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 바울이 붙잡힘(21-24)


요절 : 사도행전 22장 15절, 24장 25절

요점 :

1.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사람들을 얻으려고 그들을 기쁘게 해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 대다수의 사람들이 잘못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돌보시는데 신실하십니다.

4.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어느 때든 보호하실 수 있습니다.

5. 많은 사람들이 너무 오랫동안 미루기 때문에 잃어버려질 것입니다.

6. 자기가 행하지 않은 어떤 것을 고백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예루살렘에서의 바울


1.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말 것을 경고함(21:1-14)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에베소에서 예루살렘까지 계속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잠깐 두로와 가이사랴에서 멈추었는데 그것은 물론 그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고자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로에서 제자들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가이사랴에서 아가보라 불리우는 선지자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붙들려 이방인 통치자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개인적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을 전달하기를 열망했습니다. 그는 또한 순전한 복음을 전하고 그 성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그곳의 많은 사람들은 구원을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구원받는 방법에 관해서는 매우 불분명했습니다. 이 구절들에서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감옥에 갇히거나 죽을 준비가 되어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주님을 증거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일까요?


2. 형제들이 기쁨으로 그들을 영접함(21:15-26)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형제들은 그들을 만나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된 소식을 듣게 되어 매우 기뻐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전도자들이 가져온 구제헌금을 받고도 기뻐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성에는 바울이 더이상 구약성경의 율법에 대해 주의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를 의심하는 수천의 믿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장로 형제들은 그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과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바울에게 어떤 의식을 행하도록 제안했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신앙 간증을  해칠만큼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작은 일들을 행하는 것은 현명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0절에서 밝힌 자신의 전도 원리, 선교 원리에 따라 유대인과 같이 되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되었다는 것을 또 한 번 행동으로 보여 주었었습니다. 바울은 실제로 온전히 순전한 복음을 그들에게 전하기 원하여 이 의식을 행하였지만 이번에 행한 이 의식을 통해서는 바울이 원했던 유대인도 얻고 율법 아래 있는 자도 얻고자 했던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3. 바울이 붙잡힘(21:27-40)


7일이 거의 되자 몇몇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는 그를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이 때가 그를 죽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가 이 소동을 듣자 그는 즉시 이 폭도를 안정시키려고 일단의 병사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붙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여 영문 안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바울을 죽여야 한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가 헬라말을 알고 있는 것에 놀란 천부장에게 말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기가 중요한 도시인 다소의 유대인이라고 말하고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변호할 수 있도록 말할 허락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자주 무리들이나 폭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종을 공격하거나 죽이려고 했던 것을 보았습니다. 다수가 언제나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것과 비록 모든 사람들이 그를 반대할지라도 진리를 세우는 사람에게 주님의 복이 임한다는 것에 주의하는 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4. 바울의 변론 : 그가 빛을 받음(22:1-10)


바울은 처음으로 돌아가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저명한 교사인 가말리엘에게서 바르게 교육받았으며 자기가 유대교에 지나치게 열심이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감옥에 가두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으로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하늘로부터 밝은 빛을 보았고 왜 주님을 핍박하는지를 묻는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에게 다메섹으로 들어가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듣게 될 것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앞의 9장에서 이 이야기에 대해 읽었지만 바울은 자기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말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주 놀랍지 않습니까! 시편 기자는 "주님의 구속받은 자들이 그렇게 말한다" 고 말했습니다. 당신 가정과 이웃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학교에서 또는 직장에서 친구들에게 주님을 시인했습니까? 어느날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께 속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부끄러워해서는 안됩니다.


5.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본 환상에 대해 말함(22:11-21)


바울이 다메섹에 들어가자 경건한 사람인 아나니아가 찾아와서 그들 조상의 하나님께서 자기를 택하사 모든 사람들에게 증인이 되게 하셨다고 말해주었으며 그래서 그가 침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가 예루살렘, 사실상 성전으로 돌아왔을 때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사람들이 그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성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대신 그는 더 멀리까지 가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아직까지도 거절하고 있는 구원의 복된 소식이 이방인들에게 주어졌고 바울은 그들 중에 수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주님께서 주시려고 하시는 복을 거절한다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을 거절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6. 천부장이 유대인들에게서 바울을 구함(22:22-30)


여기까지 오자 유대인들이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이 자기들의 복을 더많이 받게 된 것을 생각하자 그들은 다시금 소리를 지르며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천부장은 그들의 증오를 이해할 수 없자 바울을 때리면 참 이유를 말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의 시민이라고 말하자 로마의 시민을 때리는 것이 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보호하게 하고 그 밤에 파숫군을 두어 보호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그 신실한 종을 계속 주목하고 계신 것을 볼수 있으며, 그 주님은 오늘도 동일하신 분입니다.



