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1-가이사에게 호소함(25-26장)


요절 : 사도행전 26장 19절

요점 :

1.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만사를 올바르게 하실 것입니다.

2. 복음에는 조요적인 교만의 여지가 없습니다.

3. "거의 구원 받았다"는 것은 잃어버린 것입니다.



바울이 베스도 앞에서 답변하고 가이사에게 호소함(25:1-12)


벨릭스는 악한 총독이었기 때문에 결국 로마 정부에 의해 축출 당했습니다. 베스도가 부임했을 때 바울이 감옥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려했던 또 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베스도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면 다시 바울을 죽일 음모를 꾸몄으나 베스도는 그렇게 하기를 거절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가이사랴로 가겠다고 말하고는 법정에서 송사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여러가지로 바울을 고소했지만 모두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베스도는 바울에게 재판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겠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거절했습니다. 로마시민인 그는 이 사건을 로마의 가이사에 의해 심리받겠다고 요구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유대땅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결코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가이사에게 호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때때로 이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정의를 행하지 못하고 불의가 다스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느날 의로운 심판주이신 하나님께서 만사를 올바르게 할 것입니다(살후 1:6을 보십시오).


베스도가 바울에 관해 아그립바 왕에게 말함(25:13-22)


얼마 후에 아그립바 왕이 버니게와 함께 새로운 총독인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를 방문하였습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에게 유대인들이 바울을 아주 혹독하게 고소했다는 것과 그가 가이사에게 호소했다는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 관해서 상당히 많이 들어왔고 그에 관해서 더 알려고 궁금해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그를 불러 말을 듣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그립바 왕은 헤롯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칼로 야고보를 죽인 헤롯 왕의 아들이었습니다(행 12:1-2). 그의 증조부는 주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마 2:13). 그의 아버지의 삼촌 역시 헤롯이라 불리우며, 주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그분을 조롱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마도 그 사람에게서 공의로운 심판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 사악한 사람들이 지고한 하나님의 참된 종을 재판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현재에는 죄인의 손에 통치권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곧 주님께서 주권을 가지시고 모든 불공정함과 죄가 드러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재판의 시작(25:23-27)


이제 바울은 다섯 번째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변론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처음에 예루살렘의 광적인 폭도들에게 죽을 뻔한지 2년 이상이 지난 후였습니다.

   때가 되자 아그립바 왕은 버니게와 함께 크게 위의를 떨치며 그성의 고위층 사람들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이 끌려와서 베스도에 의해 소개되엇습니다. 베스도는 바울에 대한 송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진술되지 않은 채, 죄수를 가이사에게 보낸다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과 재판관이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우리는 아그립바가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를 보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내가 아닌 버니게와 함께 죄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베스도는 그보다 좀더 나은 사람이었지만 그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전에 바울을 놓아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처럼 바울은 자신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의바르게 말을 했고, 늘 주 예수님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바울의 변론 : 바울의 옛 신앙(26:1-11)


아주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바울은 언제나 훌륭한 유대인이었고 일찌기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성적이었으며, 유대인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인 메시야 또는 왕 또는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분이 오실것을 고대하였습니다. 이제 그분이 오셔서 바울이 그분을 믿었는데 그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를 죽이려고 박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반대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이것 또는 저것을 행하라. 그러면 당신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런 방법에는 사람들이 무엇인가 자랑할만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너의 구원에 대해서 값을 치루었다. 내가 다 했으며 다 끝마쳤다" 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적인 자랑의 여지가 없고 종교적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싫어합니다.


