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장

좋은 책을 읽고 2019. 6. 21. 07:26

[성경말씀] 

                                                     잠언 1장


잠언은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교훈을 담고 있는 책으로, 삶의 다양한 면을 다루고 있다. 본서를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 지혜롭게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어떻게 어리석고 악한 행위를 피할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다. 본서의 기록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 위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방법을 제시하는 데 있다.


                         서문 : 목적과 주제

1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다.

2 이것은 지혜와 교훈을 얻게 하고 슬기로운 말씀을 깨달으며

3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동하도록 교훈을 얻게 하려는 것으로

4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슬기를 주고 아직 어린 사람들에게는 지식과 옳은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주기 위한 것이다.

5 지혜로운 사람들은 듣고 그 배움을 더할 것이며 슬기로운 사람들은 더욱 슬기를 얻게 될 것이다.

6 잠언과 비유와 지혜로운 사람의 말씀과 이해하기 어려운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7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섬기는 것이 지식의 시작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지혜와 교훈을 가볍게 여긴다.

                        지혜를 품으라는 훈계

8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교훈을 잘 듣고 네 어머니의 가르침을 버리지 마라.

9 그것은 네 머리의 아름다운 화관이요, 네 목에 두를 목걸이다.(히브리어로 '내 아들아'는 스승이 제자를 부르는 말로도 쓰임)

10 내 아들아, 죄인들이 너를 꾀더라도 거기에 넘어가지 마라.

11 그들이 "우리를 따라와라. 우리가 몰래 숨어 있다가 사람을 잡자. 우리가 죄없는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12 그들을 무덤('음부', '죽음'. 히브리어로는 '스올')처럼 산 채로 삼키고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처럼 통째로 삼켜 버리자.

13 그러면 우리가 온갖 종류의 귀중품들을 얻고 우리 집을 남에게 빼앗은 것들로 가득 채울 것이다.

14 그러니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아라. 이 모든 것을 우리와 함께 나누어 가지자" 라고 해도

15 내 아들아, 너는 그들을 따라가지 말고 그들이 가는 길에 한 발짝도 들여놓지 마라.

16 저들의 발은 죄를 짓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데 재빠르기 때문이다.

17 새들이 다 보고 있는 데서 그물을 치는 것처럼 소용없는 일이 또 있을까!

18 그들은 결국 숨어 있다가 자기 피를 흘리게 되고 숨어 기다리다 자기 목숨을 잃게 될 뿐이다.

19 정당하지 않은 이득을 욕심내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 생명만 잃게 될 뿐이다.

                       지혜를 거부하는 것에 대한 경고

20 지혜가 길거리에서 소리치며 광장에서 외친다.

21 복잡한 길목에서 부르짖고 성문 어귀에서 외친다.

22 "너희 어리석은 사람들아, 언제까지 어리석은 것을 좋아하겠느냐? 빈정대는 사람들이 언제까지 빈정대기를 즐거워하고 미련한 사람들은 언제까지 지식을 미워하겠느냐?

23 너희가 내 책망을 듣고 돌이키면 내가 내 영을 너희에게 쏟아 부어 내 말을 너희가 깨닫도록 할 것이다.

24 그러나 내가 불러도 너희가 듣지 않았고 내가 내 손을 뻗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25 너희가 내 모든 조언을 무시하고 내 책망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26 이제 나도 너희 재앙을 보고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운 일이 닥칠 때 내가 비웃을 것이다.

27 재앙이 폭풍처럼 너희를 덮치고 재난이 회오리바람처럼 너희를 휩쓸 것이고 근심과 고난이 너희를 덮칠 것이다.

28 그제야 너희들이 나를 부르겠지만 내가 대답하지 않을 것이며 너희들이 나를 찾겠지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29 그것은 너희들이 지식을 미워하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섬기기로 선택하지 않았으며

30 내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 모든 책망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31 그러므로 너희는 자기가 뿌린 씨의 열매를 먹고 자기 꾀에 배가 부를 것이다.