바울이 가이사랴로 감


1. 예루살렘에 있는 공회 앞에서(23:1-11) 


그 다음날 천부장은 바울을 대제사장과 공회 앞에 세우려고 데려갔습니다. 바울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을 가졌다고 진술하자 대제사장은 매우 화를 내며 옆에 서있던 병사들에게 그의 입을 때리라고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부당한 것이기에 바울은 화가 나서 그를 회칠한 담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가 대제사장이었음을 알게 되자 곧 사과했습니다. 성경에 기록 되어 있는 대로 백성들의 통치자들에 관해서 나쁘게 말해서는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이  자기의 입을 치려고 할 때에 잠잠히 서 있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같은 장소에 서 계실 때 얼마나 인자하셨고 오래 참으셨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로마 병사는 주님을 때렸지만 주님은 악으로 악을 갚지 않으셨습니다(요18:23절을 보십시오). 이제 법정에서 더 큰 말싸움이 일어나게 되었고 결국 천부장은 바울을 구해내서 다시 영문에 두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주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셨고 로마에서 주님을 증거하게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2. 사십명이 바울을 죽일 것을 맹세함(23:12-24)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는 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들 중에 몇사람이 음모를 꾸며 바울을 죽일 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 계획은 천부장에게 바울을 대제사장에게 보내달라고 요청하여 그 도중에 그를 죽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바울의 조카가 그 음모에 관해 듣게되어 그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천부장이 그 사실을 알게되자 470명의 사람들에게 바울을 보호하도록 명령했고 그를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에게로 데려갔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종을 공격하는 사단의 여러가지 방법을 보게 됩니다. 자신들이 매우 종교적이라고 생각하는 이 사람들이 살인을 자행하려고 실제로 준비했었다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준비하시며 주님의 충성스런 증인을 도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성부께서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자녀에게 일어날 수 없으며 먼저 피할 길을 예비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조카 이름을 알지도 못하지만, 그는 자기의 임무를 알고 그것을 충성스럽게 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약 9년 정도 주님을 더 섬길 수 있었습니다.



3. 천부장이 바울을 가이사랴로 보냄(23:25-35)


 

벨릭스는 유대를 통치하도록 로마의 임명을 받은 총독이었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벨릭스의 보호하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편지를 써서 바울이 로마 시민권이 있고 또한 그가 죽거나 구속될 만한 어떤 일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그런 다음 바울을 총독에게 보내는 이유인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음모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보병들은 그들과 함께 중간까지 간 뒤 돌아갔고 마병들이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에게 데려 갔습니다. 벨릭스가 편지를 읽고는 바울에게 어느 지역 사람인지를 물은 뒤 재판때까지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법과 질서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많은 통치자들이 타락했고 불의했습니다. 우리는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가 유대인들이 주님의 죽음을 요구하자 그들에게 넘겨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로마의 법을 지켜야 할 많은 사람들이 약간의 돈을 벌수 있다면 그 법을 부정하게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4. 더둘로가 벨릭스 앞에서 바울을 고소함(24:1-9)


5일 후에 대제사장이 바울에 대해서 고소하려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왔습니다. 더둘로라 이름한 전문 변사가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재판이 시작되자 그가 벨릭스 앞에서 바울을 대항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총독에게 아첨을 하고는 바울이 나사렛 이단의 괴수이며 이방인들을 거룩한 성전에 데리고 가려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와 함께 있었던 유대인들은 그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고 동의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점에서는 사실이었지만, 그는 할 수 있는대로 나쁘게 보이도록 하여 바울이 총독을 괴롭게하는 자가 되도록 애를 썼습니다. 다소 사실을 말하긴 했지만 그것은 더욱 나쁜 인상을 주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5. 벨릭스 앞에서 바울의 답변(24:10-21)