바울의 변론 : 그리스도를 발견함(26:12-23)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회심에 대한 이야기를 세 번째 읽게 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기 때문에 유익한 것입니다. 그 어떤것도 불필요하게 덧붙여지지 않았고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것도 삭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책에서  바울이 구원받은 원인을 세번 보게 될 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게 됩니다. 그당시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크게 핍박했던 사람은 바울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는 지금까지 살았던 그리스도의 종 가운데 가장 위대한 종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긍휼하심으로 자신의 영혼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말하는 것이 피곤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나는 하늘의 환상에 불순종하지 않았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당신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하신다면 당신의 구세주로 주님을 모시지 않음으로 그 환상에 불순종하지 마십시오. 만일 바울이 당신에게 주님을 섬기도록, 어쩌면 먼 나라에 가도록 비전을 준다면 당신도 분명히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을 로마로 보내라고 명령함(26:24-32)


바울이 말했을 때 베스도는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네가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구나" 라고 말했습니다. 그들 중 아무도 바울의 메시지를 믿지 않습니다. 그들 모두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심지어 제정신이 아니라고 부르면서 경멸적으로 복음을 거절합니다. "거의는 쓸모없으며 거의는 그저 실패한 것이며 더욱 괴롭게 울부짖을 만큼 슬픈 것이고 거의는 그저 잃어버린 것입니다. 당신이 정말 구원받았는지 지금 확인해 보고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금 즉시 그리스도께 당신을 맡기십시오. 주님은 당신을 받아주시고 구원하셔서 영원토록 보호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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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07 건너편 지역들(13-15장)


요절 : 사도행전 13장 39절, 15장 11절

요점 :

1. 구약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한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3. 핍박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4. 선행은 아무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5. 선행은 구원받은 어떤 사람도 지켜줄 수 없습니다.

6. 선행은 구원해 주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필수요소입니다.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1. 바울과 바나바가 파송됨(13:1-12)


안디옥 교회에는 바울과 바나바 이외에도 세명의 다른 성경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며 주님을 섬기고 있을 때, 성령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시킬 특별한 일을 위해 그 두 사람을 파송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바울과 바나바는 이 부르심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었고 교회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방법으로 그들을 파송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전도자들과 교회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했습니다.

   그들이 방문한 첫번째 장소는 구브로 섬이었고 마가 요한은 수종자로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파하며 온 섬 가운데로 지나갈 때, 그들은 서기오 바울(Sergius Paulus)이라 불리는 그 지방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갔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었지만 박수 엘루마가 진리를 듣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결국 바울이(Paul : 이때부터 계속 이 이름으로 불리워짐) 엘루마를 얼마동안 소경이 되도록 벌함으로 복음의 빛을 방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서기오 바울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진리의 빛을 방해하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얼마 후에는, 사람이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어 마치 소경과 같이 되므로 더 쉽게 사단의 거짓말을 믿게 될 것입니다.


2.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의 증거- 그리스도의 죽으심(13:13-29)


그들은 구브로에서 더 위험한 지역인 대륙으로 돌아왔으며 이곳에서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우리는 마가가 왜 돌아갔는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젊은 사람들이 주님의 사역을 아주 용감히 시작하지만, 곧 떠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님께서 신실한 일꾼을 사랑하시는 것에 비하면 이일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곧 두 사람은 비시디아 땅에 있는 안디옥이라 불리는 다른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회당으로 먼저가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바울이 전한 말씀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고, 다른 장소에서도 자주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전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먼저 스데반이 했던 것처럼 그들에게 구약 내용을 제시하고는 가능한 빨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23절). 바울은 주님께서 다윗 왕의 직계였다는 것과 주님의 선구자인 세례요한, 유대인들이 주님을 배척한 것, 그분이 바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라는 것, 그리고 그분의 죽으심 자체가 구약성경의 예언의 성취임을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잘 말하려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 두가지는 우리의 구원자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3. 바울이 전한 말씀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13:30-41)


물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을 듣는 것만으로 사람이 행복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즉시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영광스런 부활하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많은 증인들이 있었으며 바울은 그 사실이 분명함을 입증하기 위하여 구약성경의 시편을 인용했습니다. 그후에 바울은 그분을 통해서 그들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으며 만일 이러한 하나님의 제안을  거절할 경우에 대한 경고를 하였습니다. 실제로 구원에 대해 주님을 믿지 않고도 그리스도께서 놀라운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4. 안디옥에서 바울이 전한 말씀에 대한 결과(13:42-52)


그 다음 안식일에 유대인과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바울의 설교를 다시 듣기 원했기 때문에 거의 온 성이 그에게 들으려고 나왔습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들으려고 그런 큰 무리가 모인 적이 없었기 깨문에 그들에게는 너무도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과 논쟁을 시작했고 변박하고 비방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로 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방인들을 기쁘게 했지만 유대인들을 더욱더 분노하게 했고 결국 매우 큰 소란이 일어나 사도들은 그 성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받은 것을 기뻐하는 한 무리의 행복한 제자들을 뒤에 남겨두었습니다.

