것입니다(23절). 이는 곧 영예롭고 존귀한 신분이 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12절). 여기에, 모든 신부들을 위한 좋은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가사와 관련하여 이 여인은 부지런하고(13절), 경제적 안목이 있으며(14절), 숙달되어 있고, 계획적이며(15절), 솜씨가 뛰어나고(19절), 미래를 예비함으로써(21절), 아름다움과 존귀를 한 몸에 누리게 됩니다(22절). 이 여인은 어려운 일을 두려워 아니하며, 게으르거나 부주의하지도 않습니다(27절). 그의 집안 일은 언제나 순조롭게 되어 나갑니다. 이러한 가정에는 질서와 평화와 안정이 있습니다. 이야말로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 (고전 14:33), 하나님의 집에서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고전 14:40) 고 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이런 가사만도 힘겨운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더하여 밖에서 사업을 관리해 나갈 여력이 있었습니다. 밭을 사서 포도원을 만들기도 했고(16절),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고에게 맡기기도 했습니다.(24절). 그녀는 자기의 무역하는 것이 이로운 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18절). 그는 우량품을 생산했으며, 쓸모 없고 보잘 것없는 제품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원칙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신 대로입니다.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행할 때에 우리 주님께 존귀를 돌리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현숙한 여인이 갖추고 있었던 또 다른 장점은 무엇일까요? 이 여인은 지혜롭고 친절하였습니다(26절). 이 여인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동정적이어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결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혹사시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친절은 그의 생활의 원리였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친절해 진다면 오늘날 우리의 가정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남편과 자녀들에게서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28절). 그가 사랑을 받은 것은 유능한 살림꾼으로 가족을 안락하고 행복하게 돌봐 주어서만도 아니고, 유능하고 성공적인 여류 사업가여서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혜롭고 친절하며, 동정적이고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이처럼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두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언 31장 10~31절의 기록을 읽게 되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열등감과 이질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어느 누가  여기에서 제시하고 있는 수준에 완전히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이 여인이 가족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을 생애 최대의 만족과 기쁨으로 여겼듯이, 우리 각자도 이점을 반드시 이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여인처럼 똑같이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 여인의 믿음직스럽고 부지런하며, 자립적이고 천역을 사양치 아니하며, 친절하고, 사랑하는 것을 본받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 여인의 또 다른 장점으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 라는 점입니다(30절). 이는 이 여인이 앞서 언급해 왔던 여러 장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설명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이것이 이 여인의 모든 행동의 동기였으며, 동시에 우리의 동기이어야 합니다.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 (잠 9:10)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시작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만한 인격을 계발할 수도 없고, 그렇게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힘쓰고 애씀으로써 개과 천선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등등 어느 정도 성공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여호와를 경외 하는 여자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손에 맡김으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형상대로 빚으셔서 쓰시도록 하는 여인입니다. 이런 여인이야말로 참으로 축복스러운 여인이며,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31절). 이 여인의 값은 실로 진주보다 더합니다.


   마지막으로, 잠언을 읽으면서 여자들에 관한 모든 구절들을 노트에 분류해 보시면 더 많은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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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경  개 요


                                제5과 시가서


                                                    욥기


   욥은 아브라함 시대의 사람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욥은 부유한 사람이었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셔서 욥은 재산과 가족을 다 잃게 되었고, 고통스러운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욥의 세 친구가 그를 위로하려고 찾아 왔지만, 욥의 참상을 보고 놀란 나머지 이레 동안이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의인이 고난을 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욥은 아무래도 큰 죄를 지은 것이 틀림없다고 욥을 추궁하였습니다. 이에 욥은 자기의 결백함을 주장하면서 무정한 친구들을 비난하고,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때 청년 엘리후가 나타나 하나님을 변호했습니다. 엘리후는 욥을 설득하지 못한 세 친구들을 비판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허물을 돌리고 있는 욥을 책망했습니다. 마침내 욥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의로우심과 능력과 지혜를 깨닫고 그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했을 때 모든 고난은 끝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욥을 전보다 갑절이나 축복해 주셨습니다.


