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하라


                                    구원을 배운 신자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던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용서함 받아서 멸망의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진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위에 열거한 두 가지 내용은 복음을 깨닫는 것과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깨닫는 것과 발견하는 것은 동일하게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서두에 기록된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했는데 '안다'는 말은 곧 경험을 통해서 안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기노스코"라는 단어로써 "...에 의하여 ...을 알게 되다", "발견하다", "깨닫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지식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고 경험적으로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가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상담하면서 느끼는 것은 구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며, 혹 구원의 진리를 아는 사람을 만나보아도 그들은 구원을 배웠을 뿐이었다.

   구원을 배운 사람을 천국에서 만날 수 있을까? 결단코 아니다. 구원은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예전과 달라서 오늘날은 각 교회마다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여 성경 지식수준이 상당히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원을 지식적으로만 배워서 이론으로는 알지만 경험하지 못한 사실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한국 기독교의 심각한 문제요, 근심거리이다.

   사단의 입장에서보면 대 성공을 거둔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노략질하는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단의 속삭임에 속고 있다. 사단은 구원의 지식을 가르쳐주고 말하기를 "너는 구원의 진리를 알고 있으니 구원받은 거야. 더구나 한국에서 제일 이름있는 교파에 속했으며 유명한 목사님도 너와 같이 생각 하고 있지 않느냐? 너는 너의 목사님에게도 인정받고 있지 않느냐" 라고 한다.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 현상을 여러 방면에서 조명하여 규정지을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단에게 속아서 지옥에 가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기가 막힌 사단의 전략에 속아서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필자는 눈물을 금할 수 없다.

   이제 본론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구원에 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구원을 얻으라" 혹은 "구원을 얻었나니" 등으로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성경 어디에도 구원을 이론적으로 배우라는 가르침은 없다. 원칙적으로 복음은 외치는 것이며 경고하는 것이며 깨닫게 하는 것이다. 학술적으로 가르쳐서 지식을 습득하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과 다르다. 이러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구원에 관해서 자신이 없으며 막연하게 천국에 갈 것이라 생각하여 자신 없는 대답만 한다. 혹 자신 있는 대답을 하는 사람도 알고 보면 자존심 때문에 말하거나 착각으로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는 이와 같은 주제, 즉 구원을 배운 사람들의 상태를 점검해 보면서 이글을 읽는 독자들의 신앙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먼저 성경에서 경험을 통하여 구원받은 경우를 살펴보고자 한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불쌍한 여인의 안내를 받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여인을 통해서 "메시야를 만났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것은 배움의 단계이다. 배움은 듣는 것이며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며 소식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확인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그것은 소문일 뿐이다. 누군가가 그것의 사실성을 물어볼 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은 메시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라고 믿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배운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왜 메시아이며 왜 구세주인가, 그가 메시아라면 나와 어떤 관계가 있으며, 나의 인생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그냥 구세주라고만 알고 있는 것이다.

   여인의 말을 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여인을 따라가서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직접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그들은 구원을 받았다(경험했다). 그들의 고백을 들어보자.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요한복음 4:42).

   이 얼마나 확실한 경험인가.

   또 다른 경우도 있다. 누가복음 19장의 삭개오의 경우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에 관해서 여러 경로를 통하여 들었다. 그분은 메시아라고 들었다. 또는 선지자라고 들었다. 여러 기적들에 관해서도 들었다. 가르친 말씀에 대해서도 들었다. 그는 들은 상식으로 예수님을 알뿐이었다. 만약에 누군가가 삭개오에게 예수가 누구냐고 물었으면 자신 없는 대답을 하되 알고 있는 상식 수준에서 하였을 것이다.

   금일에 필자가 만나본 교인들이 오랜 교회생활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확신 없이 어정쩡한 대답을 하거나 분명한 대답을 한다 하여도, 학생이 배운바를 대답하듯 지식적인 대답에 머무르고 있다.