32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죽을 것이고 미련한 사람들은 스스로 잘난체하다 망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안전하고 재앙받을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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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지음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분을 위하여 지음받았다. 우주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를 포함한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의 영광을 위해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 그분 스스로이시다. 그분의 본질이며, 그분의 성품이고, 그분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어디에 있는가? 주위를 둘러보자.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어떠한 모양으로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낸다.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생물체에서부터 거대한 은하수에 이르기까지, 태양과 별, 바람과 계절 등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자의 영광을 나타낸다. 단지 주위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의 자연에서 우리는 능력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또한 각양 각색의 다양함을 즐기시고, 아름다움을 사랑하시며, 지혜로우시고, 창조적인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시편 19:1).

   하나님은 정말로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장 확실한 모습은 그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다. 성경은 "이전에는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수없이 많은 다른 방법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시다... 그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히브리서 1:1-3, NCV)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요한복음 8:12)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는 어둠 속에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느끼던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광채시다(히브리서 1:3, NIV,참고 - 고린도후서 4:6).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결코 알지 못했을 하나님에 대한 많은 통찰들이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 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분의 영광을 깨닫고, 존귀하게 여기며, 선포하고, 찬양하며, 나타내고, 또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명령받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분께 돌리게 될 모든 존경도 사실 그분에게서 온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기에 모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4:11).

   우주 전체에서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단 두 가지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했는데, 그것은 타락한 천사(악마)와 우리들(인간)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하는 것을 '죄'라고 한다. 모든 죄의 뿌리는 우리의 근본인 하나님께 그분이 마땅히 받으실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것에 있고, 이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교만한 반역이고, 사탄이 타락하고 우리가 타락하게 된 원인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우리의 영광을 위해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삶을 통해 하나님께 합당한 분량의 영광을 돌리지 못했는데 이것이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인 동시에 가장 큰 실수인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이사야 43:7)고 말씀하신 것을 따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 삶의 최고 목표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한복음 17:4)라고 고백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우리도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데 피조물이 그 목적을 달성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다. 새들은 날고, 노래부르고, 집을 짓고, 하나님이 뜻하신 새다운 활동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심지어 개미도 그것이 만들어진 목적을 성취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개미는 개미가 되도록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되도록 만드셨다. 그래서 위대한 순교자인 성 이레니우스(St. Irenaeus) 교부는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이 온전히 살아가는 그 자체다" 라고 말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다섯 가지 목적을 어떻게 이루어갈 것인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다음에 그 다섯 가지 목적을 요약해놓았다.

 

   1.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이 첫번째 목적을 예배라고 부른다. 예배는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제일의 의무이다. "어떤 이들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디모데전서 6:21, LB). 우리는 이 세상의 많은 것들에 관하여 충분히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지 못한다면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첫째 이유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예배는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는 것 이상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즐기고 사랑하며, 우리가 그분의 목적에 맞게 사용되도록 그분에게 드려지는 삶의 모습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즐기는 것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C.S. 루이스는 말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우리에게 명하면서, 그를 즐기라고 우리를 초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하는 동기가 의무감이 아닌 사랑, 감사 그리고 즐거움이길 바라신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예배가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의 온 몸을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것을 하는 데 사용하라' (로마서 6:13, NLT). 우리가 이 첫번째 목적을 이행해야 나머지 네 개의 목적을 이행할 수 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 두번째 목적을 교제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영원토록 함께 교제를 나눌 영원한 세계를 위한 준비인 것이다.

   우리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렸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 하나님이 우리가 즐거워하도록 인도하시는 삶은 단지 믿는다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하는 것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의 세계로 인도하시기 전에 우리가 이 땅에서 배우기를 원하시는 위대한 가르침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성 요한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3:14)고 말하고 있고, 성 바울은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로마서 15:7)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두번째 중요한 책임은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우리가 그분을 닮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적 가족으로서 지역 교회와 관계를 맺는 것은 필수적이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두번째 목적을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를 필요로 하도록 만드셨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아는 증거라고 말씀하셨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네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4-35).