                                         시편


   성경의 여러 책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이 시편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험과 느낌을 화려한 문체의 시와 찬송으로 쓴 것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이 시편에는 다윗이 쓴 시가 73편이 있으며, 모세나 아삽이나 솔로몬이 쓴 것도 몇 편 씩 수록되어 있고, 저자를 알 수 없는 것도 50편 정도 됩니다.

   시편의 대부분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겪어온 일들을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이나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를 예언하는 시편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시편에 단순히 역사적 체험이나 예언만이 수록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외에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려는 실제적인 교훈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구약 원전에는 시편이 다음과 같이 다섯 권으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제 1 권 1-41 편

   제 2 권 42-72 편

   제 3 권 73-89 편

   제 4 권 90-106 편

   제 5 권 107-150 편


                                          잠언


   잠언의 대부분은 솔로몬 왕이 쓴 지혜로운 말을 편집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잠언을 가리켜 '지상 생활을 위하여 하늘에서 주신 법률' 이라고 말한 것은 적절한 표현입니다. 즉, 음행과 나태와 위선과 음란과 교만과 불공평 등등에 대하여 부모에게나 자녀에게나 부부 간에나 빈부 간에 다양하게 교훈해 주십니다. 잠언에 기록된 이러한 지혜로운 말들은 경청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비할 수 없이 보배로운 충고가 되어, 죄의 번민과 수치와 고통을 제거해 주는 동시에 순결하고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안내해 줍니다.


                                          전도서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려던 인생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전도서의 주인공은 인생에서 가장 보람있고 훌륭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하여 과학과 철학과 쾌락과 건축과 재물과 음악, 심지어는 종교 등 모든 것을 경험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쓰라린 좌절만을 체험한 채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다' 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전도서에 번번히 나오는 이 '해 아래' 라는 낱말은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의 입장에서 관찰한 인생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태양 위에 계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사실을 망각한 사람들이 종종 전도서를 그릇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편 사람의 심령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 전도서가 목적하는 교훈입니다. 즉 후세의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저자와 동일하게  고달픈 길을 되풀이하다가 번민과 좌절감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전도서가 씌어진 것입니다.


                                             아가서


   성서 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아가서는 '노래 중의 노래' 라 불리운 것만 보아도 다른 노래들에 대한 그 우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아가서의 내용이나 해석에 있어서는 두 가지 뚜렷한 견해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가장 일반적인 견해로,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간의 진실한 애정을 그려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달래어, 그 여인의 고향인 슈넴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궁전으로 그녀를 데려 옵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사랑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 신실한 잔존자들에 대한 여호와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으로 분별됩니다. 아울러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두번째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가서에는 세 주인공으로 솔로몬과 여인과이 여인의 애인인 목자가 나옵니다. 일 천 여인을 아내로 맞았던 솔로몬은 이 여인의 환심을 사고자 무던히 애 쓴 결과 그 여인을 왕궁으로 데려 오지만, 이 여인은 일편단심으로 자기의 애인에게 정절을 지킵니다. 솔로몬이 아무리 감언이설(甘言利說) 로 꾀어도, 이 여인은 자기의 애인을 묘사함으로써 엉뚱한 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여기에서 이 여인은 세상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 순결을 지키는 이스라엘의 충성스러운 잔존자(殘存者) 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이 여인의 애인이었던 목자가 나타나 그녀를 신부로 맞아 자기 집으로 데려 갑니다.

   어느 해석을 받아들이든지 여기에 등장하는 각 구절들을 인물별로 다음과 같이 성경에 표시해 두면 독자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   인 : 1:1-7, 12-14, 16,17 ; 2:1, 3-17 ; 3:1-4 ; 4:16 ;5:2-8, 10-16 ; 6:2, 3, 14 ; 7:9b-13 ; 8:1-4, 6, 7, 10-12, 14

   솔로몬 : 1:8-11,15 ; 2:2 ; 3:5 ; 4:1-15 ; 5:1 ; 6:4-12 ; 7:1-9a ;8:13

   동료들 : 3:6-11 ; 5:9 ; 6:1, 13 ; 8: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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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강해

 제11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

                         Truthfulness Brings God's Delight

 

   본문말씀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 12:22).