   은혜의 때가 주어질 때마다 사단이 소동을 일으키고 할 수 있다면 주님의 사역을 방해하려 한다는 것을 학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기뻐하였으며 그 후로 특히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오직 우리의 증거를 통해서만 주님을 알게 된다면 믿지 않는 몇몇 사람들로부터 받을 약간의 모욕을 염려하시겠습니까?


5.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처음에는 경배를 받았지만 후에는 돌에 맞음(14:1-18)


사도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으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를 치유하면서 아주 오랜 기간동안 머물렀으며 그 결과는 매우 비슷했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믿었지만 유대인들은 대적했고 사람들에게 바울과 바나바를 죽이게 돌을 던지라고 선동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것을 알고 피신하여 이웃한 큰 성 루스드라로 도망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를 치유했는데 이것이 사람들에게 바울과 바나바가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온 두 이방신임에 틀림없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믿음으로 바울과 바나바에게 짐승을 희생제물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물론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서 절하려고 했을 때 그에게 일어서라고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바울과 바나바는 받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신적인 경배를 받는 것은 매우 죄악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그렇게 선하신데도 왜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어떤 피조물을 그렇게 자주 기꺼이 경배하려 하는 것일까요?


6. 루스드라를 떠나 안디옥으로 돌아옴(14:19-28)


그러나 루스드라의 군중들은 주위에 의해 곧 변화되어 유대인들이 바울에 반대하도록 선동시켰을 때, 분노하여 바울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죽었다고 생각되자 버려두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에게는 아직 주님을 위해  해야할 큰 사역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무서운 경험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주님만을 섬겨 나가기 원했습니다. 그들은 더베로 갔었지만 그곳에서 다시 안디옥 교회로 돌아가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가혹하게 취급했던 이 성들을 결코 피하지 않고 그들이 그곳에 있을 때 구원받았던 몇 사람들을 굳게 하면서 바울은 그 모든 성들을 다시 지나서 곧장 나아갔습니다. 그는 또한 각처에 세워진 작은 교회들을 보기 원했기 때문에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났고 서로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본 교회로 돌아와 하나님께서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신 놀라운 일에 관하여 말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공회의


1.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논쟁(15:1-5)


우리는 11장에서 믿은(적어도 믿었다고 말하는) 유대인 지도자들 중의 일부는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교제했다는 것 때문에 그와 논쟁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인도 하셨는지 설명하자 그들은 더이상 할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들이 다시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안디옥까지 가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할례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복을 구한다는 구약 시대의 표시였습니다. 이 일은 그 당시에는 선한 일이었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명령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모든 의식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어졌고 폐해졌습니다. 더욱이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에 어떤 것을 더하려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받기 위한 유일한 필요사항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주님께서 이루신 사역뿐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은 비참한 죄인은 하나님의 사랑외에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바랄 수 없지만 할례. 세례, 또는 교회 출석과 같은 자신의 어떠한 선한 행위도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그리스도이며,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신뢰하십니까? 아니면 이것에 당신의 공로를 덧붙이겠습니까?

   안디옥에 있는 성도들은 이 잘못된 가르침에 혼동되었고 바울과 바나바는 그것이 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켰지만 그래도 그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교회 지도자들과 상의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사도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매우 반갑게 영접했지만, 믿는 바리새인 중 일부는 모든 사람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 베드로가 어떻게 성령님이 이방인 신자들에게 주어졌는지를 말함(15:6-11)


그래서 그들은 함께 모이기로 결정하여 철저하게 그 문제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대부분의 문제와 논쟁들은 함께 모여 끝까지 대화한다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베드로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에 근거해서 사실상 이방인들을 받으셨는 가를 단순하게 상기시켰습니다. 이것은 고넬료와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성령님이 주어졌기 때문에 증명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바리새인들이었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없이 받으신 사람들에게 율법 준수라는 짐을 지우려고 애쓰는 것입니까? 유대인 자신들도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유대인들도 지키지 못한 것을 이방인들에게 행하도록 강요하는 것입니까?