   3.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감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온전한 성숙함에 이를 때까지 자라나길 바라신다.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영적으로 성숙해진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면이 예수님과 같아지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비슷해질수록 우리는 하나님께 더 많은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주의 영이 우리 안에서 역사할수록 우리는 점점 그와 같아지고 그의 영광을 더욱 드러내게 된다" (고린도후서 3:18, NLT).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관리자(또는 '주인')로 영접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과 새로운 본성을 부여하신다. 그리고 이것을 기초로 이 땅에서의 남은 삶 동안 하나님은 우리의 성품을 계속 변화시켜가기를 원하신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빌립보서 1:11, 참고-요한복음 15:8). 하나님은 우리를 영적으로 키우시고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게 하시려고 다른 사람들, 성경 말씀, 주위 환경 그리고 시간과 같은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하신다.


   4.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것 또한 영원한 세계를 위한 연습이다. 우리가 천국에서 즐거이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존재하게 하신 다섯 가지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우리에게 섬기는 일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한 방법은 (볼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러한 재능을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한 재능, 은사, 기술을 주셨다. 성경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이 네번째 목적을 우리의 '사역' 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유행하는 견해와는 달리,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역하도록, 즉 우리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도록 지으셨다. 우리가 갖추고 있는 모습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목적 때문에 그 능력들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을 도우라고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우리를 도울 수 있도록 그 능력들을 허락하셨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아주 다양한 은사들을 너희들 각자에게 나누어주셨다. 그것을 잘 관리하여 하나님의 너그러우심이 너희를 통해 흐르게 하라... 다른 사람을 돕도록 부름받았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온 힘과 에너지를 쏟아 행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베드로전서 4:10-11, NLT, 참고- 고린도후서 8:19).


   5.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당신의 목적이 비밀에 묻혀 있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진리를 안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원하신다.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서 그들이 삶의 목적을 발견하도록 돕고, 그 영원한 목적지를 위해 준비시키는 것은 아주 큰 특권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데려오면 올수록.. 하나님은 더 많은 영광을 받으신다" (고린도후서 4:15, NLT).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남은 삶을 살려면 우리 삶의 우선순위, 많은 계획들, 인간 관계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가끔은 쉬운 길 대신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예수님도 이 점 때문에 갈등하셨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아시고 이렇게 울부짖으셨다. "내 영혼이 고통중에 있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아버지여, 이 고통의 시간으로부터 나를 구하소서.' 그러나 이 목적을 위하여 제가 이 시간까지 왔으니,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2:27-28, NASB).

   예수님은 갈림길에 놓이셨다. 과연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 아니면 뒤로 물러나서 편안하게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 것인가? 마찬가지로 우리도 같은 선택 길에 놓여 있다. 스스로의 목표, 안위 그리고 기쁨을 위해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남은 삶을 살 것인가?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마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요한복은 12:25).

   이제 남은 삶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때가 왔다. 누구를 위해서 살 것인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서 살 것인가?  하나님을 위해 살 힘이 과연 우리에게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가 일단 그렇게 하기로 선택하면 그분을 위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신 분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가깝게 알아감에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기적같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베드로후서 1:3, Msg).

    또한 헌신하기 전에 우리가 품고 있는 의문들이 해결되야만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남은 삶에 대해 우리는 항상 의문점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서 여전히 어떤 부분에서는 의문들과 의심들을 품고 있다. 그렇다고 그러한 의문들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게하는 즐거움을 방해 하지는 못한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차 내부의 연소 과정을 반드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스테이크를 즐겁게 먹기 위해 소화의 화학 작용을 반드시 이해할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품고 있는 모든 의문과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내 삶 속에 받아들였다는 평을 듣고 싶다. 우리 모두 그렇게 할 수 있다.