바울은 답변의 첫부분에서 그가 예루살렘에서 어떤 소동을 일으켰다는 것을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루살렘에 온지 12일 밖에 안되었고 사람들을 위해 희생제물을 드렸으며 그가 성전에서나 성중에서나 군중들에게 변론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예수를 따르는 자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구약성경과 부활을 믿었고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지금 바울은 자신이 행한 잘못이 있다면 시인할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어떤 고소에 대해 거짓된 자백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또한 (여전히) 주 예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을 시인하는 것을 기뻐했으며 만일 그것이 그의 죽음을 의미한다 해도 그는 여전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6. 벨릭스는 두려웠지만 바울을 감옥에 둠(24:22-27)


이제 벨릭스는 천부장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내려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는 바울에게 상당한 자유를 허락하였고 친구들의 방문도 허락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누가가 그와 함께 있었던 것을 알고 있으며, 빌립이 가이사랴에 거하고 있었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다녀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벨릭스의 아내가 오자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주어졌고, 벨릭스가 듣자 실제로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장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제안을 미루기 때문에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잃어버린바 될 것입니다. 벨릭스는 물질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기에 바울이 감옥에서 나가기 위해 그에게 뇌물을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는 또한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기를 원해서 바울을 2년 동안 감옥에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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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07 건너편 지역들(13-15장)


요절 : 사도행전 13장 39절, 15장 11절

요점 :

1. 구약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한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3. 핍박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4. 선행은 아무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5. 선행은 구원받은 어떤 사람도 지켜줄 수 없습니다.

6. 선행은 구원해 주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필수요소입니다.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1. 바울과 바나바가 파송됨(13:1-12)


안디옥 교회에는 바울과 바나바 이외에도 세명의 다른 성경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며 주님을 섬기고 있을 때, 성령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시킬 특별한 일을 위해 그 두 사람을 파송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바울과 바나바는 이 부르심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었고 교회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방법으로 그들을 파송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전도자들과 교회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했습니다.

   그들이 방문한 첫번째 장소는 구브로 섬이었고 마가 요한은 수종자로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파하며 온 섬 가운데로 지나갈 때, 그들은 서기오 바울(Sergius Paulus)이라 불리는 그 지방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갔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었지만 박수 엘루마가 진리를 듣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결국 바울이(Paul : 이때부터 계속 이 이름으로 불리워짐) 엘루마를 얼마동안 소경이 되도록 벌함으로 복음의 빛을 방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서기오 바울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진리의 빛을 방해하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얼마 후에는, 사람이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어 마치 소경과 같이 되므로 더 쉽게 사단의 거짓말을 믿게 될 것입니다.


2.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의 증거- 그리스도의 죽으심(13:13-29)


그들은 구브로에서 더 위험한 지역인 대륙으로 돌아왔으며 이곳에서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우리는 마가가 왜 돌아갔는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젊은 사람들이 주님의 사역을 아주 용감히 시작하지만, 곧 떠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님께서 신실한 일꾼을 사랑하시는 것에 비하면 이일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곧 두 사람은 비시디아 땅에 있는 안디옥이라 불리는 다른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회당으로 먼저가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바울이 전한 말씀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고, 다른 장소에서도 자주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전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먼저 스데반이 했던 것처럼 그들에게 구약 내용을 제시하고는 가능한 빨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23절). 바울은 주님께서 다윗 왕의 직계였다는 것과 주님의 선구자인 세례요한, 유대인들이 주님을 배척한 것, 그분이 바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라는 것, 그리고 그분의 죽으심 자체가 구약성경의 예언의 성취임을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잘 말하려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 두가지는 우리의 구원자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3. 바울이 전한 말씀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13:30-41)


물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을 듣는 것만으로 사람이 행복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즉시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영광스런 부활하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많은 증인들이 있었으며 바울은 그 사실이 분명함을 입증하기 위하여 구약성경의 시편을 인용했습니다. 그후에 바울은 그분을 통해서 그들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으며 만일 이러한 하나님의 제안을  거절할 경우에 대한 경고를 하였습니다. 실제로 구원에 대해 주님을 믿지 않고도 그리스도께서 놀라운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4. 안디옥에서 바울이 전한 말씀에 대한 결과(13:42-52)