 

   하나님은 진실을 사랑하십니다. 이는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실입니다. 이사야는 주 하나님을 "진리의 하나님"(사 65:16)이라고 불렀으며 주 예수님께서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고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진리의 사람들이 되므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선지자 스가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게 되리라"(슥 8: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진리를 말함으로 진리의 성읍을 이루고 사는 것을 원하시며 기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진리의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부부와 온 가족들이 서로를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않고 서로에게 진실을 말하며 진리의 가정을 이룬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을 인하여 기뻐하실 것입니다.

 

   십계명 중에서도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명령은 신명기 19:15-21에서 아주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증언에 대해서 경고하시며, 만일 그와 같은 위증이 사실로 들어날 경우 그 징벌은 엄중한 형벌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령 어느 사람이 재판정에서 살인에 대하여 거짓증언을 했을 경우 재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그를 처형하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골 3: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사탄의 속성입니다. 예수께서는 사탄에 대하여 "그는 진리에 서지 못하고...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는 행동은 바로 사탄의 행동과 같습니다. 반면에 진리를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자가 되라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3:3-4).

 

   여기에는 균형(balance)이 있습니다. 인자(mercy)와 사랑(love)이 없는 단순한 진리는 거칠게 됩니다. 잠언에서는 동시에 인자와 진리에 대해서 다섯 번 다르게 언급하고 계십니다. 신약에서도 역시 "사랑 안에서 진리로 말하라"(엡 4:15).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말은 진리(truth)와 인자(mercy)그리고 진리(truth)와 사랑(love)의 속성들이 모두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잠 12:17-18).

 

   어떤 이는 사랑 없는 진리의 말을 함으로 사람들에게 오히려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반면, 지혜로운 자는 사랑과 함께 진리를 말함으로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 줍니다.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뚫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잠 4:24).

 

   본래 거짓말쟁이는 때로는 전적으로 다 거짓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거짓을 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하간 증인으로서 전체 진실이 아닌  반만의 진실을 증언하게 될 때 배심원들에게 그릇된 판정을 내리도록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전체 진실이 아닌 절반의 진실을 말하는 것 역시 거짓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에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이는 다 총명 있는 자가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가 정직하게 여기는 바니라"(잠 8:7-9).

 

   솔로몬이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절반만의 진리를 말하는 거짓된 사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의 속담에 "반만의 진리는 모두 거짓말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 11"1).

 

   하나님께서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늘 감찰하고 계십니다. 조작된 작업시간표, 속이는 저울, 가격 조작, 거짓 영수증 등은 모두 주께서 미워하시는 것들입니다. 만일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방법으로 사업을 해야 합니다.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언제나 남을 속이는 말(loathsome) 하기를 즐겨하다가 종국에는 수치를 당하느니라"(잠 13:5).

 

   남의 말을 엿듣고 악한 의도로 거짓말을 꾸며 대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사탄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은 사탄이 항상 즐겨하는 행동이요 사탄은 또한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잠 14:25).

 

   누구의 청을 받지 아니할지라도 믿는 자들에게는 입을 열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억울한 고소를 당했을 경우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진실을 말해 줘야 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사악한 입술이 하는 말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느니라...사람의 제안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지니라"(잠 17:4-5).

 

   거짓말과 중상과 험담을 즐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실수로 넘어지는 것을 기뻐합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거짓말로 꾸며진 고소에 의해 고난을 당하시고 재판 받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온갖 희롱과 조롱하기를 기뻐했습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잠 17:9-10).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우리가 보고 듣고 아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믿는 자들은 때로 형제자매들이 실수하거나 혹은 죄로 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믿는 자들은 사랑가운데서 그 사람을 사적으로 권고해야 합니다. 만일 그가 권고를 받아들이며 합당한 태도를 보이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회개 함으로 다시 회복될 경우 그 일을 비밀로 지키는 것이 합당하고 옳습니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잠 18:13).

 

   거짓 보고는 종종 남의 자초지종을 다 듣는 데 실패함으로 비롯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종종 자신들이 외부에서 당했던 일들을 자기 부모에게 고합니다. 그럴 경우 어떤 부모들은 전체적인 이야기를 다 듣거나 자초지종을 다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먼저 화부터 내며 자기 자녀의 친구들을 혼내 주어야 한다고 속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말하는 사람의 온전한 의미와 그 뜻을 먼저 조심스럽게  모두 다 듣고 그 의미를 확인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의문이 있을 경우 더 질문을 하고, 그 전체적인 진실을 좀 더 확인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9:22).