   바로 이 순간 하나님은 우리의 남은 삶 동안 그분이 우리를 만드신 목적을 이루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우리를 부르고 계시다. 엄밀한 면에서 그것이야말로 삶을 사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뿐이다. 진정한 삶은 스스로를 예수님께 완전히 헌신할 때 시작된다. 이것이 확실하지 않을 때에는 그저 믿고 받아들이면 된다. 성경은 이렇게 약속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하나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첫째, 믿으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목적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을 믿으라. 우리가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믿으라. 우리가 영원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믿으라. 하나님이 예수님의 제자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을 믿으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우리가 과거에 무엇을 했든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믿으라. 하나님께 우리를 용서해주실 것과 우리가 변화되도록 도와주시기를 구하라. 하나님은 분명히 그렇게 하실 것이다.

   둘째, 받아들이라.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경영자, 감독자, 통제자)과 구원자(우리가 지은 죄의 대가를 치루기 위해 돌아가신)가 되시도록 삶 속으로 받아들이라.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음을 받아들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과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를 받아들이라. 우리가 삶의 목적을 이루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들이라.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 아들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는 누구나 온전하고 영원한 삶에서 모든 것을 누린다" (요한복음 3:36, Msg).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고 있는 장소가 어디이든지 상관없다. 나는 당신이 지금 고개를 숙이고 당신의 영생을 바꿔놓을 기도를 조용히 하기 원한다. "예수님,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을 받아들입니다.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사랑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내가 당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든지 간에 하나님이 내 삶 속에 오셔서 내가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고 그리고 사랑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저하지 말고 지금 하라.

   당신이 그 기도를 진심으로 했다면, 축하한다! 하나님의 가족이 된 당신을 환영한다. 당신은 이제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에 따라 살 준비가 되었다. 나는 당신에게 다른 사람과 이 이야기를 나누라고 권하고 싶다. 다른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w w w. purposedrivenlife.com을 방문하거나 info@purposedrivenlife.com으로 이메일을 보내면, 당신의 결단을 말할 수 있고, 당신이 새로운 영적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몇 가지 자료들을 보내줄 것이다.


   생각할 점 : 당신은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 당신 자신인가? 혹은 하나님인가?


                               삶으로 떠나는 질문


   앞의 기도문을 따라 기도했는가?


   당신이 아직 그리스도께 당신의 삶을 열어놓지 않았다면,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리스도를 따르며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했는가? 있다면 그 이름들을

   적어놓으라. 그리고 오늘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주라.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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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삶은 일시적인 것이다


   지구상에서의 삶은 일시적인 것이다.

   성경에는 안개, 빠르게 달리는 사람, 한 번 내쉬는 숨 그리고 한 줄기 연기 등 이 땅에서의 삶이 짧고, 일시적이며, 순간적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한 많은 비유가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분명코 어제 태어난 것 같은 느낌...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그림자만큼이나 순간적이다" (욥기 8:9, NLT).