3. 바울, 바나바 그리고 야고보가 말함(15:12-21)


그후에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가 나음을 받은 것과 같은 예를들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방인들 사이에서 놀라운 표적을 행하셨는지 말했습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수백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을 받으셨다는 베드로의 진술을 지지하기 위해서 아모스의 예언을 인용했습니다. 이것으로 논쟁이 해결되었고 우리에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보여주었습니다.

야고보의 결론은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모세의 법을 지키도록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들은 이방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음행과 우상과 어떤 음식들로 인한 죄를 피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이방인들에게 온 율법을 지키는 것은 짐이 되기 때문에 매우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또한 금지된 네가지 일들 조차도 구원의 방법이라고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것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런 행위가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지 않기 때문에 피해야 할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매우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선행은 구원의 열매이지 구원의 도구가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이제 내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기 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 자신의 구원을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나를 먼저 사랑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4. 이방인 신자들에게 쓴 서신(15:22-29)


야고보의 제안은 모든 교회에 잘 받아들여졌으며 그들은 그 서신을 가지고 안디옥으로 돌아갈 유다와 실라 두 사람을 택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형제 중에 인도자"(22절)로 표현되었습니다. 틀림없이 그들은 이 영광스러운 칭호를 받을 가치가 있었지만, 그보다 더 나은 표현을 25절에서 보게됩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지려고 애쓰는 것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은 것입니다. 그러나 몇몇 그리스도인들은 명성을 얻기 위해 그들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서신에서 사도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될 것을 전하라고 그 사람들을 보낸 것이 아님을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네가지 필수적인 일들 이외에는 그들에게 어떠한 짐도 지우지 않았습니다.


5. 이방인들이 기쁨으로 그 서신을 받음(15:30-35)


그들이 안디옥에 도착하자 온 교회를 모아 서신을 읽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 실제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바울의 가르침이 결국 옳았으며 누구든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을 듣고 크게 안심했습니다. 더우기 유다와 실라도 그 사람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믿음을 굳게했습니다. 얼마 후에 형제들이 그들을 예루살렘에 돌려 보냈지만, 실라는 계속 머물며 주님의 사역을 돕고자 했습니다.

   당신은 구원을 받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문제가 이제 완전히 해결되어졌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 서신에서 보면 유대인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이 사람들에게 그 가르침을 더하려고  매우 먼곳까지도 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이 직면한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은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에 있습니다.


6. 바울과 실라가 제2차 전도여행을 시작함(15:36-41)


얼마 후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전에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는 성들을 다시 방문하러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바나바는 기꺼이 원했지만, 그 첫번째 전도여행에서 낙오한 조카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기를 거절하므로 결국 그들은 서로 다른 길로 가야만 했습니다. 이제 사도행전에서 바나바나 마가를 볼 수 없지만 바울은 그들 모두를 친구로 여겼습니다(고전 9 :6, 딤후 4:11).

   바울은 실라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와 함께 가기를 기뻐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형제들은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며 전송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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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03 승리와 시험(3-5장)


요절 : 사도행전 4장 12절, 5장 29절

요점 :

1. 구원은 그리스도께만 있으며 가장 악한 죄인들까지도 구원하십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신뢰해야합니다.

3.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기 위해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4. 하나님은 거짓말 하는 것을 참으실 수 없습니다(계 21:8).

5. 죄가 사라질 때 복이 오게 됩니다.

6. 하나님께 저항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치유됨


1. 베드로와 요한이 기적을 행함(3:1-10)


어느날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3시쯤 성전으로 들어갈 바로 그 때 몇몇 사람들이 한 거지를 메고 왔습니다. 이 사람은 앉은뱅이로 태어나서 지금은 40세나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보자 그는 즉시 구걸을 했습니다(1-3절).