 

   거짓과 속임수로 직장을 지키는 것보다 진실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직장을 잃어 가난하게 되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참고: 시 23:3).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잠 20:6).

 

   충성된 사람은 진실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어떤 약속한 일을 끝까지 지키며 선히 완성하는 사람입니다. 진실함과 충성됨은 서로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잠 20:17).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잠 21:6).

 

   거짓말과 부정직한 속임수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언듯 보기에 처음에는 달콤해 보이지만 종국에는 마치 돌들을 씹는 것과 같이 그 자신에게 큰 불행의 열매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는 사망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정당한 방법이 아닌 부정직한 재물은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현세에도 내세에서도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속임수로 삶의 방편을 삼는 자는 항상 남의주머니의 돈을 자신의 주머니로 긁어모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영적으로 자살 행위와 같습니다. 믿는 자들은 이러한 생활태도를 멀리해야 합니다.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경계표)을 옮기지 말지니라"(잠 22:28).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지계석(경계표, landmark)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배분해 주실 때 각 지파대로 나눠주신 땅의 경계표를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신명기 19:14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훈은 오늘날에도 매우 실제적인 교훈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거짓말을 다릉 방법으로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가령 자신의 집 뒤뜰의 담장을 이웃집 쪽으로 슬쩍 옮겨 자기 땅을 넗히는 것은 속이는 말을 하는 행동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거짓된 행위는 주님 앞에 미움이 되는 것입니다.

 

   "옛 지계석(경계표)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잠 23:10)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웃의 담장을 옮겨 자기의 경계를 넓히거나 혹은 고아나 과부를 상대하여 사기로 피해를 입히는 악하고 거짓된 행동들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를 범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또한 외국 노동자들이나 시골에서 올라 온 약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임금을 제대로 지불해 주지 않고 착취하는 자들은 모두 악한 자들입니다. 야고보서는 경고하기를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임금을 받지 못한)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약 5: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은 일반인들을 속이고, 기업가는 자신의 종업원을 속이고, 상인은 고객을 속이고, 교사는 제자들을 속이고, 정치가들은 백성들을 속인다면 그 사회, 국가는 곧 병들고 망하게 될 것입니다. 국가와 국가 간에도 각국 마다 그들의 옛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아  지켜 내려온 국토의 경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36년간 일본은 대한민국 땅을 침범하고 식민지화하여 자기들의 나라로 만들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거 일본인들은 결국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큰 대가를 지불하고 자신들의 손아귀에서 우리나라를 풀어주어야만 했습니다. 정의의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잠 23:23).

 

   솔로몬은 여기서 진리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으며 그것을 추구하고 잊어버리지 말 것을 충고하고 있습니다. 진리야말로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며 그것은 감춰진 보물과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진리의 가치를 생각하며 귀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잠 24:12).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르기를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10)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저지른 그릇된 일들을 나는 알지 못하노라고 거짓말하며 변명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들의 눈과 귀를 막고 그들의 행동에 아무런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그 마음에 품고 그것을 온전히 따르기로 작정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 온전한 길로 인도하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24).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잠 24:28-29).

 

   거짓말을 하는 중요한 동기 중의 하나는 원한 때문입니다. 때때로 부부간의 가정불화의 원인도 그와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분노에 휩싸이게 될 때 그 동안 마음에 쌓였던 것들을 들어내며 ' 당신이 내게 대하여 행한 것 같이 나도 그리하노라'고 사실 이상의 거짓말로 상대편에게 복수하려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이러한 사태는 폭행 같은 사건으로 발전하여 육체적 가해를 입히는 불행한 사고를 야기하고 이로 말미암아 결국 법정에까지 서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끝까지 상대편을 속이고 거짓 주장으로 맞설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피차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하는 말씀을 잊지 말 것입니다. 허물은 상대편이 아니라 내게 있다는 솔직하고 진실 된 마음으로 돌아와야 부부 사이도, 이웃 간에도 불행은 화평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듣는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네게 대한 악평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잠 25:9-10).