   필자는 언젠가 교인을 만나서 "천국에 갈 수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그는 "갈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또 묻기를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가?"하니 "구역집회에서 전도사님에게 배웠다"고 하였다. "무엇을 배웠느냐?" 물으니 "여러분이 에배당에 나오는 날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으니 구원을 받은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하였기 때문이라고 배웠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또 묻기를 "그러면 죄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니 "십자가에서 모두 용서되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또 계속해서 죄를 짓는데 어떻게 되는가?" 그는 "죄를 짓지 않아야지요" 하였다 "그래도 실수로 죄를 짓지 않는가?" 하니 "그러면 회개해야 하지요" 하였다. 또 끈질기게 묻기를 "회개하지 못하고 죽거나 죄를 짓다가 죽으면 어찌됩니까?" 하니 "할 수 없지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지옥으로 가는데 어찌 하렵니까?" 하였을 때, 너무나도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수십 년 교회 다닌 그의 입에서 놀라운 말을 들었다. "지옥이 있기는 있는 겁니까?" 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어이가 없어서 "지옥을 못 믿습니까?" 하니 "아니, 믿기는 믿는데 지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여기까지 대화를 들으면서 독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그는 지식으로 구원을 배웠을 뿐 구원받은 적이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삭개오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삭개오는 자신의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해서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뽕나무 위에서 기다리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그의 생애는 달라졌다. 그는 구원받은 성도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여! 그대는 거듭났는가? 구원을 경험했는가? 속죄를 경험했는가? 지옥을 경험했는가? 진지하게 묻고 싶다. 그대가 하나님의 실존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들 되심을 믿고 있다 할지라도 앞에 질문한 질문들을 경험하지 못하였다면 구원받았다고 인정할 수 없다. 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독자들도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이렇게 경고할 수밖에 없는 전도자의 마음을 아는가?


   구약의 예를 보자. 열왕기상 10장에 보면 스바 여왕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에 관하여 많은 소문을 들었지만 솔로몬의 위대함에 대해서 오히려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는 진실을 알아보기 위하여 멀고도 힘든 여행을 하였다. 그리고 솔로몬을 만나게 되었다. 솔로몬을 만나서 그가 한 고백은 무엇인가?

   "왕께 고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진실하도다. 내가 그 말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목도한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나의 들은 소문에 지나도다" 하였다. 그는 소문을 확인한 것이다. 예수님도 이 여왕을 칭찬하지 아니하였던가(마12:42).

   여기에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단어가 있다. "소문"이다. 소문은 확실한 것이 아니다. 신뢰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소문은 알고 있는 지식일 뿐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소문적 신앙에 머물러 있음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 말했던  구도자의 경우 지옥을 믿는데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해괴망측한 이야기도 소문적 신앙의 전형이다,

   오늘의 기독교 현실이 수요일과 주일에 교회에 나가서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일방적으로 듣고(배우고) 끝나면 집에 와서 자기의 삶을 살고, 이렇게 살다 보니 들은 것은 많은데 내 것이라고 할만한 지식은 없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아직은 믿음이 없다고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세례 주고 교인을 만들면 천국에 가는가? 교회를 몇년 다녔지만 아직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자격도 없으므로 직분을 맡을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을 인용하여 협박하다시피 집사 직분을 맡기면 천국에 가는가? 그것이 구원받은 사람인가?

   필자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가 목사님의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세례 받고 직분 맡으며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자라왔다. 나의 부모뿐만 아니라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고통 속에 있는 것을 보아왔다. 얼마나 잘못된 현실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세례를 주어서는 안 되며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집사를 맡기면 교회 망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관료주의에 젖어서 감투를 좋아하는 속성이 있다. 오늘의 기독교가 이 속성을 이용하여 성경에도 없는 수많은 종류의 감투를 만들어 교인들에게 나누어주고, 교인들은 그 속에서 위안을 받으며 천국에 갈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집사, 장로 임명을 받으면 얼마만큼의 헌금을 해야 하는 의무는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요구되고 있다. 이것은 중세 천주교에서 속죄권을 팔았던 사실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또한 성직을 매매했던 슬픈 기독교 역사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참으로 기가 막힌 현실이다. 영생의 비밀에 관해서는 가르쳐 주지 못하고, 가르쳐도 이론적으로 가르쳐 줄 뿐 그들의 생명을 살리지는 못하는 현실 아닌가.