그 다음 안식일에 유대인과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바울의 설교를 다시 듣기 원했기 때문에 거의 온 성이 그에게 들으려고 나왔습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들으려고 그런 큰 무리가 모인 적이 없었기 깨문에 그들에게는 너무도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과 논쟁을 시작했고 변박하고 비방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로 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방인들을 기쁘게 했지만 유대인들을 더욱더 분노하게 했고 결국 매우 큰 소란이 일어나 사도들은 그 성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받은 것을 기뻐하는 한 무리의 행복한 제자들을 뒤에 남겨두었습니다.

   은혜의 때가 주어질 때마다 사단이 소동을 일으키고 할 수 있다면 주님의 사역을 방해하려 한다는 것을 학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기뻐하였으며 그 후로 특히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오직 우리의 증거를 통해서만 주님을 알게 된다면 믿지 않는 몇몇 사람들로부터 받을 약간의 모욕을 염려하시겠습니까?


5.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처음에는 경배를 받았지만 후에는 돌에 맞음(14:1-18)


사도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으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를 치유하면서 아주 오랜 기간동안 머물렀으며 그 결과는 매우 비슷했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믿었지만 유대인들은 대적했고 사람들에게 바울과 바나바를 죽이게 돌을 던지라고 선동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것을 알고 피신하여 이웃한 큰 성 루스드라로 도망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를 치유했는데 이것이 사람들에게 바울과 바나바가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온 두 이방신임에 틀림없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믿음으로 바울과 바나바에게 짐승을 희생제물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물론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서 절하려고 했을 때 그에게 일어서라고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바울과 바나바는 받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신적인 경배를 받는 것은 매우 죄악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그렇게 선하신데도 왜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어떤 피조물을 그렇게 자주 기꺼이 경배하려 하는 것일까요?


6. 루스드라를 떠나 안디옥으로 돌아옴(14:19-28)


그러나 루스드라의 군중들은 주위에 의해 곧 변화되어 유대인들이 바울에 반대하도록 선동시켰을 때, 분노하여 바울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죽었다고 생각되자 버려두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에게는 아직 주님을 위해  해야할 큰 사역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무서운 경험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주님만을 섬겨 나가기 원했습니다. 그들은 더베로 갔었지만 그곳에서 다시 안디옥 교회로 돌아가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가혹하게 취급했던 이 성들을 결코 피하지 않고 그들이 그곳에 있을 때 구원받았던 몇 사람들을 굳게 하면서 바울은 그 모든 성들을 다시 지나서 곧장 나아갔습니다. 그는 또한 각처에 세워진 작은 교회들을 보기 원했기 때문에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났고 서로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본 교회로 돌아와 하나님께서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신 놀라운 일에 관하여 말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공회의


1.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논쟁(15:1-5)


우리는 11장에서 믿은(적어도 믿었다고 말하는) 유대인 지도자들 중의 일부는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교제했다는 것 때문에 그와 논쟁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인도 하셨는지 설명하자 그들은 더이상 할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들이 다시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안디옥까지 가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할례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복을 구한다는 구약 시대의 표시였습니다. 이 일은 그 당시에는 선한 일이었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명령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모든 의식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어졌고 폐해졌습니다. 더욱이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에 어떤 것을 더하려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받기 위한 유일한 필요사항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주님께서 이루신 사역뿐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은 비참한 죄인은 하나님의 사랑외에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바랄 수 없지만 할례. 세례, 또는 교회 출석과 같은 자신의 어떠한 선한 행위도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그리스도이며,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신뢰하십니까? 아니면 이것에 당신의 공로를 덧붙이겠습니까?