 

   만일 두 사람이 언쟁을 할 일이 생기면, 가능하면 그 언쟁을 두 사람만의 일로 지키도록 하십시오. 다른 사람의 불 필요한 개입으로 개인적인 문제가 공개적인 다툼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를 만천하에 공개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잠 27:5-6).

 

   사랑과 인자로 행동할 때 그 말은 진실하며 바른 때 바른 장소에서 항상 합당하게 행한 행동들은 하나님을 존귀케 만듭니다.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솔직하고 진실 된 말은 개인적인 우정 사이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정을 더욱 깊게 만들어 줍니다.

 

   "관원이 거짓말을 들으면 그의 하인들은 다 악하게 되느니라"(잠 29:12).

 

   이 세상은 신실한 사회와 거짓과 부패한 사회가 공존하는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가령, 덴마크는, 지구상에서 세금의 부정이 가장 낮은 나라로 칭송을 받는 나라입니다. 반면에, 많은 나라들은 그 정부나 사회 전반에 걸쳐 거짓과 뇌물과 부패가 깊숙히 스며들어 있습니다. 가정이나 어떤 단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이 있으며, 한 가정이나 한 조직의 지도자는 반드시 정직한 원칙을 세워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 30:5-6).

 

   설교자들이나 교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혹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더 한다면 그들은 거짓말쟁이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자들은 그 누구든지 절대로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고후 4:2).

 

   종교적인 거짓말쟁이

 

   성경 속에서 종교적인 거짓말쟁이의 전형적인 대표 인물은 유다입니다 .열한제자들이 그의 중심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그는 예수님의 훌륭한 제자 흉내를 냈습니다. 그들은 금전 회계 일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모든 거짓은 결국 다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몸으로는 예수님을 따랐으나 그영혼은 거짓의 아비 사탄을 따랐습니다.

 

   라울(Raul)은 형무소 재소자 중에서 98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모든 성경 통신과정을 훌륭하게 마쳤습니다. 그가 통신으로 보내온 서신들은 매우 영적이었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정도로 훌륭해 보였습니다.

 

   그는 서신으로 그가 가석방을 받았을 때, 옷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한 그리스도인이, 그에게 옷을 보내 주었습니다. 두 번째도 같은 방식으로 차가 필요하다고 호소하였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리스도인이 그에게 차를 보내 주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집에까지 차를 태워줄 수 없겠냐고 하여 그 소식을 들은 그리스도인이 그의 차로 집까지 그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네 번째의 또 다른 그리스도인에게는 그가 집에 당도했을 때 얼마의 돈이 필요하다고 호소 하였고, 네 번째 사람도 얼마의 돈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부모님께도 이틀 후 식당으로 모시고 나가 식사를 잘 대접하겠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라울은 그 약속조차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가석방을 받은 지 30시간이 지난 후 라울은 옛 애인을 찾았고 그녀와 마약을 하며 밤을 함께 지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도 않고 함께 식사를 나가자는 약속을 어긴 아들에게 몹시 실망했습니다.  그를 관리하던 가석방 감시관은 그를 거의 감옥으로 다시 돌려보내버릴 뻔 하였습니다.

 

   그곳 감시관은 그렇게 하는 대신 라울을 크리스천 훈련원으로 보내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섯 번째로 그를 돕는 또 한사람의 크리스천과 친구관계를 맺었습니다. 라울은 크리스천 친구에게 자신은 영적인 새 각성을 회복했노라고 말했습니다. 그곳 훈련원에서 나온 라울(Raul)은 다시 마약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교도소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라울은 그를 돕던 다섯 사람의 크리스천들 중 몇몇 사람에게 아무런 사과도 없이 또 다시 돈이 필요하다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라울(Raul)은 그의 부모들을 속였던 것처럼 크리스천들에게 똑 같이 행동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이용하려고 할뿐더러 자신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거짓과 속임 된 삶을 반복해서 살았습니다.