   독자여, 그대가 수 십 년 하나님을 섬겼는가? 구원의 교리를 배워서 잘 알고 있는가? 예수님은 나 때문에 죽어서 내 죄를 용서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는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배워서 주장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장담하고 있는가? 그러나 필자는 권하고 싶다. 그대가 진정 멸망의 지옥에서 건짐 받은 경험 있는 성도들인가를 정직하게 점검해보길 바란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린도후서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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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줄타기 선수


   화창한 어느날,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거대한 물이 떨어져 부숴지는 폭포위로 긴 밧줄이 매어졌고, 세계 최고의 줄타기 곡예사가 폭포를 가로질러 건너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곡예사는 밧줄 위에서 긴 장대로 몸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만일 몸의 균형을 잃는다면 그것으로 끝장이었습니다. 곡예사는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마침내 반대편에 도착하자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열열한 찬사를 보냈습니다.

   곡예사는 다시 건너와 이번에는 누군가를 등에 업고 건너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아무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제가 누군가를 업고 건널 수 있다고 믿습니까?" 찬사를 연발하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 예, 믿습니다."

   "그렇다면 제 등에 업히십시오!"

   "아이고! 사양하겠습니다. 나는 내 생명을 당신에게 맡길 수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곡예사는 돌아서서 다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저를 믿습니까?"

   "예,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그는 곡예사의 등에 업혔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그러나 자신있게 그들은 밧줄위를 걸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무사히 강을 건너자 사람들은 다시 열열한 찬사를 보냈습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는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 후에는 하늘나라나 지옥, 둘 중의 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죄 때문에 갈 수가 없습니다. 죄를 씻어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업고 죽음의 강을 건널 구세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18).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은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늘나라로 안전하게 인도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당신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늘나라에 가기를 원한다면, 곡예사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김으로 강을 무사히 건넌 사람처럼 당신의 생명을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 너머 영광의 나라로 당신을 인도하실 유일한 구주이심을 믿습니까?


                                                                                                                                                - 전도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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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04 순교자와 전도자(6-8장)


요절 : 사도행전7장 56절, 8장 22절

요점 :

1. 그리스도인은 물질 문제에 있어서 주의해야 합니다.

2. 사단은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교회를 공격합니다.

3.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든지 죽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4. 교회의 박해는 유익한 것일 수 있습니다.

5.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6.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스데반의 사역, 증거 그리고 죽음


1. 일곱집사를 택함(6:1-15)


이제 막 시작된 교회의 그 다음 어려움은 헬라인 중 몇 사람들이 불평을 할 때 오게 되었습니다. 이 신자들은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들은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신자들이 돈을 공정하게 분배하지 않기 때문에 그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이 소홀하게 대해진다고 느꼈습니다. 여러나라에서 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항상 어떤 것에서 불일치 하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이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열 두 사도들은 교회의 돈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그들이 말씀 전하는 것을 중단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이 일을 위해 일곱 명을 지명하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삶에서든 교회에서든 돈 문제가 적절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려움의 또 다른 형태는 또다시 교회 밖에서 오게 되었는데, 예루살렘에 온 순례자들 중 몇몇이 이 교리에 관해서 스데반과 논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논쟁에서 이기지 못하자 그들은 그가 성전에 대해 거스르는 말을 했다고 송사하였습니다. 논쟁은 좀처럼 어떠한 유익도 이루지 못합니다.


2.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에 응답함(7:1-8)


그들이 스데반을 고소하려고 공회에 끌고가자 스데반은 그들에게 처음부터 유대 백성들의 죄악을 보여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이스라엘의 백성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창세기 12-25장에는 아브라함의 전 생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고 순종했다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이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주의 사자를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 거절한 사람들은 전혀 듣지 못했던 사람들보다 더 악하게 행할 수 있습니다.