   삶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첫째는 영생에 비해 이 땅에서의 삶은 지극히 짧다는 것이며, 둘째는 지구라는 곳은 우리가 임시로 거주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그리 오래 머무를 것이 아니기에 지나친 애착을 갖지말고, 우리도 하나님처럼 이 세상에서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다윗은 "주여, 내가 이 땅에서 보낼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나는 아주 잠시동안 이곳에 있는 것임을 알게 해주십시오." (시편 39:4 LB)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복해서 이 세상에서의 삶을 외국에서 잠시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곳은 우리의 영원한 집 또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고, 잠시 지구를 지나가며 방문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순례자, 외국인, 방문객, 손님, 여행자' 등의 어휘를 사용해서 세상에서의 짧은 시간을 표현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다윗은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시편 119:19)라고 말했고, 성 베드로는 "만일 당신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이 땅에서 잠시 거주하는 것처럼 살라" (베드로전서 1:17, GWT)고 말했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기위해 아곳으로 이주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국의 시민권을 계속 유지하면서 이곳 시민이 아니지만 일을 해도 좋다고 허락하는 방문자 등록 카드(그린 카드)를 소지하고 다닌다. 실제로 우리 모두는 자신들이 하늘의 시민임을 상기시켜주는 영적 등록 카드(그린 카드)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삶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항상 이 땅의 것만을 생각하고 살고 있지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는 하늘의 시민임을 기억한다" (빌립보서 3:19-20, NLT).진정한 신자는 이 땅에서의 짧은 인생보다 훨씬 더 긴 삶이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의 정체성은 영생에 있고 우리의 모국은 천국이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소유와 집착' 을 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지금 이곳을 위해 사는 것, 즉 세상이 기준이 되고, 세상의 일이 우선순위인 삶의 방식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매우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문화의 가치관과 유혹에 빠지는 것을 영적인 간음이라고 부르신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우리가 적국의 대사로 임명을 받았다고 상상해보라.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그리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관습과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 우리는 대사이기 때문에 적국의 영토 밖에서 살 수 없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그들과 접촉을 하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나라가 편하게 느껴지고, 그 나라와 사랑에 빠지며, 모국보다 우선시하게 된다고 가정해보자. 우리의 충성심과 헌신의 대상이 변할 것이며, 대사로서의 역할까지 위태로워지고, 모국을 대표하기보다 적들과 같이 행동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배신자가 될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고린도후서 5:20). 슬프게도, 스스로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종종 이 영적인 진리를 잊어버리곤 한다. 어리석게도 그들은 현재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이 그들의 영원한 집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땅은 우리의 집이 아니다. 성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베드로전서 2:11).

   하나님은 우리 주위의 것들이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너무 마음을 주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세상 물건을 쓰는 사람은 그것들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은 사람처럼 사십시오. 그것은 이 세상의 현재 모습이 지나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7:31, 쉬운성경).

   세상은 지난 세기와 비교해볼 때 분명 살기 편해졌고, 고개만 돌리면 곳곳에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일들이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이러한 세상의 말초적인 즐거움들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진정한 목표를 망각하게 만든다. 삶이 영원을 준비하기 위한 시험이고, 위탁받은 것이며, 잠시 맡겨진 임무라는 사실을 깨닫을 때에만 부수적인 것에 불과한 세상의 즐거움이 더 이상 우리의 삶을 움켜쥐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더 나은 것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보는 것들은 내일이면 사라진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보지 못하는 것들은 영원할 것이다" (고린도후서 4:18, Msg).

   이 땅이 우리의 궁극적인 집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왜 어려움과 슬픔 그리고 거절을 경험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요한복음 16:33, 16:20, 15:18-19). 또한 왜 때로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지, 왜 기도에 응답받지 못하는지, 왜 어떤 상황들은 불공평해 보이는지에 대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 세상이 삶의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너무 사랑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삶에서 상당한 정도의 불만 요소를 갖게 하신다. 이 세상에서 채워질 수 없는 갈망을 느끼게 하신다. 우리가 이곳에서 완벽하게 행복하지 않은 것은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곳은 우리의 영원한 가정이 아니다. 우리는 훨씬 더 놀라운 것을 위해 창조되었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땅에서는 행복 하지 않을 것이다. 독수리가 날지 못한다면 삶에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위해 우리가 지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땅에서도 행복한 순간들이 있겠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해놓으신 것 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일시적인 것이라는 깨달음은 우리의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삶에서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일시적인 것이 아닌 영원한 가치가 근본적인 기준이 될 것이다. C. S. 루이스는 "영원하지 않은 것은 영원히 무용지물이다" 라고 했다. 성경은 말한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린도후서 4:18).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위해 갖고 계신 목표가 세상이 정의하고 있는 물질적인 풍요나 통속적인 성공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풍요로운 삶은 물질적인 풍요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나님과 충실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해서 그것이 우리의 성공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적인 편안함 보다는 성품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서의 삶을 편안하게 만드시기보다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기억하라. 삶은 시험이다.

