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07 건너편 지역들(13-15장)
요절 : 사도행전 13장 39절, 15장 11절
요점 :
1. 구약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한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3. 핍박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4. 선행은 아무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5. 선행은 구원받은 어떤 사람도 지켜줄 수 없습니다.
6. 선행은 구원해 주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필수요소입니다.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1. 바울과 바나바가 파송됨(13:1-12)
안디옥 교회에는 바울과 바나바 이외에도 세명의 다른 성경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며 주님을 섬기고 있을 때, 성령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시킬 특별한 일을 위해 그 두 사람을 파송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바울과 바나바는 이 부르심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었고 교회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방법으로 그들을 파송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전도자들과 교회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했습니다.
그들이 방문한 첫번째 장소는 구브로 섬이었고 마가 요한은 수종자로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파하며 온 섬 가운데로 지나갈 때, 그들은 서기오 바울(Sergius Paulus)이라 불리는 그 지방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갔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었지만 박수 엘루마가 진리를 듣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결국 바울이(Paul : 이때부터 계속 이 이름으로 불리워짐) 엘루마를 얼마동안 소경이 되도록 벌함으로 복음의 빛을 방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서기오 바울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진리의 빛을 방해하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얼마 후에는, 사람이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어 마치 소경과 같이 되므로 더 쉽게 사단의 거짓말을 믿게 될 것입니다.
2.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의 증거- 그리스도의 죽으심(13:13-29)
그들은 구브로에서 더 위험한 지역인 대륙으로 돌아왔으며 이곳에서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우리는 마가가 왜 돌아갔는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젊은 사람들이 주님의 사역을 아주 용감히 시작하지만, 곧 떠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님께서 신실한 일꾼을 사랑하시는 것에 비하면 이일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곧 두 사람은 비시디아 땅에 있는 안디옥이라 불리는 다른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회당으로 먼저가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바울이 전한 말씀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고, 다른 장소에서도 자주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전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먼저 스데반이 했던 것처럼 그들에게 구약 내용을 제시하고는 가능한 빨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23절). 바울은 주님께서 다윗 왕의 직계였다는 것과 주님의 선구자인 세례요한, 유대인들이 주님을 배척한 것, 그분이 바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라는 것, 그리고 그분의 죽으심 자체가 구약성경의 예언의 성취임을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잘 말하려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 두가지는 우리의 구원자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3. 바울이 전한 말씀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13:30-41)
물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을 듣는 것만으로 사람이 행복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즉시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영광스런 부활하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많은 증인들이 있었으며 바울은 그 사실이 분명함을 입증하기 위하여 구약성경의 시편을 인용했습니다. 그후에 바울은 그분을 통해서 그들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으며 만일 이러한 하나님의 제안을 거절할 경우에 대한 경고를 하였습니다. 실제로 구원에 대해 주님을 믿지 않고도 그리스도께서 놀라운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4. 안디옥에서 바울이 전한 말씀에 대한 결과(13:42-52)
그 다음 안식일에 유대인과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바울의 설교를 다시 듣기 원했기 때문에 거의 온 성이 그에게 들으려고 나왔습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들으려고 그런 큰 무리가 모인 적이 없었기 깨문에 그들에게는 너무도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과 논쟁을 시작했고 변박하고 비방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로 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방인들을 기쁘게 했지만 유대인들을 더욱더 분노하게 했고 결국 매우 큰 소란이 일어나 사도들은 그 성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받은 것을 기뻐하는 한 무리의 행복한 제자들을 뒤에 남겨두었습니다.
은혜의 때가 주어질 때마다 사단이 소동을 일으키고 할 수 있다면 주님의 사역을 방해하려 한다는 것을 학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기뻐하였으며 그 후로 특히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오직 우리의 증거를 통해서만 주님을 알게 된다면 믿지 않는 몇몇 사람들로부터 받을 약간의 모욕을 염려하시겠습니까?
5.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처음에는 경배를 받았지만 후에는 돌에 맞음(14:1-18)
사도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으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를 치유하면서 아주 오랜 기간동안 머물렀으며 그 결과는 매우 비슷했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믿었지만 유대인들은 대적했고 사람들에게 바울과 바나바를 죽이게 돌을 던지라고 선동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것을 알고 피신하여 이웃한 큰 성 루스드라로 도망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를 치유했는데 이것이 사람들에게 바울과 바나바가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온 두 이방신임에 틀림없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믿음으로 바울과 바나바에게 짐승을 희생제물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물론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서 절하려고 했을 때 그에게 일어서라고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바울과 바나바는 받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신적인 경배를 받는 것은 매우 죄악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그렇게 선하신데도 왜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어떤 피조물을 그렇게 자주 기꺼이 경배하려 하는 것일까요?