   베드로는 많은 돈을 갖고 있지 않았고 그러한 용도로 사용할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 오후에 성전에 들어가는 모든 부유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나은 무엇인가를  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앉은뱅이의 손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는 즉시 힘을 얻어 걷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 예수님을 아는 것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돈을 갖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구걸한 적은 돈 대신에 훨씬 더 나은 것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것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 대신 우리가 원했던 것보다 더 유익이 되는 것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지혜, 사랑,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2. 베드로가 모인 사람들을 가르침(3:11-26)


이 큰 기적은 곧 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으며 그들은 베드로가 그런 것을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거룩한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 사람이 치유된 것은 진정으로 나사렛 예수의 능력으로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해 전했고 그들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영화롭게 되셨으며(13절) 다시오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19-21절). 베드로는 그 사람들에게 구약성경의 모세가 오래 전에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영광을 구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리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주위 사람들과 말할 때 잠시 동안은 여러 가지 것들을 말할 수 있지만 주님에 대한 것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말이나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이러한 일을 적절하게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이 알아야 하고 그러한 것은 성경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3. 베드로와 요한이 체포됨(4:1-12)


당신은 앉은뱅이를 고쳐주고 예수님에 대해서 전했다는 것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이 체포되었던 것이 이상하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성경을 전혀 믿지 않았으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원했던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 예수님을 높히는 베드로는 실제적으로 그들의 잔인한 범죄에 대해서 책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적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장 미워하며 주님에 대해서 증거하는 자들을  박해하는 것을 언제나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 앞에 고소되었을 때 베드로는 그들이 행한 그 선행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 것임을 고백하고는 곧 바로 그리스도를 죽인 유대인들을 고소했습니다(10절). 예수님의 이름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이름입니다. 또한 그들의 흉악한 죄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실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4. 베드로와 요한이 풀려남(4:13-22)


제사장들 조차도 베드로와 요한의 용기에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무식하고 학문없는 범인(凡人)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부였지만 3년 동안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았으며 대제사장들 보다 훨씬 더 현명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재판관들 조차도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13절). 사람들에게 당신은 예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한 것을 간증할 용기가 있습니까?

   그들도 큰 기적이 행해졌음을 시인했지만(16절) 여전히 자신들이 잘 못되었다는 것을 시인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제자들을 위협하여 더 이상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시도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인가요!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선언했습니다(19절).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서  부모와 국법에 순종해야 한다고 명령받았습니다. 그러나 부모나 정부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게 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불순종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5. 그리스도인들의 기도(4:23-31)


그런 다음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은 내보내었고, 베드로와 요한은 자유롭게 되자마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로 가서 함께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신은 자유로운 시간에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있기를 택하겠습니까 아니면 기도하고 찬송 부르는 것을 지루하다고 보십니까? 오직 진정으로 거듭난 자들만이 주님의 임재를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유대인들의 핍박으로부터 건져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에 유의하십시오. 오히려 그들은 계속해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며(29절) 하나님께서 아드님을 영화롭게 할 큰 일을 해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속에서 주님이 하시는 큰 일을 보고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앉은뱅이와 소경을 치유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보다 더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6. 그리스도인들이 능력을 받음(4:32-37절)


그들이 기도했을 때 집이 진동했고 성령으로 충만해졌으며(그들이 기도했던 대로) 매우 용감하게 증거했습니다(31절). 그렇지만 그들은 자기 재물을 서로 나누는 또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나타냈습니다(32절). 어떤 이들은 심지어 그들의 밭을 팔아 사도들이 주님을 섬기는데 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그 돈 모두를 내놓았습니다. 바나바는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고 조금 뒤에 그에 관해서 상당히 많이 듣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일을 해서 그 물질로 주님의 사역에 모든 시간을 사용하는 주님의 종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주님이 오실 때 주실 상급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사단에게서 온 반대


1.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말(5:1-11)


우리는 이미 사단이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을 이끌어 베드로와 요한을 감옥에 넣음으로써 어떻게 주님의 사역을 방해하려고 했는지 보았습니다. 이 5장에서 우리는 사단이 두 사람을 거짓말 하도록 미혹함으로써 교회 내에서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을 봅니다. 그 다음에는 외부로부터 교회를 공격하여 제사장들이 사도들을 다시 감옥에 가두는 것을 보게 됩니다.