   성 바울은 하나님께 신실했지만 결국 감옥에 갇혔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 신실했지만 그것 때문에 처형당했다. 수백만명의 신실한 사람들이 순교를 했고, 이 세상의 관점으로보면 모든 것을 잃었으며,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이 삶을 마감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의 삶의 끝은  끝이 아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은 번영, 성공, 그리고 이 세상의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아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일시적인것으로 여기고, 영생에서의 약속된 상급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긴 사람들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명예의 전당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1:13, 16). 이 세상에서 우리가 숨쉬는 시간이 우리 인생 스토리의 완결 편이 아니며, 스토리의 나머지 부분들은 천국에 가서야 채울 수 있다.

   미국 대통령과 같은 배를 타고 함께 미국으로 돌아온 은퇴한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환호하는 환영 인파들, 군악대, 빨간 양탄자 그리고 언론이 대통령을 뜨겁게 맞이했다. 하지만 그 선교사가 배에서 내릴 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 때문에 그는 자기 연민과 분노를 느끼며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때 하나님은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아직 집에 온 것이 아니지 않니?"

   "내가 왜 그렇게 일시적인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했지?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 난 왜 그렇게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위해 많은 시간과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소모하며 안감힘을 썼지?" 이와 같은 부르짖음이 우리의 마음에서 울리기 전에는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삶이 힘들어지고, 의심의 구름이 몰려오며,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을까 고민하게 될 때 우리는 아직 집에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죽음이란 우리가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집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할 점 : 삶은 일시적인 것이다.


                                          삶으로 떠나는 질문


   영원히 지속될 유일한 것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라면, 이것은 당신의 가치관, 우선순위, 소유물 그리고 계획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적 편안함보다는 성품에 더 관심을 갖고 계시다. 그렇다면 이러한 진리를 안 당신은 어떤 문제들을 바라보거나 반응할 때 어떻게 달라지겠는가?


주위에 이미 돌아가신 분이 있는가? 방금 읽은 것들을 토대로 그들이 말할 수만 있다면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할지 상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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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 하는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삶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우리의 삶을 만든다.

   삶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 우리의 관점은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투자하고, 돈을 어떻게 사용하며, 재능을 어떻게 활용하고, 관계에 얼만큼의 가치를 두는지에 영향을 미친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라고 묻는 것이다. 우리는 질문을 받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대답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서커스다, 지뢰밭이다,청룡 열차다, 퍼즐이다, 심포니다, 여행이다. 춤이다" 그리고 그 외 여러가지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삶은 회전목마다.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하고 계속 돌기만한다." "삶은 10 단 기어가 있지만 한 번도 그 기어를 바꾸지 않는 자전거와 같다." "삶은 카드 게임이다. 우리가 가진 카드로만 게임을 해야 한다."

   만일 내가 당신에게 "당신은 당신의 삶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어떻게 표현하시겠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당신에게는 제일 먼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떠오르는 그 이미지가 바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당신이 머리 속에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모습이다. 지금 삶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당신이 삶을 통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사람들은 옷, 장신구, 자동차, 머리 스타일, 자동차 범퍼에 붙이는 스티커 그리고 문신 등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모습을 표현한다.