 

   결론

 

   라울은 종교적 거짓말쟁이의 전형적인 한 표본입니다. 그의 삶은 자신의 쾌락만을 좇을뿐 다른 이들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단지 진실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나타냅니다. 그는 약속을 지키며 크거나 작은 모든 일에 신실합니다. 그는 신뢰할 만하며 순전합니다. 그는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 1:47)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나다나엘과 같은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을 칭찬하신 이유는 현대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본 것과 취한 것이 동일하다"(What you see is what you get)라는 말과 같습니다. 나다나엘은 순수했고, 솔직했고 정직했으며 이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 12:22).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5).   EMM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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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강해

제9과 우리 심령에 양약이 되는 아름다운 말

Pleasant Words Bring Sweetness to the Soul

 

 

본문말씀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잠 11:32).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백 번씩 선택을 합니다. 특히 우리는 말을 할 때에도 언제 말을 할 것인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말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르시기를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idle word)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 12: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서약한 약속은 잘 지킨 것이나 깨뜨린 것이나, 그 모든 책임을 하나님 앞에 져야 할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 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서원한 것을 갚으라...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전도서 5:1-7).

 

하나님 앞에서 드린 약속뿐만 아니라 언어생활이나 무엇을 평하는 말을 할 때에도 분별없이 한 말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잠언에서는 우리의 언어에 관한 주제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과와 제11과, 두 과를 통하여 우리의 혀(tongue)에 관한 주제와 진실된 말에 대하여 공부할 것입니다.

 

듣기를 먼저 하라, 생각하라 그리고 말하라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잠 18:13).

 

우리는 듣기를 잘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가로막지 마십시오. 우리가 대답을 하기전에 상대방이 실제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지를 먼저 주의해서 잘 듣도록 하십시오. 야고보에서도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잠 13:3).

 

많은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황급히 어리석은 말을 내 뱉음으로써 제 자신의 무덤을 파곤 합니다.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바로 알기 전까지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는게 차라리 더 낫습니다. "고기는 입으로 낚시에 걸리고 사람은 그 입의 말로 덫에 걸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의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0:19).

 

범인을 기소하는 검사는 방어하는 자의 태도나 그가 하는 말을 듣고 난 후에 그를 기소합니다. 신문기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로몬은 "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 5:2)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잠 15:2).

 

지혜있는 자는 자신이 무엇을 말할 것인지 분명하게 알기 전에는 어느 주제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어리석은 자는 별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전문가인양 모든 주제를 다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결혼생활에 있어서 부부간에 조심성 없는 말은 그 결혼을 파멸로 이르게 하여 파탄시킬 수도 있습니다. 만일 결혼한 사람이 훗날 자신의 아내에게 "나는 결코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고 하면 그 다음에는 무슨일이 벌어질 수 있을 까요? 말할 것도 없이 그 결혼은 그 말 한마디로 끝장이 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부부간에 진실된 사랑의 말 한마디는 부부생활 중에 생긴 아픈 상처를 치유해 줄 수도 있고,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 넣어 줄 수도 있습니다.

 

"그의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의 심령을 환난에서 보존하리라"(잠 21:13).

 

아주 심각한 문제일수록, 무엇을 말할 것인가, 언제 말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하여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어려운 일 가운데서나 또는 환난 가운데서도 잘 헤쳐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말을 피하라

 

"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자기의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나"하는 자도 그러하니라"(잠 26:18-19).

 

사람을 죽이는 장난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지나치게 어리석은 말을 하는 자들은 미친 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농담은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는데 때로 심할 경우에 다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우정을 파괴시킬 수도 있습니다.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잠 12:18).

 

무례하고 화를 잘 내는 자의 말은 사람들 사이의 우정을 파괴합니다. 어린이들의 말에 " 막대기나 돌은 내 뼈를 꺾을 수 있어도 말(words)은 결코 나를 다치게 할 수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은 사실은 틀린 말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함부로 하는 말은 막대기나 몽둥이로 때리는 것보다 더 심한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심한 말은 물론 우리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가까운 사람의 심한 말은 우리에게 훨씬 더 큰 상처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또한 말이란 우리를 치료하는 훌륭한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근래 의학계에서는 의사들의 의료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새롭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로 의사는 진료와 함께 그의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과 훌륭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함을 알게 해줍니다. 좋은 말은 환자에게도 훌륭한 약이 될 수 있습니다.