   4장의 끝부분에서 우리는 신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을 보았고 심지어 그들의 밭을 팔아 다른 사람들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러한 일을 한 것이지 사람들에게 영예를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두 명은 진정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영예를 얻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들이 가져온 돈이 그 밭을 판 값의 전부라고 말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것을 사람에게만 아니라 성령님께 거짓말 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말을 듣자마자 모두 엎드러져 죽었고 장사지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모든 거짓말이, 하나님의 일과 관련되었을 때는 특히,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로부터 우리를 지키실 수 있습니다.


2. 사도들의 기적(5:12-16)


거짓말에 대한 벌로써 사형은 잔인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가 깨끗하게 보존되고 죄가 없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없이는 어떤 복도 있을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 7장 25절에서 아간의 이야기를 기억하십시오.

   교회의 죄가 처리된 후에는 복의 때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5장에서도 사도들이 주님으로부터 모든 병을 고치는 특별한 권능을 부여받은 것을 읽게됩니다. 처음부터 사도들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것임을 유대인들에게 분명히 알게 하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도들에게 이 놀라운 기적을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그보다 더 다양한 기적과 더욱 놀라운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활이 변하는 기적과, 죄에 드려졌던 사람이 지금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며,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를 지키시는 성령님 등. 이런 것들은 기독교가 진실임을 누구에게나 확신시키는데 충분합니다.


3. 한 천사가 사도들을 감옥에서 구출함(5:17-21)


그러나 사단이 다시 개입하자 사도들의 무리가(베드로와 요한뿐만 아니라) 옥에 갇히게 됨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 천사가 밤에 옥문을 열고는 그들에게 성전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벽에 가서 백성들에게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전했습니다. 복음은 생명을 전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자들은 죄와 허물로 죽은 것입니다(엡2:1).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는지 알려 주는 것은 그들에게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길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그들에게 구원받는 방법 뿐만 아니라 이 생명에 관한 "모든 말씀'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재판(5:21-28)


그때에 대제사장이 공회를 소집하고 관속들에게 죄수들을 데려오도록 보냈습니다. 옥문이 잠겨있었고 지키는 사람들은 밖에서 지키고 있었지만 안에는 죄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이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후에 어떤 사람이 와서 제자들이  성전에서 다시 전파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관속들이 제자들에게 공회에 오도록 조용히 청하였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구하실 수 있음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감옥에서 구출해 내신 것과 또 다른 기적들을 통해 제사장들이 더이상 하나님을 대적하려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전에 한 잘못을 시인하기 보다는 이제는 사도들에게 그들의 명령을 어기고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책임을 그들에게 지우려 한다고 고소했습니다. 기적은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도와주지만  사단에 의해 소경된 자들은 많은 기적을 보더라도 믿지 않습니다.


5. 베드로의 증거 : 하나님께 불순종하지 말라(5:29-33)


베드로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에 대해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을 책망했던 것은 아주 진실한 것입니다. 비록 자기의 생명을 내놓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배드로는 책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이 끔찍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사람을 기꺼이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으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 바로 그 죄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사람들은 사도들을 죽이려고 시도함으로 그들의 범죄한 마음에 더 큰 죄를 더했습니다(33절). 첫째로 그들은 주 예수님을 못박았고, 그 다음에는 성령님을 통한 하나님의 용서를 거절했으며, 그후에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죽이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 뿐만 아니라 죄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와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결국 죄인에 대한 구원의 마지막 기회가 사라질 때까지 한가지 죄는 언제나 또다른 죄를 불러옵니다. 만일 당신이 주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서 영접지 않았다면 지금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6. 가말리엘의 증거 :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5:34-42)