   밖으로 드러내어 말하지 않아도 당신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모습은 당신의 삶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여 당신이 기대하고 있는 것, 가치관, 인간 관계, 목표 그리고 우선순위를 결정하게 한다. 예를 들어, 만일 당신이 삶이 파티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최우선 가치관은 분명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될 것이고, 만일 당신이 삶을 경주로 본다면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시간에 쫓겨서 살게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삶을 마라톤이라고 본다면 당신은 인내에 높은 가치를 둘 것이고, 삶을 전쟁이나 게임이라 생각한다면 승리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될 것이다. 당신은 삶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신이 잘못된 모습 위에 삶의 기초를 세우고 있는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 잘못된 모습은 부모님이나 친구들로부터, 혹은 당신이 읽었던 책이나 보았던 영화로부터, 또는 다른 잘못된 자료들로부터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을 만든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 당신은 틀에 박힌 사고를 버리고, 성경에 근거한 삶의 모습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성경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삶에 대한 모습을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삶은 시험이고, 위탁받은 것이며, 임시로 맡겨진 임무다. 이 세 가지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 삶의 기초다. 우선 처음 두 가지를 이번 장에서 살펴보고, 나머지 한 가지를 다음 장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이 땅에서의 삶은 시험이다.

   삶에 대한 비유는 성경의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인격, 믿음, 복종, 사랑, 투명성 그리고 충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시험하신다. 시험, 유혹, 연단, 테스트와 같은 단어들이 성경을 통틀어 200번 이상 등장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시험하셨고, 야곱이 아내를 얻기 위해 몇 년을 더 일해야 했을 때 야곱을 시험하셨다.

   아담과 하와는 유혹을 이기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다윗왕도 여러 시험에 실패했다. 하지만 성경은 요셉, 룻, 에스더, 다니엘과 같이 그들의 개인적인 인격의 시험을 통과한 이들의 예도 많이 제시하고 있다.

   인격은 시험에 의해서 개발되고 다듬어진다. 삶의 모든 영역이 시험이고 우리는 항상 시험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 문제, 성공, 갈등, 불의, 병 그리고 심지어 날씨에까지 반응하는 우리를 항상 지켜보고 계신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문을 열어주거나, 쓰레기를 줍거나, 상점 직원이나 식당 직원에게 친절하게 대할 때와 같이 아주 사소한 행동도 지켜보고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험을 우리가 모두 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몇 가지를 예측해볼 수는 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대한 변화, 미루어진 약속,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 응답받지 못한 기도, 이유 없이 받는 비난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시험을 받을 것이다. 나 자신도 하나님이 문제와 연관시켜서 나의 믿음의 분량을, 가지고 있는 소유물을 사용하는 방법을 통해서 희망의 척도를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사랑의 모습을 시험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아주 중요한 시험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때때로 의도적으로 뒤로 물러나 계시는 경우가 있고, 우리는 그때 하나님과 소원해짐을 느낀다. 히스기야 왕이 이러한 시험을 겪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역대하 32:31). 히스기야는 평소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해왔지만 하나님은 그의 인생 중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를 홀로 두셨고, 그 기간 동안 그의 인격을 시험하시고 약점이 무엇인지 나타내심으로 더 많은 책임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를 단련시키셨다.

   삶이 시험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가장 작은 사건도 우리의 인격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매일이 중요한 날이고, 매 순간이 인격을 개발하고 사랑을 성장시키며 또는 하나님에게 의지할 수 있는 성장의 기회다. 어떤 시험은 아주 크게 느껴질 수도 있고, 어떤 시험은 있는지도 알지 못할 만큼 작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시험들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영원할 것이다.

   복된 소식은 하나님이 삶의 모든 시험을 우리가 통과하길 원하시고, 우리가 직면하는 시험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 이상이 되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이 강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우리가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시고 우리에게 영생에서 줄 상을 계획하신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야고보서 1:12).


   이땅에서의 삶은 위탁받은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번째 삶에 대한 비유다. 이 땅에서의 시간, 우리의 에너지, 지적인 능력, 기회, 관계 그리고 자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돌보고 관리하도록 잠시 맡기신 선물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의 청지기 또는 관리자다. 이 청지기의 개념은 이 땅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편 24:1).