   안디옥에 있는 성도들은 이 잘못된 가르침에 혼동되었고 바울과 바나바는 그것이 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켰지만 그래도 그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교회 지도자들과 상의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사도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매우 반갑게 영접했지만, 믿는 바리새인 중 일부는 모든 사람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 베드로가 어떻게 성령님이 이방인 신자들에게 주어졌는지를 말함(15:6-11)


그래서 그들은 함께 모이기로 결정하여 철저하게 그 문제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대부분의 문제와 논쟁들은 함께 모여 끝까지 대화한다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베드로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에 근거해서 사실상 이방인들을 받으셨는 가를 단순하게 상기시켰습니다. 이것은 고넬료와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성령님이 주어졌기 때문에 증명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바리새인들이었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없이 받으신 사람들에게 율법 준수라는 짐을 지우려고 애쓰는 것입니까? 유대인 자신들도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유대인들도 지키지 못한 것을 이방인들에게 행하도록 강요하는 것입니까?


3. 바울, 바나바 그리고 야고보가 말함(15:12-21)


그후에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가 나음을 받은 것과 같은 예를들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방인들 사이에서 놀라운 표적을 행하셨는지 말했습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수백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을 받으셨다는 베드로의 진술을 지지하기 위해서 아모스의 예언을 인용했습니다. 이것으로 논쟁이 해결되었고 우리에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보여주었습니다.

야고보의 결론은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모세의 법을 지키도록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들은 이방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음행과 우상과 어떤 음식들로 인한 죄를 피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이방인들에게 온 율법을 지키는 것은 짐이 되기 때문에 매우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또한 금지된 네가지 일들 조차도 구원의 방법이라고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것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런 행위가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지 않기 때문에 피해야 할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매우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선행은 구원의 열매이지 구원의 도구가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이제 내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기 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 자신의 구원을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나를 먼저 사랑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4. 이방인 신자들에게 쓴 서신(15:22-29)


야고보의 제안은 모든 교회에 잘 받아들여졌으며 그들은 그 서신을 가지고 안디옥으로 돌아갈 유다와 실라 두 사람을 택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형제 중에 인도자"(22절)로 표현되었습니다. 틀림없이 그들은 이 영광스러운 칭호를 받을 가치가 있었지만, 그보다 더 나은 표현을 25절에서 보게됩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지려고 애쓰는 것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은 것입니다. 그러나 몇몇 그리스도인들은 명성을 얻기 위해 그들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서신에서 사도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될 것을 전하라고 그 사람들을 보낸 것이 아님을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네가지 필수적인 일들 이외에는 그들에게 어떠한 짐도 지우지 않았습니다.


5. 이방인들이 기쁨으로 그 서신을 받음(15:30-35)


그들이 안디옥에 도착하자 온 교회를 모아 서신을 읽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 실제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바울의 가르침이 결국 옳았으며 누구든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을 듣고 크게 안심했습니다. 더우기 유다와 실라도 그 사람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믿음을 굳게했습니다. 얼마 후에 형제들이 그들을 예루살렘에 돌려 보냈지만, 실라는 계속 머물며 주님의 사역을 돕고자 했습니다.

   당신은 구원을 받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문제가 이제 완전히 해결되어졌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 서신에서 보면 유대인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이 사람들에게 그 가르침을 더하려고  매우 먼곳까지도 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이 직면한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은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에 있습니다.


6. 바울과 실라가 제2차 전도여행을 시작함(15:36-41)


얼마 후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전에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는 성들을 다시 방문하러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바나바는 기꺼이 원했지만, 그 첫번째 전도여행에서 낙오한 조카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기를 거절하므로 결국 그들은 서로 다른 길로 가야만 했습니다. 이제 사도행전에서 바나바나 마가를 볼 수 없지만 바울은 그들 모두를 친구로 여겼습니다(고전 9 :6, 딤후 4:11).

   바울은 실라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와 함께 가기를 기뻐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형제들은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며 전송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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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05 두 사람의 회심(9-10장)


요절 : 사도행전 9장 16절, 10장 35절

요점 :

1. 그리스도는 그분의 모든 백성들과 하나입니다.

2.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3. 기적에 관한 성경의 이야기는 완벽한 사실입니다.

4.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5. 하나님을 제외하고 산 자든 죽은 자든 사람에 대해 경배하는 것은 죄입니다.