처음에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그의 종들을 구출해 내셨고(19절) 지금은 사도들을 대신하여 공회 가운데 한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가말리엘은 사도바울을 가르쳤던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22:3).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결코 아니었으며 지금 말하는 것은 단순한 인간의 지혜였습니다. 그의 요점은 그 단체가 그저 사람에게 속한 것이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드다와 유다라는 두 사람에게 일어났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중요한 사람인것처럼 많은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죽자 그 추종자들은 곧 흩어졌습니다.. 반면에, 이 단체가 참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면, 그들은 실제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드러나게 되므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이 충고는 사도들을 도왔지만 그렇다고 가말리엘이 참으로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중립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사단으로부터 하나님 쪽으로 옮기지 않는한 당신은 결코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담장 위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사도들은 풀려났고, 그들을 위해서 많은 고난을 받으셨던 주 예수님을 위해 고난받을 수 있었던 것때문에 기뻐하면서 떠나갔습니다. 대제사장에게 순종하지 않고, 그들은 공개적으로든 백성들의 집에서든 주 예수님을 전파하고 가르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주여,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고 매일 주님을 섬기도록 준비시켜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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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과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

                                                            (7장 1절~25절)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사도 바울은 이미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명백하게 증명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또 하나의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구원을 받은 후에 생활의 규범이라 할 수 있는 율법을 꼭 지켜야만 하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6장에서, 그리스도인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에대한 이유는 이제 분명해질 것입니다. 덧 붙여서 사도 바울은, 사람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거룩해질 수 없음을 증명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1. 율법은 죽은 사람에 대해서 재판할 권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혼인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혼인법은 부부가 함께 살 동안만 유효합니다. 그러나 부부 중 한사람이 죽으면 그 법은 무효가 되고, 살아있는 사람은 다시 결혼할 수 있습니다(1~3절).


   2.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율법에 대해 죽었습니다(4절). 주 예수님이 우리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셨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대해 죽은 것입니다. 이제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낸 바 되었으므로 그 역시 율법에 대해 죽은 것입니다. 율법의 모든 요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율법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에 대해 관계할 수 없습니다.

  

   3.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신자는,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4절). 이제는 율법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자의 생활 규범이 됩니다. 혼인은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보잘 것 없는 노력으로 거룩해지려고 하는 것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4.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열매를 맺게 합니다(4절).

   1)율법이 어떤 것을 금할 때, 사람의 마음은 그일을 더 하고 싶어합니다. 율법은 어긴데 대한 형벌은 죽음이고, 또 우리는 율법을 지킬 만한 힘이 없기 때문에 율법 아래서 맺은 열매는 죽음뿐입니다(5절).

   2) 이제 우리가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에 주님을 두려움이나 의무로써가 아니라, 자진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6절).


   5. 이 말이 율법자체가 죄악이라는 뜻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율법의 거룩함 바로 그것이 사람의 죄악의 큼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은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다면 악한 행동은 물론, 악한 생각이 죄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7절). 그러나 우리의 악하고 부패된 성품을 이용하여 마음속에 각양 악한 생각을 일으켜서 우리로 금지된 행동을 하고 싶어 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없으면, 죄를 죄로 여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나타날 때, 죄를 죄로 여기며, 죄가 기회를 타서 활동할 것입니다(8~11절). 그러므로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율법은 죄의 본능인 사악함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부패하여 금지하는 것을 하고 싶어합니다(12~14절).


   6.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거룩한 생활을 이루고자 함은 낙심과 절망을 가져옵니다. 사도바울은 이 점에서 자신의 체험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15~24절).

   1) 그는 마땅히 해야 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일을 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 자신이 미워하던 일을 행했습니다.

   2) 그는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옛 성품은 그것에 순종하기에는 무력했습니다.

   3) 그가 옳은 일을 행하고자 할수록, 그에 따른 실패는 더욱 컸습니다.

   4) 마침내 그는 손을 들고 이렇게 패배를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


   7. 이 때 비로소 사도 바울은 성결의 비밀이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 하리로라." 라고 외치는 것이 그의 승리의 선언이었습니다. 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서 역사할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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