 

렉스(Rex)라는 청년은 약혼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그의 약혼자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서로 기분이 좋은 상태로 있었습니다. 렉스는 그의 악혼녀에게 농담(joking)의 말을 건넸습니다. 단지 그녀와 가벼운 농담을 한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말은 약혼녀의 오래된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이 그녀에게는 결코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당황한 렉스는 거의 한 시간 이상 사과를 하며 그녀와 다시 원래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용서를 빌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말이란 우리가 가벼운 농담(humor)을 할 때에 조차도 매우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당신이 무엇을 말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하는 것은 상대방과의 우정을 더욱 굳게 쌓아갈 수도 있고 혹은 그 반대로 상대방과의 우정을 파괴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뢰를 존중하라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잠 25:9).

 

절대로 다른 사람들과의 신뢰를 배신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누구로부터 사적으로 들은 것이 있다면 비밀을 지키도록 힘쓰십시오.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잠 12:23).

 

"지혜 없는 자는 그의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잠 11:12).

 

이외에도 잠언 여러 곳에서는 문제에 관하여는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태도가 가장 현명함을 여러 번에 걸쳐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선한 태도(good mamners)를 훈련하라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잠 27:14).

 

항상 선한 태도를 훈련하십시오. 만일 아무도 그의 말을 듣기 원치도 않는 데도 사람들에게 수다를 떨면, 이처럼 말이 많은 사람은 스스로를 남이 싫어하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

 

제자들이 누가 더 크냐하고 서로 쟁론을 벌리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잠잠케 하기 위하여 어린 아이 한 명을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 " 너희 중에 자신을 낮추는 자가 가장 높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예수님은 제자들의 논쟁을 잠잠케 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을 교훈하셨습니다.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잠 15:28).

 

사도 바울은 "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고 하였습니다(골 4:6). 지혜로운 사람은 어떻게 논쟁을 그치게 하고,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잘 전달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악한 사람은 그의 입을 열 때마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여러 번 법정에 끌려갔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위하여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그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변론을 듣는 법정의 여러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도록 만드셨습니다. 그와 같은 실례들을 우리는 사도행전 마지막 장들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신도 그와 같은 경우를 당할 때 어떻게 진리로 맞서며, 어떻게 당신의 마음을 분명하게 말로 진술할 지를 훈련을 통하여 잘 배우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당신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는 당신의 비판자들을 조용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결코 남을 중상하지 말라

 

"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 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잠 24:28-29).

 

"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 십계명에도 거짓 증언을 하지 말 것에 대한 명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말을 그릇 인용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이나 그가 행한 것에 대하여 거짓으로 말하거나 혹은 그들이 하지도 않은 어떤 일을 고소하는 행동은 모두 명백한 죄가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악인은 그의 입으로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잠 11:9).

 

어떤 악한 자들은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왕의 금신상인 우상에 절하지 않는다 하여 느브갓네살 왕에게 그들을 참소하여 해치려했습니다. 그들이 참소한 말들은 그릇된 사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왕께 대한 불충한 행동이라고 그릇 적용하여 그들에게 죄를 덮어씌우려했습니다(단 3:12). 중상모략은 일부 참된 말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 목적은 항상 다른 사람의 명성을 무너뜨리려는데 있습니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잠 11"13).

 

그녀는 마침내 왕에게 진실을 고할 때가 이르렀습니다. 에스더서 7장-8장에서 왕후 에스더는 유대인들을 말살시킬 계교를 꾸미고 있는 하만의 악한 음모를 아하수에로왕에게 보고합니다. 에스더 왕후의 행동은 아주 지혜로웠으며 옳았고 그리고 정확했습니다. 결국 에스더는 그의 백성 유대인들을 위험가운데서 구원해 낸 역사적인 여인이 되었습니다(부림절의 주인공). 이와 같이 위험을 무릅쓰고 지혜롭게 행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고 혹은 고통이나 상처 가운데서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이런 진실한 보고와 행동은 언제나 옳고 정당한 것입니다.