6. 우리는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울이 그리스도를 믿음


1. 사울이 빛을 봄(9:1-9)


하나님을 위한 맹목적인 열정과 유대인 가운데에 위대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욕망을 가진 사울은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에 있든지 핍박하려고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남녀를 불구하고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 올 수 있는 허가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단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아주 강렬한 빛이 정오의 찬란한 태양보다 더 밝게 그들 주변을 비추었습니다. 그때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물으시는 주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사울은 "저는 단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의 사람들을 공격함으로써 주님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이 오랜 후에 기록했던 것처럼 몸된 교회의 머리셨습니다(엡1:22-23). 사울은 예수님께서 진실로 주님이시고 하늘의 영광 안에 앉아계신 것에 너무도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 성으로 들어 가라고 하시고 그 후에 그가 무엇을 해야할지를 듣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강한 빛에 의해 눈이 어두워져서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2. 사울이 침례를 받음(9:10-19)


그후에 주님은 아나니아라 이름하는 주님의 신실한 종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집으로 들어가서 사울이 다시 시력을 회복하도록 그의 머리에 안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나니아는 처음에 사울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려고 왔다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에게 사울은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많은 나라에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며 "형제여"라고 불렀습니다. 즉시 사울이 시력을 되찾았고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우리는 이 아나니아에 관해서는 이곳에서 보여진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어려운 명령에 순종할 만큼 주님과 매우 친밀하게 동행하고 있었음에 틀림 없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이실 뿐아니라 종들에게 말씀하실 수 있고 그들은 기꺼이 순종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최근까지 자신이 박해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형제" 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교훈들입니다. 즉 교회는 하나이고 각 지체는 머리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사울이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파함(9:20-25)


사울은 즉시 주 예수님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몇 초신자들이 범하는 실수로서 그들은 처음에 자기 친구둘에게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후에는 시작하기가 훨씬 더 힘들게 됩니다. 그리고 매일 그것을 미루게 되어 점점 더 어럽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사울에게는 위험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신앙을 바꾸는 누구에게나 심한 핍박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울 자신이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을 이미 핍박했었는데 이제 그가 회심했다면 유대인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여러 날이 지난 후에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고 그가 도망치는 경우를 대비해 밤낮으로 성문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사울을 성벽 꼭대기에서 광주리에 달아내려서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모든 사람들은 고난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4.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함(9:26-31)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에도 사울의 어려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나니아가 처음에 주님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주저했던 것처럼 그를 영접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4장 36절에서 읽은대로 바나바가 와서 사도들에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를 도왔습니다. 이제 그들은 사울을 영접하였고 그는 또 다시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 우리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스데반이 그들과 논쟁을 하여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였을 때 그들은 스데반을 공회로 끌고 가서 그를 고소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들이 똑같이 사울을 죽이려고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도착한지 15일만에(갈 1:18) 제자들은 그가 다시 도망하도록 도왔고 이번에는 가이사랴를 향해서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향인 다소로 갔습니다. 이후에 주님은 사울에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기간을 주셨습니다. 그 사이에 교회들은 성장하고, 그 수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울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그 대가가 얼마나 컸는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신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도하고 죽기도 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5. 베드로가 애니아를 치유함(9:32-35)


우리는 사도행전 후반부인 13장 이후의 대부분이 후에 바울로 알려진 사울의 활동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울의 이야기로 되돌아 가겠지만, 지금은 주님께서 유대 지역에서 증거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을 이루는 사도들로서 베드로의 사역 몇가지에 관해 듣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룻다에서 8년동안 앓던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치유하신다고 말하자 즉시 그 사람이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이 일이 룻다에 거하는 모든 사람과 그 옆의 사론 마을이 주님께 돌아오도록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옛 기적들 중 대다수가 그저 상상이며 그 사람이 전혀 아프지 않았던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그가 수년 동안 아팠던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이 베드로가 행한 기적을 보았을 때 그들이 함께 주님께 돌아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진리를 말하고 있으며, 말하는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6. 베드로가 도르가를 살림(9:36-43)


이제 베드로에게 도르가를 죽음에서 살리는 훨씬 더 큰 기적을 행하는 권능이 주어졌습니다. 도루가가 죽었을 때 베드로는 여전히 룻다에 있었지만 제자들을 베드로에게 보내어 욥바로 오게 했습니다. 그가 방에 혼자 들어가 기도한 후 그녀에게 일어나라고 말했습니다. 이 기적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하고 있음을 확신시켰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는 것보다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은 사실이 더욱 중요합니다.