3. 요셉은 시기를 받았지만 영화롭게 됨(7:9-16)


그후에 스데반은 아브라함의 증손자였던 요셉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요셉의 열 형제들은 그들의 통치자가 될 것이라는 말로 인해 그를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야곱의 아들들 중에 우두머리가 되도록 선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거절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거절한 것입니다. 이 요셉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 39-50장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요셉과 그 형제들의 자손들이었기에 스데반은 그들 역시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다고 말하였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그를 은 20에 노예로 팔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고 그리스도는 은 30에 팔렸지만 이제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높이셨습니다.


4. 처음에 거절된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됨(7:17-43)


이제 스데반은 유대인들이 위대한 율법 수여자로 매우 높게 평가하는 모세의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교육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어느날 그는 이스라엘 사람 하나가 애굽인과 싸우고 있는 것을 보자 자기의 형제를 돕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두 이스라엘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것을 보고 도우려했지만 그들이 "누가 너를 우리의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고 대들며 도움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40년 후에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의 속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출하려고 애굽으로 다시 보내셨습니다(43절). 그리고 이제는 그 백성들이 모세를 기쁘게 영접했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을 백성들이 거절하지만 결국 그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오래전에 모세가 한 말인 하나님께서 어느날엔가 자기와 같은 또다른 선지자를 일으키신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상기시켰습니다(37절).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요1:17) 이 약속이 성취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 주님을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광야 여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불기둥으로 백성들을 인도하셨을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이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거절하여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하는 복을 거절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그분이 주시는 복을 받아들이기 원하십니까?


5. 처음부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절함(7:44-53)


유대인들은 스데반이 그들의 놀라운 성전이 파괴될 것을 말했다고 고소했습니다(6:14). 그러나 지금 스데반이 나타낸 것은 성전조차도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언제나 하나님의 성령님을 거역했다고 분명하게 선언한 것입니다(51절). 그들의 조상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였고, 지금은 그들이 하나님의 아드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천사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받은 율법 조차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들 앞에서 그렇게 말한 스데반의 용기를 찬양해야 합니다. 스데반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그들에게 자기를 죽일 권세가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찌하든지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자신의 엄청난 죄책을 깨닫고 용서받기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도 자기의 죄가 매우 악하다는 것도 끝내 깨닫지 못하고, 구세주에 대한 어떤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시고 그것에 대해 영원히 벌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들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기를 기뻐할 것입니다.


6. 스데반이 깊이 잠듦(7:54-60)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은 유대인들은 광분하여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스데반에게 하늘의 환상을 보이셨는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 계셨습니다. 백성들이 이 말을 들었을 때, 큰 소리를 지르며 스데반을 성 밖으로 끌고 가서 죽기까지 큰 돌들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죽기 전에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과(눅23:34) 동일한 기도를 했습니다.

   신자가 깊이 잠들었다고 하는 것은 죽었다는 말에 대한 또다른 표현입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위해 순교한 첫번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수 천 명의 사람들이 그렇게 순교했습니다. 당신도 필요하다면 주님을 위해 기꺼이 순교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매일 그분을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복음이 사마리아와 아프리카까지 전파됨


1. 사울의 핍박과 빌립의 기적(8:1-8)


우리는 사울에게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스데반을 죽이는 것을 도울 때 처음 언급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가 어떻게 하나님께 회심했는지와 그의 이름이 어떻게 바울로 변했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때 사울은 니고데모처럼(요3장) 유대인의 랍비(선생)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 새로운 가르침이 사단에게 속했다고 확신하여 그들을 진멸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울은 길리기아성 다소사람으로, 아마도 6장 9절에서 스데반과 논쟁했던 자들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스데반을 죽일 때,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을 흩어버리고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발견하는 대로 감옥에 던져 넣었고 사도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여러 나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복음을 더 멀리 전파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주 예수님에 관해서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핍박은 그들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하려고 필요했을 것입니다. 어쨌든간에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이 듣고 구원을 얻게 되는 복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교회의 물질을 관리하기 위해 사도행전 6장에서 선택된 집사들 가운데 한 사람(스데반)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 빌립은 지금 사마리아 성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믿게 되는 또 다른 특별한 기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 결과 그 도시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8절).