   엄밀한 면에서 보면 이 땅에서 우리가 잠시 머무는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고, 우리가 여기에 있는 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지구를 잠시 빌려주신 것이다.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이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재산이었고, 우리가 죽고 나면 하나님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실 것이다. 즉 우리는 땅에서 사는 동안 우리가 소유한 것을 잠시 동안 즐기고 사용할 뿐이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피조물들의 관리를 맡기셨고, 하나님의 재산을 맡은 청지기로 임명하셨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하나님이 사람에게 제일 처음으로 맡기신 일은 이 땅 위의 하나님의 소유물들을 돌보고 관리하는 것이었다. 이 역할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고, 오늘날에도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목적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위탁물답게 다루어야 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가진 것 중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이 있는가? 그런데 당신이 가진 것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면, 스스로 이루지 않은 것들에 대해 왜 자랑을 하는가?" (고린도전서 4:7), NLT).

   몇 년 전 한 부부가 나와 애 아내에게 하와이 해변에 있는 아름다운 별장을 휴가 기간 동안 쓰도록 빌려주었다. 우리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 "당신 집처럼 사용하세요" 라고 말해줘서 정말로 내 집처럼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먹으며, 수건과 접시를 사용하고, 재미있게 침대에서 뛰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간 내내 우리는 그것이 정말 우리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폐가 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말로 우리는 그것을 소유하지 않았지만 그 모든 것을 사용하며 즐겼던 것이다.

   우리 인간의 본성이 "소유하지 않으면 돌볼 필요도 없다" 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좀 더 높은 기준을 가지고 살기를 기대하신다.  "청지기는 신뢰할 만해야 하고, 스스로 그렇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린도전서 4:2, AMP).예수님은 삶이 하나님께 위탁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청지기로서 하나님께 우리가 어떤  책임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셨다. 예를 들어 달란트 이야기에서(마태복음 25:14-29). 한 사업가는 그가 없는 동안 재산을 하인들에게 맡긴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그는 각 하인들의 책임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상을 주며 말한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마태복은 25:21).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면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것들을 얼마나 잘 다루었는지 평가받을 것이고, 그에 따라 상급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는 모든 것, 아주 작은 집안일까지도 영원히 영향이 미칠 것임을 의미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충성스러운 수탁자로서 잘 돌보면 하나님은 영원한 세게에서 세 가지 상을 내리실 것이다. 첫째,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아주 잘 했다!" 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승진하게 될 것이고 영원한 세계에서 보다 많은 책임을 맡게 될 것이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기쁨의 자리에 함께하게 될 것이다. "와서 네 주인의 즐거움을 같이 나누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한편으로 시험인 동시에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돈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가르치고 계시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돈은 가장 큰 시험거리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신뢰할 만한지를 시험하시기 위해 우리가 돈을 쓰는 방법을 지켜보신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만일 네가 세상의 부를 관리 하는 일에서조차 믿음을 얻지 못한다면, 하늘의 진정한 부를 누가 너에게 맡기겠느냐" (누가복은 16;11, NLT).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온전히 깨닫지 못하는 매우 중요한 영적 진리다. 하나님은 내가 돈을 어떻게 쓰는지와 나의 영적인 삶의 질과는 직접적인 상관 관계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돈(세상의 부)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따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복(진정한 부)의 관리를 맡기실 수 있는지를 결정하신다.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돈을 관리하는 방법이 하나님이 당신의 삶을 통해 더 많은 일들을 하시려는 것을 막고 있는가? 하나님이 당신에게 영적인 부를 맡기실 만한가?

   에수님은 말씀하셨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누가복은 12:48). 삶은 시험이고 위탁받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실수록 그분은 우리에게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신다.


생각할 점 : 삶은 시험이고 위탁받은 것이다.


                            삶으로 떠나는 질문


   위의 생각할 점에 비추어볼 때 당신의 삶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당신은 삶을 어떻게 표현해왔는가?


   하나님이 당신을 시험하고 계셨다고 생각할 수 있는 과거의 경험이 있는가?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빌린 것이라는 진실에서 삶이 시작된다면 , 당신이 현재 소

   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당신의 느낌은 어떻게 달라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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