고넬료의 가정


1. 고넬료가 천사의 환상을 봄(10:1-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 자손들에게 특별히 복을 주시겠다는 놀라운 약속을 하셨지만 유대인들이 죄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벌을 내리셔야 했습니다. 그 당시는 로마인들이 유대인들을 지배하고 있었고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하신 그러한 특별한 약속으로 인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결과 유대인들은 그들이 이방인이라 부르는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비우호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많은 구제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으며 매일 기도하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가 복음을 믿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아시고 그 방법을 알려주려고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천사는 그에게 욥바에 가서 베드로를 청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탁하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여러 나라에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뜻을 행하려 하는 많은 사람들을 갖고 계신 것을 아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중심을 살피시며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마음에서 무엇을 보실까요?


2. 베드로도 환상을 봄(10:9-16)


고넬료는 즉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세 사람을 보내 베드로에게 오도록 청하였습니다. 가이사랴에서 욥바까지 가는 유일한 방법은 걷는 것이었으며, 하루에 갈 수 없을 만큼 먼 곳이었습니다. 그들이 가고 있을 때, 베드로는 식사 준비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하늘르부터 환상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그 환상 속에서 여러 종류의 동물이 들어있는 커다란 그릇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고기들이 먹도록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서 그 짐승 중 하나를 잡아먹으라고 했을 때 베드로는 그렇게 하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셨다면 깨끗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세 번 행해졌습니다.

   베드로가 음식에 대해 주린 것처럼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영혼 얻기를 갈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가 깨끗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주 예수님에 대해 신실하게 말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베드로가 성령님께 순종함(10:17-22)


처음에 베드로는 이 환상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고넬료로부터 세사람이 도착했을 때 성령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의심치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전까지만 해도 베드로는 세 이방인들과 동행하는 자로 보여지는 것을 주저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환상을 통해서 어느 누구라도 평범하다거나 부정한 자로 여기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즉시 자신을 알리고 그들의 원하는 것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여섯명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가이사랴로 긴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처음에 깨닫든 못깨닫든 간에 성경에서 배운 것처럼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은 아버지께서 행하라든지 말라든지 말씀하신 것들에 대해 항상 그 이유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후에 그가 이해하게 되며 자기를 인도해 준 현명하고 사랑하는 아버지께 감사할 것입니다.


4.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도착함(10:23-33)


고넬료는 베드로가 올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많은 친구들을 불러 말씀을 듣게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성경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어떤 위대한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느껴 그를 경배하려고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즉시 자기가 하나님이 아니며 사람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경배를 받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심각한 죄입니다. 수 백 만의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조상들이나 살아있는 사람들을 경배하는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베드로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넬료도 배우게 되자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베드로에게 자신이 어떻게 천사를 보게 되었으며 왜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를 불렀는지를 다시금 말해 주었습니다.


5.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전파함(10:34-43)


이제 베드로는 자신이 본 환상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나라를 다른 나라 보다 더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든지 그 중심에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사람을 찾으시며 그 사람을 받으시고 그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와 죄인들을 위한 주님의 죽으심에 대해 알지 못할지라도 누구든지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인하여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의 책임은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서 주님에 관해 듣게 된다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비록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더라도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선한 일을 행하셨는지 그러나 사악한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고 하나님께서 삼일만에 부활시키신 놀라운 사랑 이야기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이러한 일에 증인이었고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그러한 일들이 임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6. 고넬료가 성령을 받고 침례받음(10:44-48)


그런데 베드로가 말하려고 했던 것을 끝내기도 전에 듣던 모든 사람들은 말씀을 믿었고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서 영접했으며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여섯사람들도 진실로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처음에 그들 위에 임하셨던 것처럼 이방인들에게 임하신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주님께 속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고넬료와 또한 그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침례 주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죄와 타락으로 가득찬 사람에게 성령님을 주신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참으로 믿었으며 그들의 죄가 씼겨졌기 때문에 즉시 침례를 받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비록 우리와 전혀 다른 민족일지라도 영접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서로 사랑하도록 말씀하셨고 이는 우리가 주님께 속하였음을 세상이 알게되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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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3과 하나님의 의 (1)

                                                         (3장 21절~31절)


   복음에 의하면 어떻게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가?