2. 시몬이 믿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님을 받음(8:9-17)


이 사마리아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은 사단의 능력에 의해서 사람들을 속이는데 사용되었던 시몬이라 불리는 마술사였습니다. 이제 그도 말씀을 듣고 믿어 침례를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4장 9절에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는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그들의 지역(유대)에서만 아니라 사마리아에서도 주님을 증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 그래서 지금 그들의 아주 오랜 대적의 땅이 복을 받았다는 것을 듣게되어 사도들이 사마리아로 내려갔으며 그들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선물로 주심으로 그 사마리아인들을 받으셨음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또한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며 우리가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때문에 그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거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3. 시몬이 하나님의 선물을 사기를 원함(8:18-25)


사도들이 사람들에게 안수함으로 성령님의 역사를 본 시몬은 놀라워 했습니다. 그가 갖고 있던 돈은 아마도 그가 전에 사단적인 힘으로 사람들에게서 번 것일 것입니다. 지금 그는 사도들의 특별한 특권을 사서 자기가 사용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베드로는 그에게 회개하지 않는다면 돈과 함께 망할 것이라고 하였고 시몬은 베드로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고 한 것은 시몬이 행한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안에는 돈으로 어느정도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선물에 대해 값을 지불하려고 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던지 모욕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준비하신 구세주를 영접하기를 원하시며 그 다음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은혜에 대해 주님께 사랑을 나타내려고 우리의 물질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4.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남(8:26-29).


지금 이러한 모든 복과 기쁨이 사마리아에서 보여지고 있을 때 빌립은 갑자기 광야로 가도록 불리움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때일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빌립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아프리카의 큰 나라인 에디오피아로부터 온 권세있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그의 나라로 병거를 타고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틀림없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에 관해서 들었겠지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었고 평화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에는 신약성경이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구약으로 된 성경을 읽으며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성령님은 빌립에게 병거에 있는 에디오피아 사람에게 가까이 나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는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거룩한 도성으로 알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진리를 참으로 알았던 유일한 사람들인 그리스도인들을 성공적으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멀리까지 온 이 사람은 만족함 없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충성스러운 종(빌립)이 있었기에 이 내시에게 빛을 비춰주었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5. 빌립이 예언의 뜻을 설명해 줌(8:30-35)


지금 그 에디오피아 사람은 구약성경 가운데 다른 어떤 책보다도 예수님에 관해서 더 많이 말하고 있는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53장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해서 말하고 있었지만 에디오피아 사람에게는 그것이 선지자 자신에 관해서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지 확실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내시에게 그 선지자는 참으로 영광에 들어가시기 전에 우리의 죄를 위해서 고난받으신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고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받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셨더라도 주님께는 죄가 없었기 때문에 영광으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홀로 하늘에 영원토록 계셔야만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곳은 어떤 죄도 들어갈 수 없는데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슬픈 일은 주님께서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을 겪으셨는데도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주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이 당신에게도 헛된 것입니까?


6. 빌립이 에디오피아 사람에게 침례를 주고 돌아감(8:36-40)


에디오피아 사람은 주 예수님에 관한 장엄한 이야기를 즉시 믿었으며 자기의 믿음을 나타내기 위해 바로 침례를 받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빌립은 기쁨으로 침례를 베풀었고 그 일을 마치자 성령님께서 그를 데리고 가심으로 에디오피아 사람은 더이상 그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예수님을 알게 된 기쁨으로 그의 길을 계속 갔습니다. 우리는 그가 고국에 도착했을 때 고난 받으시고 영화롭게 되신 구세주에 대해 여왕과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한 사람 빌립의 충성스러운 순종을 통해서 아프리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8장에서 사도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복음을 퍼뜨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믿는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보내시든 주님께 기꺼이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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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02 오순절날이 임함(1-2장)


요절: 사도행전 1장8절,2장 24절

요점:

1.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가셔서 지금은 영광중에 계시지만

   주님께서는 다시 돌아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3. 주님은 우리에게 온 세상에서 그분을 증거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중심을 아십니다.

5.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두 번째 주시는 위대한 선물입니다.

6. 성령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권능을 주십니다.