 

형무소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경멸을 받는 사람은 구치소의 밀고자(informants)들입니다. 그들은 다른 죄수들에게서 들었던 말을, 자신들의 형량을 더 가볍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목적으로, 밀고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밀고자들이 재판정에서 증언을 하기도 하는데, 이 증언에 대한 대가로 그들은 감형과 같은 보상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명기 19:15-19는 법정에서의 거짓된 증언에 대한 경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허하고, 교만하고 혹은 부정적인 말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잠 10:11).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잠 10:14).

 

악한 자의 입은 범죄의 원인이 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잠 10:32).

 

많은 사람은 저속하고 더러운 생각이나 말들을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특히 이러한 저속한 말들은 성적인 것들을 암시하는 음담패설이 대부분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잠 12:13).

 

예수께서는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아니라 그 마음에서 나오는 그의 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5:16-20).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잠 12:6).

 

누구든지 당신에게 범행을 함께 계획하자고 꾀이는 자들을 피하고 그들과 절대로 말하지 마십시오. 함께 죄를 도모하자고 하는 자들에게 자신은 함께 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오히려 그들을 권하여 돌이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항 행실을 더럽히느니라"(고전 15:33)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의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잠 18:6-7).

 

많은 범죄는 입을 통하여 계획되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어떻게 누군가를 구타할 것인지, 해를 입힐 것인지, 혹은 죽일 것인지를 의논합니다. 선한 방면이든지 혹은 악한 방면이든지 말은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합니다.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것은 그 마음에 일곱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 속임으로 그미움을 감출지라도 그의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잠 26:24-26).

 

속이는 자는 어떤 한가지의 일을 말하지만 사실은 다른 일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결코 거짓된 말로 간교하거나 거짓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려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잠14:3).

 

교만을 주의하십시오. 당신이 한 말이 되돌아와 당신을 칠까 두려워 해야 할 것입니다.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잠 16:28).

 

이런 일은 많은 사람이 범할 수 있는 실수들입니다. 흔히 질투와 시기심을 드러내고, 친한 친구들 사이를 갈라놓는 일을 즐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결코 이러한 일에 가담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알 멜(Al Mel)은 그의 살인사건 첫 번째 재판에서 배심원 투표결과 8대 4로 무죄 평결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재판에서는 가석방(parole) 없는 종신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어째서 이와 같은 완연히 두 가지 다른 판결이 나올 수 있게 되었는가를 보면 놀랍습니다. 알 멜은 그의 두 번째 재판 선고가 내려지기 직전에 그와 함께 수감되어 있는 동료에게 자신이 실제로는 살인을 범했었노라고 우쭐거리며 자랑을 했던 것입니다. 비록 알은 자신과 함께 수감되어 있는 동료를 믿고 떠벌인 일이었지만 그의 실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알의 동료 수감자 중에 한 밀고자가 이 사건을 주관하는 지방 검찰총장에게 이 사실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이 일로 말미암아 살인범에게 정당한 판결이 내려지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결론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잠 25:11-12).

 

부정적인 말은 사람을 파멸시키지만 긍정적인 말은 다른 사람을 세워주게 되는 것입니다. 격려의 말은 치유와 위로와 사랑을 가져다줍니다. 긍정적이고 격려해주는 말 중에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제프(Jeff)는 그가 수감되어 있는 수감동 안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거대한 근육질의 우람한 체구의 소유자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톰(Tom)이 수감되어 있는 감방(cell)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는 성경책을 읽고 있는 톰을 향하여 "난 종교를 갖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종교는 사람을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고 그의 체구만큼이나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하였습니다. 그때 톰은 그의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서서 제프를 바라보며 "섭섭한 말이군." 이라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이어서 톰은 기쁜 마음으로 매우 나직한 목소리로 제프에게, 자신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고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주었는가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책에서 구원에 관하여 나와 있는 성경 구절들을 찾아 그에게 하나 하나 읽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난 후 3일이 채 되기도 전에 제프는 주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마음과 생애 가운데 자기 자신의 주님과 구주로 영접을 하였습니다. 제프가 확고한 믿음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내면에서는 현실에서 더 중요한 것에 대한 갈망을 떨치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톰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제프에게 계속해서 소개해 줌으로써 한 사람의 생애를 놀랍게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 합당한 말은 금사과와 같다"(잠 25:11)고 한 말씀은 사실이었습니다.

EMMAUS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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