6. 루스드라를 떠나 안디옥으로 돌아옴(14:19-28)
그러나 루스드라의 군중들은 주위에 의해 곧 변화되어 유대인들이 바울에 반대하도록 선동시켰을 때, 분노하여 바울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죽었다고 생각되자 버려두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에게는 아직 주님을 위해 해야할 큰 사역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무서운 경험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주님만을 섬겨 나가기 원했습니다. 그들은 더베로 갔었지만 그곳에서 다시 안디옥 교회로 돌아가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가혹하게 취급했던 이 성들을 결코 피하지 않고 그들이 그곳에 있을 때 구원받았던 몇 사람들을 굳게 하면서 바울은 그 모든 성들을 다시 지나서 곧장 나아갔습니다. 그는 또한 각처에 세워진 작은 교회들을 보기 원했기 때문에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났고 서로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본 교회로 돌아와 하나님께서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신 놀라운 일에 관하여 말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공회의
1.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논쟁(15:1-5)
우리는 11장에서 믿은(적어도 믿었다고 말하는) 유대인 지도자들 중의 일부는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교제했다는 것 때문에 그와 논쟁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인도 하셨는지 설명하자 그들은 더이상 할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들이 다시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안디옥까지 가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할례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복을 구한다는 구약 시대의 표시였습니다. 이 일은 그 당시에는 선한 일이었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명령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모든 의식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어졌고 폐해졌습니다. 더욱이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에 어떤 것을 더하려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받기 위한 유일한 필요사항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주님께서 이루신 사역뿐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은 비참한 죄인은 하나님의 사랑외에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바랄 수 없지만 할례. 세례, 또는 교회 출석과 같은 자신의 어떠한 선한 행위도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그리스도이며,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신뢰하십니까? 아니면 이것에 당신의 공로를 덧붙이겠습니까?
안디옥에 있는 성도들은 이 잘못된 가르침에 혼동되었고 바울과 바나바는 그것이 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켰지만 그래도 그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교회 지도자들과 상의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사도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매우 반갑게 영접했지만, 믿는 바리새인 중 일부는 모든 사람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 베드로가 어떻게 성령님이 이방인 신자들에게 주어졌는지를 말함(15:6-11)
그래서 그들은 함께 모이기로 결정하여 철저하게 그 문제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대부분의 문제와 논쟁들은 함께 모여 끝까지 대화한다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베드로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에 근거해서 사실상 이방인들을 받으셨는 가를 단순하게 상기시켰습니다. 이것은 고넬료와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성령님이 주어졌기 때문에 증명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바리새인들이었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없이 받으신 사람들에게 율법 준수라는 짐을 지우려고 애쓰는 것입니까? 유대인 자신들도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유대인들도 지키지 못한 것을 이방인들에게 행하도록 강요하는 것입니까?
3. 바울, 바나바 그리고 야고보가 말함(15:12-21)
그후에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가 나음을 받은 것과 같은 예를들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방인들 사이에서 놀라운 표적을 행하셨는지 말했습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수백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을 받으셨다는 베드로의 진술을 지지하기 위해서 아모스의 예언을 인용했습니다. 이것으로 논쟁이 해결되었고 우리에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보여주었습니다.
야고보의 결론은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모세의 법을 지키도록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들은 이방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음행과 우상과 어떤 음식들로 인한 죄를 피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이방인들에게 온 율법을 지키는 것은 짐이 되기 때문에 매우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또한 금지된 네가지 일들 조차도 구원의 방법이라고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것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런 행위가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지 않기 때문에 피해야 할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매우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선행은 구원의 열매이지 구원의 도구가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이제 내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기 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 자신의 구원을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나를 먼저 사랑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4. 이방인 신자들에게 쓴 서신(15:22-29)
야고보의 제안은 모든 교회에 잘 받아들여졌으며 그들은 그 서신을 가지고 안디옥으로 돌아갈 유다와 실라 두 사람을 택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형제 중에 인도자"(22절)로 표현되었습니다. 틀림없이 그들은 이 영광스러운 칭호를 받을 가치가 있었지만, 그보다 더 나은 표현을 25절에서 보게됩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지려고 애쓰는 것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은 것입니다. 그러나 몇몇 그리스도인들은 명성을 얻기 위해 그들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서신에서 사도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될 것을 전하라고 그 사람들을 보낸 것이 아님을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네가지 필수적인 일들 이외에는 그들에게 어떠한 짐도 지우지 않았습니다.
5. 이방인들이 기쁨으로 그 서신을 받음(15:30-35)
그들이 안디옥에 도착하자 온 교회를 모아 서신을 읽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 실제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바울의 가르침이 결국 옳았으며 누구든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을 듣고 크게 안심했습니다. 더우기 유다와 실라도 그 사람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믿음을 굳게했습니다. 얼마 후에 형제들이 그들을 예루살렘에 돌려 보냈지만, 실라는 계속 머물며 주님의 사역을 돕고자 했습니다.
당신은 구원을 받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문제가 이제 완전히 해결되어졌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 서신에서 보면 유대인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이 사람들에게 그 가르침을 더하려고 매우 먼곳까지도 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이 직면한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은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에 있습니다.
6. 바울과 실라가 제2차 전도여행을 시작함(15:36-41)
얼마 후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전에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는 성들을 다시 방문하러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바나바는 기꺼이 원했지만, 그 첫번째 전도여행에서 낙오한 조카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기를 거절하므로 결국 그들은 서로 다른 길로 가야만 했습니다. 이제 사도행전에서 바나바나 마가를 볼 수 없지만 바울은 그들 모두를 친구로 여겼습니다(고전 9 :6, 딤후 4:11).
바울은 실라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와 함께 가기를 기뻐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형제들은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며 전송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