7. 성령님은 교회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도와주십니다.


주 예수님의 승천


1.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행 1:1-3)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셨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주님께서 아직 무덤에 머물러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살아나신 후 하늘로 가시기 전에 40일 동안 주님을 본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주님이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예로, 그들 중 몇 사람인 마태, 요한, 베드로는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책을 썼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록하는 모든 기간동안 이 책들을 지키셨고 이제 우리는 성경으로 그것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죽으셨고 또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주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받으셨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 예수님을 매우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습니다. 구세주되신 주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은 매우 큰 죄입니다. 당신은 진정 그분을 당신의 구주와 주인으로 받아들였습니까?


2. 명령과 약속(1:4-8)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가시기 전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잠시동안 예루살렘에 머무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집으로 되돌아 가서 그물을 가지고 다시 고기를 잡으려고 했거나, 또는 즉시 밖으로 나가 모든 사람에게 주 예수님에 관해서 그분이 우리의 죄를 위해 어떻게 죽으셨고 다시 부활하셨는가를 말하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주님은 이미 그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때가 되지 않았기에 주님은 그들에게 얼마동안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이유를 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대로 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적절한 때가 오기전에 서둘러 주님을 위해 무엇을 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야 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그것을 해야 합니다.

   이제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장 훌륭한 선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이 땅에 임하게 되는지 알 수 없을 지라도 몇 날이 못 되어 그들과 영원히 함께 거하실 성령님을 보내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그들에게 어느 곳에 가든지 주님을 증거할 권능을 주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8절의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1-7장에서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증거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후에 8-12장에서는 그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에서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그 후에 13-28장에서는 특별히 사도 바울과 그 일행들이 도처에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3. 예수님의 승천(1:9-11)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우리는 말씀(하나님의 아드님에 대한 다른 이름)이 육신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 거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8절에서 주님은 자신이 아버지께로부터 세상에 오셨고 아버지께로 곧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단락에서 우리는 주님이 하늘로,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는 것을 봅니다. 이일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시고 아버지께서 그 아드님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에 우리를 매우 기쁘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으로 긴 여행을 오셨었습니다. 이제 아버지와 그 아드님이 다시 하늘에서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 되겠습니까!

   제자들은 매우 놀라서 서서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두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서 바로 그 예수님께서 하늘로 간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오실 때 그분을 보고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당신의 마지막 기회는 사라질 것입니다. 지금 주님을 당신의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겠습니까?


4.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옴(1:12-14)


예수님은 베다니의 가까운 감람산에서 승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다시 오실 것이라고 천사들에게 들은 뒤에 제자들은 약 2마일 떨어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명령하신대로 그곳에 머물렀고 다락방에서 기도하면서 여러 날을 보냈습니다. 기도는 놀라운 특권이므로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기도 가운데 주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이 제자들은 누구였을까요? 기록된 열 한명의 이름이 누가복음 6장 13-16의 주님께서 처음에 부르신 제자들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첫 열두 명 중 한사람은 더 이상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고 사단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으며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유다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깨닫게 되었을 때 밖으로 나가 자살했습니다.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던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사랑했던 신실한 여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은 예수님의모친 마리아였고 그녀와 함께 주님의 형제들도 있었습니다. 이 형제들은 처음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지만(요7:5)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후에 주님께서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주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5. 유다를 대신할 사람을 택함(1:15-22)


베드로는 죄에 빠져서 자살해버린 유다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임명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시편에서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한다고 기록된 구절을 생각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위한 사역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져야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을 주님께 봉사하는 일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부터 주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증인이었던 두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요셉과 맛디아였습니다.