   지금까지 살펴 본 내용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있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벌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리신 죄에대한 형벌의 선언은 죽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죄를 어떻게 벌하시며, 또 죄인을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가?" 라는 중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사도 바울은 본 과의 본문에 "칭의"의 교리를 그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 단원은 귀한 진리를 가진 매우 중요한 단원입니다.


   칭의(稱義)


   먼저, 신약 성경에 나타난 칭의의 뜻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1. 칭의는 죄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하나님이 그를 하늘나라에 들어가기에 완전히 합당한 자로 여기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2. 칭의는 신자 자신이 무죄하게 되거나 외형적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뜻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신자를 의의 옷으로 가리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제부터 그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 보시고, 하나님께 그가 용납됨은 그 자신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행하신 일 때문입니다.


   3.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는 것을,  마치 죄를 범한 일이 없거나, 죽은 것과 같이 정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들은 대체로 옳은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들은 다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이 이루어졌음을 뜻합니다. 칭의는, 그 이상으로 죄인이었던 자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완전한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죄인들을 의롭다 하심으로 의롭지 않은 그들을 실제로 의롭다고 부르시며, 죄가 있어도 죄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의가 없어도 의로 여기십니다.


   5. 그렇다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범하는 죄를 무마하시거나 묵인 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사람을 거룩하게 여기시고, 그 후 그들을 실제로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하십니다. 성결이라는 이 과정은 신자가 하늘나라로 들어갈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은 감격적인 진리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주목해서 생각해 봅시다.


   (1) 우리는 21절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의를 주시되 공정한 길을 나타내셨다는 뜻입니다.

   2) 하나님의 의는 "율법 외에" 나타난 의입니다(21절), 사람은 십계명을 지키거나 어떤 노력으로도 도저히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합니다.

   3) 하나님의 의는 "율법과 선지자들의 증거"를 받은 것입니다(21절) 이 말은, 곧 구약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4)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를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22절). 이것으로 죄인들이 의롭게 됩니다.

   5) 하나님의 의는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의입니다(23절). 여기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따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이 없이 주어집니다(22,23절).

   6)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24절). 이 말씀은 사람들이 구원의 댓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음을 뜻할 뿐 아니라 구원을 받을 만한 가치가 우리에게 없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서 염려하시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7) 칭의는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습니다(24절).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근거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묵인하시거나 용납하실 수 없으십니다. 율법은 죄인의 죽음을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 없는 그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으로 자기를 영접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그들의 범법에 대한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화목 제물" 이 되셨습니다(25절).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몸 소 피를 흘려 하나님의 의로우신 모든 요구를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 하신 이 일에 만족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제 그의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수 있습니다.

   9)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음은 하나님이 구약 시대의 사람들의 죄를 어떻게 용서하셨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25절). "전에 지은 죄" 는 갈보리 십자가 사건 이전에 지은 죄를 가리킵니다. 이 죄는 당시의 시점으로 보아 아직도 미래에 있을 그리스도의 사역을 근거로하여 용서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갈보리 십자가를 믿음으로 뒤돌아보고 있으나, 구약의 선지자들은 십자가를 앞으로 내다보았습니다.

   10)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을 하나님이 의롭다 하실 수 있는 것과 또한 하나님은 여전히 공정하심이 밝히 보여 졌습니다(26절).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의 죽음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버림 받은 영혼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셔서 사람들을 대신하여 죽게 하심으로 이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하셨습니다.

   11) 이 구원의 계획은 인간의 모든 자랑을 배제합니다(27절). 만일 사람이 어떤 일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자랑할 수 있을 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데에는 어떤 노고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만이 합당한 것입니다.

   12) 이제까지를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람은 다만 믿음에 의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지,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28절)

   둘째, 칭의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29,30절).

   셋째, 복음은 율법을 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완전한 순종이 아니면, 그것을 범하는 자에게 죽음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상고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죄인을 위한 율법의 완전한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 최대한도의 요구가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것을 통하여 오히려 우리는 율법을 높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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