6. 기도와 제비가 맛디아를 가리킴(1:23-26)


사도들은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두 사람 중 누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인지를 알기 위해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 제비가 맛디아를 가리켰기 때문에 비록 우리가 그에 대해서 다시 듣지 못할지라도 맛디아가 사도들의 수에 더해졌습니다. 지금은 성령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위해 제비를 뽑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도 그분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도 알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구한다면 그것을 기꺼이 사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님의 강림


1. 표적 : 바람, 불, 방언(2:1-4)


오순절은 고대 유대인의 여러 절기 중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초실절 후 50일째 되는 날 갖게 되었습니다(레 23:16). 초실절은 주 예수님께서 죽으신 날인 유월절 뒤에 바로 갖게 되었습니다. 1장 3절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40일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셨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가시자 곧 성령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120명의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을 때, 바람같은 소리를 듣고 불의 혀같은 것을 보았고, 전에 알지 못했던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성령님이 죄로 얼룩져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거할 수 있을까요? 오직 그들의 마음이 먼저 깨끗해졌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죄를 씻어버리기에 충분한 것은 무엇일까요? 성령님의 강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얼마나 완전하게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거하신다면 우리에게 어떤 조그만 죄라도 거하게되는 것을 슬퍼하실 것입니다.


2. 여러 방언으로 증거함(2:5-11)


유대백성들이 전 세계로 흩어졌지만 그들 중 얼마는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특별히 명절에는 많은 순례자들이 경배하기 위해 왔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다른 15개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이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을 지 상상해 보십시오!

   제자들이 무엇에대해 말했습니까?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11절). 요한복음 16장 13-14절은 성령님께서 자의로 말씀하시지 않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한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충만을 입으면 자기에 대해서 뿐아니라 성령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큰 일에 대해서만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다만 제자들이 새 술에 취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비웃고 매우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3. 술에 취했다는 것에 대한 베드로의 부인(2:12-15)


제자들이 술에 취했다고 모욕하는 어떤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화내지 않고 조용하게 이 모든 것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첫째, 술취하는 사람은 밤에 취하지 이른 아침 9시경에는 술에 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명절 기간에는 기도 시간인 9시까지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몸이 성령님의 거하는 장소라면 그 몸에 해가 되는 어떤 것을 먹거나 마셔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4. 요엘의 약속 : 성령을 부어주심(2:16-24)


베드로는 제자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 다음, 계속해서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모든 백성들 위에 부어주실 것이라는 오래 전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 약속은 요엘서 2장 28-32절에 나타납니다. 오순절날 그 백성들 중에 단지 몇 명만 성령님을 받았지만 때가 되면, 모든 민족 중 얼마가 주님을 영접할 것이며, 바로 그 때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요엘서 약속의 마지막 부분인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라는 말씀은 베드로 시대에도 이루어졌지만, 오늘날에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께  당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비록 이 약속이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며 그렇게 오래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당신이 구원받은 것이 확실하지 않다면 지금 그분을 마음에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의 사역을 인정하셨지만 사악한 사람들은 주님을 잡아 나무에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아셨으며 즉시 아드님께 생명을 돌려주셨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아드님이 음부에 머물러 있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 앞에 분명히 회개하고 그것을 자백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5. 다윗의 약속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2:25-36)


베드로는 계속해서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종 다윗에게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다고 증명했습니다. 다윗의 무덤이 바로 그 예루살렘에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관해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였기에(30절)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매우 놀라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윗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말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우편에서 영화롭게 되셨다고 말했습니다(35절). 그리고 베드로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이미 인정하셨고 지금은 영화롭게 되신 바로 그분을 죽임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그들의 흉악한 죄를 보여 주셨습니다. 만일 당신도 그리스도를 거절한다면 당신 역시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며 주님을 못 박은 유대인들과 같은 입장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6. 말씀을 받은 자들의 꾸준함(2:37-47)


베드로의 말을 들은 사람 중 상당수의 사람들은 즉시 들은 말씀에 따라 무엇인가를 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에게 회개하고 사람들 앞에서 침례를 받아 그들의 진정한 회개를 보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 오순절날에 약 3천명이 그렇게 했습니다. 이 일은 베드로와 모든 제자들과 바로 그 구원 받은 자들과 그리고 하늘에 계신 주님께 얼마나 큰 기쁨이 되겠습니까!

   더 나아가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제와 떡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습니다(42절). 그들은 또한 그들 중 가난한 자들을 도움으로 서로에게 그들의 진정한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나 침례 받은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매일 올바르게 행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의 기쁨에 충만하게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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